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ria Naylor’s Linden Hills: A Tragic Saga of the Oppressive “Primal Scene” and Deformed “Family Romance”

글로리아 네일러의『린덴 힐즈』 ─억압적 ‘원장면’과 왜곡된 ‘가족 로맨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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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Gloria Naylor’s second novel Linden Hills (1985) explores the issues of self-exploration, empowerment, history, and memory by delineating the communal and familial tragedies and the distortion of values prevalent in a prosperous African-American urban community called Linden Hills. Drawing upon the Freud’s concept of “primal scene” and “family romance,” this paper aims to focus upon the Nedeed family, the founder of Linden Hills, and investigate the compelling traumatogenic force within the family, which is inseparably intertwined with the inversion of values and moral corruption permeating the entire community. The “primal crime” committed by the Nedeed ancestors serves to preserve and perpetuate a tyrannical rule by ruthless patriarchs who reign by underhanded strategies of purposefully neglecting and abusing others, including their own wives. The imprisonment, by Luther Nedeed, of his wife Willa in the family morgue epitomizes the long legacy running in the family— the oppression and burial of the pre-Oedipal, maternal history. Willa’s accidental encounter, at the nadir of the family estate and her personal despair, with the faded records of the forgotten and abused Nedeed women exposes the violence-ridden ground of the family’s primal scene and the absurdity of family romance the Nedeeds pursued. As the several lines of poem composed by Willie, Willa’s male double, show, the hidden, forgotten history of the Nedeed women, in a sense, is the real, which cannot be assimilated to the social symbolic governed by the inhumane patriarchy of the Nedeed family and the success-oriented Linden Hills society. By portraying a catastrophic downfall of the Nedeed family and the futile outcome of its family romance, the ending of Linden Hills conveys implicitly that the contingent symbolic order and its oppressive control, however solid and invincible they may seem, can be toppled down by the real, its nameless forgotten Other.


  • KEYWORD

    Gloria Naylor , Linden Hills , primal scene , family romance , oppressed maternity , perversity of the symbolic , the Real as a political force

  • I. 린덴 힐즈―외상적 강압과 소외에 기초한 기형적 사회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흑인 여류 소설가 중 한 사람인 글로리아 네일러(Gloria Naylor)의 두 번째 소설 『린덴 힐즈』(Linden Hills,1985)는 부유한 중산층 흑인 공동체인 린덴 힐즈(Linden Hills)를 중심으로 물질주의와 사회적 성공에 대한 맹목적 추구로 인해 야기되는 가족과 공동체적 결속력의 와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역사의식 망각, 그리고 가문/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여성의 희생과 침묵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억압과 폭력 등의 문제를 다각적 시각에서 조명, 묘사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네일러의 다른 소설들인 『브루스터 거리의 여인들』(Women of the Brewster Place, 1983),『 마마 데이』(Mama Day, 1988)에서처럼, 『린덴 힐즈』역시 공동체 속에서 소설의 중심인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삶을 재평가함으로써 미래의 삶을 주체적으로 대처·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네일러 소설의 공통적 핵심 소제를 다루고 있다(Simpson-Vos 17). 12월 19일부터 12월 24일에 걸친 6일의 기간 동안 윌리 메이슨(Willie Mason)과 그의 친구 레스터 틸슨(Lester Tilson)이란 두 스무 살 청년들의 린덴 힐즈에서의 경험의 궤적을 따라 네일러의 소설은 전개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네일러는 그들의 혼란스럽고 악몽과 같은 체험들이 결국 다섯 세대에 걸쳐 린덴 힐즈를 건립하고 지배해온 동일한 이름을 갖는 일련의 루터 네디드(Luther Nedeed)들과 그들 집안의 음험하게 통제된 폭력적 억압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린덴 힐즈의 궁극적 비극이 주민 개개인이 신분상승과 부의 축척을 위해 그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를 알려주도록” 비추어주는 중요한 “영혼의 거울을 팔아버린 것”(59)에서 비롯되었다면, 네일러 소설의 핵심은 오랜 세월동안 그들이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감과 역사를 망각하도록 처음부터 조장, 조종한 배후로서 역할을 한 네디드 가문의 ‘원초적 죄’를 폭로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 요인으로서 소설의 결말을 비극적 파국으로 몰고 가게 하는 네디드가의 현 후손 루터 네디드에 의한 그의 아내 윌라(Willa Prescott Nedeed)의 감금과 그로 인한 그들의 어린 아들의 사망 사건은, 그 동안 외연적으로 조화롭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가족 로맨스’란 환상을 깨뜨리는 동시에 이러한 환상을 배태하고 유지해내는 과정에서 억압·외면되었던 타자들의 역사를 하나씩 재조명하도록 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본 연구는 네일러 소설 속의 린덴 힐즈라는 기형적 흑인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상징질서의 가학적 폭력성을 규명하기 위하여 린덴 힐즈에 만연한 가치들의 전도, 소외, 억압, 자기기만 등의 병폐 양상들의 원인을 이러한 공동체 탄생의 모태적 역할을 한 네디드가 내의 강압과 상처로 점철된 숨겨진 외상적 역사와 관련을 지워 추적한다. 이 작업은 곧 대를 이어 군림하는 네디드 가문의 ‘아버지의 법’으로 대표되는 린덴 힐즈의 대타자적 상징질서 내부에 존재하는 필연적 ‘결핍’ 내지 ‘결여’를 드러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1 그리고 이는 또한 그러한 지배질서에 유입되기를 거부당한 타자들의 억압된 역사와 기억의 편린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네일러의 서사가 갖는 의의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특히 본 연구는 네디드가 가문의 존립과 가부장적 질서 유지를 위해 철저하게 유린된 여성/모성성과 이 과정에서 함께 소실되어버린 공동체적 유대와 흑인으로서의 역사의식이 어떻게 결국 네디드가를 파국적 몰락으로 치닫게 하는지를 억압적 ‘원장면’과 왜곡된 ‘가족 로맨스’란 중심 개념을 통해 탐구할 것이다.

    1그러나 흥미롭게도 소설『린덴 힐즈』의 비극적 주요 사건은 이러한 상징질서의 ‘결핍’ 내지는 ‘결여’를 인정하기 거부하는 네디드 가문 남성들의 도착적이며 반인륜적인 횡포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상징적 거세’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제재와 윤리적 규율을 위반하며 나아가 그러한 위반행위와 독재적인 권력의 행사로부터 병적인 즐거움과 향유를 느낀다. 마치 스스로가 전능한 신처럼 행동하며 그들의 욕망과 의지만을 유일한 법으로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이들의 행위는 상당 부분 자크 라깡이 말하는 도착적 정신구조를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수세대를 걸쳐 건립한 네디드 가문은 병리적 도착증적 사고의 구현물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법과 관련한 도착증의 특성에 대한 설명으로는 죠엘 도르(Joe¨l Dor)의『임상적 라깡』(The Clinical Lacan)의 7장을 참고할 것.

    II. 다층적 서사를 통한 다시 말하기

    네일러는 소설 『린덴 힐즈』에서 한 가상적인 ‘모범적’ 흑인 사회가 표방하는 물질적 번영과 자유라는 공식 서사와 그 서사의 구심점인 네디드 가문의 왜곡된 ‘가족 로맨스’란 환상의 이면을 마치 ‘더블’(double)과 같아 보이는 윌리와 윌라라는 두 남녀인물의 삶의 서사를 따라가며 조명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은 그간 교묘하게 봉합되어 감추어진 상흔의 역사와 잊혀져왔던 타자들의 서사들이다. 린덴 힐즈의 사실상 주인인 네디드 가문의 편에서 그 공동체의 ‘공식’적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하는 다니엘 브레이트웨이트(Daniel Braithwaite)에게 윌리의 동행인 친구 레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든지 간에 당신은 여전히 이야기의 오직 한 면—그들의 편—만을 취할 뿐입니다.”2 네일러가 『린덴 힐즈』를 통해 궁극적으로 탐구하려는 바가 있다면, 오직 사회의 기득권자인 ‘그들’의 편에서 기술된 서사에 가려져 침묵된 또 다른 편의 이야기들일 것이다.

    오직 편린으로만 남아있는 소외되고 침묵되었던 사회의 ‘타자’들의 이야기를 담론의 장으로 끌어 들여 박탈당했던 그들의 목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네일러의 작업은 어느 면에서는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스토리텔링에 관한 논의에서 강조한 서사를 통한 경험의 공유와 소통 가능성에 대한 탐색과 다층적 서사성에 대한 관심을 많은 부분 공유하고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작품에서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벤야민은 그의 에세이 「스토리텔링」(“ Storytelling”)에서 현대화에 따른 활자문화 유포와 예술품의 대량 생산으로 인해 직접적인 이야기 공유의 체험이 이제는 먼 옛날의 것이 되었다고 개탄한다. “우리의 소유물 중 가장 확실한 것”으로 여기던 이야기를 통해 “경험들을 상호 교환하는 능력”은 “양도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소중한 가치와 기능이다(Benjamin 83). 그러므로 모더니즘의 가속화 속에서 이러한 가치와 기능을 인간이 상실해간다는 사실이 벤야민에게 심각한 ‘박탈감’으로 다가온다. 그가 단편소설이란 장르를 예로 들며 설명하듯, 벤야민에게 “완벽한 서사”란 “다양한 다시 말하기의 층들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다(93). 때문에 다수 익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한 획일적 정보 유포와 획득이 아닌 체험의 공유와 삶의 의미탐구를 그 특색으로 하는 소설이란 양식에서 벤야민은 상실되어 가는 서사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네일러가 자신의 소설 『린덴 힐즈』에서 추구하는 것 또한 이러한 다양한 ‘다시 말하기’ 혹은 여러 ‘타자의 시점에서 말하기’ 작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네디드 가문에 편재한 서사의 억압의 이면에는 기형적이며 도착적이기까지 한 ‘아버지의 법’과 이에 억눌려 신음소리조차 없이 잊혀져가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실질적인 부재가 서사의 강력한 핵심 모티프로 자리를 잡고 있다. 네디드 부인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단지 남편인 “그에게 아들을 가져다준 희미한, 브라운 색깔의 그림자”(18)로 작품의 초입에 등장한다.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거쳐야 하는 ‘상징적 거세’의 과정을 거치기를 거부 한 채 스스로를 린덴 힐즈의 ‘아버지의 법’의 담지자로 옹립하여 세대를 거쳐 군림하는 네디드 가문 남성들에게 그 누구와의 소통은 무의미한 가치이다. 그들은 마치 스스로가 전능한 신처럼 행동하며 그들의 욕망과 의지만을 유일한 법으로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일반적인 사회적 제재와 윤리적 규율을 위반하며 나아가 그러한 위반행위와 독재적인 권력의 행사로부터 병적인 즐거움과 향유를 느낀다. 그런 면에서 상당 부분 폭압적인 이들의 행위는 도착증적 신구조를 닮아있다. 정신분석의 이론을 빌자면, 도착증자의 경우 사회 일반의 규율과 체제의 기반이 되는 ‘아버지의 법에 대한 거부’(disavowal)는 그들 ‘상징체계 내의 결핍 가능성 거부’와 맞닿아 있다(Dor 42). 가문의 저택을 둘러싸고 있어 마을 공동체와 사회 전체로부터 철저히 네디드 가문을 유리되게 하는 해저가 상징하는것처럼, 네디드 가문이 강압적 통제와 고립으로 봉쇄하고 부인하려는 것은 그들이 천명한 공식적인 성공 서사의 어두운 이면이며 이들 숨겨진 이면의 서사들이 함의하는 그들 체제의 치명적 내적 결함과 모순이다.

    그러므로 『린덴 힐즈』에서 네일러는 네드디가 선조 여인들의 파편화된 서사의 흔적들을 통하여 벤야민이 소설의 진정한 서사적 가능성으로 진단하고 희망을 건 ‘다양한 층위의 서사들을 통한 다시 말하기’를 시도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른 파편화된 흔적들로 존재하는 이들 서사의 주인공들이, 벤야민적인 의미에서의, 다양한 층위의 서사를 통한 지배서사에 대한 도전과 대항으로서의 다시 말하기가 이루어지는 전략적 거점들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가족, 공동체,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 자신들로부터 유리되고 소외된 인물들이 남긴, 얼핏 보아 이해 불가능한 파편적인 삶의 서사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경험들을 상호 교환하는 능력’을 상실한 이들이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실감과 박탈감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즉 린덴 힐즈 공동체가 공표하는 단일한 공적 역사는 그 사회의 실질적인 삶을 담은 개인적 역사들, 특히 성과 인종으로 인해 억압받아온 사회적 타자들의 보이지 않는 다수의 역사들과 배치된다. 이 공동체의 찬란한 성공신화를 기록한 역사는 수많은 사회적 하위주체들의 억압과 수치의 역사를 담보로 한 것이기에, 그 무자비하며 치명적인 폭력성은 간과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신의 연구대상인 공동체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하기 위해 시야를 가리고 있는 자신 집 밖의 나무들을 모조리 무자비하게 베어버리는 린덴 힐즈의 대변인격인 역사가 다니엘 브레이트웨이트와 그의 고집스런 오만함을 떠올리게 된다. 브레이트웨이트는 그 자신의 연구가 결국은 “[방향성과 영혼을] 상실한 사람들의 기록으로 전락함”(261)을 인지하지만, 자신은 “지식을 기록하기를 원하는 것이지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다”(262)라고 일언지하에 공동체 삶에의 개입과 참여를 거부한다. 이웃 여인의 로렐 뒤몽트(Laurel Dumont)의 자살을 예견했으며 그 행위를 직접 보고도 방관하며 그는 “찻잔으로 홍수를 막으려 노력함”(257)에 빗대어 지극히 소극적이며 무기력하게 공동체의 사건에 대처하고 자기합리화를 한다.3 그는 린덴 힐즈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일을 담당한다고 자부하며 자신의 기록의 소재로 네디드 가문으로부터의 ‘공식적’ 정보와 문서에 의존한다. 그러나 마치 기관의 보도 자료와 같은 이들 ‘공적’ 역사 정보들은 주민의 어떠한 삶의 역사도 진실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독자에게 또한 어떠한 공감적 반향을 불어 일으킬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는 윌라가 어렵사리 발견해내는 과거 네디드가문 여성들의 ‘사적인’삶과 일상의 자취들과 상반되며 극명하게 대비된다. 네디드 가문의 어머니들이 남긴 일기장, 조리법, 사진첩 등과 그 사이 사이에 남겨진 메모는 어느 누구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잊혀져 왔으나, 대대로 이어지는 모계 역사의 기록이다. 잊혀져버린 이들 여인들의 ‘비공식’적 삶의 역사는 윌라에 의해 발견된 후 그녀의 공감과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네디드 가문과 린덴 힐즈의 공식적인 대서사에 강력한 의문제기와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

    린덴 힐즈란 사회의 핵심적 축인 네디드 가문 내에 은폐된 다양한 층위의 서사들에 대한 발견과 탐험은 곧 린덴 힐즈 공동체의 물질적 번영이란 허울 뒤에 감춰진 허위과 자기기만에 대한 폭로와 궤를 같이 한다. 현 네디드 가문의 안주인 윌라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의향으로 린덴 힐즈에서 잡일을 하며 용돈을 버는 젊은 청년 윌리 두 남녀 인물이 각각 네디드가 안과 밖에서 겪게 되는 충격적인 경험들은 이러한 부유한 공동체의 화려한 허울을 한 켜씩 벗겨가는 구실을 한다. 마치 ‘더블’(double)처럼 보이는 이러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탐험적 폭로를 통해 “네디드가의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깨어 있는 상태의 악몽을 이끌어낼 [린덴 힐즈의] 찬란함”이 실은 아무런 실체가 없는 환영과 같은 존재이며, 고작 “카본 인화지로 만든 인형들의 언덕으로부터 나오는 빛”(10)일뿐이라는 사실을 네일러는 초반부터 명백히 진술한다. 린덴 힐즈란 허영 혹은 환영과 같이 실체 없는 빛에 대한 네일러의 이러한 작품 서두의 언급은 결국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종이처럼 깡그리 타서 재로 화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네디드 저택을 암시하고, 그러한 비극적 결말의 필연성을 강조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소설의 전체적 구조뿐만 아니라 린덴 힐즈의 독특한 지형 또한 보이지 않는 공동체 심층의 공허함과 도착된 가치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물로 기능한다. 네일러의 작품 구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 단테의 『신곡』중 지옥에 대한 묘사를 연상시키듯, 윌리와 그의 친구 레스터는 비탈진 린덴 힐즈의 경사면을 한 단계 한 단계씩 내려가며 거주민들을 만나며 린덴 힐즈의 실체를 알아간다. 그들이 만나게 되는 린덴 힐즈의 거주민들은 모두 왜곡되고 전도된 가치에 종속된 노예가 되어 자신 스스로의 주체적 욕망, 정체성, 역사의식 모두를 상실한 상태이다. 그리고 비탈진 언덕으로 한 단계씩 내려갈수록 그곳의 주민들의 정신적 황폐와 삶의 방식의 기형성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 비탈진 언덕에 위치한 저택들 제일 아래쪽 막다른 곳에는 위치하는 것이 네디드가의 저택이며 공동체 전체를 총괄하며 진두지휘하는 상징질서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바로 네디드 가문이 ‘가치의 결여와 왜곡’으로 대별되는 린덴 힐즈의 대타자적 상징질서의 ‘핵’임을 시사한다. 단적인 예로, 현재 루터의 고조부가 미시시피의 튜펠로(Tupelo)로부터 이곳으로 이주하여 와서 린덴나무밖에 자라지 않는 불모의 비탈진 땅에 오두막을 짓고 이를 임대하여 지금의 공동체를 일궈낸 그 과정 자체가 린덴 힐즈 상징질서의 병리성을 증명한다.

    네디드 집안이 설립한 튜펠로 부동산 주식회사(Tupelo Reality Corporation)가 린덴 힐즈의 거주민을 선정하는 원칙은 배금주의에 기초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말살과 철저한 자기부정이다. 까다로운 주민 선정의 과정에서 네디드가는 “과거를 덮어버림으로써가 아니라, 과거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삶을] 건설하려는 희망을 가진 이들”(11)을 “바보들”(11)로 취급하여 그들을 의식적으로 배제한다. 배격되는 이들은 옛날 노예제도 하에서 백인지배에 대항하는 반란을 주도한 “냇 터너(Nat Turner)와 같은 광인”(11)과 흑인으로서의 뚜렷한 정체감과 자의식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은 “이 V자 모양의 땅을 취하여 그것을 백인 신에 대항하는 진짜 무기로 바꾸려고 하므로”(11) 네디드 가문이 필연코 기피하는 대상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만연한 역사의식 폄하와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부정은 린덴 힐즈 공동체 내에서 예측할 수 없는 많은 기형적 삶의 양태와 왜곡된 역사관을 양산한다. 그러므로 “네가 린덴 힐즈 밖으로 한 발짝 나가보라. 그러면 너는 역사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16)라는 단언이 가능한 것이다.

    성공을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 일예로, 린덴 힐즈의 성공한 거주민 중 하나인 맥스웰 스미스(Maxwell Smyth)은 “어떠한 상황이던 전적인 통제력”(100)을 자랑하며 사회적 약자인 흑인으로서 GM이란 대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조금의 실수나 공과 사적 업무 모두에서의 어떠한 오차의 범위도 허용하지 않는다: “12월의 공기에도 그는 결코 떨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그의 열대풍의 [느긋한] 걷는 걸음걸이는 마치 물속에서 숨을 쉬는 마술사와 같이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102). 따라서 “인생 전체가 . . . 자연적인 것을 거스르는 경주”(104)였던 그에게 성공과 이에 따른 권력 이외에 자신이 늘 ‘장애’라고 여기는 흑인성과 흑인으로서의 역사의식과 연대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어떠한 색도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소비하여”(106) 그 자신을 더 이상 흑인이라 간주하지 않는 맥스웰은 결혼문제에 관해 그의 조언을 구하며 찾아온 동료 새비어(Xavier Donnell)에게 성공을 위해 그 간 교재를 해왔던 흑인 연인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하위주체로서의 자기부정과 폐쇄적인 탈역사성은 린덴 힐즈와 네디드 가문 모두를 지배하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타자의 담론과 역사에 대한 망각과 억압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 시간이 멈춘 듯 정체된 린덴 힐즈와 네디드 가문은 그 “바깥으로 발걸음을 떼는 것”이 “역사에 발을 내디디는 것이 될” 만큼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미래의 변화 가능성 또한 봉쇄되어 정체된 기형적 사회로 고착되어버린 것이다. 루터는 이렇게 조상 대대로 일구어낸 린덴 힐즈라는 기적과 같이 외양만 화려한 사회의 한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러한 그의 음험한 존재는 공동체 전체 삶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빛나는 공허”만을 낳는 ‘가치의 전복과 혼돈’은 린덴 힐즈란 사회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말로, 이에 대한 상징은 작품 전반에 걸쳐 산재한다. 예컨대 네디드가가 위치한 경사진 비탈의 아래로 내려올수록 부유한 계층의 “특정한 사람”(15)만이 거주하는 특수한 지형학적 구조 탓에 신분상승과 성공을 말하는 “위란 곧 힐즈에서 아래를 의미”(39)한다. 마치 이를 반영하듯이, 안정된 삶을 택하기 위해 오랜 연인을 버리고 낯선 여자와 혼인하는 동성애자 윈스톤(Winston Alcott), 죽은 아내의 장례식 전야에 군집한 조문객 몰래 신방을 꾸미는 남편 체스터 파커(Chester Parker) 등 윌리와 레스터가 린덴 힐즈에서 만나는 이들은 모두 비상식적이고 기형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장례식과 같은 결혼, 이미 결혼인 장례식”을 목도하며 윌리와 레스터는 개탄한다: “만약 린덴 힐즈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것도 그 실제 본연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으며 그 곳에서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집어져 있다는 점이다”(274).

    2Gloria Naylor, Linden Hills (New York: Penguin, 1985), 263. 앞으로『린덴 힐즈』에 대한 언급과 논의는 이 텍스트를 바탕으로 하여 본문 속에 페이지 수만을 언급할 것임.  3브레이트웨이트가 보여주는 이러한 공동체 삶에 대한 이기적 방관은 소설의 마지막에 대한 흥미로운 전조로 파악될 수 있다. 네디드 저택이 깡그리 화재로 전소하는 사건에 직면하여, 주민과 이웃 어느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사물이 잿더미로 화할 때까지 방치한 사실에 망연자실하며 윌리와 레스터가 거듭 되뇌는 “그들이 그것을 불타도록 그대로 두었어”(304) 라는 말은 비평가들에 의해 여러 방식으로 해석이 되지만, 여기서 명백한 사실은 린덴 힐즈 주민의 이웃에 대한 방관적 무관심이라 할 수 있다.

    III. 원죄의 불가피한 회귀―전도된“가족 로맨스”와 억압적“원장면”

    프로이트가 논문 「신경증자들의 가족 로맨스」“( The Family Romance of Neurotics”)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가족 로맨스’는 주체를 둘러싼 실망스런 삶의 현실이나 환멸에 직면하여 어린아이가 상처가 난 자존감을 만회하기 위해 지어내는 환상적 삶의 이야기이다. 프로이트의 가족 로맨스는 가족 내의 역학적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아이는 동생의 탄생 등으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못하게 되는 실망스런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실은 실제 부모의 단점이나 무능함이 없는 완벽하고 고귀한 신분의 부모로부터의 출생한 것이라는 ‘상상의 대안적 삶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낸다. 주목할 사항은 이러한 대안적 상상의 스토리가 현실에서 만족되지 못하는 “소망 충족과 [불만족스러움] 실제 삶에 대한 교정의 기능”(“Family Romance” 238)을 갖는다는 점이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타계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이러한 낭만적 서사 속에서, 아이의 “새로운 신분이 높은 부모는 실제 미천한 신분의 부모가 결여했던 그러한 자질을 부여받다”(“Family Romance”240).

    백인중심 사회에서의 신분상승과 부의 획득을 소망하는 네디드 가문에게 린덴 힐즈의 설립과 유지는 사회의 하위주체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멸시와 수난을 보상하고 극복하려는 절실한 는 소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린덴 힐즈는 네디드 가문의 왜곡되고 변질된 ‘가족 로맨스’ 서사의 구현체이라 진단할 수 있다. 린덴 힐즈의 주민들과 네디드 가문이 꾸는 공동체적 가족 로맨스의 꿈과 그들이 그런 꿈을 추구하게끔 한 현실에서의 좌절감은 인종, 성, 가난 등의 문제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힘의 역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노예제와 같은 흑인 공동체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철로된 쇠사슬을 황금의 사슬로 . . . 바꾸려는”(12) 과업에 린덴 힐즈 주민들은 혈안이 되어 자신들의 욕망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욕망을 보이지 않게 핵심에서 조종하는 것은 네디드 가문의 강박적 충동과 통제이다. 린덴 힐즈라는 공동체가 백인 중심의 “미국이라는 하얀 눈(white eye), 바로 그 눈에 뱉어진 침 한 덩어리—아름다운 검은 침 한 덩어리”(9)가 되기를 기원하는 네디드가문은 그 명목적 목표는 달성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침내 바뀐 사슬이 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사슬은 사슬일 뿐, 가족 로맨스적 신화를 구현한 과업의 완성 결과 여전히 린덴 힐즈의 주민은 예속된 존재로 남는다.

    비슷한 동기와 소망에서 출발하였지만, 린덴 힐즈가 꿈꾸는 가족 로맨스와 프로이트의 그것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가족 로맨스의 경우, 그 백일몽이 일시적 상상에 불과하며 그 상상의 기원에는 교란되지 않은 가족 내의 평화와 조화상태로의 회귀라는 강렬한 소망이 자리 잡고 있다(“Family Romance” 241). 반면 이와 달리 린덴 힐즈 공동체의 경우, 허망한 부와 명성이라는 실체 없는 꿈의 추구는 흑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거주민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부인과 기만내지는 자기혐오에 기초한다. 그리고 더욱이 이는 대대로 이어지는 현실 왜곡과 그 과정에서 말없이 소외되고 희생되는 무수한 억압된 타자들을 낳는다. 월라와 네디드가의 여자 선조들, 그리고 이 외에도 이혼이란 사실에 직면하여 그간 쌓은 명성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사진들과 의미 없는 삶 안에 감금된 자신”(228)을 발견하고 자살하는 또 다른 비극적 인물 로렐은 모두 교묘한 통제에 의해 유지되던 완벽한 이상적 가족상 혹은 공동체상 이면의 처참한 실체를 드러내준다.

    표면적으로 조화로워 보이는 린덴 힐즈의 ‘가족 로맨스’적 서사를 전복시키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형적 도착의 극치이자 부자연스러움의 진원지는 네디드 가문의 가부장적 역사와 그를 뒷받침하는 가업의 전통이라 할 수있다. 네디드 가문은 린덴 힐즈란 기형적 공동체의 창시자이자 실제적 소유주로, 자연과 역사의 흐름마저 통제하는 듯 한결같은 모습으로 150년 동안 그 공동체를 지배한다. 그들은 그 긴 세월 동안 후손에게 동일한 이름, 외모, 가업—부동산업과 장의사업—을 계승한다. 한 비평가가 지적하듯 이렇게 아버지의 복제물처럼 흡사한 모습을 한 네디드가 인물에게 대물림되는 휘어진 다리, 튀어난 눈과 같은 기형적 외모는 그들 내면의 왜곡된 가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Wardi 85). 아내는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장의사라는 직업을 이용하여 여자시체를 다루는 일로부터 그들의 도착적 욕망을 채우는 기괴한 이들의 행동은 그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가 결코 정상적이지 않을 것을 예측하게 해준다. 실제로 이미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했듯(Fowler 64, Saunders 132), “de eden”을 거꾸로 쓴 “Nedeed”란 이름은 그들이 창조한 세계가 도착된 천국과 같은 악몽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소설의 핵심적인 사건은 이러한 네디드들에 의해 치밀하게 유지되어 온 오랜 전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소설의 메인 플롯을 형성하며 전개되는 윌라와 루터간의 갈등은 네디드가 계보 형성의 순간부터 세습되어온 성의 도구화,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진 서열적 인종주의, 가부장적 폭력 등의 원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노예제가 성행하던 시절 일 세대 루터는 자신의 배우자인 혼혈 여성과 아들을 팔고 얻은 돈을 갖고 북으로 이주하여 그 돈으로 구입한 땅에 린덴 힐즈를 세우고, 심지어 남북전쟁 당시 남군에게 무기지원을 하는 화기 밀매업자에게 자금을 대어 부를 축척한다. “하늘 저 건너편에 사는 백인 신 . . . 언젠가는 그 하늘마저 소유할 그 백인신과 . . . 화해”(8)한 각기 다른 세대 루터들은 모두 백인에 가까운 어린 혼혈여성들과 혼인하여 상속인으로 자신의 판박이와 같은 아들 하나씩을 얻는다. 이 와중에 철저하게 소외되고 네디드가의 아내와 어머니들은 단지 가문의 상속인인 남자 아이를 얻기 위한 도구로서의 존재가치만을 가질 뿐이다. 즉 가족을 판 종자돈으로 구축한 부, 흑인으로서 자신을 억압하는 노예제를 신봉하는 남부군에 무기를 팔아 축척한 부, 인종적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을 발판으로 수립한 물질적 안락함과 명성 등 이런 추악한 과거가 현재의 린덴 힐즈의 번영에 불가분하게 연루되어 있음은 이 공동체 사회의 갚을 수 없는 부채와 씻을 수 없는 치욕적 전통으로 남는다.

    요컨대 각 세대 루터 네디드들이 행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명백한 배반행위와 이 과정에서 희생된 네디드가 여인들의 소외와 아픔 이 모든 것은 린덴 힐즈의 구심점인 네디드 가문형성의 ‘원장면’에 뿌리깊이 연루된 보이지 않는 ‘원죄’를 증좌하고 있다. 따라서 “아내를 길들이는 것은 슬리퍼 한 켤레를 길들이는 것과 같다”(67)는 신념으로 평소 아내에게 무자비하게 군림하는 현 세대의 루터 역시 가문 탄생의 ‘원장면’을 기점으로 계속 똑같은 상처와 악을 반복 양산하는 원죄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쓸모없는 황무지 언덕에 세운 허름한 “나무 오두막들”(3)을 수 세대를 걸쳐 마침내 “소유의지가. . . 곧 전지전능한 신”(17)으로 모두를 지배하는 “웨인 카운티의 흑색 보석”(9)으로 변화시킨 레디드 신화와 린덴 힐즈의 기적과 같은 역사의 치명성을 간과할 수 없는 까닭은 부와 성공이란 화려한 외면이 은폐하고 있는 원초적 상흔의 역사 때문이다.

    원래 “늑대 인간” 사례 분석으로 불리는 프로이트의 한 논문(“From the History of an Infantile Neurosis”)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원장면’은 부모의 성행위를 아이가 목도하는 충격적 순간을 지칭하며 당시에는 이해 불가능하던 사건들이 후일 ‘연기/유예된 행동’(Nachtra¨glichkeit, deferred action)이라는 사건의 재구성과 의미부여의 과정을 거치며 흔히 반복되는 외상적 상처와 기억으로 남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러나 하나의 사례분석에 국한된 원래 논의를 좀 더 넓은 의미로 확대해석해 본다면, 라플랑쉐(Jean Laplanche)가 주장하듯 원장면은 무의식 형성의 근간이 되는 이해 불가능한 타자의 존재와 욕망에 주체가 직면하는 경험으로 확장하여 파악될 수 있다(126이하). 따라서 소설 『린덴 힐즈』에서 원장면은 주도면밀한 루터 네디드들의 의식적 통제력을 벗어나 있는 보이지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부인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세대 동안 일련의 네디드들에게 인식되지도 또한 인정되지도 못한 가문의 아내와 어머니들의 존재와 욕망은 그들에게는 마치 무의식적 실재와 같은 현실 너머의 현실이다. 이 보이는 현상 너머의 현실은 치유되지 못해 반복되는 과거의 상처와 애도되지 못한 상실 등의 예측 불가능한 현현을 통해 네디드 가문에 의해 통제되는 상징질서의 막을 뚫고 그 존재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루터의 아내와 아들 감금 사건은 네디드 가문 건립이라는 원장면에 뿌리깊이 연루된 억압과 폭력성이란 ‘원죄의 부인할 수 없는 회기’를 상징한다. 남성중심주의와 흑인으로서의 자기혐오는 네디드 가문 설립의 과정에서 특정한 여성들을 도구화하여 유린 희생시키는데, 루터에 의한 모자 감금 사건은 그 동안 억압되고 부인되어 온 실재적 현실이 표면화되는 결정적 전기로 작용한다. 몇 대를 거쳐 선조들이 흑인의 피가 1/8만 섞인 백인계에 가까운 혼혈여와 혼인한 역사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할 수도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자신에게 하얀 피부색을 한 아들이 탄생하자, “그의 선조들이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비웃는 유령과 같은 존재”(18)의 출현과 아내의 “배반”(19)에 격분한다. 즉 모계의 존재와 영향력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네디드가의 후손답게 그는 이를 아내의 불륜의 명백한 증거이라 확신하여 “나의 집으로 내가 창녀를 끌어 들였지만 그 창녀를 아내로 바꾸겠다”(19)는 일념으로 모자를 저택의 지하에 감금한다. 그런 의미에서 윌라가 자신이 감금된 네디드 저택의 지하깊숙한 곳에서 일기, 편지, 사진, 요리법 등의 형태로 네디드 가문 여성들의 숨겨진 애환의 삶과 고통의 역사를 발견하게 됨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의 심연,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음습한 저택의 가장 밑바닥 지하, 더 이상 저택의 안주인이 아닌 신분이 강등된 죄수의 처지에서 윌라가 겪게 되는 극한의 경험들은 네디드 가부장체제의 억압적 원장면이라는 현실과의 필연적 조우를 뜻하는 매우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IV. 반복적 외상과의 조우를 통한 원장면의 재구성

    일찌기 바바라 크리스찬(Barbara Christian)이 “herstory”라는 용어로 명명한 바 있는 네디드가 모계의 숨겨진 역사(116)는 바로 린덴 힐즈란 기형적 사회를 탄생시킨 네디드 가문의 가부장적 지배의 무자비성과 자기중심적인 폭력성에 대한 무언의 증거이다. 1세대 루터와 혼인한 루와나 패커빌(Luwana Packerville)은 끝내 자기 소유의 노예 신분의 상태로부터 아내를 해방시키지 않는 잔인한 남편과 결국은 자신에게 “낯선 이가 되어버린”(121) 아들, 그리고 그런 아들에 의해 서류상으로는 세습되어 소유된 기이한 자신의 처지를 개탄하며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성경의 여백에 일기와 편지의 형태로 자신의 삶을 기록한다. 그러나 점점 아버지의 모습과 냉혹함을 닮아가는 아들을 보며, “그는 루터의 아들이 아니라, 그가 곧 루터이다. 내가 어떤 말할 수 없는 악을 위한 무고한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두렵다”고 기술하던 그녀의 기록은 결국 “신은 존재할 수 없다”(125)란 진술로 끝을 맺는다. 이밖에도 에블린 크리톤(Evelyn Creton)은 남편으로부터 외면당하였지만, 자신의 지극히 “원초적이며 개인적인 욕구”(187)를 억압하고 “단정한 여인”(187)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녀는 만족되지 않는 그녀의 욕구를 요리에 몰두함으로써 가까스로 잊으려한다. 비정상적인 음식에 대한 탐닉과 하제 복용을 반복하던 그녀는 말 그대로 “스스로를 먹어 죽였다”(190). 이 밖에도, 남편과 아들의 그림자에 묻혀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사진으로 모아놓은 프리실라 머과이어(Priscilla McGuire) 역시 모두 이름도 없이 사멸해간 네디드가의 여인들 중 한 사람이다.

    특히 매년 아들 루터의 성장을 기록해가며 찍은 가족사진들을 모아 둔 프리실라 머과이어의 앨범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술은 소모품으로 전락하여 결국 잊혀져가는 네디드가 여인의 운명을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녀는 왜 이 사진들 속에서 꼿꼿하게 앉아있지 않았지? 너무 아들의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 숙인 나머지, 그녀는 자신을 아들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 . . 이제 장성한 두 남자 사이에 자리 잡은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재미있어 하며 앉아 있는 이 여인을 보라. . . . 루터: 20세. . . .루터: 21세. 그녀는 더 이상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지 않고 있었다; 커져가는 유일한 것은 . . . 그녀의 부재였다”(208-209). 아들의 성장과 비례해서 점점 그 존재감이 위축되다 결국 성인이 된 아들과 남편 곁에서 무로 화한 이 여인의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린덴 힐즈의 기적과 같은 물질적 번영을 일구어 내었던 네디드가의 아버지와 아들의 결속이란 구도는 네디드가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발판으로 하여 세워졌다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윌라에 의한 네디드 여인들의 파편화된 기록에 대한 발굴, 판독, 이해의 과정은 기억의 편린을 조합하며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을 판독?해석해가는 정신분석적 의미에서의 원장면의 재구성과 의미부여의 과정과 흡사하다. ‘유보된 행위’라는 정신분석이론의 개념이 시사하듯, 어떠한 사건과 그 의미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분석과 이해에 의해 후에 구성 혹은 재구성되는 것이다. 과거 사건이 현재의 나에게 갖는 의미, 중요성, 효과를 분석 추론해내고, 그 사건을 주체화된 서사작업을 통해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 통합해내는 것이 곧 정신분석의 치유 작업이 지향하는 바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가해진 이해할 수 없는 가혹한 형벌과 운명에 직면한 윌라의 경우, 그녀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은 곧 흩어진 선조 여성들의 삶의 편린들을 단서로 네디드 가문의 숨겨진 역사 서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한 비평가가 주장하듯, 윌라의 이야기는 네디드의 가부장적, 반역사적 역사에 대조되는 “분명한 여성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생시킨다” (Simpson-Vos 25). 윌라가 고통의 심연에서 발견하게 되는 가부장제의 희생자들인 선조 여인들은 어떤 의미에서 바로 그녀 자신의 모습들이다. 윌라가 극한의 슬픔과 고통의 정점인 바로 그 순간 네디드 저택의 가장 밑바닥이자 숨겨져서 타인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심연—선대에서는 시체 저장실로 쓰이던 깜깜한 지하—에서 조우하게되는 선대 여인들의 삶과 서사는 윌라에게 자신 삶을 비판적 시각으로 반추할수 있게 하는 강렬한 각성의 계기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윌라가 선대의 네디드가 여인들과 강렬한 동류의식을 느끼는 순간, 지금까지 그녀가 단지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한 삶의 질곡은 새로운 역사적 시각에서 조명되기 때문이다.

    주디스 허먼(Judith Herman)은 널리 알려진 그녀의 외상연구에서 사회적 단절과 고립, 경험을 담지해낼 수 있는 서사의 결핍,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 등을 희생자의 특징으로 꼽고, 회복은 생존자 스스로가 삶의 주체가 되는 “권위부여(empowerment)와 새로운 관계 형성에 기초 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생존을 위한 상처 회복은 “오직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133). 『린덴 힐즈』에서 윌라에게 네디드가 여인들과의 만남은 그녀가 주체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관계형성과 그녀를 지지해줄 수 있는 공동체 발견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로 인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사회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희생자로 남기를 거부하고 행위의 주체로 나아가게 되는 결정적 삶의 변화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디드 여인들과의 만남은 타자의 희생과 억압의 기제에 의해 유지되는 인위적인 ‘아버지의 법’ 이전 모성,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코라’(chora)라 명명한 전오이디프스 단계로의 회기와 접촉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떠한 경계와 결핍도 존재하지 않는 충일함, 근원적인 삶의 원천과 자양분으로 흔히 이해되는 이 단계/영역은 창조와 시적 혁명이 가능한 곳이다. 「서사와 여성적 공감」이라는 자네트 새이어즈(Janet Sayers)의 논문이 주장하는 바대로, 타인과 교류하고 공감하는 독특한 여성 특유의 능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서사의 기능 간에는 분명한 유관성이 있고, 이는 상처 극복과 치유에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다(137, 145). 윌라가 선조 여인들의 삶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며 얻는 수용적 공감은 그녀가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할 수 있게 하는 코라적 생성과 변혁의 자양분 기능을 한다.

    네일러는 변혁을 위한 자기인식과 각성을 『린덴 힐즈』에서 강력한 ‘거울’의 모티프로 제시한다. 소설에서 반복되는 “네가 누구인지 알게 해주는 너의 일부”(59)로서의 ‘거울’이란 핵심적 이미지는 윌라가 잊었었던 자신의 이미지를 알루미늄 항아리에 고인 물에 비춰보며 자신의 삶의 현실에 대한 자각을 얻는 계기의 순간으로도 이어진다.

    윌라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이 순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네디드가 여인들의 삶에 대한 역사적 조망을 통해 그녀가 비로소 얻게 된 자신 삶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었다. 각성된 자기인식은 이제 그녀가 그때까지 삶에 대해 견지해오던 수동적 자세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현실을 보았고 받아들였으니, 그 현실은 그녀에게 치유적인 고요함을 가져다주었다.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녀는 [삶을] 다시 세울 수 있을것”(268)이기 때문이다. 윌라는 자신 삶에 대한 통한어린 반추의 과정을 겪으며 그간 ‘아버지의 법’으로 상징되는 사회질서와 가부장적 지배에 맹목적으로 순종했던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된다. 언제나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착한 소녀”(277)로 자라온 그녀는 루터와 결혼하게 된 것도 네디드라는 가문의 일원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스스로 원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을 컴컴한 지하에 내려와 갇히게 한 것이 “바로 자신의 행위”이자 선택이었다는 그 “순수하고 환원할 수 없는 진실”(280)을 윌라는 마침내 인식하게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러한 윌라의 주체적 인식과 책임의식이, 그렇다면 감금된 지하를 벗어나 “그녀가 . . . 준비가 되면 어느 때이든 다시 걸어서 올라 갈 수 있다”(280)는 의지로 변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윌라가 어렵사리 발굴해낸 네디드가 여인들의 서사와 이로 말미암아 각성된 윌라의 자의식은 원죄적 억압을 담보로 하여 ‘아버지의 법’에 따라 세워진 린덴 힐즈/네디드 가문의 공적인 역사에 대한 저항과 전복으로 나아가는 의미심장한 단초로 작용한다. 제롤드 호글(Jerrold E. Hogle)의 지적처럼, 흑인 사회 내의 사회적 공포를 형상화한 전형적 흑인 고딕소설의 하나로서 네일러의 소설이 “가부장적 권력에 의한 원초적 여성성의 . . . 매장”이라는 “원죄”(219)와 그로 말미암은 비극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소설의 결말은 어떤 의미에서 그 원죄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을 상징하는 일종의 ‘시적 정의’(poeticjustice)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 말미에서 네디드 저택을 화염에 휩싸인 채 한 줌의 재로 무너뜨리게 하는 계기가 되는 화재 사건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흥미로운 사실은 네디드 가문의 파국적 와해를 야기한 사건의 계기가 바로 1세대 루터 네디드의 아내인 루와나 패커빌의 결혼 예복 베일에 옮겨 붙은 하찮아 보이는 작은 불씨이라는 점이다. 마침 심부름 온 윌리의 우연한 실수로 잠긴 지하로 통하는 문이 열린 틈을 타 윌라는 죽은 아들을 안고 저택 위로 올라오게 되고, 이를 보고 그녀를 제압하려는 루터와 뒤엉켜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크리스마스트리에 꽂은 촛불로부터 윌라가 죽은 아들을 감싸기 위해 사용한 베일 끝자락으로 불꽃이 옮아붙게 된다. 의미심장하게도 윌라는 루와나 패커빌의 결혼 베일을 지하 트렁크에서 찾아내 죽은 아들을 감싸는 수의대용으로 사용한다.4 아들의 시체를 베일에 감싸 안고 저택으로 올라온 그녀를 발견한 루터는 그녀를 다시 지하로 감금하려하지만, 윌라는 아마존의 거센 물살과 떨어지는 암석에도 굴하지 않고 맹렬히 진군하는 한 마리 병정개미 혹은 “날개 없는 여왕”(300)을 연상시키는 필사적 태도로 저항한다. 그 와중에 베일 끝자락으로 불꽃이 옮아붙고, 상황을 제압하려는 루터에 맞서 “그녀 몸의 모든 세포가 그의 손에 저항”(300)하는 가운데 그들 부부와 죽은 아이 “셋은 [용접한 듯] 하나가 되어”(300) 불길 속으로 사그라지고 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시꺼멓게 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303)로 소방관들에 의해 발견된다. 네디드 가문의 가부장적 질서는 수세대를 걸쳐서 천륜인 어머니와 자식의 연을 갈라놓으며 여성성이 철저히 희생·배제된 남성중심의 아버지-아들이라는 이자체제를 건립하려했다. 그러나 이러한 몇 세대에 걸친 시도가 처참하게 무산되고 결국은 이에 연루된 가족 모두가 뗄 수 없이 뒤엉킨 하나의 재 덩어리로 화하며 비극을 맞는 최후 모습은 그간의 시도가 얼마나 실현 불가능하며 비인간적인 것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한마디로 루와나 패커빌의 결혼 베일에 옮겨 붙은 작은 불씨로부터 비롯된 이 끔찍한 화재사건은 억압적 부계질서의 힘에 결코 굴복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전복시킬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저항가능성으로 존재해온 ‘모계 역사의 봉기’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 사건의 궁극적 의미는 네디드 가문으로 상징되는 폭력적이며 도착적인 ‘아버지의 법’과 통치가 종국에는 어떠한 엄청난 파국적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증명해주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네디드 가문의 150년 역사를 깡그리 잿더미로 화하게 한 화근으로서의 루와나 패커빌의 결혼 베일은 가문 내에서 대대로 억압되어온 모계의 역사와 그 역사를 대표하는 삶의 흔적이다. 따라서 소설의 비극적 결말을 이끌어낸 작은 불씨, 즉 윌라가 지하에서 찾아낸 가문 1세대 여성 루와나 패커빌의 결혼 베일에 옮아붙은 작은 불씨와 더불어, 소설의 결말에서 볼 수 있는 지하/은폐/감금의 상황으로부터 마침내 지상/폭로/저항으로 나아가는 작품 전반의 지배적 존재양태의 변환은 결국은 되돌아오기 마련인 억압된 분노와 저항의 회기 시 야기되는 폭발적 위력을 우회적이나마 암시한다고 하겠다.

    4새로운 출발과 생명의 탄생을 함의하는 결혼베일이 죽음의 의식을 위한 수의로 변모되어 쓰이는 이 역설적 사실은 린덴 힐즈에 만연하는 가치의 전도와 병리적 왜곡을 상징하는 또 다른 예로 볼 수 있다. 물론 얼핏 보면 우연한 임시변통의 한 방편으로 보이지만, 결혼베일을 수의로 전용하는 윌라의 행동은 자신을 억압하던 가부장제도로부터의 결연한 결별의지를 상징하는 중층의미로도 확대 해석될 수 있다.

    V. 결론

    “언덕 아래의 집에는 한 남자가 있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름이 없다네”(277)라는 윌리의 시구는 그간의 린덴 힐즈와 네디드가의 역사를 집약하여 상징한다. 많은 면에서 윌라의 ‘더블’이라 할 수 있는 윌리가 린덴 힐즈에서의 며칠동안의 경험을 요약하며 어렵사리 지은 이 시의 한 줄과 그가 꾸는 얼굴 없는 여인에 대한 악몽은 린덴 힐즈가 상징하는 성공과 부는 결국 정체성의 상실 혹은 망각의 대가라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때문에 “린덴 힐즈로 진출함은 곧 성공함”(15)을 의미한다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린덴 힐즈의 거주민들은 일단 가장 부유한 튜펠로 거리일대로 내려오면 “결국 스스로의 욕망에 삼켜져”(18)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린다. “마법사의 최고 기술은 변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사라지게 하는데 있다는 것을 망각한 그들”(12)은 마치 마법사와 같은 루터의 마력에 이끌려 부와 권력이라는 환상을 쫓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신들 본래의 모습과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일그러진 형태의 삶을 사는 린덴 힐즈 주민들과 네디드가 인물들이 함께 만들어낸 화려한 외관의 린덴 힐즈라는 흑인 공동체 사회는 그들의 탐욕 그리고 인종적 소수민으로서 상처받은 자존감을 보상하려는 기형적 시도가 만들어낸 실체 없는 환상적 구조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린덴 힐즈의 신화적 성공은 결국 “그들 내부의 빛나는 공허”(17)만을 반영하는 일종의 공동체적 ‘가족 로맨스’란 허상인 것이다.

    네일러는 이러한 단일한 공동체라는 허상에 대한 폭로와 전복이라는 소설의 내용상의 여정을 심지어 텍스트의 시각적 차원에서도 반영하여 그 공동체 해체의 당위성을 독자에게 강력히 어필한다. 일견 견고해 보이나 헛된 환상의 구조물일 뿐인 네디드 가문과 린덴 힐즈 내의 갈등과 균열의 흔적과 단서는 각기 다른 텍스트의 활자체들의 혼재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마치 그들의 통합될 수 없는 타자성, 소외, 고립을 암시하듯, 윌라를 위시한 네디드가 여인들의 이야기는 소설 전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다른 활자체로 씌어졌으며, 소설 중간 중간에 부분적으로 삽입되어 작품 전체의 서사적 흐름을 막는다. 이는 맹목적인 성공추구와 자기과시에 의해 지배되는 린덴 힐즈의 억압적 상징질서는 그에 결코 편입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러한 질서에 의해 다스려질 수 없는 타자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라깡과 지젝의 이론을 빌어 표현한다면, 어느 공동체에나 지배적 상징질서의 원활한 운영을 방해하는 “‘목에 걸린 뼈’와 같은 . . . 라깡적 실재”(Žižek, Contingency 310)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네일러의 소설 『린덴 힐즈』의 여러 가치들 중 하나는 이러한 ‘실재의 정치성’에 대한 인식과 이를 통한 억압적 지배체제에 대한 전복 가능성을 독자에게 일깨워주는 데 있다고 하겠다. 즉 다섯 세대에 걸쳐 강압적으로 한 가문과 린덴 힐즈 전체를 지배하던 루터 네디드의 체제가 말 그대로 아주 작은 불씨하나로 맥없이 사라지는 허망한 결말을 형상화함으로써, 네일러의 소설은 사회의 지배질서란 ‘필연적인’ 논리나 당위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부조리와 모순을 내포한 ‘우연적’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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