백석 시에 나타난 ‘영혼’의 슬픔

The Sorrow of ‘Soul’ Exist in the Poems of Baek-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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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슬픔’이 백석 시의 주조이자 그의 시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대해서 많은 논자들이 주목한 바 있다. 본고에서는 그 슬픔의 의미와 가치를 새로이 규명해 보고자 백석 시에 나타난 ‘영혼’의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그 결과 ‘영혼의 슬픔’은, 척박한 현실과 인간 존재의 한계 상황에 대한 영혼의 인식에서 비롯한다는 것, 반면, 이러한 일상의 삶과 자아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영혼의 기쁨’이 발생하며, 이러한 벗어남을 가능케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혼에 대한 자각과 영혼의 교류를 통해서라는 것 등을 밝혀내었다.

    본고는 또한 백석의 시에서 ‘몽상’이나 ‘기억’, 그리고 ‘감각’, ‘직관’과 ‘감동’ 등이 이와 같은 ‘영혼의 삶’을 살찌우고 ‘영혼의 교류’를 가능케하는 주요 방법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위해 베르그손의 ‘기억’이론과 ‘열린사회’에 대한 논의 등을 참조해 보았다.

    현실과 그 논리 아래 숨겨진 다양한 인간적 가치들을 몽상과 기억을 통해 환기해내고, 독특한 언어적 감각을 활용하여 언어 너머의 실재를 포착해 내려는 백석의 시도와 그의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정서적 감동과 위안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Many researchers have paid attention to the ‘sorrow’ that is the main stream and has very important meaning in Baek-suk’s poetry. This study tried focusing on the aspect of the ‘soul’ which exists in the poems of Baek-suk with a view to make a close inquiry the meaning and value of the sorrow.

    As a result this paper found out that ‘the sorrow of the soul’ was originated from the recognition of the soul associating with a sterile world and a limit of human. On the other hand ‘the joy of the soul’ arises from the awakening of the soul which is transcendent of time and space and from the exchange of the soul which can get out of everyday life and an obsession with ego.

    In this paper I also paid attention to the fact that dream or memory, intuition and emotion in Baek-suk’s poetry play a major part which flatten the life of the soul and make the flow of the soul possible. I consulted the theory of memory and the explanation about ‘open society’ which Bergson had proposed.

    The attempt and works of Baek-suk who tried to catch the ‘real’ that is over the language and to awaken mankind's various kinds of values hidden under the logic of actualities can give people the emotional movement and consolation. Then finally his poetry also can be an inspiration for the transition to a new society.

  • KEYWORD

    영혼 , 기억 , 감각 , 직관 , 감동 , 열린 사회

  • Ⅰ. 머리말

    백석 시의 주조로서의 ‘슬픔’1)이나 그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마음’2)이라는 시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주목한 바 있다. 본고는 백석 시의 ‘슬픔’이 ‘무의식’의 심층에까지 가닿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러한 시각에서 그의 시에 나타난 ‘마음’의 양상을 ‘영혼’에 초점을 맞추어 재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석 시세계의 다양한 면모들에 대해 좀 더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백석은 자신의 문학관과 인생관을 드러내 보인 아래의 글들에서 이미,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靈)魂의 슬픔’을 직접 언급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①의 글은 백석이 박팔양의 시집 『여수시초(麗水詩抄)』에 대한 서평으로 쓴 것이다. “놉흔”5) “슬픔이 있는 혼”, “슬퍼할 줄 아는 혼”이라는 대목이 특히 주목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말 속에 백석 자신의 삶과 문학의 요체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6) 백석이 친구 허준에게 하는 말을 빌려 자신의 인생관․문학관을 드러내 놓은 바 있는 것처럼(“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 「허준」), 위의 글에서도 그는 선배 박팔양의 문학을 논하며,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내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①과 비슷한 시기, 같은 지면을 통해 발표된 ②의 글 「조선인과 요설」에서는 ‘혼(정신)을 잃어버린’ 조선인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어서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이 시기 시인의 눈에 비친 조선인들은 ‘인생의 적막과 비애’를 고요히 가슴에 지니지 못하고, 아니 그것을 생각하지도, 느끼지조차도 못하는 무감하고 무사려한 인종들에 불과했다. 1940년 당시, 백석은 위의 두 글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이에 응전하는 시인으로서의 결의를 다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높은 슬픔이 있는” ‘혼’, ‘넋’, ‘정신’, ‘마음’ 등을 강조하는 시인의 이러한 태도는 이 시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첫 발표 작품인 「정주성」에서부터 등장하여(“문허진 성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들 같다”)7), 위의 인용문들이 발표된 만주 체류 시기를 거쳐, 1956년과 57년 북한에서 벌어진 문학 논쟁 시기, 즉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문학적 소신을 펼쳤던 때까지 지속된 것이었다.8)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백석 시의 주조로서의 ‘슬픔’을 ‘높은 슬픔이 있는 혼’, 즉 ‘영혼의 슬픔’으로 재규정하고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1백석 시에 나타난 ‘슬픔’과 관련하여 여러 논의가 있지만 본고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는 논문으로는 김정수, 「백석 시에 나타난 슬픔의 의미와 성격」(한국어문교육연구, 『어문연구』 통권 142호, 2009.6)을 들 수 있다. 논자는 백석 시에 나타난 슬픔이 하나의 ‘정신’으로 격상되어 있어서 자아나 그것의 연장으로서의 민족의 개념으로 그 ‘정신’을 가둘 수 없다는 통찰(물론 백석의 시가 전통적 정서를 함유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을 보여준 바 있다.  2‘마음’에 주목한 기존 연구로는 이경수, 「백석 시에 나타난 ‘마음’의 형상화 방식과 의미」(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38호, 2013)를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으나, 유의어(‘정신’, ‘(영)혼’, ‘내면’)를 포함한다면 관련된 연구의 폭은 훨씬 넓고 복잡하다. 본고에서 참고한 주요 논문만 적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범순, 「현대시에서 전통적 정신의 존재형식과 그 의미-김소월과 백석을 중심으로」 (한국국어교육연구회, 『국어교육』 96, 1998), 김정현, 「김소월 시에 나타나는 ‘영혼’의 의미 연구」(서울대 석사논문, 2011.8), 남기혁, 「백석의 만주시편에 나타난 ‘시인’의 표상과 내면적 모럴의 진정성」(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연구』 39, 2013)  3김문주 외편, 『백석 문학전집2-산문.기타』, 서정시학, 2012, 78-79쪽에서 인용.  4위의 책, 83-84쪽.  5백석의 여러 시구 중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높고’라는 시어 또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안도현 시인이 백석을 가리켜“(*그는) ‘이곳 너머’를 늘 꿈꾸는 사람이었다”라고 평가한 바 있는 것처럼(안도현, 『백석평전』, 다산책방, 2014, 193쪽), ‘높다’라는 형용사에는 현실의 논리 너머를 가리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글도 참조할 것. “여기에서 ‘높고’라는 형용사를 빼고 시를 읽으면 이 문장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처참하고 저급한 벌거숭이가 된다. ‘외롭고’와 ‘쓸쓸하니’라는 상투적인 시어 사이에 ‘높고’를 끼워넣음으로써 시는 갑자기 쓸쓸함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시인의 위치를 드높은 정신의 차원으로 고양시킨다.” 안도현, 같은 책, 259-260쪽. 또한 백석이 자신의 시와 산문에서 ‘높다’라는 말을 직접 사용한 대표적인 예를들면 다음과 같다. “당신네 나라의/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허준」),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진실로 높은 감정의 도야 없이, 아름다운 정서의 연마 없이 어떻게 진실로 용감해질 수 있으며 어떻게 진실로 완강해질 수 있을 것인가”(「나의 항의, 나의 제의」), “한 산문의 구절이라도 높은 시 정신으로 차야 하며 많은 관념을 연상시켜야 하며 음악적이어야 한다.”(「큰 문제 작은 고찰」)  6시집 『사슴』이 발간되었을 때 이미 고평을 한 바 있는 박용철은(「백석 시집 『사슴』평」, 『조광』, 1936.4) 또 다른 글에서 백석 시의 요체가 이러한 슬픔과 안타까움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시인의 포-즈에는 냉연하고 태연하랴는 점이 보인다⋯(중략)⋯이 시인의 냉연한 포-즈 뒤에서 오히려 얼굴을 내여미는 처치할 수 없는 안타까움까지를 味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시집의 半을 넘어 잃어버린다 할 것이다.” 박용철, 「병자시단의 일년 성과」, 『동아일보』, 1936(*발표월일 미상). 『박용철전집2-평론집』, 깊은샘, 2004, 105-106쪽.  7안도현은 이 ‘파란 혼들 같다’는 표현에 대해, 1811년 정주성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은 홍경래와 그 당시의 사건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고 있다. 안도현, 앞의 책, 80-82쪽 참조.  8예를 들어, 백석의 평론 「나의 항의, 나의 제의」(1956.9)와 「큰 문제 작은 고찰」(1957.6) 등은 그의 ‘시론’이라 불릴 만한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의 각주5에서 살펴보았듯, 이 시기 백석은 아동문학 작품에도 ‘높은 예술 혼(시 정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57년 9월의 소위 ‘자아 비판’ 이후의 그의 문학(문자)적 행보에 대해서는 또 다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Ⅱ. ‘마음’의 세 층위와 ‘영혼’

    앞서 언급했듯, ‘마음’이라는 말은 백석의 시에 반복 등장하는 시어 중 하나다.9) 하지만 이 ‘마음’이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이고, 백석의 시에서도 일상적인 차원 너머의 의미까지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종영은 인간 내면의 짜임새에 대한 여러 이론, 즉 프로이트, 융, 라깡등의 이론을 검토하면서 이 ‘마음’이 크게 ‘자아’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10) 그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자아’(마음1), ‘자아의 무의식’(마음2), 그리고 ‘영적 무의식’(마음3)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11) 다시 말해, “마음은 영혼과 자아를 받아들이는 밭”이며,12) 또한 “자아에 의해 지배되는 마음의 한 귀퉁이에는 언제나 영혼의 슬픔과 기쁨이 자리 잡고 있”다.13)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영혼’14)의 위상과 그 구체적 양상, 그리고 ‘자아와 영혼의 대립’ 등의 사태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하는 설명이다.

    그런데 ‘무의식’을 ‘자아의 무의식’과 ‘영적 무의식’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이 논자만의 시각은 아니다. 김재희는, 프로이트와 베르그손의 ‘무의식’을 각각 ‘부정적․형식적 무의식’과 ‘긍정적․생산적 무의식’으로 비교 설명하고 있다.15)

    프로이트류의 ‘무의식’은 부정적인 심리학적 무의식이어서 그 파괴적인 힘을 교정, 순치, 차단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한다. 그것은 현실적 자아를 보존하려는 의식의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 반면에, 베르그손이 주목하고 있는 ‘무의식’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풍부한 과거’여서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있게 하는 힘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다시 말해, 무의식이 담지하고 있는 ‘잠재력’을 이용하여 현실과 현실 속의 자아를 갱신할 수 있다는 시각이 베르그손의 과거의 기억(무의식)에 대한 입장인 것이다.17)

    정리해 보자면, ‘마음’은 ‘자아(의식)’, ‘자아의 무의식’, 그리고 ‘영적 무의식(영혼)’으로 구분되고, 앞의 두 가지가 ‘자아의 삶’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면, 마지막의 무의식은 ‘영혼의 삶’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18)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영적 무의식’, 즉 ‘영혼’과 그것이 함유하거나 공유하고 있는 깊고 풍부한 ‘과거의 기억’, 바로 이것이 백석의 문학과 관련하여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다.

    위의 두 작품은 모두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①의 작품에서는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과 그 마음 안에 깃들인 ‘오랜 세월과 지혜와 인정’을 거론하고, 작품 중후반부터는 “중국인들이 숭상하는 고결한 정신주의자”20)들 또한 그와 같은 ‘마음’을 갈고 닦았음을 반복․강조한다.21) ②의 작품도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다만 “나라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글쎄 어린 아이들도 아닌데 쪽 발가벗고 있는 것은/ 어쩐지 조금 우수웁기도 하다”라고 하여, 그 정경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지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공통점 즉, 백석이 이러한 민족적 거리를 의식하면서도 그러한 차이를 넘어선 정신적 교류(‘소통’)와 인류 보편적인 정신 세계를 추구(‘동경’)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22)

    “아득하니 오랜 세월” 속에 축적된 “오랜 지혜”와 “오랜 인정”, 그리고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과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이야말로 백석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게 했던 버팀목이자 ‘영혼’의 지향점이었고, 그가 다양한 형상들을 통해 시적으로 되살려내어 떠올리곤 했던, 그가 진정으로 살고 싶어 했던 삶의 모습(‘영혼의 삶’)이었던 것이다.

    91935년에서 1948년 사이에 발표된 백석의 시 총 97편을 정리하고 있는 고형진의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2007)을 대상으로 할 경우, ‘마음’이란 시어는 모두 14편의 작품(「고야」, 「탕약」, 「산숙」, 「꼴두기」, 「가무래기의 낙」, 「수박씨, 호박씨」, 「허준」, 「귀농」, 「국수」, 「촌에서 온 아이」, 「조당에서」, 「두보나 이백같이」,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도합 34회 등장하고 있다. 이경수는 북한에서 창작된 백석의 작품까지를 포함하여 ‘마음’의 출현 빈도와 그 의미를 분석하고 있어 함께 참조할 수 있다. 이경수, 앞의 논문 참조.  10이종영이 최근 자신의 두 저서, 즉 『내면으로-라깡, 융, 밀턴 에릭슨을 거쳐서』(울력, 2012)와 『영혼의 슬픔-두 개의 삶 사이에서』(울력, 2014)에서 검토하고 있는 이론가로는 프로이트, 라깡, 융 같은 정신분석가 뿐만 아니라 스피노자와 베르그손, 레비나스와 같은 철학자, 그리고 현대 최면과학을 성립시킨 밀턴 에릭슨과 같은 이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베르크손에게서도 사회적 삶에 종속된 자아와 그것을 뛰어넘는 영혼 사이의 대립이 내용적으로 존재”(『내면으로』, 369쪽)하며, “자아와 영혼은 ⋯(중략)⋯ 무의식적 마음을 각인하기 위해 서로 대립한다.”(같은 책, 367쪽)  11이종영, 『영혼의 슬픔』, 132쪽.  12이종영, 위의 책, 136쪽.  13이종영, 위의 책, 145쪽.  14‘영혼’에 대한 관념은 원시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여러 분야에서 인류의 중요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원시인들의 사유에서부터 고등종교에까지, 철학상으로도 다양한 견해가 제출되었고 역사적인 변화의 흐름을 이어온 것이어서 그에 대한 검토와 정리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종영은 ‘영혼’에 대한 융의 용례를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 즉 융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뜻으로 ‘영혼’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1) 심리(또는 내면, 마음)(psyché)와의 동의어, 2) 아니마와 아니무스, 3) 우리 육체에 깃든 영적 실체, 4) 내면의 정신적인 어떤 힘을 막연히 지시할 때, 5) 신과의 접점을 이루는 우리 내면의 영적 실체. 자세한 것은 이종영, 『내면으로』, 163-176쪽의 ‘영혼의 용례들’ 참조.  15김재희, 『베르그손의 잠재적 무의식』, 그린비, 2010, 415쪽. 또한 이 책의 3장 1.2절 ‘순수 기억과 프로이트의 무의식’도 참조.  16김재희, 위의 책, 142쪽.  17본고에서는 프랑스 정신주의의 흐름을 이어받은 베르그손의 지속, 기억, 생명의 이론, 즉 김재희에 따르면 ‘잠재적 무의식’으로 수렴될 수 있는 베르그손의 여러 사유의 편린 또한 참조해 보았다. 근대적 사유의 틀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의 철학은 이 문제(‘영혼’)를 다루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백석 시의 지향점이나 방법, 그리고 그 의미를 사유하는데도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이종영 또한 베르그손의 철학이 영혼의 문제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베르크손이 영혼의 실재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종영, 『내면으로』, 432쪽).  18이종영은 이 두 개의 삶, 즉 ‘자아의 삶’과 ‘영혼의 삶’을 각각 분석하고, ‘자아의 삶에서 영혼의 삶으로’ 이행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폭력에 대해 평화로 맞서기’를 제안하고 있다. 이종영, 『영혼의 슬픔』, 265-298쪽, 제8장 ‘평화주의의 어려움’ 참조.  19이하 백석의 시작품은 고형진편,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2007)에서 인용함.  20안도현, 앞의 책, 230-232쪽 참조.  21“한 오천말 남기고 함곡관도 넘어가고 싶고”(노자), “오두미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도”(도연명),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벼개하고 누웠든 사람도”(공자)  22타자와의 ‘소통’과 영혼의 삶을 지향하는 ‘동경’은 이종영이 영혼의 속성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 중의 일부이다. 이종영, 『내면으로』, 443-453 참조

    Ⅲ. ‘영혼’의 슬픔과 기쁨

    ‘영혼의 삶’, 백석이 자신의 삶과 문학을 통해 지향했던 바가 바로 그것이라면, 그 구체적 양상은 어떠한가? 그의 작품의 독특한 페이소스로 거론되는 ‘슬픔’은 ‘기쁨’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영혼의 삶’이 갖는 두 양상일 뿐이다. 백석이 이미 표현해놓고 있는 바처럼, “시인은 진실로 슬프고 근심스럽고 괴로운 탓에 이 가운데서 즐거움이 그 마음을 왕래하는 것”(「슬품과 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혼의 슬픔과 기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위의 인용문에 잘 요약되어 있듯이, ‘영혼의 슬픔’은 우리가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때 느끼게 되는 슬픔이다. 「여승」에 그려진, 굴곡지고 파란 많은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나고 병들고, 늙고 죽고하는 평범한 인간사의 모든 것,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는 속세의 세상살이 자체가 쓸쓸한 비애감을 일으켜 내는 것이며,24) 이러한 인간의 평범한 삶 자체가 ‘영혼’에게 슬픔을 준다.

    위에서 살핀 바처럼, 영혼의 슬픔이 ‘자아의 삶’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고, 영혼의 기쁨이 자아의 삶의 애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성립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백석 시에 나타난 ‘영혼의 삶’의 양상을 영혼의 슬픔과 기쁨으로 일단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25)

    우선, ‘영혼의 슬픔’과 관련하여 다음의 시를 예시해 볼 수 있다.

    (「수라(修羅)」 전문, 『사슴』, 1936.1.20)

    백석 시의 주요한 정조 중의 하나일, 쓸쓸한 비애감, 슬픔 등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①개인적, ②존재론적, ③사회․역사적 상황 등의 이유가 제시된 바 있다. 예를 들어 위의 작품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도, 이숭원은 “백석은 자신을 엄마와 형제를 잃고 헤매는 가련한 아기 거미로 본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26) 이는 작품에 나타난 ‘슬픔’의 이유를 ①개인적 차원에서 찾고 있는 예가 될 것이다. 한편, 고형진은 “이 시는 혈연적인 삶의 공동체가 와해되는 30년대의 사회적인 상황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해석하는데27) 이는 ③사회․역사적 차원의 설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작품에 제시된 ‘(아)수라’를 ②존재론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유한한 존재 혹은 허무의 존재로서 살아가는 이 생의 슬픔”에 주목해 볼 수도 있다.28) 이러한 해석을 통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한 행위 결과에 의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와 삶의 실상을 슬퍼하는 것(‘영혼의 슬픔’)으로서의 이 시의 알레고리적 의미를 돋보이게 할 수 있다.29) 또한 이러한 해석 방법은 앞의 두 해석, 즉 개인적이거나 사회역사적인 상황으로 작품의 의미를 풀이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해석틀의 보편성30)으로 인해, 이 작품이 다양한 독자층에 줄 수 있는 감동의 깊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한계, 즉 자아의 삶이 직면하게 마련인 고통의 굴레를 직시하고 있는 시인의 ‘슬픔’, 다시 말해 ‘영혼의 슬픔’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백석 시에 나타난 ‘영혼의 기쁨’은 이러한 일상적 자아의 집착과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길에서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감동의 순간들이다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 이 작품 제 1연에서는 그것이 끓는 소리며, 내음새며, 그 속에 들어 있는 재료, 그리고 탕약을 끓이는 모습이나 정황까지가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2연에서 시적 화자는 그렇게 정성스레 달인 탕약을 고이 받아들고 그 까만 속을 들여다보면서, 누군가를 위해 이러한 약을 만들어내었을 ‘녯사람들’의 사랑과 지혜에 감동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고요히 맑히고 있다.

    이 작품은 이렇듯 상세한 묘사를 통해 대상에 집중하게 하고 그 대상에 담겨 있는 인간들의 꿈과 열망을 환기하며, 바로 거기에 무엇보다 큰 위안과 치유력이 놓여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에 그려진 탕약은 “몸을 보한다는”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성스런 마음들의 연결 속에서 헝클어진 마음이 치유되고 또한 그 속에서 시인이나 독자 모두의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지게 된다. 누군가의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려는 이러한 정성스런 마음은 시인과 시적 화자를 거쳐 독자들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31) 백석의 시에서, 시적 화자가 대상과의 ‘영혼의 교류’32)를 통해 좁은 자아의 틀을 벗어나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감싸는 그러한 마음과 공동체적 의식(‘사랑’)은 민족과 인류의 경계마저 넘어, 세상 만물에 이르는 것이었다.33)

    위의 작품은 한국전쟁 이전에 마지막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백석의 대표작 중 하나다. 유종호에 의해 ‘페시미즘의 절창’으로 평가된 바 있듯이,34) 이 작품의 주조는 외롭고 슬프고 인생에 절망하고 회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위에 인용한 작품의 후반부부터는 그 어조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내 뜻이나 힘’보다 ‘더 크고, 높은 것’ 즉, 신적인 것, 또는 ‘성스러운 것’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의 형상으로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마지막 자존심, 즉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비로소 얻게 된’ ‘넋 하나’, 바로 그 ‘진정한 나’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며, 그 잔잔한 기쁨과 감동이 이 작품의 울림을 정작 크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35)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이 ‘페시미즘’의 ‘절창’인 이유는 그것이 ‘슬픔’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승화시키는 어떤 힘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힘에 의해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감동적 체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36) 또한 이 작품의 ‘운명론’은 수동적인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스스로 그러한 삶을 자신의 운명으로 수락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적극적인 수동성’,37) 즉 영혼의 ‘슬픔’과 ‘기쁨’이라는 모순이 하나로 승화된 작품으로 새로이 해석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38) ‘영혼의 슬픔’은 그 자체로 ‘자아’의 좁은 틀을 넘어선 ‘영혼의 삶’을 증거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미 ‘영혼의 기쁨’을 함유하고 있는 것, 또는 적어도 그것을 향하게 하는 출발점이자 동력일 것이다.

    23이종영, 『영혼의 슬픔』, 9쪽.  24이런 관점에서 「적경」에 그려진 생노병사의 모습이 쓸쓸하게,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백석은 인간사의 쓸쓸함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의 교류와 인정을 통해 감싸고 있다. 시인이 인간의 한계나 그에 비롯하는 애환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 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문학적 성취를 논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방식 또한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25이종영은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설정한 인간의 세 가지 기본적 정서인 ‘수동적 기쁨’, ‘수동적 슬픔’, ‘능동적 기쁨’을 각각 ‘자아의 기쁨’, ‘자아의 슬픔’, 그리고 ‘영혼의 기쁨’으로 재해석하고(물론 그 차이 또한 지적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체계에는 부재한 ‘영혼의 슬픔’ 개념을 추가한다. 그는 “영혼은 신과 관계할 때 기쁨을 갖고 자아와 관계할 때 슬픔을 갖는다”라고 가정한다. 이종영, 『영혼의 슬픔ԗ, 49-71쪽 ‘제1장 영혼의 슬픔’ 참조.  26이숭원, 『(백석 시 전편 해설)백석을 만나다』, 태학사, 2008, 152쪽.  27고형진, 『백석 시 바로 읽기』, 현대문학, 2006, 220쪽.  28오세영,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262-281쪽.  29이종영은 ‘영혼의 속성’으로 ‘수동성, 동경, 소통, 악에의 불가능성, 동일성’ 등을 들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타자와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서 특히 ‘자아의 행위에 의해 고통받는 것’(‘악에의 불가능성’), ‘영혼들 사이의 동일성’, 그리고 ‘자아와 타자를 관조하는 수동성’ 등의 속성은 백석의 「수라」에 잘 드러나 있다. 이종영, 『내면으로』, 443-446쪽 참조.  30이는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헤겔의 ‘보편적 개별성’이 될 것이다. 이종영의 해설에 의하면 “‘보편적 개별성’은 개별성들 속에서 모든 인간 존재의 근본적 동일성을 보는 것”이다. 즉, “한 개인의 내적 고유성”을 담아내면서도 “모든 인간 존재의 근본적 동일성”을 담지하는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종영, 「『전태일 평전』에 대하여」, 『진보평론』 55호, 2013 봄호, 290쪽 참조.  31백석 시의 정서적 파급력에 대해서는,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안도현의 다음과 같은 지적 또한 참조할 만하다. “독자를 슬그머니 끌어당겨 그가 노래하는 대상에 쓸쓸한 연민을 갖게 하는 창작방법은 백석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안도현, 앞의 책, 251쪽.  32“영혼이 추구하는 것은 영혼들 사이의 소통이다.” 이종영, 『내면으로』, 367쪽.  33김재희, 「베르그손의 창조적 정서와 열린 사회」,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44권, 2012 197-226쪽 참조. “박애⋯(중략)⋯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 인류조차 넘어선 우주 전체에 대한 사랑”(222쪽).  34유종호, 「한국의 페시미즘(상)」, 『현대문학』 통권 81호, 1961.9, 191쪽.  35이런 시각에서 ‘영혼의 기쁨’은 ‘나’라는 작은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게 하는 더욱 큰 무언가, 예를 들어 공동체나 자연 등에 녹아 있는 또 다른 ‘마음’, ‘혼’, ‘정신’등과의 소통이나 교류를 통해 얻게 되는 ‘자아’ 탈각의 체험과 그에 따른 희열에 다름 아닌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36유종호는 「한국의 페시미즘(상)」(『현대문학』, 1961.9)에서 이 작품을 ‘운명론’의 시각에서 살피면서 ‘페시미즘의 절창’으로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후에 발표된 그의 또 다른 글 「백석의 시세계(중)-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문학동네』, 2002봄호)에서는 이 작품에 나타난 ‘생에의 의욕’과 ‘의지’를 좀 더 강조하면서 기왕의 자신의 해석을 수정 보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본고에서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문맥을 밝히기 위해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초월적 불가항력에 번롱당하고 있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던 화자는 여러 날에 걸친 생각의 반추를 통해서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하고, 먼 산 바우섶에 외로이 서서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생에의 의욕을 다진다. 우리는 당연히 갈매나무라는 표상에 주목하게 되는데 외따로 서서 눈을 맞을 갈매나무는 드물고 ‘굳고 정한’ 나무이다. ‘굳’다는 관형사가 빠져 있다면 이왕의 백석시와 다를 바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굳음’이란 새 요소가 갈매나무라는 표상에 첨가되어 있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정하게 또 ‘굳게’ 살련다는 결곡한 의지가 엿보인다.”(379쪽)  37“영혼의 수동성은 매우 적극적인 수동성이다. ‘스스로를 완전하게 제공하는 것’은 단호한 적극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종영, 『내면으로』, 374쪽 참조. 이종영은 여기에서 ‘자아의 수동성’과 ‘영혼의 수동성’을 구분하고 있다.  38남기혁은 백석의 이 작품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 나타난 ‘내면적 모럴의 진정성’에 주목하고, “‘시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정결한 내면의 영토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 그의 운명론의 핵심”임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이러한 시각에서, 유종호가 「한국의 페시미즘」에서 이 작품에 내린 평가가 불명확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운명론에 내재한 ‘시인’의 표상이 ‘육체’만 비대해진 일제말 현실에 대한 정신적 대결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점은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남기혁, 앞의 논문 참조.

    Ⅳ. 무의식의 심층(‘영혼’)에 이르는 길;‘몽상-기억’, ‘감각’, ‘직관-감동’

    앞서 살핀 바처럼, 백석은 시를 통해 ‘영혼의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신의 ‘자아’나 ‘욕망’(자아의 무의식)에 집착하고 거기에 매몰되어 살다가 잃어(잊어)버리게 된 ‘영혼’, 그 ‘잠재적 무의식’39)의 심층을 문학적으로 찾아 들어갔던 것인데, 이 장에서는 백석이 이러한 탐색을 위해 활용한 ‘몽상’, ‘기억’, ‘감각’ 그리고 ‘직관’과 ‘감동’ 등의 방법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고방」 전문, 『사슴』, 1936.1.20)

    위에 예시한 작품에는, 유년의 ‘몽상’, 그리고 그 몽상 속의 시공간을 ‘기억’을 통해 되살려내어 반추하는 성인 화자의 현재적 시각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작품 밖 성년의 시인 자아의 시각에서는 ‘(과거의) 기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기억 속의 유년 자아의 시각에서는 ‘(현재적) 몽상’이라 불릴 수 있는 내용과 중첩되어 독자들을 몽상과 기억 속으로 이끌어 들이고 있는 특이한 구조의 작품이라 할 만한 것이다.40)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1896)에서 이러한 ‘꿈(몽상)’과 ‘기억’의 관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해 놓고 있다.

    위의 글에서 베르그손은, ‘몽상(꿈)’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정확히 되살 수 있다는 것, 현재적 행동의 필요에 의해 억압받았던 과거의 그 ‘힘’을 현재로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꿈(몽상)을 통해 기억이 앙양’되고, ‘기억을 통해 꿈을 되살게 되는’ 상호 관련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다시 말해, ‘몽상-기억-몽상-기억⋯’의 연쇄를 상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일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설명 또한 참조할 수 있다.

    베르그손은 그의 유명한 ‘원뿔 도식’에서 “무의식적 과거를 현재의 의식으로 연장하는 기억의 운동”43)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즉 “원뿔 전체가 잠재적인 순수 기억이라면”, 원뿔의 단면들이 “팽창될수록 순수 기억은 지나간 삶의 고유한 실존적 체험 전체에 가까워지고, 수축될수록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동에 가까워진다.”44)라는 것이다.

    백석의 시가 매력적인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동”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지나간 삶의 고유한 실존적 체험 전체”를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현재와 과거를 종합’하는 이러한 일을 그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구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있기에 보편적이면서도 각 개인에게만큼은 그 무엇보다 개별적 구체성을 지니는 ‘감각’을 시적 형상화의 통로로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즉 감각적 이미지를 이러한 ‘기억’의 수축과 팽창이 일어날 수 있는 매개로 사용하여 독자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여 친밀한 공감을 일으키고 나아가 커다란 영혼의 울림과 감동을 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구조와 장치 속에서, 이 작품의 마지막 행은 특히 주목된다. “녯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은 과거의 시간들(추억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시공간이다. 시인은 여러 음식이나 사물의 묘사를 통해 ‘고방’ 특유의 후각을 중심으로 한 감각을 환기시키고 그것을 표지삼아 과거로의 탐사를 떠나며 독자들의 참여를 권유한다. 그러한 탐색에서 만나게 되는 ‘녯말’,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끝 모를 무의식적 깊이, 바로 그것이 유년의 시적 화자와 시인, 나아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리라

    기억과 몽상, 그리고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도달한 ‘고방’ 그속에서 시적 자아는 “저녁 끼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기억’을 통해 되살려낸 ‘몽상’ 속에서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다시 살고 있는 시적 자아에게 그와 같은 공간은 자신의 유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추억의 자리이기도 하고, 또한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축적된 과거의 풍요로운 잠재성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던 것이다.45)

    백석의 ‘과거 회상’은 그에 대한 비판자들이 지적하듯이 단순한 복고 취미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다.47)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탐색이었고, 그것을 통해 그는 우리의 감수성을 회복하고 축소된 시야를 넓혀 현재와 미래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48)

    구체적으로, 「산숙-산중음」, 「국수」, 「여우난골족」, 「박각시 오는 저녁」, 「북신」 등의 작품은 우리가 잃어버린 다양한 ‘공동체적 기억’에 관한 작품들이고, 「수라」, 「두보나 이백같이」와 같은 작품들은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기억에 해당될 듯하며, 앞서 살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나 전통 신앙의 편린을 담고 있는 여러 시편들은 인간 너머의 존재, 즉 ‘성스러운 것(성스러움)’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는 작품들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백석이 강조한 ‘직관’적 방법의 중요성과 의미, 그리고 ‘감동’의 문학적․문화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①의 글에서 백석은, 시에서의 ‘언어가 가진 음영’을 강조하고, 그에 대해 민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언어가 가진 ‘음영’이란, 언어의 함축적(내포적) 의미를 포함하여 시적 언어를 성립시키기 위한 언어의 음악성이나 회회성 등 언어가 지닌 모든 자질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단 이해된다. 하지만 좀 더 위 인용문의 맥락이나 ‘음영’이라는 용어의 내력 등을 생각해 보자면, 그것은 “미묘하고 심오한 소식”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의 함축과 여운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뜻을 새겨 볼 수 있다.51) 소월이 이미이 용어를 “개개의 작품이나 사물이 지닌 고유한 가치의 현현”으로 사용했고,52) 백석 또한 실재 자체의 고유하고 미묘한 기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가리키기 위해, ‘언어의 음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②의 글 또한, “말 밖의 말”, 즉 ‘함축’과 ‘여운’을 이용하여 “이야기되지 않는 것”, “직접 이름을 불리우지 않는 것”을 표현하고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자 예술의 본질이라는 동일한 주장이다. 두 글 모두, 실재 그 자체를 ‘직관’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민감과 결벽성, 그리고 언어의 조탁을 시인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①에 설명되어 있듯, ‘직관(直觀)’은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포착”을 의미한다.55) 백석이 문학적으로 추구했고 베르그손이 철학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모두, 언어나 논리로 쉽게 포착되지 않는 실재를 붙잡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넘어섬’을 위해서는 ②에 언급된 것처럼, 힘겨운 노력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즉, 무의식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의식의 긴장이 필요하다는 베르그손의 주장(“잠재적인 과거의 기억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현실화하는 과정은 의식의 긴장된 ‘주의 집중’을 요한다”)은, 언어 너머의 것을 언어를 통해 포착하기 위해 시인에게 언어의 음영에 대한 민감과 결벽을 요구한 백석의 주장과 상통하는 것이다. 또한 ‘직관’(통찰)과 의식의 집중, 나아가 언어의 조탁이 상호 결합되어 있는 그들의 철학과 문학의 실제 자체가 그들 이론의 성취를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56)

    누구보다 명료한 언어적 감각을 갖고 있었던 백석은 그 ‘언어’를 통해,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서 ‘진실’ 즉, ‘미묘하고 심오한 소식’을 담아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의 소명으로 삼았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시적 특징으로 주목받아온,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감각적 이미지와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언어의 조탁, 그것은 바로 언어를 통해 언어 너머의 것을 겨냥하는 방법론의 일환이었던 것이며, ‘현실적인 것’을 통해 그 너머의 ‘잠재적인 것’을 시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직관’적 방법과 통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57)

    끝으로, 시에서 ‘감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백석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백석은 “시는 깊어야 하며, 특이하여야 하며, 뜨거워야 하며 진실하여야 한다”(「나의 항의, 나의 제의」)58)라고 말한 바 있는데 여기에서 먼저, ‘깊다’는 것은 앞서 살핀 바 있듯이 인간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이나 ‘성스러운 것’에 맞닿아 있는 그의 작품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고, ‘특이하다’는 것은 백석 시의 언어 활용과 시적 형상화에서의 개성을 가리키는 것일 터이다. 끝으로, ‘뜨겁고 진실하다’는 것, 그것은 예술적 감동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59)

    백석은 ①의 글에서 작가동맹 아동문학 분과에서 진행한 1956년도 회의의 결과를 비판하고 편협하고 일방적인 이데올로기적 잣대로 아동문학을 구속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는 혁명과 건설의 이념만을 중요한 잣대로 여기는 당시 북한의 문학인들에게 문학의 본령은 ‘내면세계의 황홀한 아름다움’ 즉 ‘감정’과 ‘정서’의 고양에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62)

    ②는 베르그손이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방법론으로 제시한 ‘직관’과 ‘감동’을 해설하는 글이다. ‘추상적 이론이 아닌 감동’, ‘공감과 소통’, ‘잃어버렸던 생명적 감수성’과 ‘잠재적 전체(무의식)에 대한 확장된 경험’을 회복하고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열린 미래로 나아가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점 등등. 이 모든 것은 백석 시의 해설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이와같이 “영혼은 자신의 감수성으로써 세상과 관계를 맺”으려 하고, 그 속에서 “자아의 행위와는 전혀 다른 일종의 내밀한 감응과 교류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63)

    언어 너머의 ‘실재’를 포착하고자 하는 ‘직관’의 방법과 의식 아래 잠재된 ‘무의식’을 ‘몽상’과 ‘기억’을 통해 발굴하려는 기획을 통해, 숨겨져있던 다양한 가치들을 환기해 내고, 생명력 있는 긴장된 언어를 통해 미래의 독자들에게까지 정서적 감동과 위안, 그리고 궁핍한 시대를 견디는 힘을 주고 있는 백석의 시세계는 그 자체로 새로운 사회로의 토대를 예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9이 용어(‘잠재적 무의식’)는 김재희가 베르그손의 철학적 사유가 지향한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기 위해 사용한 것인데, 본고에서 백석이 문학적으로 추구한 것으로 상정한 ‘영적 무의식(영혼)’과 상통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참고해 보았다. 김재희, 앞의 책, 머리말과 제1장 참조.  40이숭원 또한 이 작품에서 시인의 유년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시인의 모습을 함께 보고 있다. “고방의 쌀독 뒤에서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들은 척했다고 적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고방의 아늑한 이질감이 주는 고립감, 그것과 관련되어 세상의 간섭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그러한 어린 시절의 심리가 어른이 된 백석에게 그대로 기억된 것인데, 기억의 차원이 아니라 어른인 백석 자신이 그러한 현실과의 거리 유지와 이탈 지향을 마음속에 지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과거 탐사는 현실과의 거리 두기의 한 방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숭원, 앞의 책, 59쪽.  41앙리 베르그손(박종원 역), 『물질과 기억』, 아카넷, 2005, 263쪽.  42김재희, 앞의 책, 187쪽.  43김재희, 『물질과 기억-반복과 차이의 운동』, 살림, 2008, 103쪽.  44김재희, 위의 책, 113쪽.  45“종종 나는 육체에서 빠져나와 나 자신에게로 깨어난다. 다른 모든 것에 이방적인나 자신의 내밀함 속에서 나는 놀라운 아름다움을 목격한다. 이때 나는 확신한다. 내 운명은 더 높은 존재와 연결된 것임을. 내 행위는 지고한 생명의 것임을. 내가 신적 존재와 결합해 있음을.” 이종영, 『내면으로』, 442쪽에서 재인용. 플로티노스가 『엔네아데스』에서 고백한 이 말은 백석의 시 「고방」과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을 꿰뚫고 있는 영혼의 흐름과 동일한 것이다.  46김재희, 『베르그손의 잠재적 무의식』, 171-172쪽. 또한 김재희는 베르그손의 ‘지속’, ‘기억’, 그리고 ‘생명’의 철학을 ‘잠재적 무의식’에 대한 탐색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현실적 경험의 심층적 배후에 잠재적으로 존속하는 무의식적 실재와의 잃어버린 접촉을 회복하려는 존재론적 탐구이자 현실적 경험 자체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인식론적 모색”으로 평가하고 있다. 같은 책, 5쪽.  47백석 시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의 하나였을 오장환은 백석이 “동화의 세계로 배회”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그 이상의 무엇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그는 앞날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라고 지적한다. 오장환, 「백석론」, 『풍림』 제5호, 1937.4, 18쪽.  48백석 시의 ‘기억’(과거 회상)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를 참고할 수 있다. 김용희, 「백석 시에 나타난 구술과 기억술의 이데올로기」(한국문학회, 『한국문학논총』 38집, 2004.12), 이소연, 「백석 시에 나타난 기억의 구현 방식」(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53집, 2011.12) 백석 시에 나타난 ‘시간’에 대한 논문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49김문주 외편, 앞의 책, 158쪽.  50김문주 외편, 위의 책, 172쪽.  51오산학교 선배이자 같은 정주 출신인 소월의 문학에 대해 백석은 잘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소월과 조선생」 1939 참조). ‘음영’이라는 용어는 소월의 유일한 시론이라 할 만한 「시혼」에 등장한 것으로 백석의 이 글에서도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정수, 「소월 시론 <시혼>에 나타난 영혼과 음영 연구」(국어국문학회, 『국어국문학』 166, 2014)를 참고할 것.  52김정수, 위의 글, 257쪽. 글의 맥락을 보이기 위해 좀 더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기 안으로 비쳐 들어오는 사물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그것(*영혼-인용자 주)은 세계와의 조화로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도록 이끈다. 타자의 형상이 언제나 별처럼 빛나며 드리우고 있는 「시혼」의 영혼에는 고독한 자아의 내면보다 ‘관계’(*따옴표는 인용자가 붙임)가 훨씬 근원적인 것에 속한다는 소월만의 사유가 내재해 있다. 「시혼」에서 음영은 바로 이 영혼과 사물의 사이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어슴푸레한 밝음으로 묘사된다. 대개 연구자들은 음영을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의 시혼이 일부 반영된(이식된)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소월은 음영을 시혼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개개의 작품이나 사물이 지닌 고유한 가치의 현현으로 사유한다⋯(중략)⋯소월의 시론에서 음영은 자아와 세계의 조화로운 관계를 계시하는 존재의 고유성을 의미하는 것이다.”(같은 글, 256-257쪽)  53김재희, 『베르그손의 잠재적 무의식』, 417쪽.  54김재희, 위의 책, 159-160쪽.  55송영진, 「베르그송에 있어서 신의 직관」,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구』 58호, 2010.12, 475쪽.  56비록 ‘신비주의’적이라거나 하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그손의 주저 중 하나인 『창조적 진화』(1907)가 노벨문학상(1928)을 받은 것이나, 백석의 시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러한 ‘언어 너머’의 것을 ‘언어’를 통해 포착하고자 하는 그들의 ‘직관’적 방법에 대한 기획과 노력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직관’적 방법은 그 목표가 일상적인 것을 넘어선 ‘신비’적인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거기에 천재적인 재능과 더불어 결벽적일 정도의 노력이 수반된 방법론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57‘직관’과 ‘노력’이 동반적일 수 있음은, 백석의 애독자의 한 사람이자 뛰어난 시론가였던 박용철이 「시적 변용에 대해서」(『삼천리문학』 창간호, 1938.1)에서 밝혀놓은 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심두에 한점 경경한 불을 길르는 것이다⋯(중략)⋯이 불기운은 그의 시에 앞서는 것으로 한 先詩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그가 시를 닦음으로 이 불기운이 길러지고 이 불기운이 길러짐으로 그가 시에서 새로 한 거름을 내여 드딜 수 있게 되는 교호작용이야말로 예술가의 누릴 수 있는 특전이요 또 그 이상적이니 코-스일 것이다.” 박용철, 앞의 책, 10쪽.  58김문주 외편, 앞의 책, 151쪽.  59베르그손이 그의 마지막 주저인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사회의 변화와 진화를 위해 강조한 것 또한 정서적 ‘감동’이었다.  60김문주 외편, 앞의 책, 149쪽.  61김재희, 『베르그손의 잠재적 무의식』, 405-406쪽.  62이렇듯 아동문학 논쟁 과정 중에 백석은 ‘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었다. 백석의 ‘시론(문학론)’ 전반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63이종영, 『내면으로』, 448-452쪽 참조.

    Ⅴ. 맺음말

    본고에서는 백석 시에 나타난 ‘마음’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그 ‘마음밭’의 가장 깊숙한 곳에 놓인 ‘영혼’의 속성과 의미를 중점적으로 검토해보았다. 그 결과 ‘영혼의 슬픔’은 ‘자아의 삶’을 바라보는 지점에서 유래한다는 것, 그리고 ‘영혼의 기쁨’은 자아의 좁은 틀을 벗어나는 상황에서 얻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밝힐 수 있었다. 물론 ‘슬픔’과 ‘기쁨’이라는 두 가지 양상은 백석이 지향한 ‘영혼의 삶’을 구성하는 두 측면일 뿐 그 자체가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본고에서는 백석이 ‘영혼의 삶’을 추구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활용한 ‘기억’이나 ‘몽상’, 그리고 생명력 있는 감각적 언어를 통해, 쉽게 포착하기 힘든 미세한 정서의 흐름을 잡아내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한, 그의 문학적 기획(직관과 감동)에 대해서도 간략하나마 조감해 볼 수 있었다.

    백석은 궁핍한 시대를 살아간 시인이다. 그가 지향했던 ‘영혼의 삶’은 인생의 깊이와 높이에 대한 감각을 현대인들에게 선사하고 있으며, 그가 과거회상을 통해 선보인 다양한 삶의 가치들은 그가 꿈꾸었던 세계에 대한 전망과 통하는 것이었다. 백석의 시는 시인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영혼의 삶)나 그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몽상, 기억, 감각, 직관), 그리고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을 통해 현재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다.*

    *이 논문은 2014년 7월 30일 접수하여 2014년 9월 17일 논문 심사를 완료하고 2014년 9월 22일에 게재를 확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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