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2006)*에서 마쓰코의 히스테리적 욕망

A Study on the Hysteric Desire of Matsuko in Memories of Matsuko(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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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이 연구는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의 주인공 마쓰코의 히스테리를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다. 라캉의 히스테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계에 진입한 소외된 주체이다. 주체의 소외는 부권적 기능의 억압으로 발생하며, 억압은 욕망의 산물이다. 특히, 히스테리는 대타자인 아버지의 담론과 욕망으로 지배된다. 대타자로부터 소외된 마쓰코는 아버지의 대상의 원인이 되고자 욕망한다. 그러나 그녀는 억압이 회귀 되므로 다른 남성들에게 이동하게 된다. 여기서 라캉은 남녀 간에 ‘성관계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마쓰코는 남성들에게 주이상스의 원인이 됨으로써 이를 거부하게 된다.

    마쓰코는 사회적 규범을 스스로 차단하고 구강쾌락에만 집중하여 ‘혐오스런’이라는 수식어를 형성 된다. 라캉에 의하면 구강쾌락은 동생 쿠미와의 상상적 동일시이다. 이와 달리 아버지와는 상징적 동일시가 이뤄진다. 아버지와의 상징적 동일시는 마쓰코가 가지고 있지 않은 남근 즉, 대타자의 기표와의 동일시이다. 결국, 대상의 원인이 되고자 했던 마쓰코의 욕망은 쾌락원칙 넘어 여성적 주이상스로 향하게 된다.


    This study analyzed the hysteric desire of Matsuko, the main character of Memories of Matsuko, from the psychoanalytic perspective of Jacques Lacan. He saw hysteria as an alienated subject that entered the symbolic in the "name of tne father." A subject is alienated by the suppression of paternal functions, and suppression is a product of desire. Hysteria, in particular, is ruled by the discourse and desire of father that is Big Other. Alienated by Big Other, Matsuko desires to be the cause of father's object. As the suppression returns, however, she moves to other men. Here Lacan argued that "there were no sexual relations" between man and woman. Matsuko becomes a cause of Jouissance to men and thus rejects it.

    Matsuko blocks the social norms herself and focuses only on oral pleasure, thus earning a disgusting modifier. According to Lacan, her oral pleasure is her imaginary identification with her little sister Kumi. Contrary to his view, however, her symbolic identification happens with her father, which is her identification with a penis that she does not have or the signifier of Big Other. In the end, her desire of becoming a cause of object moves toward female Jouissance beyond the principle of pleasure.

  • KEYWORD

    영화 ,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 , 히스테리 , 라캉 , 욕망 , 억압 , 신경증 , 동일시

  • 1. 혐오스런 마쓰코는 누구인가?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나카시마 테쓰야, 2007)에는 혐오스런 일생을 살았던 카와지리 마쓰코(川尻松子)가 등장한다. “‘혐오스런’이라는 형용사는 그녀의 일생이 아니라, 53살의 마쓰코에게 붙은 별명이었다.”1) 영화는 마쓰코의 조카인 카와지리 쇼(川尻笙)를 통해서 그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며 그녀의 일생을 추적한다. 쇼는 마쓰코의 유품정리를 위해 마쓰코의 아파트에 도착하면서 이웃집 남자 오오쿠라 슈지(大倉修二)를 만나게 된다. 오오쿠라 슈지는 마쓰코를 ‘사회의 법칙도 이웃에 대한 예의도 상관하지 않았던 미친 여자’라 명명하며 ‘쓰레기 배출일도 안 지키고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으며 몸에선 이상한 냄새가 나고 별안간 한밤중에 마구 고함을 지르며 발광한다’는 수식어를 덧붙인다.2) 주체의 사상을 전달하는 언어를 차단하고 사회적 규칙과 무관하게 행동하는 것은 마쓰코가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sociopath3)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녀는 왜 신경증neurosis적으로 변모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라캉 Jacques Lacan의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라캉에 의하면 인간은 원초적 사랑을 상징하는 어머니와 달리 사회문화적 제재를 가하는 법을 상징하는 아버지를 통하여 사회화된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사회화 과정에서 성과 언어 그리고 사회 규칙을 습득하여 사회문화적인 존재가 된다.4) 아이는 거울단계에서 이상적 자아Ideal-Ich를 형성한 상상적 주체로서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욕망하고, 어머니의 남근이 되고자 한다. ‘아버지의 이름 Name-of-the-Father’은 상징적 기능symbolic function을 한다. 부권적 기능은 아이를 어머니로부터 소외하고 분리하는 이차적인 기능을 한다. 소외는 아이가 이제까지 어머니로부터 취할 수 있었던 주이상스;향유 Jouissance를 금지하고, 분리는 어머니의 욕망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대상 a'에게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는 언어의 억압으로 인해 이제는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라캉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비정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정신병psychosis, 도착증perversion, 신경증neurosis 중 하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은 아버지의-이름을 폐제foreclosure하여 언어적 상징체계를 내재화하지 못한 상태라면, 도착증은 아버지의-이름을 부인한다. 도착증은 정신병과 달리 “소외(다시 말해서 원억압, 의식과 무의식의 분리, 언어 속에 주체를 존재하게 만드는 과정인 아버지의-이름에 대한 긍정)는 통과하지만, 분리는 성공하지 못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5) 이는 절대적인 부권의 법이 등장하지 못하여 부분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도착증은 자신을 타자 속에 결여된 ‘대상 a’로 구성하고 스스로 미완의 법을 완성하려 한다. 도착증은 상실된 아버지(마조히즘; 자학증), 법을 세우려는 행동(사디즘; 가학증)으로 이해할 수 있다.6)

    신경증은 정신병, 도착증과 달리 언어적 상징체계를 소유한다. 아버지의-이름은 집안의 법을 제정하는 자이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누나’, ‘오빠’, ‘동생’ 등과 같은 지위 역할을 부여하여 주체가 더는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금기한다. 언어는 주체로부터 억압을 가하는 기제이며 억압은 욕망의 산물이다. 욕망은 어떤 대상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원인으로부터 밀려나는 것으로 욕망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신경증은 강박증obsessional neurosis과 히스테리hysteria로 나뉘는데, 강박증은 주로 남자이고, 히스테리는 주로 여성이다. 강박증은 주체 속에 대상을 포함하여 타자를 무화시키는 관념론적 경향을 지니지만, 히스테리는 자신의 존재를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7) 하지만 욕망은 대상이 없는 것으로 만약 주체에게 대상이 존재한다면, 주체는 더 이상 욕망하지도 욕망하지 않을 것이다. 대상이 없는 욕망은 주체로부터 끊임없이 욕망하게 한다. 신경증은 욕망이 만족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주된 특징이다.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에 마쓰코는 라캉의 히스테리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대타자인 아버지의 담론과 욕망 때문에 지배되어 있다. 마쓰코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늘 무언가를 찾고 그것이 욕망의 대상이라 착각하지만, 어떤 대상으로 채울 수 없는 불만족한 욕망을 느낀다. 마쓰코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끊임없이 타자의 대상의 원인이 되고자 한다.8)

    현재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에 대한 선행 연구는 다중 1인칭 시점 소설의 영화화에 따른 서술상황의 변화연구(이영종9)), 마쓰코의 자기서사와 쇼의 무기력증 극복 과정(노진희10)), 마쓰코의 삶의 여정과 극복 과정 탐색(성정희11))이 있다. 이영종의 글은 원작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서술과정의 변화를 인칭, 시점, 카메라 양식으로 분류하고, 매체변화에 따른 기술적 표현양식들을 분석한다. 노진희의 글은 마쓰코의 일생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쇼의 무기력증이 극복되어 가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성정희의 글에서는 고단한 삶을 살았던 마쓰코와 덴동어미의 삶에 대한 극복 의지를 분석하고 있으나 마쓰코보다는 덴동어미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가출, 폭력, 불륜, 매춘, 살인, 밀매 등이 점철된 마쓰코의 삶은 영화의 제목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같이 혐오스럽다. 과연 그녀의 욕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혐오스런 삶을 살게 되었느냐는 의문점이 발생한다. 이를 위해 기존선행연구와 함께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에 마쓰코의 일생을 살펴보고자 한다. 많은 연구자에 의해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영화분석이 시도되었다. 그런데도 본 연구가 갖는 함의는 라캉에게 히스테리가 정신분석학의 초석이 되었듯이, 라캉의 히스테리적 욕망이 여성적 주이상스로 향하는 과정을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에 마쓰코의 삶을 통해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캉이 ‘세 명의 죄수’ 우화를 예로 들면서 논리적 시간개념을 설명한 것과 같이 이 글 역시 살해 된 마쓰코(결론) → 그녀의 삶(이해) → 그녀의 죽음(응시) 순으로 그녀의 일생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결론에 따른 단서들을 추론하고 그녀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그녀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쓰코의 조카 쇼가 마쓰코의 일생을 응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1)<달콤하고 유쾌한 비극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씨네21》, 2007년 04월 19일 자.  2)오오쿠라 슈지의 발언들은 그의 사회 부적응적자와 같은 외면적 형태 exteriority -피어싱과 문신 그리고 펑키한 머리스타일-로 인해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3)소시오패스 sociopath :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의 일종으로, 범행을 인지한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와 차이가 있다. 소시오패스는 충동적이며 감각추구 성향이 높은 편으로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4)슬라보예 지젝, 『성관계는 없다』, B, 2005, 9쪽.  5)브루스 핑크 저, 맹정현 역, 『라캉과 정신의학』, 믿음사, 2002, 303쪽.  6)문장수, 「인간 범주에 대한 라캉의 구조적 정의에 대한 비판」, 『철학논총』 제71집, 새한철학회, 2013, 62~66쪽.  7)문장수, 앞의 논문, 54~61쪽.  8)자크 라캉·김석 저,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2007, 58쪽.  9)이영종, 「다중1인칭 시점 소설의 영화화에 따른 서술상황의 변화연구」, 국내석사논문,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2009.  10)노진희,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드러난 마츠코의 자기서사와 쇼의 무기력증 극복 과정」, 『영화와문학치료』 제 3집,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2010.  11)성정희, 「고전문학 :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고전시가 속 여주인공의 삶의 여정과 극복 과정 탐색」, 『겨레어문학』 42권, 겨레어문학회, 2009.

    2. 마쓰코의 소외와 불만족한 욕망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은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던 쇼에게 아버지 카와지리 노리오(川尻紀夫)가 살해당한 누나(고모) 마쓰코의 유품정리를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쇼는 마쓰코의 방안에 붙어있는 아이돌 가수 ‘히카루겐지(光GENJI)12)’의 포스터와 마쓰코의 가방 안에 있던 마쓰코 사진을 발견한다. 그 순간 가방에 달려있던 ‘태양의 탑’ 열쇠고리에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에서 ‘태양의 탑’ 열쇠고리는 마쓰코와 쇼를 연결해주는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태양의 탑’은 1970년대 오사카에서 개최된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상징물이자 일본 천황가의 시조신 아마테라스이다. 하늘바위문 이야기13)의 태양신 아마테라스는 남동생 스사노오의 계획으로 다시 세상밖에 나올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마쓰코는 남동생 노리오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히카루겐지, 마쓰코의 사진, 태양의 탑은 그녀의 생애를 추적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이를 라캉의 정신분석학으로 접근한다면 히카루겐지는 언어적 소외이고 마쓰코의 사진은 그녀의 욕망이며 태양의 탑은 사회적 규범이라 할 수 있다. 마쓰코에게 ‘히카루겐지’는 그녀가 주검으로 발견되기 이전 열광했던 아이돌 가수이다. 그녀는 타인들과의 언어적 소통을 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팬레터에 히카루겐지의 우치우미 고지(內海光司)가 답장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있었다. 이는 소외된 그녀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줄 환상적 대상을 좇는 것이다. 마쓰코의 욕망은 마쓰코의 사진 속 배경에서 비롯된다. 사진 속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은 아버지의 웃음을 보기 위해 짓던 표정으로 그녀는 항상 아버지의 사랑을 욕망했다. 그녀에게 태양의 탑은 부권적 기능을 의미한다. 태양의 탑 옆에 있는 두 개의 방울은 아버지의 남근 즉, 팔루스Phallus를 지시하는 시니피앙signifiant이다. 이와 함께 마쓰코는 끊임없이 아버지에 대한 태양의 이마고Imago를 구성한다.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은 소외, 욕망, 억압이 회전되는 플롯을 구성한다. 영화는 ‘주검으로 발견된 마쓰코’, ‘사랑받고자 했던 마쓰코,’ ‘타인에 의해 죽은 마쓰코’처럼 계속해서 그녀를 소외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남성들로부터의 소외, 사회로부터의 소외 등과 같이 소외가 계속해서 회귀 된다. 쉽게 말해 그녀는 남성들에 의해 계속해서 버림받고 거부되며 대체됨으로써 소외된다. 소외와 욕망 그리고 억압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의 소외는 언어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에게 언어는 타인과의 관계를 매개하기 때문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요구하기 위해 언어화하지만 모든 욕구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라캉에 의하면 “욕구 중 소외되는 부분이 요구로 전달되지 못하고 남는 어떤 원억압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 억압된 것은 하나의 파생물 속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에게 욕망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14) 소외는 언어적 결여 때문에 욕망이 발생하고, 언어는 주체의 욕망을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욕망은 특정한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무의식이다.15)

    히스테리 환자는 “자신이 없는 엄마가 완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이, 엄마를 완전한 하나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대상(엄마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그 결여를 메워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16)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상징계에 진입한 주체는 엄마에서 아버지로 전이된다. 히스테리 환자는 타자로부터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지침을 요구한다. 마쓰코 역시 타자의 요구에 집착하며 응답하고자 한다. 수학여행에서 말실수로 절도범이 된 마쓰코는 반성의 의미로 가슴을 보여 달라는 스기시타(杉下) 교감선생의 요구에 수긍한 것처럼 상징적 타자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다.

    마쓰코는 아버지와 남성들이 자신에게 특정한 요구를 부과해 주길 욕망하기 때문이다. 마쓰코에게 아버지는 집안의 법을 제정하는 자이다. 마쓰코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음악교사가 됨으로써 아버지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자 한다. 이에 반해 그녀는 동생 쿠미에게 주말에 있을 슈지 선생과의 데이트를 자랑함으로써 아버지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도록 유도한다. 아버지를 욕망하는 주체로 유지함으로써 그녀는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욕망 즉, 잉여 주이상스를 취하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신의 욕망이 만족되면 더는 욕망하지 않을 것이고, 이로 인해 마쓰코는 아버지의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버지를 불만족한 욕망으로 유도하고 자신이 아버지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원인이 되고자 한다.

    12)히카루겐지: 히카루겐지의 그룹 이름은 무라사키시키부의 소설 『겐지 이야기』의 주인공 히카루 겐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남성 아이돌 그룹으로 텔레비전 등의 각종 매체에서 전설의 아이돌, 최후의 슈퍼 아이돌 등으로 언급된다.  13)불의 신을 낳다가 불에 타죽은 아내 이자나마를 찾기 위해 남편 이자나기가 황천국으로 내려갔으나 아내를 데려오지 못한다. 그는 황천국에서 부정 탄것을 정화하기 위해 미야자키 현 강어귀에서 목욕하다가 그의 왼쪽 눈에서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가 태어나고, 오른쪽 눈에서 달의 신 쓰쿠요미가 태어났다. 그리고 코에서는 황천국의 스사노오가 태어나면서 3대 천상신이 태어난 것이다. 태양신은 하늘바위문(天岩戸) 이야기: 남동생인 스사노오 신이 너무나도 난폭하게 굴자, 처음에는 편들어주던 아마테라스 신도 결국 화가 나서 바위문 안 동굴에 숨어버리고 나오지 않는다. 태양신이 숨어버리자 세상은 깜깜한 어둠으로 바뀌고, 이에 불편을 느낀 신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었다. 그리하여 바위문 앞에 큰 거울을 놓고 그 앞에서 연회를 벌여, 한 여신이 춤을 추고 다른 신들은 그 춤을 보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아마테라스 신은 이상하게 여기고, 빠끔히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아마테라스 신은 " 내가 숨어버려 불편함이 많을 줄 알았더니 춤추고 박수나 치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하고 물었다. 신들은 "당신보다 더 고귀한 신이 납시어 모두 환영하며 맞이하는 참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얼른 거울을 아마테라스 신쪽으로 돌렸다. 거울에는 당연히 아마테라스 신의 모습이 비쳤는데, 아마테라스 신은 그것이 자신의 모습인 줄 모르고 자세히 보려고 문을 좀 더 열었다. 그때 손힘이 센 신이 손을 뻗쳐 아마테라스 신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어내었다. 동시에 다른 신은 뒤쪽으로 밧줄을 쳐서 아마테라스 신이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세상에 빛이 돌아오게 되었다. 정순분, 『일본고전문학비평』, 2006, 제이앤씨, 17~18쪽.  14)자크라캉, 「남근의 의미」, 『에크리』, 690쪽( 자크 라캉‧김석 저, 앞의 책, 185쪽, 재인용).  15)자크 라캉‧김석 저, 앞의 책, 184~188쪽.  16)브루스 핑크 저, 앞의 책, 210쪽.

    3. 대타자로서의 아버지와 억압의 회귀

    <혐오스런 마쓰코의 인생>에서 어린 마쓰코는 7살이다. 거실에서 노래하는 어린 마쓰코 뒤로 히나 인형17)이 전시되어 있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손에는 선물이 들려있다. 별 문양 선물포장지는 마쓰코가 부르는 ‘별님을 잡아보자’라는 노랫말과 연결된다. 아버지의 선물이 자신에게 올거란 믿음은 깨지고 이 층 계단을 올라 병약한 동생 쿠미에게로 향한다.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히나 인형, 쿠미 방 안에 달린 수많은 꽃과 별 모양의 모빌은 쿠미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표상한다. 이는 마쓰코가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소외되고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린 마쓰코가 쿠미에게 느끼는 콤플렉스complex는 아버지에 대한 태양의 이마고를 구성한다. 문을 연 아버지의 뒤로 태양 빛이 비치고 있으며, 햇살이 가득한 쿠미의 방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햇빛을 받아보자’라는 노랫말처럼 결여에 대한 소망과 연결된다. “이마고란 콤플렉스의 내용물을 이루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무의식적 표상의 집합체를 말한다.”18) 이는 하나의 이미지라고 하기보다 습득된 상상적 상태로서 환상적인 표상이다. 라캉에 의하면 가족의 구성원들은 각각 하나의 이마고를 구성하면서 콤플렉스의 핵을 형성한다. 이는 또래의 친구나 형제로 인해 “모성적 대상과의 나르시시즘적 관계를 파열시키는 침입자로 해석하는데, 라캉은 바로 여기서 유아기 질투가 발생한다고 보았다.”19) 마쓰코에게 쿠미는 자신과 아버지 사이를 방해하는 침입자로 본 것이다.

    히스테리는 대타자와의 상징적 관계에서 존재한다. 히스테리는 대타자의 욕망을 매개로 자신의 무의식 욕망을 유지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를 꿈꿨던 마쓰코는 빨간 구두의 마법이 이뤄진다. “마법구두를 신고 춤을 추네. 나의 미소를 싫어하는 이 하나 없고 입 밖으로 내는 말 전부 음악이 된다”20)는 동화적 환상에 빠져버린다. 백화점 옥상 위 놀이동산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마쓰코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연기자들을 흉내 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웃음을 보게 된다. 마쓰코는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늘 표정이 어둡던 아버지의 웃음을 되찾아줬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마쓰코에게 놀이동산은 환상적인 공간이자 잔혹한 공간이다. 다채로운 색채를 띤 놀이동산은 풍성한 꽃들이 즐비해 있으며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무대 위에서 환상적인 공연이 펼쳐진다. 독특하게도 무대위 인물들, 아이들, 마쓰코,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성인남녀는 색감이 제거되어 있다. 유일하게 아버지만 색감을 제거하지 않은 것은 대타자로서의 아버지를 상징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성인이 된 마쓰코는 돈을 빌리기 위해 동생 노리오를 놀이동산에서 만났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듣게 된다. 환상적인 공간이었던 놀이동산은 다채롭지 않은 죽어있는 공간이 된다. 이와 함께 즐비해 있던 꽃들은 사라지고 서너가지의 바람개비들이 앙상하게 꽂혀있으며 세피아 필터로 인해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그런데도 마쓰코와 동생 노리오를 제외한 연인, 가족들은 색채가 살아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쓰코의 심리가 투사된 것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의미한다.

    욕망은 억압으로 비롯되며 억압은 신경증을 구성하는 본질이다. “신경증은 정신병과 달리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상징계로 들어오면서 억압 때문에 형성”21)된 것이다. 마쓰코는 틈만 나면 아버지에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반복 강박’에 이르게 된다. 이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소녀가 신은 빨간 구두는 소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춤을 추게 한다. 소녀의 “구두는 모든 인간적 제한을 무시하고 고집스레 존속하는 소녀의 무조건적 충동을 상징한다.”22) 강박현상은 히스테리 환자에게도 나타나는데 억압된 욕망이 표출된 것이다. 마쓰코는 아버지로부터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대해 제재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게 된다. 이는 수학여행에서 제자 류 요이치(龍洋一)가 일으킨 절도사건을 예로 들수 있다. 그녀는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말실수로 인해 절도범이 된다. 이로 인해 마쓰코는 교사직을 해고당하고 이후 가출을 감행한다. 히스테리는 꿈, 말실수, 얼굴 경련 등과 같은 ‘신체 경련’으로 억압된 것이 회귀 되어 표출된다.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자 했던 억압된 욕망으로 비롯된 것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의하면 억압은 폐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억압된 것은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녀는 가족에게서 벗어나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지 않게 된다.

    17)히나인형은 여자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국의 삼월 삼짇날 행해지던 액막이 행사가 에고 시대부터 일본으로 유래되면서 히나 인형을 장식하게 되었다. 히나 인형은 2월부터 장식하고 히나마쓰리ひな祭り가 행해지는 3월 3일에 재빨리 치운다. 이는 축제가 끝났는데도 히나 인형을 치우지 않으면 딸이 늦게 결혼을 하거나 못한다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히나마쓰리와 달리 5월 5일에는 남자아이를 위한 고이노보리鯉のぼり 행사가 열린다.  18)맹정현, 「죽음의 나르시시즘: 라깡의 『가족 콤플렉스』에 나타난 죽음의 인자」, 『라캉과 현대정신분석』 제 13권 1호, 한국라캉과 현대정신분석학회, 2012, 31쪽.  19)맹정현, 위의 논문, 32쪽.  20)<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의 어린 마쓰코가 부르는 노랫말 중.  21)자크 라캉·김석 저, 앞의 책, 228쪽.  22)지젝Slavoj Žižek에 의하면 소녀의 구두는 ‘신체 없는 기관’으로 탈신체화 된 것이라 일컫는다. 소녀에게서 신발이 벗겨지지 않기에 소녀가 구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의 다리를 잘라내는 것뿐이라고 한다. 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웅진지식하우스, 2007, 98쪽.

    4. 마쓰코의 환상과 남성의 성적향유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의 마쓰코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많은 남성-야메가와 테쓰야(八女川徹也), 오카노 타케오(岡野健夫), 오노데라(小野寺保), 시마즈 겐지(島津賢治), 류-을 만난다. 그녀의 남성들은 아버지를 대신한 것이지 아버지가 될 수 없다. 이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의 대사와 대동소이하다.23) 그러나 그녀는 타자의 담론과 욕망으로 인해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남성들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 것이다. 마쓰코가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처음 만난 남성은 작가지망생 테쓰야다. 테쓰야는 자신이 다자이 오사무의 환생이라 믿는데, 분명 자학적인 생활을 했던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하다.24) 테쓰야가 마쓰코에게 행했던 가학적 사랑은 원초적인 아버지(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25))를 제거하고 여성을 독점하기 위함이다. 그가 누리고자 했던 향유는 쾌락원리를 넘어 pleasure principle로 가려는 전복적인 충동으로써 본성상 파괴적이다. 쾌락원리를 넘어설 때 테쓰야를 기다리는 것은 고통과 죽음뿐이다.

    테쓰야의 경쟁자였던 유부남 오카노는 자살한 테쓰야에 대한 열등감을 떨치고자 테쓰야의 애인이었던 마쓰코를 향유한다. 남성이 “여자를 향유한다jouir d'une femme는 것은 한 여자를 즐긴다는 것, 그녀를 진정으로 만끽한다는 것, 그녀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6) 이와 달리 마쓰코는 오카노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 그녀는 오카노의 아내를 확인한 후 자신이 그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그녀는 오카노의 욕망과 관련지어 상상하는 장면을 무대화한다. 환상공간에는 꽃·별·달·새 등의 판타지적인 요소들과 리드미컬한 춤과 노래가 등장한다. 달을 향해 걸어가는 마쓰코에게 오카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여기서 오카노는 마쓰코에 의해 욕망하는 주체가 된다. 즉, 마쓰코는 자신을 오카노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오카노가 자신을 욕망하는 주체로 생각한 것이다. 그녀가 환상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오카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욕망 때문이다. 그녀가 부르는 노랫말들은 그녀의 환상을 더욱 배가 시킨다. 그러나 히스테리의 근본적인 환상은 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요구에 관한 것으로 타자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밝혀주길 원한다. 히스테리의 본환상 공식은 a◇Ⱥ이다. 히스테리 환자는 자신을 대상 a로 같게 인식하여 결여되고, 분열된 상징적 타자의 Ⱥ가 자신을 ◇욕망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본환상의 일반 공식은 $◇a으로 분열된 주체가 대상a(주이상스)를 욕망한다. 여기서 히스테리의 대상 a와 일반 공식의 주이상스(대상a)를 구분해야 한다. 남성이 대상 a를 즐기는 것은 환상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거세된 남성($)은 언제나 결핍의 자리를 메울 환상의 ‘대상 a’ 즉, 향유의 환상을 구현해줄 여성을 찾는다. 남성은 여성을 통해 자신의 결핍과 분열을 채우려고 한다. 이와 달리 여성은 단지 남성에게 종속되는 심리적 안정을 취할 뿐 남녀 간에 원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접하지 않아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환상이다. 마쓰코는 유흥업소에서 일함으로써 자신 스스로 남성의 환상이 되고자 욕망한다. 즉, 마쓰코는 남성의 성도착증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상 a가 된 것이다. 히스테리 환자는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함이지 주이상스의 원인이 되길 거부한다. 이처럼 마쓰코가 심리적 안정을 위해 만났던 기둥서방 오노 데라를 살인한 것과 같이 남근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결국, 남녀 간의 성적 위치가 다르므로 라캉은 ‘성관계는 없다’고 주장한다.

    마쓰코는 주이상스의 원인이 되길 거부하고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욕망한다. 히스테리는 타자의 담론과 욕망에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을 시도하던 마쓰코가 이발사 시즈마 겐지를 만나면서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이lover”의 위치에서 “사랑받는 이 beloved”로 위치시킨다. 이는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는 환상공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시즈마 겐지를 상상한다. 독특하게도 시즈마 겐지는 다른 남성의 얼굴로 변모된다. 이처럼 그녀의 환상은 현실과의 괴리를 발생시킨다. 살인죄로 8년간 복역한 자신을 시즈마 겐지가 기다려 줄 것이라는 환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캉의 남성은 언제나 결핍의 자리를 메울 여성을 찾는다. 시즈마 겐지 역시 마쓰코의 자리를 대신하여 다른 여성을 대체하였다.

    그녀는 또 다시 소외됨으로 다른 남성을 찾게 된다. 마쓰코는 야쿠자가 된 류를 만난다. 자신을 가족에게서 벗어나게 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류를 만나는 것은 타자의 욕망을 통해 그녀가 욕망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류와 성관계를 맺는 동안 끊임없이 언어적 사랑을 확인한다. 자신의 욕망을 확인시켜줄 대상을 류의 육체와 언어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류를 통해서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환상공간에서 류를 타자의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영화는 우주복을 입은 마쓰코와 류 그리고 아이를 보여준다. 여기서 아이는 마쓰코가 타자의 대상이 되었음을 확인해주는 증표로 작용한다. 그러나 살인죄로 복역했던 류가 출소를 기다리던 마쓰코를 보고 도망감으로써 마쓰코는 다시 소외된다. 그녀는 남성들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 묻지만 알 수 없다. 자신을 기다리는 마쓰코가 무서워 도망갔다는 류의 고백처럼 타자에 의해 발화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류는 다시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마쓰코와의 관계를 금지한다. 그는 마쓰코와 성적 관계를 금지하고 마쓰코를 이상화된 여성으로 찬미한다. 라캉은 이상화를 설명하기 위해 궁정풍 연애courtly love를 예로 들었다. 궁정풍 연애의 ‘기사도 정신’은 높은 신분의 귀부인에 대한 기사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기사는 결혼한 귀부인과 접촉을 할 수 없고 육체적인 관계가 부재하지만, 이상화된 귀부인을 찬미한다. 류 역시 마쓰코와 육체적 관계가 부재하지만 “마쓰코는 자신에게 신이었다”’는 대사처럼 이상화된 여성으로 찬미한다. 마쓰코의 욕망은 외면하면서도 그 자리에 자아도취적인 행위를 배치하여 마쓰코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류는 마쓰코가 주검으로 발견되기 전까지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였다. 그렇기에 그가 마쓰코를 죽였다는 자백은 마쓰코에 대한 회개일 뿐이다.

    마쓰코는 남성들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고자 욕망했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듯이 사랑도 충족될 수 없다. 이는 사랑이 욕망체계에 속하기 때문이다.27) 그녀는 환상을 통해 성적만족(주이상스)을 느낀다. 그녀가 사랑받고 있다는 환상에 빠질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더 깊어진 것이다. 자신을 남성들에게 헌신하고 이를 통해 사랑받고자 했으나 마쓰코는 계속해서 소외된 상태가 된다. 그녀는 남성들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도록 유도했어야 하지만 그녀의 만족은 남성을 위한 것으로 주이상스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쓰코는 스스로 남성들의 주이상스의 대상이 되길 거부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함으로써 ‘혐오스런’이라는 수식어가 형성된다.

    23)남편이라면, 하나가 죽더라도 다른 이가 생길 수 있겠지요, 아이도, 하나를 잃는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서 낳을 수 있을 테고요,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데스에 숨겨져 계시니, 다시 싹틀 형제는 결코 있을 수 없지요. 소포클레스 저, 강대진 역, 『오이디푸스 왕』, 믿음사, 2009, 173쪽.  24)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だざい おさむ, 1909년 6월 19일 ~ 1948년 6월 13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1936년(쇼와 11년)에 첫 작품집 『만년(晩年)』을 간행하였다. 다자이 오사무는 술과 마약에 빠져 여자들과 문란한 사생활로 자주 구설에 올랐고, 내연 관계의 여성들과 함께 자살을 기도하는 정사(情死)를 반복해 왔다. 1948년(쇼와 23년)에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山崎富栄)와 함께 타마가와(玉川) 상수(上水)에 투신자살하였다.  25)토템과 터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원초적 형태이다. 종교의 윤리와 도덕적 기원이 터부(금기)에 있으며 토템은 씨족구성원 간의 근친상간을 금지하고 족외혼을 성립한다.  26)슬라보예 지젝, 『성관계는 없다』, 앞의 책, 2005, 55쪽.  27)문장수, 앞의 논문, 60쪽.

    5. 동생 쿠미와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

    히스테리의 원인은 대타자의 언어로 결정된다. 주체는 대타자에게 자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대한 답을 구한다. 주체는 대타자에게 인정받은 성별을 통해 여성 또는 남성으로 인식된다.28) 프로이트에 의하면 과장된 성적 갈망과 혐오감이라는 모순이 히스테리의 특징이라고 언급했다. 히스테리는 성적 상대자인 타자의 욕망을 지배하고 스스로 그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자신만이 완전한 주체로 만들어 줄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의 마쓰코는 동생 쿠미를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를 방해하는 여성으로 보았다. 마쓰코에게 모빌은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질투심과 선망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일상은 병약했던 쿠미의 삶과 닮아있다. 쿠미의 방은 햇빛이 잘 드는 이 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방 안에는 많은 모빌이 달려있다. 마쓰코의 일과는 오로지 먹고 마시며 잠을 자는 것으로 구강쾌락에만 집중한다. 구강쾌락은 아이가 엄마의 젖가슴을 통해서 느꼈던 만족이다. 쿠미와 같은 삶을 마쓰코가 행하는 것은 쿠미와 상상적 동일시를 하는 것이다.

    거울단계에서 이상적 자아를 형성한 주체는 완전한 어머니의 모습을 자신의 완전함으로 간주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이마고를 형성한다. 아이는 자기인식을 하게 되면서 거울 속 자신(타자이미지)과 어머니를 구별하게 된다. 아이는 타자 이미지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반면 조각난 신체에 대한 불안의식을 가지게 된다. 마쓰코에게 쿠미는 타자 이미지이다. 마쓰코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나르시시즘적인 사랑이고, 아버지를 더 사랑할수록 그 대체 대상인 쿠미를 더욱 미워할 수밖에 없다. 결국, 마쓰코가 쿠미를 상상적 동일시한 것은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쿠미의 자리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비롯된 것이다.

    마쓰코에게 밤은 유일하게 아버지와 함께하던 시간이다. 이처럼 저녁 식사 시간에는 아버지와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데 영화에선 저녁에 비가 내린다. ‘비가 싫어.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라는 마쓰코의 대사처럼 비는 억압을 의미한다. 마쓰코가 테쓰야의 자살을 목격한 장면29)과 오노 데라와 돈을 벌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 그리고 성인이 된 류가 차로 마쓰코를 집에 데려다주는 장면에서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장면과 함께 이전 장면에는 가족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중첩된다. 즉, 수학여행에서 절도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쿠미는 병이 더 악화하였고 마쓰코는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보여준다. 그녀의 말실수로 인해 가족이 붕괴한 것이다. 그러나 말실수는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마쓰코가 아버지에게 보내던 메시지가 신체에 덧붙여진 것이다.

    마쓰코는 아버지에 대한 태양의 이마고를 향유한다. 이마고는 무의식적 표상의 집합체로 주체의 소외를 표현한다. ‘햇빛을 받아보자’라는 노랫말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자 욕망한다. 꽃은 마쓰코의 욕망을 상징한다. 이는 마쓰코가 (히카루겐지의 멤버)우치우미 고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예를 들 수 있다. 영화는 우체통을 열어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는 마쓰코를 보여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쓰코와 함께 벚꽃, 해바라기, 색종이 꽃이 등장한다. 특히, 색종이로 만들어진 꽃은 생명력이 없다. 즉, “의미가 없다”는 까마귀의 환청처럼 답장에 대한 환상은 허울을 의미한다.

    마쓰코의 일상은 강가에 나와 석양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녀의 아파트는 고향에 있는 강과 닮은 곳으로 햇빛이 잘드는 이 층에 자리 잡고 있다. 마쓰코가 태양의 이마고를 구성하는 것은 아버지와 상징적 동일시를 하기 때문이다. 쿠미와 동일시는 상상적 동일시라면 대타자인 아버지와의 동일시는 상징적 동일시이다. 이것은 남근이라는 상상적 지배력에 비롯된다. 마쓰코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상상적 기표인 남근과의 상징적 동일시를 이루는 것이다. 대타자와의 동일시는 남근 즉, 대타자의 욕망의 기표와 동일시이다. 이는 자신의 욕망을 유지하기 위해 타자의 욕망이 만족되지 않도록 대타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마쓰코는 아버지와 쿠미를 통해 삼각 구도를 형성했다. 마쓰코가 아버지와 상징적 동일시하는 것은 아버지를 욕망하게 하기 위함이고 쿠미와 상상적 동일시하는 것은 쿠미의 자리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함이다. 마쓰코는 환상 속에서 성적만족을 느꼈다. 아버지와 상징적 동일시한 마쓰코가 환상 속 쿠미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아버지를 욕망하게 하고 쿠미를 대신하여 사랑받고자 하는 것이다. 마쓰코의 환상은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하여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르시시즘적인 사랑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자 집중하였다. 그녀의 히스테리적 욕망은 상징계에서 채워질 수 없다. “대타자의 무능과 근원적 결여를 제시하는 히스테리 환자의 담론은 상징계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실재의 불가능성을 드러낸다.”30) 소외는 욕망의 기제이다. 마쓰코에게 나타난 쿠미의 환상은 쾌락원칙을 넘어 실재계로 향하는 것으로 상징계의 주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쾌락이다. 이는 죽음충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라캉에 의하면 실재계에 도달하는 것은 죽음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이는 욕망의 최종 귀착점이다. 그녀 역시 아이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죽어있는 마쓰코에게 불현듯 나타난 나비는 마쓰코의 인생을 거꾸로 되짚어주며 마쓰코가 쿠미에게 상처를 줬던 이전상태로 되돌아간다. 아버지와 동생 노리오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오르는 마쓰코에게 쿠미는 ‘어서 와’라고 말한다. 이는 마쓰코가 아버지에게서 듣고자 했던 것으로 쿠미를 통해 듣게 된 것이다.

    28)양석원, 「라캉과 히스테리」, 『비평과 이론』 제 19권 1호, 한국비평이론학회, 2014, 94~97쪽.  29)마쓰코는 테쓰야의 자살을 목격하게 된다. 폭우가 내리는 기찻길 건널목에서 있던 테쓰야는 기차에 의해 죽게 된다. 기차에 의해 절단된 테쓰야의 다리가 마쓰코 앞에 떨어지게 된다. 자살한 야메가와 테쓰야와 일본의 천재화가라고 불렸던 이시다 테쓰야(石田徹也 1973~2005. 05)의 죽음은 중첩된다. 이시다 테쓰야는 2005년 기차에 부딪혀 사망하게 된다.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격리, 불안, 정체성 등과 같이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편을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은 신체가 절단된 사람들이 기계와 결합하여 있다. 이는 기차에 치여 절단된 야메가와 테쓰야의 신체와도 중첩되는 지점이다.  30)양석원, 앞의 글, 109쪽.

    6. 마쓰코의 죽음이 지니는 의미

    영화 <혐오스런 마쓰코의 일생>에서 마쓰코의 여성적 주이상스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플라톤의 「향연」을 빗대어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신적인 힘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사랑받는 사람보다도 더욱 신적인 존재에 가깝기 때문이다”31)라는 말귀는 마쓰코의 히스테리적 욕망의 원인에 대한 단서가 된다. 라캉의 히스테리는 상징계에 진입한 주체로서 대타자의 담론과 욕망으로 지배된다. 마쓰코는 집안의 법을 제정하는 대타자인 아버지로부터 대상의 원인이 되고자 하였다. 마쓰코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고자 욕망하였고 그녀의 욕망으로 인해 소외되고 억압된 삶을 살았다. 마쓰코의 억압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말실수로 회귀 되었으며 그녀를 가족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사랑받고자 욕망했던 마쓰코는 아버지의 언어적 부재로 인해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마쓰코는 아버지를 대신할 남성들에게 사랑받고자 헌신적인 사랑을 하였다.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말은 남성과 여성은 서로 접하지 않아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환상이라고 한다. 그녀는 남성들의 주이상스의 대상이 되길 거부함으로써 다시 소외된 상태로 회귀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동생 쿠미와 아버지와 동일시를 한다. 쿠미와 상상적 동일시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쿠미를 대신해 받기 위함이고, 아버지와의 상징적 동일시는 아버지를 욕망하게 하여 아버지의 대상이 되고자 함이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상징적 동일시와 환상 속 쿠미를 통해 나르시시즘적인 사랑을 구현한다.

    대상의 원인이 되고자 했던 마쓰코의 욕망은 쾌락원칙 넘어 실재계로 향하는 것으로 결국,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마쓰코를 향한 ‘혐오스럽다’라는 사회적 평가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고자 했던 그녀의 순수한 욕망을 억압할 수 없었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족한 욕망을 불가능한 욕망으로 이뤄냄으로써 그녀의 욕망은 무한한 것이 된다. 라캉이 말하는 여성적 주이상스는 마쓰코의 삶과 같은 것으로 숭고함의 절대적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31)플라톤 저, 황문수 역,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문예출판사, 1999,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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