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mily in Children’s Literature and Its Disintegration

아동문학에 나타난 가족, 그리고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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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e education of childre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parts in children’s literature. Children’s literature, whose implied readers are both children and parents, is a good means to teach how they should behave and interact. Therefore, literary conventions of children’s literature tend to be conservative with happy endings or fairy tale elements. Most of the children’s literature of the 18th century were read as a conduct book which teaches children good manners and proper behavior, and at the same time served as a guidebook which tells parents how to discipline children. It emphasized the need of discipline to ascertain the hierarchy and order of the family, and cherished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In the 19th century, the ideal of family becomes more internalized.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ideology of family still remained, even though the world wars and economic depressions caused the cracks and collapses of the family. In the later 20th century, the disintegration of the traditional family was accelerated. The ideal of family based on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has had problems from the start. The attachment and over-closeness became stressful and sometimes could be poisonous. Recent children’s literature shows the process of disintegration of the traditional nuclear family, children suffering in the fractured family, children’s mental trauma, and nostalgia for the lost family. However, modern children’s literature manages to find the lost or ideal surrogate family, and often shows fairy-tale elements such as mystical and heroic child protagonists or helpers who might solve all the difficult problems at once, despite the collapse of the family in reality.


  • KEYWORD

    children’s literature , the eighteenth century , discipline , nuclear family , disintegration , nostalgia

  • I

    18세기 영국사회에 신흥중산계급의 등장과 함께 여러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예로 근대적인 핵가족과 아동문학의 발생을 들 수 있다. 친족과 하인, 도제들까지 포함하던 과거의 공동체적 가족 형태는 부모와 자식을 중심으로 사생활을 중시하는 근대적 핵가족 형태로 옮겨가기 시작했으며, 가정에서는 중산계급의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해 훈육을 중시하며 아동이 자기 통제를 통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훌륭한 가정의 일원이자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가르쳤다. 아동문학은 아동에게 예의범절과 올바른 행동거지를 가르치는 품행지침서의 역할을 하거나 부모에게 자식을 교육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족의 중요성은 19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되어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은 완벽한 가정의 귀감이었으며, 또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아이들은 순수한 존재로 이상화되고 어른에게 정신적인 위안이 되고 구원자도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을 겪으며 전통적인 핵가족의 이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가정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아동문학의 역할도 커지게 된다. 이 시기 아동문학은 구원자로서 의 어린이가 자주 등장하고, 두 자녀를 둔 4인 핵가족을 중심으로 중산층의 도덕을 강화하며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플롯이 유행하였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들어 가족의 형태는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사회적 경제적 변화로 인한 핵가족의 붕괴는 예견된 일이었으며, 전통적 핵가족의 개념이 오히려 인간에게 억압적이고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아동문학은 가정 내부의 문제점을 고발하기 시작하고, 전통적 핵가족이 와해되는 과정, 이에 고통 받는 희생자로서의 어린이, 그들의 정신적 상처와 방황 등의 내용을 담게 된다.

    그러나 아동문학은 여전히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공식을 따른다. 가족의 와해에도 불구하고 아동문학은 신비롭거나 영웅적인 인물이 등장하거나 단번에 모든 문제 해결해 줄 조력자가 등장하는 동화적 요소를 지니며,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거나 바람직한 대안가족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아동문학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애정과 존중에 토대를 둔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계속 주입하며, 교육과 교훈은 여전히 오락성과 더불어 아동문학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동문학은 다른 장르에 비해 핵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의식이나 반성적 성찰이 별로 없는 탈역사적이고 과거지향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최근 가족의 해체가 심화됨에 따라 점차 아동문학에서도 전통적 가족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실험하고 모색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보수적 장르로 자리매김해온 아동문학에도 가족의 와해와 해체 현상이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본 논문은 18세기 발생기의 아동문학의 특성을 고찰한 후 이러한 특성이 최근의 아동문학 작품들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현실의 극심한 변화에 따른 아동의 정신적 혼란과 상처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급속도로 와해되는 전통적 가족의 모습이 행복한 결말이라는 아동문학의 관습에 어떻게 맞춰지고 있는지 분석해보도록 한다.

    II

    흔히 아동문학은 동심의 세계를 그린 문학, 아동의 정서와 심성의 순화에 영향을 주는 문학, 교육을 목표로 아동의 심리와 성장과정을 묘사한 문학으로 정의되며, 좋은 아동문학은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동심은 실제의 아동이 스스로 파악한 마음이라기보다는, 어른이 과거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동에게 부여한 것으로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만들어진 개념이다. 과거 서양에서는 아동을 유혹에 빠지기 쉬운 불완전한 존재로 간주한 시기도 있었고, 아동을 천사로 묘사하며 찬양하고 숭배한 시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아동의 무의식에 들끓고 있는 분노와 저항감을 지적하기도 한다.1 또 아동문학은 감동에 비중을 두고자하며 권선징악의 행복한 결말을 지향함으로써 현실을 왜곡하거나 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동문학은 교육과 훈육을 중요시하고 기존 세대의 사고와 가치관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둠으로써 사회의 지배 담론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는 비판이 따를 수 있다.

    아동문학은 결코 단순히 동심을 그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생부터 정치적 함의가 담긴 문학이다. 영문학에서 아동문학은 18세기 영국 사회에서 중산층이 주요 계층으로 부각함에 따라 발생한 문학 장르로 처음부터 중산층의 가치관에 부합되는 가족의 개념과 형태를 반영하는 장르였던 것이다.2 18세기의 아동문학 작품을 보면 한 가정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이 살아가는 모습,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들의 관계, 하인과의 관계, 그 시대의 생활상과 사회 풍속을 보여주면서, 아동에게 예의범절과 올바른 행동거지를 가르치거나 부모에게 자식을 교육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많다.

    아동문학에서 가족은 변함없는 배경이자 주제이다. 그런데 가족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사유재산의 발생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하듯이, 사회적 의의가 함축된 제도이다. 가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근대적 의미의 가족의 발생과 변화과정을 둘러보는 것이 필요하다.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는 근대적 가족의 탄생을 18세기로 본다. 그는 18세기에 타인과 가족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가족 간의 친밀감이 커지고 일상적인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게 되었으며 세심하게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근대적 가족의 탄생이라고 말한다(632-37). 다이애너 기틴스(Diana Gittins) 역시 18세기 신흥중산계급의 등장과 함께 하인, 친척, 도제들까지 포함하던 공동체적인 가족이 핵가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34-40). 그리고 로런스 스톤(Lawrence Stone)은 중세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란 없었고, 중세 말에서 16세기까지의 가족형태는 친족과 공동체의 영향이 크고 서열과 권위가 강조되는 것이 특징이었다고 말한다(409). 스톤에 따르면, 17세기 말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중산층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핵가족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웃과 친족의 간섭이 줄어들면서 재산 증식 등을 목표로 한 정략결혼보다는 애정에 의한 결혼이 늘어나 애정에 토대를 둔 친밀한 가족관계가 형성되기 시작되고, 아이의 교육과 여성의 교양 교육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예의범절, 에티켓 등도 강조된다. 스톤은 중산층과 지주계층에서 시작된 이러한 근대적 가족 형태가 18세기말, 19세기 초에 이르면 귀족층과 하층민에게도 퍼지게 된다고 설명한다(413).

    18세기 이후 아동문학은 중산층의 가치관과 이상을 권장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체벌을 가하더라도 아동이 자신의 신분과 위치에 맞게 행동하도록 길들이고자 하였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착하고 순종적인 아이들을 양성하는데 사회적 관심이 모아졌다.3 앤 앨스톤(Ann Alston)은 근대적 가족이 탄생하면서 가정의 서열과 질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아이들에 대해 훈육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한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가정은 훈육의 장이자 감시의 장이고 부모의 지침과 통제의 장이었으며, 가정은 어린이가 처음 이데올로기에 침잠하게 되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7-11).

    1749년에 출판된 사라 필딩(Sarah Fielding)의 『여교사, 혹은 작은 여학교』(The Governess, or, The Little Female Academy)는 아이들에게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왕과 신민의 서열관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 서열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동화, 희곡, 우화의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부모에 대한 순종을 토대로 바람직한 성품과 행동거지에 대해 올바른 지침을 제시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품과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고 어떻게 이들을 가르칠 것인지 꼼꼼하게 체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부모에게 아이들의 훈육방법을 알려준다. 1796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한 마리아 에지워쓰(Maria Edgeworth)의 『부모의 조수, 혹은 아동 이야기』(The Parents’Assistant, or Stories for Children) 시리즈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신분과 위치에 맞게 행동하도록 가르치며 바람직한 국가관과 가치관을 심어주고자 한다. 제3권의 경우, 불만을 일삼고 서열관계를 무너뜨리려는 반항아들의 사악하고 무지한 모습과 관대하고 겸손하고 현명하며 무엇보다 교사와 부모에 순종하고 사회 질서에 순응하는 학생의 모범적인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올바른 품행과 미덕을 가르친다. 이와 같이 아동문학은 품행지침서를 겸하고 훌륭한 가정의 일원이자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가르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도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손향숙 250). 1847년에 출판된 메리 마사 셔우드(Mary Martha Sherwood)의 『페어차일드 가(家) 이야기, 혹은 아동 지침서』(The History of the Fairychild Family, or The Child’s Manual) 시리즈의 제3권을 보면, 점잖은 중산층인 페어차일드 집안사람들이 갑자기 재산을 상속받아 대저택으로 이동한 후 달라진 삶을 주로 다룬다. 부유한 친척들과 갑자기 늘어난 하인들을 다루는 법부터, 병든 노모 수발로 부모가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유혹에 빠지는 아이들의 심리, 그리고 허영심과 질투 등 형제자매 사이의 갈등의 문제가 상세히 다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각 장마다 한 에피소드가 소개된 후 교훈과 기도가 덧붙여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페어차일드 집안의 부모는 신의 섭리를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인격을 갖춘 존재이며, 유혹에 빠져 자칫 실수를 범할 뻔한 아이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올바른 길로 들어선다.

    아동문학에서 아동의 의미는 크게 두 유형의 이미지로 묘사되어 왔다. 하나는 연약하고 불안하고 부족한 존재로서의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하고 영적인 존재로서 그리스도 아기 상으로 대표되는 구원자적 이미지이다.4 시대별 아동의 개념에 따라 양육과 교육의 방식 또한 달라졌는데, 18세기에 아이들을 고집스럽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부모의 말을 자주 거역하는 존재로 보고 교육과 훈육을 중시했다면, 19세기에는 아이들이 순수한 존재로 이상화되어 어른을 정신적으로 구원하는 의미를 지니는 작품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앨스톤은 19세기에 이르러 아이들의 놀이방이 설치되고 부모와 아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현실에서 멀어져 서로 우상화하는 경향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어린이를 우상화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지향하면서, 현실적으로는 가장으로서 남성의 역할이 힘들어져 부담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아버지들이 식민지로 가버리거나 남성 전용 클럽에 회원이 됨으로써 가정을 도피하는 경우 많았다고 한다(16-17). 어쨌든 이 시기에는 어른이 아동에게서 배울것이 있으며 아동이 어른에게 정신적인 위안이 되고 정신적인 구세주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아동의 위상이 올라간 시기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국가가 가정사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가 주요 담론으로 사회에 확산된다. 이 시기에 아이들에 대한 의무 교육과 의료 혜택도 늘어나며, 한편 국가가 가정의 성역을 침범하는 일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집 꾸미기나 위생 등이 제도화되기 시작하고 이웃을 서로 감시하고 제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이상적인 가정에서 거리가 먼 빗나간 사람들 격리시켜두는 구빈원, 감옥, 고아원, 정신병원 등의 기관이 생기게 된다. 그 후 20세기에 들어 세계대전, 대공황을 겪으며 전통적인 이상적 가족의 개념이 와해되기 시작하지만, 그러면서 더욱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아동문학의 역할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같이 근대적 가족의 특성은 애정을 토대로 한 친밀한 관계, 사회에서의 고립, 개인의 자율성이라 할 수 있다. 스톤은 근대적 가족이 발달하게 된 계기로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한 유아나 젊은이의 사망률의 감소를 든다. 유아 사망이 줄어들면서 아이들이 가정에 오래 머물게 되어 부모와 자식의 애정이 돈독해지고, 젊은 층의 사망이 줄어들면서 결혼 생활이 오래 지속되어 부부 사이에 애정과 친밀한 감정을 안심하고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구성원 간의 친밀한 관계는 점차 모순을 드러내어 가족들이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갈등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423).

    핵가족은 결코 과거의 가족 형태보다 더 낫거나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개인주의적인 핵가족제의 단점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부적합한 가족 형태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핵가족은 처음부터 여러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었다. 친족과의 관계가 약화되면서 육아 등의 문제나 부부관계 등에 대해 도움이나 충고를 줄 친족도 없고, 혈통과 조상에 대한 존경심이 줄어들면서 정체성의 불안도 초래되고, 또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을 꺼려하면서 책임감 없는 미숙한 어른이 양산되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핵가족은 사적인 세계로 침잠하는 경향이 있어, 공동체의 축제 등이 약화되고 빈곤층이 외면되는 사회문제도 발생하게 된다(Stone 427).

    레이놀즈 역시 핵가족의 붕괴를 경제 변화와 연관시켜 분석하며 핵가족의 특성이 점차 인간에게 억압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202). 레이놀즈에 따르면, 아동문학의 태동기인 18세기 말 시장자본주의 시대에는 집에서 가족이 함께 생활하며 아이들을 미래의 선남선녀로 키워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품이 유행했는데, 20세기 중반에는 핵가족제가 가족 구성원에게 과도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며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협하는 것은 바깥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내용을 다룬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202-203). 이렇게 20세기 후반에는 가정 폭력이 심각해지고 가정에서 아이의 정신병이 유발되는 경우 등 사회악이 가정에서 싹트는 경우를 묘사한 작품, 가족이 오히려 해가 되고 독이 되는 상황을 묘사한 작품, 가정 내부에서 부모의 알콜중독과 폭력, 이혼, 무관심, 소통단절이 십대 불량소년들을 만들어내는 내용을 다룬 문제소설이 유행하게 된다.

    이제 가정은 긴장감으로 삐걱대며 제대로 역할을 못해내기에 이르렀다. 현대사회는 정보 기술, 서비스산업, 다인종주의, 마케팅 시대, 소비자본주의 시대이다. 뒤늦게 가정과 사회에서의 교육과 훈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기는 하지만(Zipes, Sticks 79), 현대의 아동/청소년들은 소비 충동이 증가한 결과 브랜드를 추종하고 가정보다는 나이키나 코카콜라 등의 소비자 그룹으로, 또 같은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집단으로 소속감을 더욱 느끼는 세대이다. 레이놀즈는 이제 가족을 이루는 데 중요한 건 혈연이 아니라 감정적 만족감을 주는 관계라고 주장하며,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고 비슷한 연령대의 청소년들이 “선택에 의한 가족”을 이루어 자기들끼리 생활하는 가족 형태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204).

    18세기에 시작된 근대적 가족 형태인 핵가족은 20세기부터 점차 의미의 균열이 일어나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아예 무너져버리고, 이제 낯선 새로운 가족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혈연에 토대를 둔 부모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소위 ‘정상’가족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며 가장 표준화된 가족 형태를 의미해 왔다. 그런데 이제 소위 ‘정상’적인 가정이 일인 가족, 편부모가족, 계부모가족, 확대가족은 물론 동성애가족, 비혈연가족 등 소위 ‘비정상’적인 가정에 밀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사회변화에 적합한 가족이 과연 어떤 것일까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게 되었다.5

    1아동문학(Children’s Literature)이라고 할 때, 청소년문학을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취학 전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문학과 청소년문학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문학(Young Adult Literature)은 아동문학과 구분하여 십 사세 이상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을 일컫는데, 점차 나이가 하향되고 있다고 한다. 청소년문학은 “Adolescent Literature”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중고교 과정을 일컫기도 한다. 본 논문은 넓은 의미의 아동문학을 따른다.  2앤드류 오말리(Andrew O’Malley)는 18세기에 중산층이 아동 독자에게 중산층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교육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아동문학을 출발시켰다고 주장한다(11). M. O. 그렌비(Grenby) 역시 아동문학을 중산층의 문학이라 단정 짓고(3), 아동문학이 계급 등의 문제는 도외시하고 주로 가족이데올로기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139). 그리고 킴벌리 레이널즈(Kimberley Reynolds)는 아동문학은 중산층이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시도와 연관되어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사회에 유용한 인물로 키워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럼으로써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문학이라고 주장한다(196).  3아동은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 올바른 심성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 알튀세는 아동의 성장을 처음 책임지고 아동의 교육을 처음 맡는 곳은 가정임을 지적하며, 가정을 최초의 이데올로기의 도구라고 주장한 바 있다.  4아리에스는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아동기에 대한 인식이 불완전한 존재로부터 완전무결에 가까운 천진난만한 존재로 바뀌게 되었다고 말한다(201-7). 존 로우 타운센드(John Rowe Townsend)는 18세기 초에 존 로크(John Locke)의 영향으로 아동의 개념이 청교도적 영향을 벗어나 순수한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고 설명하며(26-27), 로크를 찬양하며 그의 이론을 실천한 인물이 존 뉴베리(John Newbery)였다고 덧붙인다(30-31).  52010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족 구조는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일인 가구가 부모와 미혼자녀 둘로 구성된 전통적인 4인 가구를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통핵가족’에서 ‘소핵가족’으로 변모”라는 헤드라인 아래, 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핵가족이 10년 새 13.5% 줄고, 부부만 사는 가구, 일인부모 가구, 나홀로 가구가 늘었으며, 미혼 1인가구는 10년 전 대비 74.3% 늘고, 이혼은 90.4% 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아시아투데이』2011-08-15). (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5057)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여성의 위상이 변하면서 학력과 취업률이 높아졌으며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했다는 것, 경제 불안으로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결혼 기피와 저출산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 과학 기술의 발달로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노인 층이 늘어났다는 것, 포스트자본주의 시대에 소비주의에 익숙해진 전세계 젊은이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의 공감대가 커지면서 전통적 가정의 의미가 급속하게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 아예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2005년 『디플로마시』잡지의 내용이다. “2040년이 되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라지고 남녀는 3명 정도와 느슨한 파트너 관계를 가지는데, 생산 파트너, 사랑 파트너, 생활 파트너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생산은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과, 사랑은 그냥 화학반응이 오는 사람과 하고, 함께 사는 사람은 생활 파트너로 가사를 분담한다고 한다.”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58957&kind=menu_code&keys=3)

    III

    현대 사회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기 시작한지 오래다. 현대적 감성이 유행하고 사회에 가족의 붕괴와 와해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아동에게 희망을 주고 아동의 심성을 순화시킨다는 교육적 특성을 지닌 아동문학은 가족 문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지난 200년간 가족제도가 무척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문학은 어떤 면에서 가족에 대한 입장과 태도가 좀처럼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편이다. 아동문학은 핵가족 신화가 붕괴되고 가정의 의미가 다양화 되는 현실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통적 가족 개념을 답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동문학은 행복한 가정에서 순진한 어린이가 인격을 형성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갖추어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내용을 다루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아동문학에 있어 가정의 중요성은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이며 가족의 개념이 바뀌고 큰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가정으로서의 핵가족이라는 개념은 변함이 없다. 이상적인 가정의 개념은 19세기경에 만들어진 문화적 구성물이다. 대체로 좋은 가정이란 아이들이 양쪽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하는 가정을 말하며, 이러한 가정은 훌륭한 시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아왔다.

    사실 18·19세기에도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선정적인 내용으로 아이들의 감성과 열정을 자극하는 상업적인 작품도 상당히 유포되고 있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이 이러한 자극적인 작품들을 접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이거나, 조심스레 가려서 읽는 법을 가르쳤다.6 아동문학은 원래 아동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아이들을 합리적이고 귀감이 되는 사회 구성원으로 양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교훈적인 내용을 담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다. 처음 아동문학이 발생했을 무렵부터 작품을 창작하고 기록하고 출판하고 보급하는 것도 어른이고, 소비자로서 그 작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것도 어른이다. 어린이는 작가, 출판업자, 부모, 교사가 기록하고 골라주고 읽어주는 책을 읽는다. 어린이는 어른이 정한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므로 사회와 가정에서 이끄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어린이의 정체성, 부모 형제와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행동방식, 분별력과 감정 등을 모두 어른이 원하는 대로 배우고 형성해 나가게 된다. 이런 연유로 아동문학은 자연스럽게 중산층의 가치관을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락성과 더불어 교육과 교훈은 아동문학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어 왔으며, 아동문학은 보수적인 경향을 지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마리아 니콜라예바(Maria Nikolajeva)는 “아동문학은 처음부터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 18세기와 빅토리아조에 교육적이고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수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었고, 20세기 초반까지도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률에 따라 착실하게 살아가는 착하고 얌전한 아이들이 묘사되었다. 아동기에 대한 개념과 독서의 교육적인 측면은 아동문학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아동문학은 아동의 교육에 강력한 도구로서 활용되어 왔다”(15)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아동문학이 교육의 도구라는 점이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된다. 가족의 위계질서, 바람직한 부모 자식 관계, 예의범절, 처신하는 법 등을 다룸으로써 아동문학은 전통적으로 권력층의 입장을 대변하며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기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래동화를 중심으로 아동문학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이프스의 이론은 마리아 타타르(Maria Tatar)를 포함한 여러 학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조셉 조네이도(Joseph Zornado)는 아동문학의 교육적 특성이 아동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사실 아동문학 가운데 부모나 교사들 사이에 인기가 있거나 상을 받은 몇몇 작품들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영합하는 것이거나 출판사의 상품 만들기나 아동문학 출판 마케팅 같은 영리적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 많다. 현재 유행하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을 마케팅 전략을 통해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이를 다시 부모들이 아동을 위해 골라주는 ‘아동문학을 통한 아동 만들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조네이도는 동화나 아동문학에서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정직, 검약, 청결, 노동, 순종의 가치는 아동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동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한 것이며, 신흥중산계급의 아동교육 전통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140-41). 전래동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17세기 샤를 페로의 『빨간모자』를 보면,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한 어린아이는 늑대를 만나게 되고 위험에 처하여 잡아먹히게 된다. 조네이도는 착실하고 순종적인 아동은 성인의 욕망이 투영된 것일 뿐이며, 『빨간 모자』는 아이들을 어른의 교훈에 순종하게 만드는 작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66). 그는 아동문학이 18, 19세기에 유행한 이데올로기 상품이었다고 단정지으며(160),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이 인간 내면의 공통된 경험이라고 주장하는 동화 속의 공포도 사실은 아이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150).

    굳이 조네이도의 이론을 빌지 않아도, 아동문학은 보수적인 장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쇠퇴, 페미니즘의 부상, 경제적 사회적 변화, 전통적 가족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아동문학은 여전히 이상적 가족의 환상을 품고 있다.

    6사라 필딩 21-35쪽 참고할 것: “티첨 부인은. . . 이렇게 말했다. 제니 양, 나는 제니양이 오락을 위해 그런 이야기를 읽는 건 반대하지 않아요. 그런 이야기에서 나쁜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읽는다면요. 이야기 전체에서 아주 훌륭한 교훈을 얻을 수 있고, 또 마찬가지로 각 부분에서도. . . 교훈을 얻는다면 말이죠. 하지만, 제니 양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그것은 거인, 마법, 요정, 그리고 이야기 속의 모든 종류의 초자연적인 요소들은 오로지 재밌게 하는 오락적 효과를 위해 도입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붕 뜬 과장된 언어나 초자연적 장치들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읽으라고 권하기는 힘들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과장된 것들 때문에 내가 주입시키려고 노력하는 소박한 취향과 행동거지를 잊어버리게 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말이에요.”(Mrs. Teachum. . . thus spoke: ‘I have no objection, Miss Jenny, to your reading any stories to amuse you, provided you read them with the proper disposition of mind not to be hurt by them. A very good moral may indeed be drawn from the whole, and likewise from almost every part of it. . . . But here let me observe to you... that giants, magic, fairies, and all sorts of supernatural assistances in a story, are only introduced to amuse and divert: . . . . But neither this high-sounding language, nor the supernatural contrivances in this story, do I so thoroughly approve, as to recommend them much to your reading; except, as I said before, great care is taken to prevent your being carried away, by these high-flown things, from that simplicity of taste and manners which it is my chief study to inculcate.)

    IV

    최근의 아동문학 가운데 가족의 해체 과정,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향수, 대안 가족의 모색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영국의 재클린 윌슨(Jacqueline Wilson)의 『여행 가방 든 아이』(The Suitcase Kid)(1992)와 『문신한 엄마』(The Illustrated Mom)(1999), 미국의 크리스토퍼 폴 커티스(Christopher Paul Curtis)의 『버디가 아니라 버드』(Bud, Not Buddy)(1999), 맥 로소프(Meg Rosoff)(2004)의 『지금 내가 살아가는 법』(How I Live Now), 그리고 한국의 『마당을 나온 암탉』, 『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 불량가족 레시피』를 들 수 있다. 그러면 이들 작품을 통해 최근의 아동문학에 현대 사회의 가족의 변화 양상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읽어보도록 한다.

    우선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향수를 가장 강하게 드러내며, 결국 전통적 가족으로 귀환하게 되는 작품으로 『버디가 아니라 버드』를 들 수 있다. 1999년에 출간되어 뉴베리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고아에 대한 편견과 질시, 그리고 위탁가정의 학대를 묘사하는 등 사회 현실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외할아버지를 찾게 된다는 플롯과 혈연에 토대를 둔 전통적인 가정으로 복귀한다는 내용 등 이 작품은 과거의 아동문학의 패턴을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열한 살의 고아 버드는 미혼모의 아이로 여섯 살의 나이에 엄마의 죽음으로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버드는 고아들이 경험하는 위탁 가정의 보이지 않는 학대를 아이의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언어로 고발한다. 버드는 위탁 가정에 잠시 맡겨지는데, 위탁모는 친자식과 위탁아를 차별하며, 편견과 혐오감까지 보인다. “난 우리 가엾은 아기가 자기 집에서 저러 해충한테 당하고 있게 놔두지는 않겠어.”(15)라는 위탁모의 발언은 친자에 대한 집착과 위탁아동에 대한 차별을 보여주는 것으로 혈연가족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고발한다.

    버드는 한밤에 창고에 갇혀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다 공포를 이기지 못해 탈출하게 된다.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 떠돌이가 된 버드는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을 토대로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을 무작정 찾아 나선다. 버드는 아버지로 추정되는 보컬 그룹의 리더를 만나게 되지만, 그는 버드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기꾼으로 여긴다. 그러나 버드는 그 보컬 그룹에서 안정과 행복을 느끼며 이 그룹을 하나의 가족으로 여기고, 이 대안가정에 입양되기를 희망한다. 버드에게 가족이란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편안하고 따뜻한 침대를 의미한다.

    결국 버드에게 냉정하던 보컬 리더가 외할아버지임이 밝혀지면서 전통적인 행복한 결말로 작품이 끝난다. 그러나 고아들이 위탁 가정에 대해 갖는 심리적 부담이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잘 묘사되어 있어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역할도 한다. 사회복지사는 고아들에게 불황이 다가오는데도 아이들을 맡아주는 가정에 고마워하라고 강요한다. 아이들은 위탁가정에서 당할지도 모를 학대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겉으로는 “쾌활하고, 도움이 되려고 하고, 감사해하는”(3) 태도를 취해야 한다. 고아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워놓고 사회와 투쟁하는 장면은 사회복지의 허상과 맹점을 고발하지만, 역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혈연에 토대를 둔 가족으로의 복귀라는 행복한 결말은 이 작품을 사회의 전통적인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작품으로 만들어버린다.

    1992년에 나온 재클린 윌슨의 『여행가방 아이』는 이혼 후 각각 재혼한 부부 사이에서 여행가방을 들고 시계추처럼 오가는 여자아이 앤디 웨스트(Andy West)의 정신적 상처와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다. 아이에게 어느 부모와 함께 살지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는데, 이러한 상황이 아이에게 심리적 압박을 준다. 아이는 어느 쪽을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여 잃어버린 가정을 되찾기 위해 애쓰지만 이미 와해된 가정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윌슨은 현대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실적인 동시에 감상적인 문체로 담아낸다. 앤디에게 가족이란 오로지 혈연관계로 맺어진 양쪽 부모를 말하며, 집이란 부모와 함께 살던 멀베리 코티지라는 전원주택을 의미할 뿐이다. 부모가 새로 재혼하여 꾸린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가 집착하는 멀베리 코티지는 전통적인 가정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동화 속의 집 같은 이상적인 가정을 멀베리 나무, 멀베리 열매, 냄새, 맛, 후각, 시각, 미각 등으로 제시함으로써, 잃어버린 옛 가정에 대한 향수를 짙게 남긴다.

    이 작품은 전통적 핵가족의 와해로 상처받고 정서불안의 증세를 보이는 아이의 심리와 이상 행동을 묘사하고 있지만, 양쪽 부모의 새로운 가족의 이해와 노력, 그리고 옛집에 사는 동네 노인 부부의 도움으로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하는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그리고 복지상담사가 등장하여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며 부모에게 조언을 주는 등 현대 가정의 문제점을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회복지사의 등장은 19세기 말 가정사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한 것을 연상시키며, 현대 사회에 사회복지사나 상담사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들 재혼가정을 통하여 전통적인 핵가족이 와해되기 시작한 사회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확대 가족 형태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아이의 시각에서 아이들의 심리를 여실히 그리는 동시에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겠다.

    윌슨의 또 다른 작품인 1999년의 『문신한 엄마』는 현대사회의 문제 가정,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두 자매가 알콜중독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역기능 가정(dysfunctional family)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스타(Star)와 돌핀(Dolphin)은 기초생계수준 이하의 생활을 하며 사회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은커녕 엄마 매리골드(Marigold)의 이상 행동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매리골드의 온몸은 문신으로 가득하고 술과 마약과 섹스에 빠져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가지 못한다. 머리가 좋고 합리적인 열 일고 살의 스타는 실질적으로 가장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감성이 풍부한 열 세 살의 돌을 데리고 와해되기 직전의 가정을 지키려고 온갖 애를 다 쓴다. 세 모녀의 대화를 보면,

    스타는 전통적인 모성과 정반대의 모습을 한 매리골드를 견디기가 힘들어 하고, 어린 돌핀은 엄마에 집착한다. 스타는 온몸에 문신을 한 채 한 달 동안 아껴써야할 생활보조금을 단번에 써버리는 엄마에게 심한 반감을 느끼고, 돌핀은 이런 엄마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핀은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돌핀의 내면에 억압된 억울한 마음과 분노는 상상 속에서 폭력으로 표출되어 친구들을 잔인하게 응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윌슨은 부적합한 부모의 영향 아래 고통 받는 두 자매의 심리를 심도 있게 묘사하며 현대 사회의 편모가정의 문제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윌슨은 돌핀이 상상 속에서 폭력을 휘두를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문제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분노가 언제든 분출될 수 있는 위험한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현실 부적응자인 매리골드는 실연당하자 온몸에 흰 페인트를 쏟아 붓는 등 자학을 하고, 엄마가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 기질을 가진 것뿐이라고 믿는 열세살짜리 소녀 돌핀은 결국 쓰러진 엄마를 살리기 위해 병원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다. 사회와 고립된 채 가정으로 도피하여 그 속에 숨어있으려던 매리골드는 병동에 갇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문신한 엄마』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된 핵가족의 모순과 문제점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스톤의 우려처럼 근대적 핵가족은 친족이나 공동체와 절연됨으로써 가족구성원끼리 지나치게 친밀하고 과도한 애정을 보이고 이런 문제점이 내부에서 곪거나 폭발할 수 있다. 해결책은 결국 『여행가방 아이』와 마찬가지로 사회기관의 개입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도 동화적 요소가 개입하는데, 잃어버린 이상적 가정을 상징하는 친아버지가 등장하여 동화 속의 대모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한다. 매리골드는 평생 그리워한 연인 미키(Micky)를 찾아 집으로 데려와 스타의 친부임을 밝힌다. 그의 등장에 스타와 돌핀은 동화가 현실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드디어 고통 받던 삶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타는 돌핀과 함께 미키와 그의 파트너 션(Sian)이 이루는 가정으로 편입할 것을 원한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아닌 돌핀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무엇보다 메리골드를 저버릴 수가 없다. 결국 스타는 친모를 버리고 친부를 선택한다. 돌핀도 무너진 가정을 바로잡기 위해 아버지를 찾기 시작하고, 친구 올리버의 도움을 받아 수영장에서 일하고 있던 친부 마이클(Michael)을 찾아낸다.

    그러나 동화가 현실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미키는 스타로 인해 파트너 션과 갈등을 일으키고, 소심하고 현실적인 마이클에게는 이미 멕(Meg)이란 아내와 앨리스(Alice)와 그레이스(Grace)라는 두 딸이 있다. 스타와 돌핀은 이제 확대가족의 문제에 부딪힌다. 돌핀은 친부의 가정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위탁 가정에 머물게 된다. 이 작품은 두 자매가 사회기관의 도움을 받아 위탁가정에 머물며 그들만의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갈 준비를 하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은 전래동화처럼 사악한 엄마 아래 고통 받는 여주인공이 아빠의 귀환으로 행복하게 살게 되는 패턴을 따르고 있으나, 다시 이를 뛰어 넘어 확대가족의 문제등 현대 사회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다.

    이 작품은 미쳤건 못됐건 엄마는 엄마라는 돌핀의 주장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여전히 아버지의 귀환이라는 동화적 요소가 등장하고, 또 사회와 국가의 개입을 통한 해결이라는 당대 사회의 메시지가 담겨있으며, 남성, 사회, 국가가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전통적 관습의 틀을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다고 있다. 그러나 매리골드는 자신이 왜곡된 모녀관계의 희생자이며 정신병도 그 때문에 발병한 것임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잠정적으로 행복한 결말로 끝맺고는 있지만, 핵가족의 문제점을 고발하며 전통적 가족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 하겠다.

    전통적 관습의 틀을 좀 더 과감히 벗어난 작품으로 『지금 내가 살아가는 법』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뉴욕에 사는 열다섯 살의 데이지는 아빠가 재혼하자 마음의 병을 얻어 거식증에 걸린다. 데이지는 계모인 다비나는 악마이며 아빠는 악마의 유혹에 빠졌고 곧 태어날 이복동생은 악마의 씨앗이라는 상상을 하며,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계모가 자신을 독살하려고 한다고 믿는 데이지는 계모가 주는 음식을 거절하고 단식하는데 익숙해져 결국 거식증에 걸려 병원의 치료를 받는다. 정신적 치료의 일환으로 데이지는 이모와 사촌들이 살고 있는 영국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영국에서도 평화운동 같은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이모는 가정보다는 바깥일에 열성적이어서 자식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

    로소프는 결함이 있는 가족을 제시함으로써 핵가족의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전통적인 가족이 무너졌다면 어떤 가족 형태가 가능한지 모색한다. 영국의 사촌들은 아홉 살부터 십대에 걸쳐있고, 늘 개, 염소, 오리 등 동물들과 목가적인 환경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로소프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을 도입하여 전통가족과 완전히 절연된 채 사촌들끼리 가족을 구성하는 실험을 하는데, 전통적 가치관이나 보호와 감시망이 없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가 있다. 로소프의 작품에서 사회기관이나 국가, 어른들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오히려 아이들은 뛰어난 예견 능력과 대처능력이 있다. 데이지의 친모는 출산과 동시에 사망하고, 이모는 전쟁이 발발한 후 집으로 돌아오려고 국경을 넘다가 살해되고, 재혼한 친부는 영국의 사촌들 곁에서 평온함과 행복을 느끼는 데이지를 미국으로 송환함으로써 오히려 데이지의 행복을 깨뜨린다.

    이와 같이 로소프의 작품 속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않거나 방해가 된다. 전쟁 중에 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요구하는 대로 따를 때 생존할 수 있고 행복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가족이란 사랑과 편안함과 만족감을 주는 평등한 관계이고, 집이란 편안하고 행복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라고 깨닫는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전쟁이 끝날 무렵 데이지는 친부에 의해 강제로 미국의 병원으로 송환되어 6년간 감금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성인이 되자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데이지는 결국 형제끼리 동물들과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영국의 사촌들에게 돌아온다. 아버지의 집이 아닌, 여기가 데이지의 진정한 집이다. 데이지는 6년을 기다린 끝에 성인/부친/관습/법 등을 극복하고, 영국의 새로운 가족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데이지가 전쟁을 통해 거식증을 치유했을 뿐 아니라, 거부하고 증오하던 아버지의 재혼 가정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데이지는 사촌들과의 다양한 유형의 사랑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로소프의 『지금 내가 살아가는 법』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을 무대로 함으로써 부도덕할 수 있는 가족형태를 새로운 대안 가족으로 제시한 점에서 문학적 관습을 어느 정도 벗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현대 사회는 전 세계가 유사한 현상을 보인다. 서로 다른 국가, 인종, 종교에도 불구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유사한 전통의 붕괴현상을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단기간에 전통적 가족의 붕괴와 해체를 겪고 있으며, 우리 아동문학에도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성찰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대안가족에 대한 모색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2000년에 발표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면, 이 작품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교훈적이고 모범적인 작품이다. 양계장에 갇혀 살던 잎싹이라는 암탉은 병아리를 부화하여 가족을 갖는 게 꿈이다. 잎싹은 자신도 대가족인 “오리들과 늙은 개, 수탉과 암탉이 어울려 지내는 마당”(16)의 일원이 되기를 꿈꾼다. 드디어 양계장을 탈출하여 대가족의 마당으로 가지만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다른 세상”(16)임을 확인할 뿐이다. “둥우리에서 따뜻하게 알을 품고 있는 자신을” 그려보며 “늠름한 수탉이 곁을 지켜 주고 아카시아꽃이 눈처럼 흩날리고”(21)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만, 잎싹은 마당식구들에게 학대받고 소외당하고 바깥세상의 족제비에게서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그러나 버려진 청둥오리의 알을 부화하여 엄마가 된 잎싹은 청둥오리의 새끼를 아들로 삼아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아들 초록머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가 청둥오리들의 품으로 돌아가지만 키워준 잎싹을 잊지 않고, 잎싹은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아기들”(184)을 먹여 살려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어미”(184)인 족제비에게 자신을 희생한다.

    이 작품은 다문화다인종 사회에 가족이 나아갈 길을 알려주며, 전통적인 혈연중심의 핵가족의 이기주의를 비판하고 타자를 껴안는 대안 가족의 필요성을 말한다. 비록 마당식구들이 보여주는 핵가족의 모습을 부러워 하지만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잎싹은 대안가족의 행복을 추구한다. 이 작품은 감상적인 어조로 희생적인 모성을 그리며 교훈적인 어조로 앞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안으로 곪아가는 전통적 가족의 문제점을 고발함으로써 가족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아동/청소년 문학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내 마음의 스프링캠프』는 가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과 한 노인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밤 12시에 출발하는 양조장 트럭이 주무대이며, 트럭으로 전라도 광주로 가서 기차로 목포로 가서 신안 임자도의 전장 포구에 있는 보건진료소로 가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다. 주인공 준호는 시인이자 국어교사로 실종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를 마음 속에 담아두고 사는데,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자 갈등한다. 준호의 친구 규환이는 운동권인 형 주환의 도피로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준호는 다리가 부러져 꼼짝 못하는 규환이의 부탁으로 규환의 형에게 봉투를 전달하는 임무를 띠고 길을 떠나게 된다. 여기에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피해 도주한 정아와 부모의 과잉보호를 피해 가출한 양조장집 아들 승주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 탈출한 노인과 루스벨트라는 투견까지 동행하게 된다. 이들은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고 충돌하지만, 점차 가족처럼 서로에게 의존하고 아끼는 법을 배워나가게 된다.

    주인공 준호는 시인을 꿈꾸던 국어교사인 부친이 실종되어 사망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홀로 남은 모친이 사진작가와 재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준호의 친구인 승주는 동네 부잣집 외동아들로 모친의 과잉보호 때문에 질식할 것 같아 탈출을 시도한다. 승주의 모친은 집에서 살면 요절할 것이라는 미신 때문에 아들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절에 위탁하여 키우려 하자 “날 죽이는 건. . . 엄마 자신”(151)이라고 외치며 도주를 한다. 살인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부친으로부터 도망친 정아는 “내 소원은. . .엄마한테 버림받는 거”(264-65)라고 말하는데, 폭력 가장인 부친에게 매를 받고 신체적 정신적 불구자가 된 채 집에 갇혀있는 모친을 버릴 수가 없다.

    핵가족의 문제점을 지닌 여러 사람이 모여 이상한 가족의 형태를 이룬 채 트럭 위에서 여행을 떠난다는 이 작품은 핵가족의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노출하는 역할을 한다. 전통적인 핵가족이 진정 이상적인 가족 관계를 이루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도 결말 부분에서는 모두 혈연으로 얽힌 가정으로 돌아간다.

    2011년에 발표된 『불량가족 레시피』에 나타난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가장 벗어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여고생 여울은 자신의 가족을 원수로 여기고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10)를 만들어 둔 채 가출할 날만 기다린다. 자신은 마법에 걸려 갇혀있는 공주이며 자신의 가족은 왕족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가두고 괴롭히는 용이다. 가족 구성원은 모두가 불량하다. 이 가정은 팔순을 넘긴 욕쟁이 할머니가 살림을 꾸려가고, 자칫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쉰네 살의 아빠가 유일한 수입원이다. 그리고 다발경화증을 앓고 있는 이복오빠와 비만으로 고생하는 이복언니, 아내에게 속아 재산과 아이를 뺏긴 채 뇌경색을 앓고 있는 삼촌, 그리고 학교나 사회의 시각으로 볼 때 불량청소년인 주인공이 가족 구성원이다.

    이 가족은 행복한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붕괴되고 해체되어 버린 삭막한 현실을 고발하는 역할을 한다.

    아빠는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고 엄마는 가정을 버렸고 아이들은 가출만을 꿈꾼다. 이들을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밥과 돈 뿐이다. 주인공 여울은 “우리 가족은 밥 먹기 위해 유대 관계를 맺고 집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뭉쳐 사는 것 같다. 한마디로 돈으로 뭉치고 돈으로 흩어지는 위태로운 가족이다”(16)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는 붕괴되고, “폭력부터 휘둘러 대다니. 무식한 남자의 전형이다. 그러니까 이 집 여자들이 모두 도망갔지. 불곰 대문에라도 집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 . . 출가 비용이 모이려면 아직도 멀었고. . . . 머리에 갑자기 쥐가 난다. 으으으”(86-87)라는 여고생 딸의 불평처럼 가장은 가족 구성원을 학대하는 장본인이다.

    여고생 딸은 “이럴 때 부자 친척이 한 명쯤 짠 하고 나타나 준다면 진짜 좋을텐데”(119-20)라고 동화적 환상을 꿈꾸지만,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대신 주인공은 환상의 세계에서 거짓된 자아를 구축하는 코스튬 플레이에 빠져든다. 이때만이 현실 속의 자신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가족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코스튬을 마련해 자신의 현실을 잊고 피오나 공주가 되어 보지만, 가장무도회가 현실을 탈출할 방법은 결코 될 수가 없다. 이 작품은 다른 아동문학에 보이는 동화적 환상을 거부하고, 현실을 보다 적나라하게 파헤치 고 폭로하고 있다.

    와해되기 직전의 이 가정을 묶어주는 끈은 돈인데, 아빠의 파산과 구속으로 이 가정은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바닥까지 내려와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자 오히려 전통적 사고방식의 부담도 덫도 없고 아무런 끈에 묶일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입장이 된다. 구속된 아빠를 면회 간 자리에서 주인공은 가족이 모두 있으면 “아빠의 어깨가 덜 처지지 않았을까”(188)생각해보는데, 이것이 이 작품에 표현된 가족의 의미의 전부이다. 결코 현실을 회피하지도 않고 현실과 타협하지도 않으며, 환상을 부여하지도 않고, 현대 사회의 와해되어 가는 불우한 가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결말에 제시된 해결책은 “구청 사회복지사가 집으로 방문”(192)한 후 정부의 도움으로 12평짜리 임대주택에 할머니와 입주할 수 있게 되었고, 주인공이 가족의 단합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바닥까지 내려간 소외 계층이 전통적인 핵가족은 이미 깨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여러 가족 구성원이 느슨하게 모여 사는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어보려 노력을 시도하겠다는 다짐으로 끝난다. 가정이 붕괴된 현실은 인정하면서, 그래도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은 남아 있다. 앨스톤은 아동문학이 해체와 향수를 가르는 울타리에 묶여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현대의 급격한 가족 형태의 변화 앞에서 아동문학은 전통적 가족에 대한 향수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가족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상반된 입장의 경계선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136). 앨스턴의 비유처럼, 현대 사회의 아동문학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동화적 요소와 전통가족에 대한 향수를 잃지 않으면서, 전통가족이 더 이상 현실에 적합한 가정이 될 수 없다면 과연 현대 사회의 이상적 가정은 어떤 것인지 지속적으로 모색을 계속하고 있다. 『불량가족 레시피』는 최근의 아동문학 작품 가운데 전통과 해체의 울타리를 어느 정도 뛰어넘는 작품, 전통적인 핵가족에 대한 향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아동문학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현실의 변화 양상을 반영하며 가족의 와해 과정을 주로 그리면서 현실을 극복할 방법을 추구한다. 전통적인 핵가족이 이미 깨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혈연에 의한 전통 가정에 대한 향수를 보이며, 또 전통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한편 대안가족을 모색하며 비혈연가정, 확대가정, 다문화가정 등 주변으로 밀려났던 소위 ‘비정상적’가족을 인정하고자 한다.

    V

    18세기 영국사회에 신흥중산계층이 부상하면서 발생한 아동문학은 중산층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훈육 지침서의 역할을 행하는 것이 많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밀한 관계와 훌륭한 시민으로의 성장 등 교육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아동문학은 행복한 결말로 완결되는 동화적 요소가 강하고 보수적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 가족의 의미에 균열이 시작된 현대사회의 아동문학은 와해되고 해체된 가족의 양상을 그린다. 그러나 친부모를 그리워하거나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거나, 또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대모, 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인물을 만나는 동화적 요소를 여전히 담고 있다.

    아동문학도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 영국의 중산층에서 시작된 핵가족 이데올로기는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 단위로서의 가정 의의와 역할을 굳건히 하는 사회의 기본 이념이 되어 왔다. 그러나 핵가족 신화는 “철저한 배타성 위에 구축된 이데올로기인 혈연중심 가족주의”(정혜경 76)라는 지적에서 볼 수 있듯이 모순을 드러내게 마련이고 이미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은 무너지기 시작하여 이제 소수로 밀려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도,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의 가치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21세기에 들어 지옥으로 변한 가정에서 탈출할 것을 꿈꾸는 작품이나 전쟁의 와중에 부모의 개입이 완전히 배제된 아이들만의 가족을 그린 작품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동문학은 중산층 문학의 아동교육을 목표로 한 장르로 발생하였고, 동심을 예찬하며 아동의 올바른 성장과정을 돕는 특수한 장르이므로 어쩔 수 없이 보수적 성향을 지닌다. 따라서 21세기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정을 환영하고 권장하는 황선미처럼 새로운 가정에 대한 비전을 담은 것부터, 전통과 혁신의 경계선에서 화해와 타협을 시도하는 재클린 윌슨, 그리고 전통적 가족의 와해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 손현주와 맥 로소프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아동문학 작품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담겨 있는 것이다. 앞으로 아동문학은 전통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사회 변화에 적합한 가족이 과연 어떤 것일까 대한 급진적인 성찰과 모색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가족에 대한 향수와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요소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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