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의 탈근대 역사극* ― 역사의 현재화와 대안적 역사쓰기

Postmodern Historical Plays by Tae-Seok Oh The Present Orientation of History and Alternative History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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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본고는 자유분방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역사를 해체, 유희, 재구성, 재창작하는 오태석의 탈근대 역사극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역사 해석과 의미구조, 미학적 방법론을 고찰한다.

    <태>(1974)는 공식 역사가 배제한 하위주체 여성, 특히 권력 관계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한 여종의 억압과 고통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복원시킨다.

    전쟁기억을 다룬 극 <산수유>(1980), <자전거>(1983), <운상각>(1990)은 현실과 초현실, 합리와 비합리, 과거와 현재, 재현과 제의를 혼종한다. 특이한 것은 그가 가해자의 입장에서 트라우마적 과거를 바라보며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통해 과거 극복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의 역사화’라는 역사인식에 바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극 중 <도라지>(1994)는 김옥균 서사를 그리는데, 특히 홍종우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대안적 역사쓰기를 보여준다. <잃어버린 강>(2000)은 민족주의 서사로 일관하다 반민족담론으로 끝내는, 서사와 역사의식의 균열을 보인다. <천년의 囚人>(1998)은 3명의 테러리스트를 통해 현대사의 왜곡된 흐름을 성찰하며, 꿈과 블랙 코미디, 판타지, 인형극 등 놀이성을 적극 활용한다.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2003)는 제주 4.3사건을 기록과 증언에 바탕하여 그리는데, 기발한 상상력과 판타지, 놀이정신으로 기억의 담론 투쟁을 역동적으로 재현한다. 결말의 ‘디딤불미 놀이’는 축제성과 모성,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으로 과거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This study focuses on postmodern historical plays by Tae-Seok Oh who disassembles, plays with, reorganizes, and recreates history using carefree historical imaginations, thereby examining his historical interpretation, semantic structures, and aesthetic methodologies.

    <Tae(The Womb)>(1974) restores the oppression and suffering of women who were subordinate subjects excluded by official history, and particularly, of female slaves positioned in the lowest place in power relations by using historical imaginations.

    In <Sansuyu(Japanese Cornelian Cherry)>(1980), <The Bicycle>(1983), and <Unsanggak(Pavilion on the Clouds)>(1990), which deal with the memories of war, reality and unreality, rationality and irrationality, the past and the present, and representation and reconsideration are mixed and co-exist.

    In “the place of memories” that he embodies on the stage, the living and the dead communicate with each other, the victim is reconciled with the perpetrator and vents his/her spite, characters cross the boundary between this world and the world of the dead through exorcisms or dreams, the past and the present are created into montages, and the mutually infiltrating present orientation of history occurs.

    Among his historical plays that have dealt with Korea's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Doraji(Ballon flower)>(1994) contains narratives of Ok-Gyun Kim, and particularly, shows alternative history writing by reinterpreting Jong-Woo Hong in a new manner. <The Lost River>(2002) exhibits the fracture of narratives and historical consciousness by presenting nationalist narratives consistently, and then ending with an anti-nationalist discourse.

    <Millenary Prisoners>(1998) reflects on the distorted flow of the contemporary history via three terrorists, and actively utilizes playful characteristics such as dreams, black comedies, fantasies, and poppet shows. <Pull Ahp-san! Push Oh-gum!>(2003) is based on the records and testimonies of the Jeju April 3 Incident, and dynamically reenacts the fight for a recollection discourse using novel imaginations, fantasies, and the play spirit. “Didimbulmi Play” at the end shows a performance which “heals” scars left by the past using festivity and motherhood, and the public's healthy vitality.

  • KEYWORD

    탈근대 역사극 , 오태석 , <태> , <산수유> , <자전거> , <운상각> , <도라지> , <잃어버린 강> , <천년의 수인> ,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 하위주체 , 기억 , 대안적 역사쓰기

  • 1. 들어가며: 탈근대 역사담론과 오태석

    오태석은 ‘한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릴 정도로 방대한 작품세계 속에 탁월한 작품성과 연극성을 구현해왔다. 자유분방한 상상력, 신화나 굿에서 현실사회 문제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소재, 놀이와 제의성을 결합한 내러티브, 한국적 몸짓과 전통연희를 수용한 무대미학, 한국인의 원형 창조, 한국적 리듬과 정서를 살린 구어체 대사 등 풍요롭고 개성 넘치는 극세계를 창조해 왔다. 그의 극세계는 크게 6가지 경향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모더니즘 혹은 부조리극 성향의 초기극, 두 번째 한국 전통미학과 아방가르드미학을 결합한 총체극 양식의 실험극, 세 번째 현실 소재를 다룬 사회극, 네 번째 역사극, 다섯 번째 생태주의적 연극, 여섯 번째 서구 고전의 한국적 번안극(문화상호주의적 연극)이다.1)

    오태석은 작품세계가 방대하고 탁월한 성과를 낸 문제적 작가/연출가인 만큼 그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2) 오태석의 극들이 대부분 역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왔기 때문에 선행 연구들도 역사와 관련해 의미분석을 해오긴 했으나, 역사극이란 장르 규정 하에서 역사의 재현방식이나 그 의미에 초점을 맞춘 연구3)는 소략한 편이다. 본고는 오태석의 역사극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역사를 보는 관점과 문화적 재현 양상, 의미구조, 미학적 방법론을 포괄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역사극을 그 역사인식과 미학적 방식에 따라 근대역사극과 탈근대 역사극으로 분류한다면, 오태석은 후자의 대표작가로서의 위상을 점한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탈근대 역사극을 대표하는 오태석의 역사극작품들을 대상으로 근대역사극과 구별되는 그의 역사극의 시학, 즉 탈근대 역사인식과 미학적 방법론, 문화적 재현양상, 글쓰기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 본고는 한국역사극의 지형도와 관련지어 오태석 역사극의 소재와 재현방식을 고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 대표작 중심의 면밀한 분석보다는 포괄적인 시각으로 많은 작품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오태석은 양적으로 매우 많은 역사극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역사극 장르의 글쓰기 방식과 무대 만들기를 실험적으로 혁신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가이다. 그는 과거 역사를 원본으로 인정하여 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하려는 관점이 아니라, 역사를 자유롭게 유희하거나 허구화하고 현재화하는 독특한 관점을 취한다. 전자가 근대 역사담론의 입장이라면, 후자는 탈근대 역사담론적 입장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대화 방식에 따라 각 시대의 역사담론이 형성된다. 전근대 역사담론에서 역사는 인간 삶의 의미를 규정하는 ‘초월적 기의’ 역할을 했다. 근대의 역사담론은 과거를 극복하려는 계몽적 기획에 입각해서 성립했기 때문에 진보사관을 표방했다. 진보사관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로 나아가는 거대담론으로서 대문자역사(History)가 출현했고, 과거는 현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4)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는 1980년대 말 이후엔 거대담론 역사의 종말이 제기되었다.5) 근대역사의 종말은 진보라는 메타서사의 해체를 통해 나타났으며, 거대담론의 종말은 미시담론의 전성을 낳았다. 탈근대 역사담론은 하나의 과거에 대한 진실이 오직 하나의 역사를 통해서만 재현될 수 있다는 근대 역사담론을 거부하고, 과거 실재에 대한 의미 해석을 여러 역사들로 이야기하는 것을 지향한다. 대문자역사가 해체되고 소문자역사들(histories)이 귀환한 것이다. 이 소문자 역사들은 대문자역사가 의미를 부여했던 과거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대문자역사가 망각했던 과거를 다시 의미있는 역사로 재인식하려는 의도로 구성된다.6)

    탈근대 역사담론의 대표적 이론가인 헤이든 화이트는 실재로서의 과거와 서술로서의 역사를 구분한다. 과거는 이미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과거 실재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서술, 곧 역사가에 의해 구성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 서술에 플롯과 논증을 활용하고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반영한다. 역사적 사건들이 어떤 양상으로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설명이 플롯이고, 논증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또 이데올로기적 측면은 역사 서술에 있어 역사가가 자신의 역사적 지식과 현재적 의미를 토대로 취하는 어떤 입장이나 관점을 의미한다.7) 근대 역사담론이 역사를 과거 실재의 재현으로 보았다면, 탈근대 역사담론은 역사(서술)를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 본다. 또 과거와 역사가 불일치하다는 점으로 인해 역사적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며,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과거는 여러 개의 역사로 쓰여질 수 있게 된다. 젠킨스 역시 역사를 진리가 아니라 역사가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구성된 서술로 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해체될 수 있는 담론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해석이 문화의 중심부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진리여서가 아니라 지배담론의 실천과 결합, 권력과 지식의 결합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서술된 역사는 지배권력의 담론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즉 누구의 담론을 대변하는 역사로 쓰여졌는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8)

    역사와 연극의 만남으로 성립되는 역사극의 경우, 근대 역사담론과 탈근대 역사담론은 작가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과 역사 다시쓰기의 방법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전자가 대체로 과거 실재로서 역사를 인식하고 역사의 사실주의적 재현에 치중한다면, 후자는 역사에 대한 해체적 관점으로 과거와 현재의 몽타주 방식으로 재구성하거나 놀이성, 우연성, 비합리성, 전복을 통한 역사의 유희를 보여준다. 또한 공식 역사에서 배제되거나 망각된 기억의 다시쓰기, 주변화된 하위주체의 재조명, 역사의 허구화, 탈역사화 등의 특성을 보인다.9) 유치진의 역사극과 오태석의 역사극을 비교해 보면 근대 역사담론과 탈근대 역사담론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근대 역사극을 개척한 선구자인 유치진의 <개골산>(1937〜38)을 보면, 신라 멸망사를 현재(식민지시기)의 전사(前史)로 소환하고 국가 상실의 과거/현재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민족담론에 입각한 계몽적 기획을 담아낸다. 동일한 소재를 다룬 유치진의 <사육신>(1955)과 <태>(1974)를 비교해 보면 근대역사극과 탈근대역사극의 차이를 선명하게 알수 있다. <사육신>은 과거 실재에 대해 단 하나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근대역사담론을 반영하여 인물 창조나 해석에서 충(忠)이란 잣대를 적용하며 기존의 해석을 충실하게 따른다. 그러나 <태>에서는 충 담론은 모티브에 불과하고, 면면하게 이어지는 탯줄 혹은 생명의 영속성에 초점을 둔 새로운 이야기, 공식 역사에서 배제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태석의 역사극 작품들을 소재별로 개관해 보면 크게 4가지 범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 왕조사 소재 작품군으로, <태>(1974), <자 1122년>(1981), <부자유친>(1987) 등이 있다.10) 둘째 한국전쟁 소재 작품군으로, <산수유>(1980), <자전거>(1983), <운상각>(1990) 등이 있다.11) 셋째 한국 근현대사 작품군으로 <도라지>(1994), <천년의 수인>(1998), <잃어버린 강>(2000),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2003) 등이 있다.12) 넷째 다층적 역사 작품군으로, 현재의 시공간을 축으로 하면서 왕조사나 한국전쟁 등 다층적인 역사들을 교접시킨 작품군이 있다. 이를테면 <백마강 달밤에>(1993)는 명부 여행이란 굿의 구조를 통해 의자왕 등 백제 멸망사를 소환하며, <만파식적>(2005)은 납북된 아버지를 찾아가는 현재의 내용에, 중국의 동북아공정에 분노한 신문왕의 활약, 백두산정계비 등의 다층적 역사를 교직시킨다. 현대의 농촌 현실을 그린 <갈머리>(2006)에도 한국전쟁 때 수감되었다가 50년 만에 출소한 인물을 통해 한국전쟁 기억을 교직시키며, <코소보 그리고 유랑>(1999)도 코소보 전쟁이란 소재와 한국전쟁의 기억을 중첩시킨다.

    이상의 목록에서 보듯, 그는 1970년대엔 주로 왕조사를 소재로 삼았고, 1980년대엔 왕조사와 한국전쟁 소재, 설화 소재 역사극(처용설화 소재, <팔곡병풍>, 1988)으로 다변화한다. 1990년대 이후엔 주로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다.

    오태석은 이전 극작가들의 사실주의적 역사 재현 방식과는 달리13) 역사를 해체, 유희, 재구성, 재창작하는 탈근대 역사인식을 보인다. 집단기억에서 망각된 기억의 재구성, 공식 역사에서 배제된 하위주체들에 대한 조명, 다층적인 역사공간의 창조, 대안적 역사쓰기 등, 그의 역사극은 한국의 그 어느 극작가들보다 자유분방한 역사적 상상력과 과감한 역사의 해체를 보여준다. 또 제의나 굿의 구조를 끌어오고, 놀이성과 신체언어를 강조하며 해체적이고 수행적 장면만들기 등 탈근대적 연극미학을 탈근대 역사담론과 결합한다. 오태석은 자신의 연극미학의 특성에 대해 판소리나 산대놀이의 미학인 에둘러 돌아가기, 생략과 비약, 엇박으로 가기, 여백이나 탄력성의 수용이라 말한다. 개연성과 논리성을 주축으로 하는 서구극적 플롯이 아닌 한국 전통극의 구성원리인 생략과 비약, 즉흥성, 의외성의 요소들을 사용하는 것이다.14) 흥미롭게도 그는 연극의 기원이자 본질인 3가지 요소인 제의, 모방, 유희를 혼종하여 미학적 방법론으로 실천하고 있다. 근대 역사극이 사실/낭만주의적 재현, 즉 ‘모방’을 주요 미학적 원리로 사용하고 있다면, 오태석은 ‘제의’와 ‘유희’를 연극의 주된 프레임과 미학적 원리로 활용함으로써 탈근대 미학을 구현하는 차이를 드러낸다.

    본고는 탈근대 역사극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성숙시켜 나간 오태석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탈근대 역사인식과 미학적 방법론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지면의 한계 상 그의 방대한 역사극 작품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으므로 오태석 역사극의 전체 지형을 염두에 두면서 앞에 기술한 그의 역사극의 3가지 소재 유형(왕조사, 한국전쟁, 근현대사) 중 그의 역사극의 시학과 역사인식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오태석의 극들은 같은 제목의 작품이라 해도 다양한 판본들이 있고, 공연텍스트도 어느 시기의 공연이냐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본고는 텍스트로 가장 최근에 전집으로 발간된 『오태석 공연대본 전집』(서연호, 장원재 편)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태>의 분석은 1970년대에 탈근대 역사극을 선취한 극이란 점에서 이 판본에 초연 공연상황을 참조하였고, <천년의 수인>은 평민사 판이 탈근대적 미학을 더 잘 보여주기 때문에 그 판본을 사용하였음을 밝힌다.

    1)김성희, 「오태석: 연극의 근원과 역사에 대한 탐색」, 『한국 동시대 극작가들』, 박문사, 2014, 68쪽.  2)주요 연구업적 위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양혜숙, 「오태석론」, 『한국현역극작가론』 2, 예니, 1987. 명인서, 최준호 편, 『오태석의 연극세계」, 현대미학사, 1995, 김방옥, 「과거: 잃어버린 것, 잊고 싶은 것들에 관한 유희—오태석론」, 『열린 연극의 미학』, 문예마당, 1997, 김남석, 『오태석 연구의 미학적 지평』, 연극과인간, 2003, 김남석, 『오태석 연극의 역사적 사유』, 연극과인간, 2005, 한국극예술학회 편, 극작가총서8 『오태석』, 연극과인간, 2010, 이상란, 『오태석 연극 연구』, 서강대출판부, 2011 등. 그 외에도 상세한 연구사는 극작가 총서8 『오태석』에 수록되어 있다.  3)선행 연구 중 오태석의 ‘역사소재 극’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김윤정, 「<천년의 수인>에 드러난 ‘해원’의 의미 고찰」, 『한국극예술연구』 15, 2002, 김옥란, 「오태석 연극에서의 역사와 폭력의 아이러니」, 『대중서사연구』 14, 2005, 조보라미, 「오태석의 6·25 3부작연구2」, 『한국현대문학연구』 26집, 2008, 조보라미, 「오태석 역사극에 나타난 사실과 허구의 긴장관계」, 『한국현대문학연구』 28집, 2009가 대표적이다. 사실 한이나 ‘해원’의 주제는 선행 연구들에서도 오태석극의 특성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김윤정은 오태석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동일성, 그리고 가해자의 속죄의식과 해원을 통해 역사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에 주목하며, 이 해원을 통한 화해가 굿의 정신을 깔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한다. 김옥란도 이 입장을 수용하는데, 이 논문은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역사소재극에 나타난 변화양상과 내적 논리의 흐름을 고찰한다. 납북된 아버지, 연좌제의 존재로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로 파악한 불안 및 개인의 손상된 위치를 역사 속 광인 혹은 폭군들의 극단적 광기와 맹목적 폭력에 투사했다는 관점으로 특히 역사의 폭력성에 주목한다. 트라우마의 재현, 폭력의 자의성과 공포로서 역사 재현, 민족주의적, 계몽주의적 색채 등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화해의 주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역으로 폭력적 역사와 화해할 수 없는 오태석의 강박증적 집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조보라미는 ‘6·25 3부작’에서 이야기구조 및 긴장구성의 상동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 3부작이 작가 본인의 트라우마 극복과 치유를 보여준 극이며 다음 역사극들의 발판을 이루었다고 본다. 후자의 논문에서는 <도라지>, <천년의 수인>, <잃어버린 강>,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등 4작품을 중심으로 사실과 허구의 긴장관계에 대해 분석하고, 작가의 역사관을 고찰한다.  4)김기봉, 「‘삶의 비평’으로서 역사」, 『동방학지』 제152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0, 388〜389쪽.  5)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유정완 등 역, 『역사의 종말: 역사의 종점에 선 최후의 인간』, 한마음사. 김기봉, 「종말론 시대, 역사이야기의 귀환」,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2008, 62쪽에서 재인용.  6)김기봉, 「‘삶의 비평’으로서 역사」, 389쪽.  7)안병직, 「픽션으로서의 역사: 헤이든 화이트의 역사론」, 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인문논총』 51집, 2004, 42〜45쪽.  8)키스 젠킨스, 최용찬 역,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혜안, 2002, 180〜181쪽.  9)김성희, 「역사극의 탈역사화 경향: 역사의 유희와 일상사적 역사쓰기」, 한국연극학회, 『한국연극학』 48호, 2012, 52쪽.  10)<태>는 세조와 사육신, <자 1122년>은 고려 인종과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을 다루며, <부자유친>은 영조와 사도세자를 다룬다.  11)<자전거>나 <운상각>도 구조 상으로 보면 현재의 시공간 속에서 전쟁 기억을 소환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본고의 네번째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극들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억’이자, 현재화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기에 두 번째 범주에 포함시켰다. <산수유>와 더불어 ‘한국전쟁 3부작’으로 명명되어 학계에서 이미 담론화 되었다는 점도 고려했다.  12)<도라지>는 김옥균의 갑신정변과 홍종우의 암살, <천년의 수인>은 김구 암살범 안두희와 미전향장기수, 5·18진압군 병사, <잃어버린 강>은 안중근과 백두산정계비,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는 제주 4.3사건을 다룬다.  13)사실주의적 역사극(근대 역사극) 계열에는 유치진, 그리고 1980년대까지의 국립극단의 민족주의 역사극들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선 김성희, 「국립극단을 통해 본 한국 역사극의 지형도」, 한국드라마학회, 『드라마연구』 34호, 2011 참조.  14)오태석, 서연호 대담(장원재 정리),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연극과인간, 2002, 11〜18쪽.

    2. 공식역사에서 배제된 잉여의 자리, 하위주체 여성?<태>

    <태>(1974)는 오태석의 작품 연보에서 가장 먼저 발표한 역사극이며 공연사적 측면에서도 ‘반역사극’, ‘실험극’, ‘제의극’ 등으로 평가받는 작품인데, 이 극은 탈근대 역사인식과 현대적 연극미학을 성공적으로 시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세조의 왕위찬탈과 사육신 소재는 극작가들이 즐겨 사용한 소재이다.15) 여기엔 권력 찬탈을 위해 조카를 죽이는 권력의 잔혹성과 목숨을 바쳐 충의를 지키는 신하들이란 소재가 혼란한 삶의 길에서 정도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는 교훈적 의미가 작용했을 것이다. <태>는 동랑레퍼터리극단이 전통과 실험의 융합을 통해 ‘현대연극’을 창조해내고자 한 연극운동의 일환으로 안민수 연출로 공연되었으며, 강렬한 신체언어와 제의적 효과, 잔혹극적 연출로 한국 연극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공연 당시 ‘반역사적 실험극’이자, 1970년대의 획기적인 문제작으로 평가받았는데,16) 당시 비평이 <태>를 반역사극으로 지칭한 것은 기존 역사극과는 전혀 다른 플롯 구성과 미학적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근대 역사극처럼 역사적 사건들의 재현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지는 생명의 근원인 ‘태’에 초점을 맞춘 내용, 함축된 대사나 운문에 가까운 극작, 멸족 당하는 피로 얼룩진 형장 속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는 부조리하고 잔혹한 극적 상황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17)

    오태석은 집필 동기에 대해, 당시 유신체제 때 내린 소급계엄령과 시위로 사형 선고를 받은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집단 학살극이 벌어졌던 사육신 소재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육신 중 박팽년 가문만이 아이를 종의 아이와 바꾸는 바람에 대를 이었다는 야사를 읽고 이 극을 구상했다는 것이다.18) 이 극에는 크게 세 줄기 이야기, 즉 세조-단종-사육신 이야기와 박팽년 가문, 종의 이야기가 교직되어 있다. 오태석이 사육신 서사를 이전 작가들과 달리 가장 획기적으로 변주한 부분이 바로 박팽년 가문의 자식과 종의 자식을 바꿔치기 한 내용이다. 사육신 서사에서 공식 역사가 중요하게 의미를 부여한 내용과 이데올로기적 측면은 삼족을 멸하는 잔인한 죽음의 연쇄와 그들의 충절에 대한 찬미이다. 그러나 오태석은 공식 역사가 배제한 내용, 즉 박팽년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영속성과 대를 잇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 지배계급을 위해 자식을 희생한 하위주체–종에 초점을 맞춘 플롯구성을 한다. 공식 역사가 충이데올로기의 담론적 구성물이었다면, 오태석은 생명 잇기와 하위주체의 희생이란 담론에 맞춘 새로운 플롯구성을 한 것이다. 역사 해석의 시각과 담론이 달라진 만큼 <태>의 인물들도 기존의 인물형에서 해체된 새로운 담론적 구성물로 창조되었다.

    근대역사극에서 세조와 대립하고 충절의 화신으로 재현되어 왔던 사육신은 이 공연에선 고깃덩이처럼 거꾸로 매달린 육체적 전시물로,19) 이후엔 망령으로 등장하여 세조의 광기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의식의 존재로 무대를 누비고 다닌다. 또한 손부의 출산을 돕고 단종의 장례를 거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사육신은 재현적 인물이 아니라 계속 무대에 머물며 다양한 역할들로 변신하는 수행적 인물이자 코러스 역할을 한다. 기존의 표상체계처럼 권력이나 충(忠)이란 맥락이 아닌 생명이란 맥락과 연결되어 해체적이고 유동적인 주체로 재구성된 것이다. 또, 이 극은 대 잇기를 지고의 가치로 배치하는 가부장적 세계에서 규정지워진 여성의 역할, 곧 부계 혈통을 낳아주는 도구적 역할로 위치 지워지고 주변화되어 왔던 여성을 역사의 주체로, 대 잇기의 진정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한다. 박중림의 손부는 뱃속의 아이를 출산하고 그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시조부를 죽이는 여성주체로 재창조된다. ‘시조부 죽이기’는 어차피 삼족을 멸해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폭력적 세계에서 뱃속의 아이를 살리기 위한 희생자의 폭력이란 점에서 가해자의 폭력과 구별된다. 수동적으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시조부를 죽이는 비윤리적 파격 행위를 저지르고 그 행위의 당돌함 때문에 세조에게서 출산을 허락받는다. 삼족지멸이란 폭력의 연쇄고리 가운데서 그녀는 죽음을 잠시 유예받아 새로운 생명을 출산하고, 가부장사회가 여성이 없이는 결코 유지될 수 없음을 입증한다. 생명을 낳고 가문을 이어가는, 부계사회의 기반을 지탱하는 진정한 주체가 기실 여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손부의 시조부 살해는 출산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으로, 남성 지배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여성의 항거라 할 수 있다. 이는 가부장적 권력의 일시성과 여성의 출산이 만들어내는 영속적인 생명의 이어가기를 대비시킴으로써 남성 중심의 역사쓰기가 억압해왔던 잉여의 자리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성 중심의 정사 혹은 사육신 서사에 포섭되지 못했던 잉여의 자리에 타자로서의 여성이 회귀한 것이다.

    그러나 손부의 시조부 살해, 자식 바꿔치기는 가문의 대잇기를 위한 여성주체의 저항행위라는 의미를 지닐 수 있으나, 종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세조-손부, 손부-여종의 관계에서처럼 신분 위계에 따른 폭력이 행사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태석은 폭력적인 남성 지배권력에 저항하는 여성주체로서 손부의 재현과 더불어 그녀의 대잇기가 가진 폭력적인 측면, 즉 여종의 희생을 연결지음으로써 세조-손부-여종으로 이어지는 폭력성의 순환고리를 제시한다. 공식 역사가 배제한 하위주체(subaltern) 여성, 권력 관계에서 가장 낮은 위계에 위치한 여종의 억압과 고통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복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종은 신분과 젠더 양면에서 종속적 위치에 놓여있는, 이중으로 주변화된 하위주체 여성이다. 충(忠)과 가부장 담론을 체화한 남편(종)의 월권 때문에 자식을 양반 자식 대신 희생시켜야 했던 그녀는 자신의 창자와도 같은 아들(‘창지’)을 찾아 헤매며 미쳐버린다. 그녀의 광기는 권력의 위계구조와 잔인성을 고발하는 기표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배제되거나 아예 재현의 위치를 부여받지 못했던 이 여종의 이야기는 공식역사가 과거의 사실들을 온전히 담아낸 기록이 아니라 지배권력의 시각에서 선별되고 기술된 담론적 구축물이자 승자의 역사임을 역설적으로 환기시킨다. 이처럼 공식역사에서 배제되고 은폐된 집단의 역사, 주변부적 존재들의 삶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복원하는 것은 탈근대 역사담론 혹은 신역사주의적 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한편 <태> 공연의 역사성을 살펴보면, 70년대 공연은 권력과 생명의 대립구도에 치중했고 오태석이 직접 연출을 맡은 1986년, 1994년, 1997년 공연은 후자로 갈수록 여종의 억압과 고통의 표현에 극적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이는 극장에서 수행되는 연극행위 역시 텍스트 못지 않게 정치적, 문화적 담론행위의 산물임을 말해준다. 70년대는 유신체제 하에서 독재권력에 대한 지식인의 저항이 중요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권력과 지식층 사이의 담론투쟁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90년대로 오면서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의 지형 하에서 손부의 희생보다는 여종의 타자적 위치로 더욱 초점이 이동하고, 침묵을 강요당해온 그녀의 목소리가 가부장제와 여성착취의 표상으로 재구성되었다.

    15)주요 작품들을 열거해 보면, 조용만의 <신숙주와 그 부인>(1933), 윤백남의 <야화>(1934/1953공연), 김춘광의 <단종애사>(1946), 유치진의 <사육신>(1955), 신명순의 <전하>(1962), 오태석의 <태>(1974), 이현화의 <카덴자>(1979), 김상열의 <길>(1979) 등이다. 이 작품들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역사 해석과 상이한 연극미학을 보여주는 바, 유치진의 <사육신>까지가 근대역사극, 신명순의 <전하>부터 탈근대 역사극으로 볼 수 있다.  16)편집부 편, 「특집: 한국연극이 뽑는 연극계 10대 사건(73~83)」, 『한국연극』, 1983.1.  17)김숙현, 『안민수 연출미학』, 현대미학사, 2007, 41쪽.  18)오태석, 서연호 대담,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70〜71쪽.  19)안민수 연출의 초연에서는 사육신을 맡은 배우들이 무대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으로 연기했다.(김숙현, 『안민수 연출미학』 참조). 이후 1980년대 오태석 연출의 공연에서는 무대 위에 도포가 거꾸로 매달린 이미지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3. 전쟁기억: 과거의 역사화와 타자성?한국전쟁 3부작

    생사를 가르는 참혹한 체험, 살상과 집단 학살, 이념대립과 반목, 삶의 기반 상실, 부역과 단죄, 실향과 이산,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 등을 낳은 한국전쟁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심각한 집단 트라우마와 다층적인 기억 투쟁을 남겼다. 피에르 노라는 역사와 기억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불완전한, 그리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재구성이다. 그러나 기억은 삶이고 언제나 살아있는 집단에 의해 생겨나며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에 노출되어 있고, 왜곡되거나 활용되고 조작되기 쉽다는 것이다. 역사가 과거에 관한 하나의 표상이라면, 기억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고 우리를 영원한 현재에 묶는 끈이다.20) 앞서 살펴본 <태>가 과거의 표상으로서 역사를 다룬 극이라면, 오태석의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는 많은 작품들은 개인적 기억과 집단기억을 다룬다.

    한국전쟁에 관해서 유독 기억 담론이 성행하고 문화적 재현물들도 기억에 관한 서사로 구성되어 온 이유는 역사와 기억이 이항대립적 관계를 형성한 것과 관련이 있다. 한국전쟁은 초기엔 북한과 남한의 이념전쟁의 양상을 띠었으나, 전개 과정에서 지역민들 사이에 다양한 폭력과 학살이 일어났고, 인민군측이나 국군 측에 의한 양민 학살도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공식 역사는 남측정부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유리한 기억만을 선택하고 불리한 기억에 대해선 조직적 은폐와 망각을 수행해 왔다. 기억담론은 이처럼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불리한 기억의 망각을 강요하거나 배제하는 기존 공식 역사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지닌다. 선택과 배제를 통한 특정 기억의 전유라는 ‘기억의 정치학’을 비판하고 성찰하는 ‘메타역사’로 기능하는 것이다. 한편 문화적 재현물과 관련하여 역사와 기억을 비교해 보면, 역사의 진행이 대체로 객관적 사건이나 구조의 전개로 상정되는 데 반해, 기억은 과거를 재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주목하게 한다. 특히 기억담론은 역사의 중심성을 해체하고 ‘타자’의 ‘다름’을 적극 인정한다.21)

    오태석은 한국전쟁과 아버지의 납북을 11살에 겪었는데, 이에 관한 기억은 트라우마 증상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많은 작품들에 다양한 이야기의 형태로 출현한다. 물론 한국전쟁 기억은 이미 많은 극작가들에 의해 다루어졌다. 1960-70년대 국립극단의 공연만 보더라도 <산불>(차범석 작, 1962), <순교자>(김은국 원작, 김기팔 각색, 1964), <밤과 같이 높은 벽>(전진호 작, 1967), <이끼낀 고향에 돌아오다>(윤조병 작, 1967), <달집>(노경식 작, 1971), <포로들>(이재현 작, 1972), <학살의 숲>(차범석 작, 1977) 등이 공연되었다. 이 극들은 대체로 반공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전쟁의 참상이나 집단기억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근대 역사극의 범주에 속한다.22)

    그러나 오태석의 전쟁기억을 다룬 극들은 현실과 초현실, 합리와 비합리, 과거와 현재, 재현과 제의를 혼종한다. 그가 무대에 소환하는 ‘기억의 장소’에서는 산자와 죽은자가 교통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하고 해원하며, 굿이나 꿈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가 몽타주되고 상호침투하는 역사의 현재화가 일어난다. 이처럼 과거라는 시간성을 자유롭게 횡단하고 재배치하는 구성방식, 과거라는 시공간적 규정의 해체, 실재와 허구,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 해체를 통한 기억 다시쓰기 방식은 탈근대 역사의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 죽은자와 산자가 대립하는 플롯구성이라든지, 제의나 놀이를 매개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해원서사는 오태석 극의 특성을 이룬다.

    <산수유>(1980), <자전거>(1983), <운상각>(1990)은 흔히 ‘한국전쟁 3부작’으로 지칭된다. <산수유>는 휴전 직후 1953년 지리산 마을을 배경으로 전쟁기억을 재현한다. <자전거>는 현재의 시점에서 망각된 기억을 재구성하는 메타연극으로, 결근계를 점검하는 현재, 기억을 복원하고자 하는 등기소 제삿날, 한국전쟁 시기라는 3가지 시간성을 교직한다. <운상각>은 전쟁 때 실종된 남편의 실종신고서를 신위로 삼아 제사를 치르고 남편의 혼령이 빙의된 처녀와 금혼식 사진을 찍는 내용을 그린다. <산수유>가 과거의 시공간을 다루고 있다면, <자전거>나 <운상각>은 현재라는 시간성을 주축으로 하면서 여전히 지속되는 과거의 흔적과 기억을 다룬다. 그런데 이 극들은 전쟁체험에 대한 재현이라기보다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죄책감, 은폐된 진상 같은 개인적 혹은 집단적 기억들, 억압된 기억에 관한 서사를 구성한다. 망각된 기억이나 억압되고 은폐된 기억을 소환하고 표면화시키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 굿, 유령, 혹은 ‘살아있는 망자’라는 점도 오태석 극의 특징을 이룬다.

    <산수유>(1980)에서 사건을 열어가는 존재는 지리산 탄피주이들로,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온 자들이다. 이들 중에서도 얼마 전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정신이 반쯤 나간 장씨가 뱀에 물린 이장의 손주를 발견한다. 이장 구씨 집에선 거의 죽은 상태인 상수를 살리기 위해 굿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은폐된 기억이자 억압한 집단기억, 즉 전쟁 때 마을사람들이 저질렀던 학살의 공모가 드러난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기억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전쟁 기억은 지역 공동체사회의 지형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으로 서로를 잘 아는 마을 내부에서는 폭력의 가해자나 폭력의 원인에 대해 일종의 ‘담합적 침묵’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3) 폭력을 주도한 사람을 익명의 ‘외부 사람’으로 설정하고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을 폭력의 피해자24)라고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산수유>의 마을사람들도 학살의 기억을 억압하고 ‘담합된 침묵’으로 대응하며, 외부인에게 폭력의 책임을 전가하는 심리를 드러낸다. 이장의 조카 근배를 주축으로 한 마을 젊은이들은 도둑질한 외부인들을 붙잡아 창호지를 얼굴에 바르고 몽둥이로 때리거나 죽창으로 찌르는 등 매우 섬뜩한 사형(私刑)을 가한다. 외부인에 대한 이 특이한 폭력 방식은 인공 때 빨치산의 강요로 상수아범(근배 삼촌)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방식의 답습임이 나중에 밝혀진다. 얼굴에 창호지가 처발라진 존재는 아감벤 식의 용어로 말하자면 ‘호모 사케르’이다. 법의 영역이나 희생제의의 영역 바깥에 있는 폭력의 대상으로서 살해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벌거벗은 생명’을 의미한다.25)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창호지 발라진 얼굴’은 타자성의 기호이자, 내 편과 적을 구별할 수 없는 한국전쟁의 폭력성을 표상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폭력이 상호적인 작용이며 폭력의 기원이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관계 속의 폭력’이라는 개념은 폭력이 나와 타자의 문제라는 것, 폭력의 기원이 타자성에 대한 태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26) 한국전쟁 때 마을 젊은이들은 빨치산에 의해 호모 사케르의 표지가 붙여진 상수아범을 학살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폭력성은 탄피주이나 도둑 같은 외부인-타자에게 분출되며, 심지어는 그들 내부의 한 사람(병구)을 타자로 규정하고 폭력성을 분출하는 식의 순환성을 띤다. 그들이 은폐했던 살해 공모의 비밀이 죽은자(상수아범)나 ‘살아있는 망자’라 할 장씨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에 내부 결속을 위해 공동체 안에서 또다른 타자성을 구별, 분리하여 희생양 만들기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상을 옮겨가며 다원적으로 만들어지는 폭력의 순환고리가 한국전쟁의 실체적 이미지로서 제시되는 것이다.

    근배를 비롯한 마을 젊은이들이 외부인들에게 폭력성을 분출하면서 억압했던 전쟁 기억이 표면에 떠오르게 된다.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졌던 학살 공모에 대한 기억이 표면에 부상하면서 마을사람들 사이엔 내분이 벌어지고 서로에 대한 폭력과 증오로 발전한다. 극에서 억압된 기억의 귀환을 표상하는 이미지가 혼령이다. 얼굴에 창호지가 붙은 상수 아범의 혼신을 만난 장씨가 혼신의 현몽으로 흑질백장(구렁이)을 잡아 구씨 집에 가져와 혼령의 말을 전하자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이 ‘담합적 침묵’으로 억압해왔던 상수아비 학살을 인정하고 죄책감에 빠진다.

    이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물론 아버지, 고모, 조카 등 육친까지도 학살의 대상이 상수아범이란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가담했던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공동체 내부에서 저질러진 폭력의 기억과 죄책감을 해원시키는 존재는 상수아범, 상수어멈 같은 죽은자들이다. 마을 주민들의 억압된 죄책감의 근원이었던 상수아범 혼령은 약을 들려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렇게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진정한 해원이 성립되고, 그 증거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상수는 회복된다. 천주교 신부 학살에 가담했던 또하나의 가해자인 장씨에게 피해자 혼령이 나타나 해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뚜렷이 구별할 수 없는 한국전쟁의 특수한 성격을 제시하기 위한 서사전략이라 할 수 있다. 유령이 ‘억압된 것의 귀환’으로서, 은폐된 기억의 이미지로 회귀하는 것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증상’으로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폭력은 상호적인 작용이며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폭력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 악순환을 탈피할 수 있는 길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용서의 메시지를 건넬 때이다. 오태석은 한국전쟁이란 트라우마적 과거의 망령을 벗어나는 방안으로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의 용서를 제시한다. 그리고 독자/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상황의 폭력성을 강조한다. 또한 가해자의 표상을 현재까지 죄책감에 시달리는 존재로 그림으로써 피해자와 동일한 속성을 부여한다. 선행 연구들도 오태석의 전쟁기억 극들을 관통하는 특징으로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의 용서,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동정적 시각의 재현을 지적하고 있다. 가해자의 심리나 상황의 특수성에 대한 지나친 동정적 고려로 피해자와 동일한 맥락에 놓다 보니 오태석의 극들에는 해원 서사가 남발되고, 심지어는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본질적인 도덕적, 실존적 차이가 지워지는 듯한 문제점도 보인다. 그 극단적인 예가 <잃어버린 강>에서 안중근과 이토오 히로부미의 동지적 화해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트라우마적 과거를 바라보며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통해 과거 극복을 제시하는 오태석의 작가의식은 어떤 역사인식에 바탕한 것인가? 이는 ‘과거의 역사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볼 수 있다.

    ‘역사화’ 개념은 독일 역사학자 브로샤트가 제기한 것으로, 인식 대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행위자의 의도와 그 과정 및 결과를 가능한 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해함으로써 한 시대를 다면적으로 포착하는 역사인식의 지평을 말한다.28) 오태석도 <산수유>에 대해 “6·25 직후에 살아남은 사람들, 지리산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자. 죽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사람들을 이해하자”라는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29) 오태석의 전쟁기억 재현은 개인적, 집단적 트라우마로 접근하는 관점30),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구도를 굿이나 꿈이란 매개로 봉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전쟁기억의 재현에서 그가 견지한 독특한 역사적 관점은 ‘살아남은 자’에 대해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을 용서하려는 관점이다. 즉 죽은 자가 산자에 대해,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용서하는 방식의 화해인 것이다. 이는 브로샤트가 제기한 ‘과거의 역사화’ 관점과 상통한다.

    과거의 역사화 관점이 반영된 오태석 특유의 해원 서사는 전쟁기억을 다룬 극 뿐 아니라 백제 의자왕과 금화를 다룬 <백마강 달밤에>(1993), 김구 암살범 안두희와 미전향장기수, 5·18진압병사를 다룬 <천년의 수인>(1998),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다룬 <잃어버린 강>(2000) 등에서도 반복된다.

    <자전거>(1983)는 망각된 기억의 복원이란 프레임으로 점점 더 깊숙한 과거로 나아가는,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을 다루고 있는 메타연극적 서사이다. ‘등기소 제삿날’에 함축된 두 개의 시간성과 트라우마적 증상은 그날 벌어진 거위집 둘째딸의 가출과 첫째 딸의 문둥이집 방화로 재상연된다. ‘문둥이 공포’로 친엄마 집에 불지르는 사건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포로들 중 무작위로 선정한 예산당숙으로 하여금 혈육과 이웃들이 갇혀있는 등기소에 불지르게 한 트라우마적 사건과 의미론적 층위에서 중첩된다. 자해행위로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예산당숙과 문둥이는 공포와 혐오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거울이미지이다. 한국전쟁의 현재성을 언표하는 상징적 이미지가 <산수유>의 ‘창호지 붙인 얼굴’처럼 ‘문둥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공포와 혐오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이 기괴한 이미지들은 타자성의 기호이다. 공동체로부터 배척 당하거나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이 타자성의 표지는 공동체가 억압해온 ‘묻혀진 기억’에 관한 서사를 풀어내는 기능을 한다. 등기소 방화 사건은 충분한 애도를 통해 역사적 의미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망각 혹은 배제된 기억이기 때문에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자인 예산당숙에겐 트라우마적 증상으로 반복 재현된다. 제사에 참예할 때마다 예산당숙은 자해하며 “내가 불질렀다. 그려, 산 사람이나 살자.”라고 소리친다. 예산당숙은 집단학살의 가해자이지만 인민군의 강압 때문에 방화를 한 하수인으로 평생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피해자이다. 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첩성, 무차별성이 오태석의 한국전쟁 기억에 반복적 표상으로 재현된다. “산 사람이나 살자”라는 당숙이나 소관호의 외침은 등기소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 호명소리와 겹쳐지면서 그들 또한 ‘살아있는 망자’임을 언표한다. 타자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살아있는 망자’의 트라우마적 증상을 재현함으로써 기억의 심연에 자리한 고통을 직면하게 하는 것이다. <자전거>에는 <산수유>의 피해자-유령 대신 공동체에서 소외된 문둥이가 등장한다. 문둥이 어미는 공동체에 편입되지 못하는 타자성의 표상이란 점에서 ‘살아있는 망자’와 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딸이 맘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집에 방화하게 하고 불타죽는다. 그녀의 자기희생은 “고통받는 타인의 호소에 대한 응답”31)이라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를 실현한 것이다. 그녀는 다른 극들에 나오는 가해자/피해자가 아니다. 가해자라는 윤리적 문제가 없는 그녀의 자기희생은 관객으로 하여금 타자의 호소에 대한 응답이라는 윤리적 의무를 자각하게 한다.

    오태석은 공식 역사가 망각한 빈틈들을 개인적 기억들을 통해 채우며, 타자의 고통의 기억과 타자의 호소에의 응답이라는 윤리적 책임에 주목한다. 단순히 망각된 기억의 재현체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현재의 우리 삶에도 트라우마적 증상으로 출몰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 기억에 대한 공감과 책임의식을 가져야 함을 암시한다. <자전거>는 우리가 역사와 맺는 관계의 복잡함과 중층성, 역사에 대한 진지한 관점, 우리 안의 과거32)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재현할 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기억을 통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던져준다. <자전거>가 전쟁기억을 다룬 오태석 작품들에서 최고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운상각>(1990)에도 오태석의 익숙한 구도, 즉 현재라는 시간성에 출현하는 트라우마적 증상으로서의 과거,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구도 혹은 중첩성, 꿈이나 굿을 매개항으로 트라우마를 봉합하는 방식이 나타난다. 한국전쟁 때 실종된 남편을 40년 동안 기다려 왔던 해남댁은 남편 꿈을 꾼 후 실종신고를 하고, 그 실종신고서를 신위로 삼아 장례를 치른다. 한국전쟁 때 김시량(해남댁 남편)을 밀고하지 않았다며 소리 지르고, 자신의 밀고로 죽은 마을사람들의 뼈를 찾아 묻어주고 사화한다며 돌아다니는 구서방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살아있는 망자’이다. 이 실성한 인물 역시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타자성의 표상이다. 해남댁이 장례를 치르고 남편의 영혼이 빙의된 여식과 금혼식 사진을 찍을 때 구서방은 억압해온 기억의 심연과 대면하며, 비로소 김시량의 영혼에게 죄를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다. 여기서도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살아있는 망자’를 용서하고 해원해주는 것은 피해자 측인 해남댁과 남편 혼령이다.

    오태석의 ‘한국전쟁 3부작’에서 반복되고 있는 가해자/피해자의 중첩성, 혼령이나 피해자에 의한 용서나 해원은 어떤 역사적 관점과 의미를 지니는가? 오태석은 한국전쟁이란 과거가 여전히 트라우마적 기억으로 남아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기억의 현재화’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관점은 앞에서도 서술한 것처럼, 가해자이면서도 ‘살아있는 망자’가 된 타자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과거의 역사화’ 관점이다. 현재적 관점이나 이념적 관점이 아닌, 과거 상황에서의 행위자의 의도와 과정, 결과를 그 행위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관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오태석의 극들은 가해자의 속죄 묘사, 혹은 가해자에 대한 용서나 해원이란 구도로 귀결하는 것이다. 기억은 물론 현재에 소환된 과거이지만, 현재에 불려온 과거라고 해서 과거를 현재의 시각에서만 평가하거나 단죄한다면 현재의 오만이 될 수 있다. 그 시대의 불가피한 상황이나 맥락을 배제하고 과거문제를 대해서는 진정한 과거 극복이나 화해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예산당숙이나 소관호의 반복적인 자해와 속죄의식, “산 사람이나 살자”라는 절규는 과거를 현재의 시각에서만 단죄하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치 않음을 증거한다.

    오태석의 극에 일관되는 해원서사의 반복을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해 보면, 오태석 스스로 한국전쟁 기억과 아버지의 상실이란 트라우마를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연극작업을 통해 과거에 대한 애도작업33)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애도작업은 상실된 과거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동일시함으로써 자아의 빈곤이나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오는 개인적 심리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보다 주목할 것은 과거 기억의 반복적 소환을 통한 애도작업이 지향하는 역사담론적 의미이다. 왜냐하면 오태석의 과거에 대한 애도작업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라는, ‘과거의 의미화작업’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애도를 위해서는 일단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때 문제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종속변수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애도작업의 주체는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쪽이어야 하는가?34) 가해자의 자기비판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방한다 해도 실제로는 손상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복구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35) 이런 문제들과 연관해 생각하면, 섣부른 애도는 가해자들에게 용서의 면죄부를 안겨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경우엔 이들을 애도할 것인가, 비판할 것인가? 이처럼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역사학자 전진성은 애도작업의 효율성보다는 과거 극복의 본원적 한계성을 먼저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과거에 발생한 희생이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므로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발생한 상실에 대해선 전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 상실된 과거에 대해 현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을 재현해내는 일이고 그에 대한 의미화 작업이다. 또한 재현해낸 기억이 결코 최후의 진실이 아님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지속적인 애도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36) 오태석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과거의 ‘상실’을 재현하면서 애도의 주체를 어느 한편으로 확정짓지 않는다. 굿이나 제의가 애도작업의 매개항으로 소환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또한 ‘상실’에 대한 애도나 죽은자를 위로하는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제의는 <산수유>에서 상수아범과 어멈의 합장, 혹은 소녀무당과 상수의 상징적 화합이 암시하듯, 혹은 <운상각>에서 장례식이 금혼식으로 바뀌듯이 산자와 죽은자의 화합, 혹은 죽은자(피해자)의 산자(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보여주는 의례이다. 오태석의 극에서 중심이 되는 시간성은 현재로서, 기억이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가, 즉 현재화된 기억의 재현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현재의 독자/관객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를 사유하게 한다. 그의 과거 애도작업은 전쟁이 만들어낸 상처, 한, 트라우마의 재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진 희생, 가해 등에 대한 지속적인 재현과 내면화, 과거의 애도작업을 통해 문화적 기억 만들기를 수행하며,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해원서사를 통해 진정한 과거 극복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제시한다. 그는 피해자에게 애도의 수동적 대상이 아닌, 가해자를 ‘용서’하는 능동적 역할을 부여한다. 또 가해자에겐 타자성이란 표상을 부여함으로써 속죄와 ‘타자의 배려’가 필요한 대상, 그리하여 애도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복시킨다. 이런 전도된 재현 방식은 <자전거>의 예산당숙이 보여주듯, 한국전쟁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확정지을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띠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오태석은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적 상황과 맥락, 행위의 과정과 결과를 행위자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역사화’ 관점을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역사인식 하에서 가해자에 대한 연민과 해원서사가 나온 것이다. 가해자, 피해자의 전도된 역할과 재현을 통해 의도하는 것은 물론 과거 극복이다. 피해에 대한 보복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로부터 진정한 과거 극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피에르 노라, 김인중 역,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기억의 장소들에 관한 문제제기」,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87호, 2005, 288쪽.  21)전진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휴머니스트, 2009, 26〜27쪽.  22)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김성희, 「국립극단을 통해 본 한국 역사극의 지형도」, 한국드라마학회, 『드라마연구』 34호, 2011를 참조할 것.  23)정근식, 「한국전쟁 경험과 공동체적 기억」, 『구림연구』, 경인문화사, 2003, 223쪽.  24)최호림, 「한 마을에서의 전쟁폭력의 경험과 기억」, 최정기 외 편, 『전쟁과 재현』, 한울아카데미, 2008, 133쪽.  25)조르조 아감벤, 박진우 역, 『호모 사케르』, 새물결, 2008, 228〜231쪽.  26)최성희, 「폭력의 기원: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과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새한영어영문학회, 『새한영어영문학』 52권 3호, 2010, 68쪽.  27)서연호, 장원재 공편, 『오태석 공연대본 전집』 5, <산수유>, 연극과인간, 2003, 162쪽.  28)전진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169〜172쪽.  29)오태석, 서연호 대담, 「나의 작품세계: 1979~1981」, 앞책, 242쪽.  30)김옥란도 「오태석연극에서의 역사와 폭력의 아이러니」에서 전쟁이 트라우마적 사건으로서 재현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실 한국전쟁이나 현대사에서의 광주항쟁, 제주 4·3 등 국가폭력의 집단학살을 다룬 논문이나 저서 등에서 (역사적) 트라우마 개념은 흔하게 사용된다.  31)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문학과지성사, 2005, 230쪽.  32)테사 모리스–스즈키, 김경원 역, 『우리 안의 과거』, 휴머니스트, 2010, 329쪽.  33)이상란은 <운상각>을 “기억과 애도의 무대”라고 보면서, 애도작업과 초혼, 빙의를 통한 해원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상란, 『오태석 연극 연구』, 31〜46쪽.  34)전진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178〜179쪽.  35)이안 부루마,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독일인과 일본인의 전쟁기억』, 정용환 역, 한겨레신문사, 2002, 91쪽 이하, 전진성, 앞책에서 재인용.  36)앞책, 179〜180쪽.

    4. 근현대사와 대안적 역사쓰기

    오태석은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일련의 역사극들을 발표한다. 이 중 <도라지>(1994)와 <잃어버린 강>(2000)은 김옥균, 안중근등 역사적 위인과 역사적 사건들을 주축으로 서사를 구성하고 있고, <천년의 수인>(1998)과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2003)는 하위주체 주인공, 망각되고 배제된 기억들, 대안적 역사쓰기를 보여준다. <도라지>나 <잃어버린 강>은 거대담론과 역사적 사실의 재현에 주력하는 근대 역사극적 특성, 하위 주체 관점의 서사와 혼령, 동물 등 초현실과 환상을 활용하는 탈근대 역사극적 특성을 절충해 보여준다. <천년의 수인>과 <앞산아....>는 시공간의 해체, 역사의 해체와 유희, 역사의 허구화, 전복적 시각의 다시쓰기 등 탈근대 역사극의 특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4.1. 망각, 배제된 기억 다시 쓰기?<도라지>, <잃어버린 강>

    <도라지>(1994)는 김옥균의 갑신정변과 일본 망명, 홍종우의 김옥균 암살과 헤이그 밀사사건을 다룬다. 이 극에서 고종은 을사보호조약 체결에 대한 책임을 대신들에 미루거나, 헤이그밀서를 읽는 동안 졸고 있다든지, 밀서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등 무능하고 무책임한 황제로 재현된다. 민비 또한 고종의 총애를 받은 궁녀를 벌주거나, 소년과 동침하는 등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무능한 고종이란 표상은 2000년대 이전 역사학계의 해석을 따른 것이다.37) 김옥균과 그의 암살자인 홍종우의 대립구도를 서사의 축으로 삼는 이 극 역시 오태석 역사극의 보편 서사구조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구도를 따르고 있다. 이 두 인물은 열강의 각축 틈바구니에서 조선의 개혁과 구국을 위해 행동하는 개혁파란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실천 방법에선 대립하는 인물들이다. 조선을 근대화하고 개혁하기 위해 한 인물은 정변을 일으키고, 또 한 인물은 김옥균을 암살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행동노선을 걷는다. 김옥균 서사는 쓰여진 시기나 매체, 작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재현되어 온, 기억의 담론 투쟁을 보여주는 대표적 서사라 할 수 있다. 식민지시기에는 대체로 3가지 유형, 즉 아시아주의를 주창한 영웅, 파란만장한 극적 생애를 강조한 대중극, 친일적 식민담론과 민족담론의 양가성을 띤 재현 등으로 나타났다.38) 해방 이후 발표된 김옥균 서사인 <동천홍>(오영진 작, 1973)은 영웅주의적으로 미화한 김진구의 <대무대의 붕괴>와는 전혀 상반된 시각으로 김옥균울 재현한다. 김옥균 등 개화파나 고종은 왜소하고 열등한 인물들, 분명한 신념이나 세계관이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철저히 반일, 민족담론에 바탕한 재현이다.

    오태석은 이 극에서 김옥균을, 비록 그의 개혁 이상은 일본의 배신으로 좌절되고 말았으나 열강의 각축 틈바구니에서 힘의 균형을 읽어낼 줄 아는 외교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재현한다. 이러한 김옥균 표상은 김옥균을 긍정적으로 그린 이전의 문화적 재현물들이나 공식 역사 서술과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도라지>가 새롭게 재해석하고 다시쓰기 하고 있는 것은 홍종우의 표상이다. 선행의 김옥균 서사들이 홍종우를 자객으로서만 그린 것과는 달리, 오태석은 홍종우를 구국의 이상을 가지고 국제적 감각을 익혀 활동한 행동가로, 김옥균과 동일한 비중으로 재현한다. 사실 홍종우는 공식 역사나 여러 문화적 재현물에서 거의 망각되고 배제된 존재였다. 공식 역사에서 그는 김옥균의 암살자, 황국협회의 주동인물, 독립협회를 무력화시킨 장본인, 민비정권의 앞잡이, 수구파의 화신 등으로 평가되었다. 조재곤은 홍종우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친일 문명개화론자 및 이들의 추종세력들의 악의적인 왜곡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39) 하지만 홍종우는 일본을 거쳐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그 시대 드물게 국제 감각을 지니게 된 인물로서, 유럽문명의 도입을 통해 일본과 같은 근대화를 이루려는 이상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홍종우가 김옥균을 암살한 동기에 대해서 학계나 문화적 재현물은 대체로 ①출세의 발판 ②갑신정변 당시 처형된 친족들의 명예 회복 ③고종, 민비의 지시 ④조선 근대화에 대한 정치적 이견대립, 이 4가지 요인 중 한 두 가지를 거론해 왔다.40)

    그러나 오태석은 홍종우를 몰락한 가문의 후손으로 족보를 팔아 일본 갈 여비를 구하는 등 야망이 큰 젊은이, 특히 구국의 원대한 이상을 가진 인물로 재현한다. 홍종우가 김옥균 암살을 실행한 것은 고종의 신임을 받아 측근이 되어 구국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석한다. 홍종우는 김옥균이 죽을 때 나라를 위해 당부한 “청나라, 러시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고 적당히 이용하여 일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전언을 고종에게 전한다. 이 전언은 김옥균의 주장인 삼화주의(三和主義)41)와는 다른, 홍종우가 주창한 ‘주체적 근대화론’의 핵심 내용이다. 고종은 김옥균 암살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홍종우를 측근으로 두어 정치에 관여할 기회를 주기는 커녕 제주 목사로 보내고 그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이처럼 공식 역사 서술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오태석이 다르게 다시 쓰기 한 부분은 헤이그밀사 사건과 관련한 장면들이다.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일본에게 압박을 당하자 홍종우는 자신이 밀사 파견의 책임을 지겠다며 고종을 배알한다. 고종 폐위 의결서와 함께 이토 통감이 고종 독살을 위해 보낸 식혜가 전해질 때, 홍종우는 고종을 교수시킨다. 홍종우의 고종 교수 장면은 역사왜곡적인 다시쓰기이자, 역사의 허구화이다. 이렇게 역사의 허구화 전략을 사용한 것은 일제의 협박에 시종 무능하고 책임회피적 모습을 보여온 황제가 일본에 의해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민족주의적 혁명가 손에 죽음을 당하는 게 차라리 의미있다는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오태석은 공식 역사와 다른 대안적 다시쓰기를 통해 홍종우가 단순한 자객, 혹은 김옥균 암살 후 출세가도를 달린 부패한 정치가가 아니라 열강으로부터 자주 독립을 지키려 한 열정적인 개혁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새로운 역사쓰기가 만들어내는 역사효과는 독자/관객으로 하여금 한일합방을 둘러싼 시대의 복잡한 상황에 대한 사유의 촉발, 그리고 더 나아가 대안적 역사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태석은 김옥균도 물론 열강의 세력 다툼 사이에서 자주독립을 지켜내려 한 혁명가로 재현한다. 김옥균의 혁명 실패가 일본의 배신 때문이란 것을 강조하며, 와다를 비롯한 일본인들의 김옥균 흠모를 부각시킴으로써 김옥균 표상에 민족주의 담론을 결합시킨다. 부관참시된 시신이 일본 사찰에 안치된 후에도 김옥균 혼령은 이홍장을 만나 조선에 유리한 외교 국면을 만들려는 염원을 여전히 품는다. 이처럼 오태석의 근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민족주의라는 거대담론에 바탕한다. 그러나 역사 재현의 미학적 방법론은 사실주의적 재현방식과 탈근대적 미학을 결합한 것으로, 역사의 결을 거슬러 읽는 방식, 현실과 비현실의 몽타주, 역사의 허구화 등을 사용한다. 탈근대 미학은 오태석의 데뷔때부터 그의 체질을 이루어왔지만, 역사 재현의 시각은 소재에 따라 탈근대 담론이나 근대 담론 중 하나를 취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태석은 유독 근대사 소재에선 근대적 거대담론인 민족주의와 탈근대적 무대미학을 결합하는 절충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민족담론을 무리하게 밀어부칠 경우엔 <잃어버린 강>이 보여주듯 모순적인 역사효과, 역사왜곡적인 역사인식으로 나아간다.

    <잃어버린 강>(2000)은 일본의 강압에 의한 을사보호조약체결 후 국채보상운동, 하얼빈에서의 이토 저격 등 안중근 서사와 백두산 정계비, 간도협약에 관한 역사 서사를 교직한다. 백두산 정계비를 없애려는 이토와 일본군에 대항하여 민초인 귀현, 초순, 한옥, 그리고 ‘민족기원신화’를 표상하는 곰이 정계비를 지킨다. 극의 결말은 사뭇 논쟁적이다. 안중근이 사형 당한 후 이토(혼령)가 나타나 안중근을 기다렸다고 말하고, 안중근 역시 “나는 내 나라에 몸을 바쳤고 당신은 당신 나라에 몸 바쳤으니, 우리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한 겁니다.”라고 말한다. 혼령이 된 두 사람이 동지적 화해를 이룩한 장면 뒤에, 백두산 천지에 곰이 정계비를 가지고 또 한 마리의 곰을 데리고 나타난 장면을 덧붙임으로써 잃어버린 영토 회복에 대한 민족주의적 염원을 강조한다. 여기서 안중근과 이토가 화해하는 장면은 여러 연구자나 평론가들에 의해 오태석의 역사의식의 결여를 비판하는 사례가 되었다.42)

    역사 재현에는 반드시 이데올로기가 개입한다는 명제처럼 이 극은 공연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이슈와 컨텍스트를 반영하고 있다. 2000년은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 의 과거사 왜곡, 중국의 한국고대사 왜곡 사건으로 동아시아 3국간에 민족주의적 역사 논쟁이 벌어진 시기였다. <잃어버린 강>에서 현재의 동아시아 3국의 역사 논쟁과 동궤에 놓이는 조선, 청나라, 일본 간에 빚어진 간도협약과 제국주의 분쟁을 다룬 것은 오태석의 첨예하고 시의적인 역사의식을 입증하는 것이다. 역사학자 임지현은 동아시아 삼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하면서도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고 정당화” 하는 면모를 간파하고 그 ‘적대적 공범관계’를 비판한다. 3국의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관계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각각의 국가권력이 민중을 규율하고 지배 헤게모니를 재생산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43) <잃어버린 강>도 동아시아 3국의 민족주의가 서로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듯 보여도 각국의 민족담론을 더욱 강화시키는 유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그려낸다. 그러나 문제는 3국의 민족주의적 대립을 제시하고 잃어버린 영토의 소유권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지만, 오늘의 시대에 민족주의에 바탕한 영토 분쟁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사유는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극은 조선이 간도나 대륙의 영토를 상실하게 된 역사적 원인으로 일본과 청나라의 밀약, 무기력한 조선의 대응을 들고 있다. 일본이 무단으로 조선의 영토를 청나라에 넘겨버림에도 힘이 없어 영토를 지키지 못했던 과거 역사를 소환함으로써 이 극은 공연 당시의 컨텍스트, 즉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민족주의적 각성을 촉구한다. 한민족의 신화적 기원인 곰을 등장시키고 곰이 백두산정계비를 지켜낸다는 서사 역시 한국이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담론을 언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과거가 어떠했는지보다는 그 과거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효과이다. 단군신화의 곰을 등장시키고, 정계비를 민초들이 지켜낸다는 식의 역사의 재구성은 역사를 신화화한다.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에 기반한 역사의 신화화는 역사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무화시킨다. 또, 각국의 민족주의를 동등한 입장으로 보는 관점은 암살자 안중근이 희생자인 이토에게 동지적 화해를 하는 장면으로 비약하게 만든다. 이러한 탈민족주의적 반전은 지금까지의 서사를 관통하는 민족담론과 충돌을 일으킨다. 여기에는 두 민족주의자 간의 본질적인 차이, 즉 이토는 침략하고 억압을 가한 제국주의자이고, 안중근은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피식민 주체라는 차이가 지워진 것이다. 왜 민족주의적 서사에서 갑자기 탈민족주의적 반전으로 간 것인가? 이는 오태석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린 해원 서사 패턴이 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태석은 이토와 안중근의 혼령에게서 국가의 표상을 소거하고 둘의 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개인적 관계로 환원시켜 버린 것이다. 제국담론과 민족담론은 타자와의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상극으로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본질은 동일하다. 한일관계에서 늘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첨예한 이슈가 되는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제국과 피식민의 차이를 지워버리고 두 인물을 동등한 입장의 민족주의자로 재현한 것은 인물형상화에서의 지나친 왜곡일 뿐 아니라 역사 수정주의로 귀결할 위험이 있다. 민족담론과 반민족 담론이 상충하고는 있지만, 이 극의 미학적 방법론은 <도라지>처럼 다양한 역사 사료들을 동원한 사실주의적 재현 방식에 곰, 혼령 등 현실과 비현실의 혼종, 역사의 허구화, 비연속적, 파열적 서사전략 등 탈근대미학을 혼종하고 있다.

       4.2. 횡단과 놀이성, 대안적 역사쓰기?<천년의 수인>,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천년의 수인>(1998)은 한 병실에 수용된 김구 암살범 안두희와 미전향 장기수, 광주항쟁 진압군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왜곡된 흐름과 역사적 상처를 그린다. 그리고 그들 못지않게 한국민 모두가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역사에 갇혀있는 수인임을 말한다.44) 이 극에도 오태석의 반복강박인 가해자/피해자 중첩 구도가 나타난다.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는 “신생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첫 번째 단추를 망가뜨린 장본인”, 가해자이다. 동시에 그는 끊임없이 테러와 암살 위협에 시달려온 피해자, ‘살아있는 망자’이기도 하다. 진압군 병사 역시 광주항쟁 당시 여학생을 쏘아 죽인 가해자지만 상급자의 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하급 군인, 상급자에 대한 책임 규명 없이 재판에 회부된 인물이란 점에서 피해자이다. 극은 시간적으로 동떨어진 역사의 관련자들을 한 병원에 배치하여 시간과 공간, 인물과 사건을 뒤섞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방식으로 진행된다. 3명의 테러리스트를 한 공간에 배치하면서 은유와 환유의 방식, 시공간의 횡단, 꿈과 현실의 교차, 놀이의 정신으로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안두희와 진압군 병사는 권력의 하수인이고, 정치적 배후나 상급자의 책임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공통점과 ‘살아있는 망자’라는 타자성의 표지를 지닌다. 미전향장기수는 이념 투쟁의 분단현실을 표상하며, 그 역시 김구 암살 지령을 받았고 빨치산 출신이란 점에서 테러리스트란 공통분모로 묶인다. 이 극도 가해자이자 ‘살아있는 망자’인 안두희와 진압군 병사의 고통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그 고통은 심각한 재현이 아닌 블랙 유머와 판타지, 노래, 놀이성에 의해 매개된다.

    극의 시작부에서45) 안두희는 사슴뿔을 단 사람들이 등장하여 그의 사슴뿔을 전기톱으로 자르는 꿈을 꾼다. 무대는 법정으로 변하고, 안두희는 자기 입장을 정당화 하는데, 이는 곧 김재규의 자기변론으로 이어진다. 무대는 10.26 현장, 광주항쟁의 공간, 김구가 임시정부선언문을 낭독하는 공간으로 계속 바뀐다. 윤봉길이 백범에게 자신의 회중시계를 건네고, 상자 속에 있던 골판지 인형 안두희가 튀어나와 백범에게 총을 쏜다.

    이 꿈 장면은 윤봉길, 안두희, 김재규, 광주항쟁 등으로 이어져온 ‘테러의 역사’로 우리 근현대사를 집약하고, 이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재판극을 주요 틀로 삼아 정치적 테러의 배후인 당대 권력에 대한 역사적 심판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병사의 꿈 역시 블랙 코미디와 판타지, 인형극으로 표현된다. 외뿔소 뿔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무대는 김재규 재판정으로 바뀐다. 이러한 꿈 장면들, 윤봉길의 회중시계가 안두희, 병사에게 차례로 전해지는 반복적인 장면을 통해 3명의 테러리스트가 한국 현대사를 포괄하는 정치적 테러리스트 집단의 표상임을 보여준다.46) 탈근대 역사인식은 총체적 관점이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념과 이념의 대립 같은 거대담론적 주제에서 탈피하여 개인들의 미시적인 이야기들에 집중한다. 오태석은 3명의 테러리스트라는 개인들의 이야기로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정치적 테러와 그에 대한 역사적 판단의 문제를 제기한다. 안두희와 미전향장기수가 병사를 살려달라는 탄원서를 쓰고, 테러와 독재로 얼룩진 현대사를 만들어온 데 대한 책임을 절감하고 자살하는 장면은 허구이므로 대안적인 역사 쓰기이다. 일어난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작가는 왜곡된 역사, 과거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역사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실제와는 다른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안두희와 장기수가 광주진압군 병사의 구명 탄원서를 쓰고 자결하는 것은 현대사 왜곡의 역사적 책임을 각성한 속죄행위이다. 김구가 이들에게 술을 따라 주는 것은 해원과 화해의 의미라기보다는 역사의 흐름을 왜곡시킨 당사자들의 속죄행위에 대한 승인이다. 그리고 이들이 역사의 희생자(병사)인 타자에 대한 윤리를 지키는 데 대한 격려라 할 수 있다. 이 극의 결말은 김구 장면과 더불어, 자객이 들어와 병사를 안두희로 오인해 죽이는 장면을 병렬시킨다. 과거사 규명이나 책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여전히 역사의 난장이 지속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우리 모두 ‘역사의 수인’이라는 것이다.

    이 극은 가해자/피해자의 해원이란 단순 패턴을 탈피하고, 포괄적인 역사적 전망과 더불어 개인과 집단 간의, 개인과 역사와의 관계의 중층성과 복잡성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성숙한 역사극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현실에선 안두희가 시민에게 테러를 당해 죽었지만, 이 극은 안두희가 자결하는 결말로 처리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촉구하는 대안적 역사쓰기를 시도한다. 역사의 해체와 허구화라는 탈근대 역사담론과 궤를 같이하는 탈근대적 글쓰기와 미학적 방법론을 자유분방하게 구사한다. 역사를 단선적 실체가 아니라 이질적이고 파열적이고 복합적인 것으로 보는 탈근대 역사인식과 불연속적, 파편적 서사,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역사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 재현과 놀이성이 뒤섞인 미학적 글쓰기 방식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2003)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극인데,47) 지배권력의 통제에 의해 공개적으로 말해지지 못했고 망각되었던 기억과 증언, 구술을 소환한다. 특히 중심 서사는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자들』48)에 수록된 나무꾼 김춘배의 증언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김춘배는 4·3 때 산에서 나무하다 경찰에 잡혀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인물이다. 실제 증언을 서사의 중심으로 삼고 있지만 오태석은 사실적 재현이나 개연성을 무시한 서사, 기발한 상상력과 판타지, 놀이정신과 축제정신으로 역사를 새롭게 다시 쓰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실제 인물 김춘배의 증언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았으면서도 아내 맹구자가 주도하는 서사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4·3 사건 때 서북청년단과 군인들의 학살을 피해 산에 올라갔던 성춘배는 체포되어 20년 형을 구형받고 마포형무소로 이송된다. 감방에서 만난 오라리 유격대원들은 그를 유격대 장두 강우재로 변신시키기 위해 언청이 수술을 한다. 성춘배와 맹구자의 평범했던 개인적 삶은 4·3, 한국전쟁, 5·16 같은 커다란 역사적 격변에 휘둘린다. 개인적 서사와 거대 역사를 교직함으로써 그들이 개인이 아닌 4·3기억을 대표하는 표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엔 정부군에 의해 전향자 집단학살이 벌어지는데 맹구자 아버지도 거기서 학살된다. 5·16 때엔 6·25 때 탈옥했던 기결수들을 재수감하는 바람에 춘배는 다시 수감된다. 맹구자는 집단학살 터에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비석을 세우려 하나 군사정권이 망치로 깨버린다. 구자는 형무소로 찾아가 춘배와 옷을 바꿔입고 춘배 역할을 하고, 대신 춘배를 제주로 보낸다. 이처럼 제주의 강인한 여성을 표상하는 구자가 서사를 주도해 간다. 구자는 서청(서북청년단) 수인들을 제압하고, 재판없이 구속된 제주 수형자 2,350명의 위패를 대행하는 수인들의 ‘제주도 방목 교정’을 성사시킨다. 그러나 춘배가 리더인 해녀조합은 해녀왕국 건설을, 구자는 그곳에 4·3 희생자 비석을 세우려 하는 상충된 목표 때문에 서로 대립한다. 경제논리와 추모역사 기념이 충돌을 빚는 것이다. 육지에서 들어온 구자와 수인들을 서북청년단으로 칭하면서 해녀들은 투쟁에 돌입한다. 이는 현재 4.3이 다시 재연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작가는 이념이나 정치, 경제적 입장 등의 갈등으로 4.3사건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4·3의 현재화라는 성격을 이러한 과거의 반복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4·3 유족들의 설득으로 춘배는 하산하고, 비로소 자신이 강우재가 아니라 나무꾼 성춘배라고 말한다. 구자는 ‘애 업은 어멈’이 되어 해녀들과 디딤불미 발판을 밟으며 노래하고, 디딤불미 쇳물로 다시는 부서지지 않을 ‘백조일손지지’ 쇠비석을 세운다.

    이상의 요약에서 알 수 있듯, 오태석은 4·3 사건을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호모 사케르, ‘비국민’의 입장에서 재구성한다. 김춘배의 증언이나 ‘백조일손지지’ 비석에 관한 기록을 충실하게 참조하면서도, 제주도 수형자 2,350명의 혼령을 대행한 수인들의 귀향과 해녀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 대안적 다시쓰기를 통해 현재의 시공간에서 다시 재연되는 4·3사건을 그려낸다. 나무꾼 김춘배의 구술 증언과 4·3의 굵직한 실제 사건들, 즉 오라리 방화사건, 셧알오름의 대학살, 육지 형무소에 수감된 2,350명 등의 기록을 서사의 축으로 삼으면서 그 틈새에 기발한 상상력의 허구를 채워넣어 변형시킨다. 춘배를 장두 강우재로 변신시키기 위한 언청이 수술, 감옥에서 서청 죄수들이 맹구자나 제주남에게 가한 폭력들은 4·3 때 섬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토벌대의 국가폭력, 그리고 마찬가지로 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유격대의 거울이미지라 할 수 있다. 춘배가 강우재, 구자로 연속 정체를 바꾸는 설정이라든지, 구자가 춘배에서 4·3 때의 ‘애 업은 어멈’으로 정체가 바뀌는 설정은 4·3 사건을 둘러싼 다층적인 기억의 담론투쟁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위패를 걸고 제주 수형자를 대행하는 수인들의 제주 방목이 서북청년단으로 지칭되는 것, 춘배와 해녀들의 투쟁은 4·3 사건의 폭력이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 극은 국가 권력과 민중 모두에 대한 비판을 깔고 있다. 경찰, 군인, 서청 등 토벌대의 주민 학살은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다. 국가폭력에 대항해 싸우는 민중 계급 오라리 유격대원도 같은 민중인 춘배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춘배와 해녀들도 기득권과 자본주의적 이익을 위해 제주도 수형자들의 귀향과 해원을 결사 저지하는 등 과거 기억을 폭력적으로 억압한다. 여기서 2,350명의 제주 수형자는 창호지 접지에 쓰여진 ‘먹물 이름’(위패)으로 귀향하는데, 이 ‘먹물 이름 귀향자’는 <운상각>에서의 실종신고서와 마찬가지로 무속적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육지 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죽은 2,350명의 집단은 4·3 사건이 외부인 서청이나 경찰병력에 의한 제주 도민 학살이었음을 증거할 뿐 아니라 4·3의 제노사이드(Genocide)49)적 성격을 암시한다. 이는 국가폭력의 희생자, ‘호모 사케르’였던 제주 도민들의 타자성을 상징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장면은 누구의 기억이 보존되어야 하며, 누구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누구의 역사가 서술되어야 하는가?50) 하는 탈근대 역사담론적 문제의식을 강렬하게 제기한다.

    4·3 사건은 ‘라쇼몬’이라 불릴 정도로 국가의 공식 역사와 기억 사이의 다층적인 담론투쟁이 벌어졌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4.3은 국가나 공식역사에 의해 ‘공산당 폭동’으로 규정되었다. 80년대 후반 이후에야 공식 역사와 다른 4·3의 다양한 기억과 담론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다.51) 오태석은 국가폭력을 입증하는 증언을 서사의 축으로 삼음으로써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진실을 표현하고자 했다.52) 극의 결말은 성춘배가 4·3의 폭력성 와중에서 만들어진 가짜 정체성을 벗고 본래의 자기 정체성으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섬 공동체가 벌이는 축제적인 놀이를 통해 과거기억에 대한 애도작업과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 퍼포먼스는 과거를 망각하지도 않으면서 집착하지도 않는 건강한 과거 극복의 장면을 재현해낸다. 구자와 해녀들이 함께 벌이는 ‘디딤불미 놀이’는 축제성과 모성(애 업은 맹구자),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으로 과거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퍼포먼스로 제시된다. 공동체가 참여한 치유와 화합의 축제에서 끓여낸 쇳물은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쇠비석을 만들어낸다. 망각되고 억압되었던 기억은 담론화 되어 과거의 의미화를 이루어내고, 고통의 유물인 비석은 후대가 지속적으로 역사의 기호를 다시 읽게 만드는 문화적 기억의 장소가 된다. 이 극은 공적 역사에서 망각되고 억압되었던 하위주체의 기억을 서사의 축으로 삼으면서, 해체적 관점으로 비연속적이고 이질적인 서사, 실화와 허구, 현실과 비현실, 재현과 놀이와 축제를 결합한다. 일어난 역사가 하위주체들에게 폭력적 역사였고 육지 수형자들의 귀향과 해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작가는 허구적이고 대안적인 역사 다시쓰기를 통해 해원과 공동체의 평화라는 새로운 역사를 구성한 것이다.

    37)2000년대 이후 역사학계에서는 고종에 관한 집중적 연구와 새로운 사료들이 밝혀지면서 고종을 주권 수호를 위해 노력한 개혁 성향의 군주로 재해석한다. 캐롤 쇼우, 「국권 회복을 위한 고종의 영웅적 노력(1905〜1907)」, 『유관순 연구』 창간화, 2002. 왕현종, 「대한제국기 고종의 황제권 강화와 개혁논리」, 『역사학보』 208호, 2010. 최덕규, 「일본군의 한국강점 과정과 고종황제의 기억」, 『서양사학연구』 27집, 2012 등 참조.  38)이상우, 「김옥균의 문학적 재현과 기억의 정치학」, 한민족어문학회, 『한민족어문학』 58집, 2011. 이 논문은 김옥균 서사가 식민지시기에 아시아주의자의 전유, 민족주의 혹은 대중미디어의 전유, 군국주의의 전유와 내적 균열, 이 세 가지 양상을 띤다고 분석한다. 아시아주의를 주창한 영웅으로 그린 극은 김진구의 <대무대의 붕괴>(1929), 대중극으로 아랑의 <김옥균>(임선규, 송영 작, 1940), 청춘좌의 <김옥균전>(김건 작, 1940), 식민담론과 민족 담론의 양가성을 공유한 극은 박영호의 <김옥균의 사>(1944)가 대표적이다.  39)조재곤,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 푸른역사, 2005, 238〜245쪽 참조.  40)강진구, 「억압된 주체의 소환과 전후 일본의 과거사 인식 연구」,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3호, 2005, 55쪽.  41)동아시아 3국인 조선, 일본, 중국과의 공존 공영을 의미한다.  42)이를테면 김윤정은 「<천년의 수인>에 드러난 ‘해원’의 의미 고찰」에서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개인과 개인의 갈등으로 치환시키고 개인과 개인의 사이에서 모든 갈등을 해소시킨다. 이러한 주관적인 재해석은 역사의 객관적인 진리를 외면하고 오히려 역사 왜곡적인 화해를 만들어간다.”라고 지적한다.(『극작가총서 8 오태석』, 292쪽)  43)임지현, 『적대적 공범자들』, 소나무, 2003, 10〜11쪽.  44)오태석은 이 작품 작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안두희의 오십년과 우리들의 오십년 사이에 무슨 변별력이 있느나,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저 사람은 가시적으로 민족의 적이다, 그런 표지가 붙어 있었다는 것만 다르지. 우리 또한 그 사람 못지않게 영어의 세월을 보낸 것 아닙니까.”(『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186〜187쪽.  45)<천년의 수인>은 여러 판본이 있다. 본고는 『오태석 희곡집』 5(평민사, 2000)을 텍스트로 삼는다. 『오태석 공연대본전집 12』에 수록된 <천년의 수인>에는 안두희의 사슴뿔 꿈이 삭제되었다. 전자에 수록된 작품이 훨씬 더 풍부한 상징의 활용으로 주제의식을 깊이 탐색한다고 본다.  46)이 극이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나 이념이라는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을 개인과 개인의 갈등으로 환치시켰다고 비판한 김윤정의 논의는 다소 본질을 벗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천년의 수인>이나 <잃어버린 강>에서 보여준 가해자와 피해자의 해원, 이토와 안중근의 화해등에 대해, 김윤정은 오태석의 “역사에 대한 주관적인 재해석이 역사의 객관적 진리를 외면하고 역사왜곡적인 화해를 만들어” 냈다고 비판한다. 이는 <잃어버린 강>에는 적절하지만 <천년의 수인>에 관해서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라, 이들은 현대사의 왜곡된 흐름을 만들어온 정치적 테러리스트 집단의 표상적 인물로 제시된 것이다. 김재규의 재판장면, 광주항쟁의 최상위 책임자를 다구치는 헌병 장면들을 이들과 연결하고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김윤정, 「<천년의 수인>에 드러난 ‘해원’의 의미 고찰」, 한국극예술연구 15집, 2002, 339〜341쪽.  47)이 극은 철저히 제주도 방언으로 만들어져 2003년 제주문화예술회관에서 초연을 가졌고, 이후 서울에서도 제주도 말로 공연되었다. 서울관객에게 제대로 소통되지 않더라도 제주민의 기억을 그들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구현하고자 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48)제주 4·3연구소 편, 『무덤에서 살아나온 수형자들』, 역사비평사, 2002. 김춘배의 사연은 극에 매우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20년형을 선고받자 아내는 재판 없이 형량을 선고받았다는 자인서를 4.3 당시 연대장 송요찬에게 받아가 잔형을 무효로 만들고자 분투한다. 그러나 검찰이 인정하지 않는다. 맹구자가 춘배로 변장하고 역할바꾸기를 하는 장면부터는 작가의 허구적 다시쓰기이다.  49)제노사이드는 원래 한 민족 또는 종족 집단의 박멸을 의미했으나,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학살이 발생하면서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학살이란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50)전진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82쪽.  51)권귀숙, 『기억의 정치』, 문학과지성사, 2006, 38〜39쪽.  52)오카 마리, 김병구 역, 『기억. 서사』, 소명출판, 2004, 83쪽.

    5. 나오며

    한국에서 탈근대 역사극이 보편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의 유행으로 원본으로서의 역사와 거대서사에 대한 불신, 역사의 발전과 총체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역사극은 탈역사화하고, 개인과 일상, 팩션이 역사극의 주요 코드로 등장했다.53) 그러나 오태석은 이미 1970년대부터 역사를 해체하고 유희하는 탈근대 역사인식과 해체적 플롯, 제의성, 놀이성 같은 탈근대 연극미학을 구현해왔다는 점에서 탈근대 역사극의 선구자이자 대표 극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역사극을 대표하는 유치진이 ‘현재의 전사’로서 역사를 소환하고, 역사적 운동의 총체성 개념에 입각해서 영웅적 인물들의 극적 투쟁의 서사로 구성했다면, 오태석은 공식 역사에서 망각되거나 배제된 빈 틈, ‘잉여의 자리’를 자유분방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워넣거나 대안적 다시쓰기를 하며, 하위주체의 관점에서 플롯구성을 했다. 오태석 역사극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억압되거나 망각 혹은 침묵을 강요당해온 기억을 조명하고 타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내고자 하는 점이다. 6·25나 4·3 같은 전쟁기억이나 국가폭력을 다룬 극들에서 그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인물들, 호모 사케르 혹은 비국민으로 규정되어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사람들, ‘살아있는 망자’의 타자성 재현에 집중했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표상된 타자성은 내편과 적의 경계가 유동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띠었던 한국전쟁의 특수한 성격을 상징한다. 본고는 선행 연구들이 지적해온 오태석 역사극의 특징, 곧 가해자에 대한 동정적 시각이라든지 가해자에 대한 용서, 해원 서사를 취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행위의 의도나 과정, 결과를 행위 당사자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과거의 역사화’를 역사 인식의 지평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론하였다.

    오태석은 파편적이고 이질적인 장면들에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 실재와 허구를 혼종하며, 놀이와 제의를 분방하게 활용한다. 역사를 해체하고 꿈과 판타지, 상상을 뒤섞는 역사 다시쓰기작업을 통해 일어난 역사에 대한 대안적 이야기들을 구성하고, 관객 또한 역사에 대한 사유와 새로운 역사 재구성과 재해석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하위주체 중심의 서사, 역사의 해체나 유희, 허구화, 현재화, 그리고 대안적 다시쓰기 등의 특성은 90년대 이후 등장한 탈근대 역사극들과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오태석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겹쳐있는 인물의 트라우마적 기억과 타자성의 재현에 집중한다는 점, 또, 혼령이나 신위, 위패, 빙의, 굿 등 무속적 요소들과 접맥한 해원 서사를 통해 역사의 상처 치유와 과거 극복의 관점을 보이는 것이 다른 작가들과의 주요한 차이라 볼 수 있다.

    53)김성희, 「역사극의 탈역사화 경향: 역사의 유희와 일상사적 역사쓰기」, 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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