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헌에 나타난 연날리기의 기원과 놀이방법*

Study on playing method and its origin of kite through old liter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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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본 연구는 옛 문헌을 고찰하여 우리나라 전통연의 기원과 유래, 놀이자 연령층과 시기, 도구와 놀이방법을 밝힘으로서 유아교육에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고찰한 옛 문헌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의 문집, 예서(禮書)류, 유서(類書)류 48권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와 광복이후 남북한의 저서들도 참고하였으며, 삼국시대로부터 현대까지의 풍속화도 참고하였다. 또한, 문학작품에 진술된 연날리기에 대한 표현을 포함한 외국자료와 그림, 영화도 참고하였다. 문헌고찰 결과, 연은 세계 각 민족 사이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놀이이며 소망을 비는 기원의 목적과 오락 활동의 하나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연은 세계적인 연이 가진 공통점 외에, 연 가운데에 방구멍을 둔 과학적 측면으로 인해 상하上下, 좌우左右, 급강하急降下, 급상승急上昇등, 보다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성이 뛰어난 연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의 연날리기는 서로 연을 얼러 끊어먹기를 하는 등, 놀이자 간의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놀이 방식임을 알 수 있었다. 연날리기는 물리과학적 지식, 미술표현, 한국민의 소망 등이 포함되어 있어 교육적 가치가 높으면서도 유아의 흥미가 높은 활동이므로 연에 대한 기초 연구결과에 기초한 보다 적극적 교육활동 전개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aims to provide the basic information on teaching a child to fly a kite by showing the origin, ages, tools and playing methods of playing Korean traditional kite through the examination on 48 old literatures. These old literatures includes not only a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books for etiquette, and encyclopedia over the period from the Koryo Dynasty to Joseon Dynasty, but also several North and South Korean books published after independence. In addition, we examine the paintings from Goguryeo to present and refer to materials on flying a kite in foreign literatures, paintings and films. This study shows that kite flying is a play that have existed widely throughout the world as a form of entertainment. Korean kites and foreign kites share common features but Korean ones are the best in the world due to their ability to manuever sharply to left and right or up and down. Kite flying in Korea is a game playing together, featuring that people compete to cut the strings of other kites' by crossing each other. This feature proves kite flying in Korea is a very creative and scientific game. It is important that kite flying can be used to cultivate cognitive, physical and emotional abilities of a child depending on the level of child's development.

  • KEYWORD

    전통연 , 연날리기

  • Ⅰ. 서 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물고기는 헤엄 치고. 새는 날고, 사람은 놀이를 한다. 호이징가는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의 개념을 뛰어넘어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사람이라는 용어로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생존을 위한 움직임은 기계적 물리법칙을 따르지만 놀이는 물리법칙 이상의 활동으로서, 놀이를 하며 인간의 문명과 문화가 발전해 왔음을 강조한다.

    이제 놀이의 문화적 교육적 가치를 부정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특히 어린이의 생활은 생활 그 자체가 놀이이며 최적의 유아교육방법이라고 세계의 현대 유아교육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수준의 유아교육과정에서도 놀이를 통해 교육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유아는 놀이를 하는 동안 다른 유아의 행동을 모방하고 되풀이해 보며 탐험하고 실험하면서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 언어적 그리고 인지적으로 발달해 간다.

    놀이 중에서도 전통놀이는 오랜 시기 동안 공유한 전통사상과 신념 가치관 뿐 아니라 의식주. 음악, 미술, 춤 등 모든 정신문화와 물질문화가 융합된 문화 복합체이다. 따라서 문화 정체성 정립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전통놀이는 다양한 자연물을 소재로 놀이감을 스스로 제작하며 놀이규칙을 개방적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며 노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팽이의 원리는 미사일 인공위성 스마트 폰에도 적용되는 최첨단 물리과학적 원리가 포함되는 등 현대와 미래 사회에 필요한 과학적 요소를 비롯한 미술 문학 등 매우 다양하고 깊이 있는 현대 교육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인간 삶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놀이방식은 혼자놀이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하는 놀이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이 전통놀이의 교육적 가치가 방대하고 심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현대 유아교육의 역사에서 우리 전통놀이가 충분히 활용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특히 유치원 어린이집 등 국가가 지도감독하며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제시하는 기관에서의 교육이 더욱 그러하다. 그 원인으로는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의 민족문화말살정책과 해방이후 서구문물의 유입에 치중한 역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2007년 개정유치원에서는 개정의 대원칙으로 전통사상에 기초하여 “사람자연 존중세계관에 기초하여 개정”함을 천명하였다. 또한, 2011년 이후 유치원 어린이집 국가공통과정으로 제정 고시된 누리과정은 “사람과 자연을 존중하고 우리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구성방침을 세운 바 있다. 또한 최근 유아교육 연구 분야에서 전통문화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무엇보다도 전통놀이에 대한 연구는 놀이중심의 유아교육의 특성 상 어느 분야보다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 각 전통놀이 종류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진 않으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환영할 일이다.

    전통놀이 중 “연”은 유아에서 성인까지 모두가 즐기는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놀이 중 하나이다. 연(鳶)은 소리개를 의미하는 한자어로서, 소리개가 공중에서 날개를 펴고 빙빙 도는 모습에서 비롯된 단어로 보인다(김광언, 2004). 우리나라의 연은 외국의 연에 비하여 연의 구조가 기동성 있게 만들어 졌으므로 상하上下, 좌우左右, 급강하急降下‧급상승急上昇등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게 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연이라(최상수, 1988) 할 수 있다. 누리과정 교사용 지도서에는 연날리기에 대한 활동이 전통놀이의 한 요소로 소개되어 있고 초등학교에서도 전통놀이 연날리기에 대한 자연미, 조형미, 조형요소표현, 작품 감상에 대한 여러 교과에 걸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연에 대한 내용이 충분히 다루어지고 있지 못하며 전통 연날리기의 특성, 원리, 다양한 유형, 방법 등은 거의 소개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연날리기에 대한 연구는 연구의 수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전통놀이 전반에 대한 연구 중 한 가지로 포함되어 연구되고 있는 정도이다. 연구의 경향을 살펴보면, 전통놀이 전반에 대한 교사의 인식조사연구(김순자, 김희태, 2010; 박아영, 2005), 전통놀이 유아의 실행 현황조사연구(이기숙, 정미라, 엄정애, 2010; 허소영, 2006), 전통놀이를 경험한 후 사회성, 언어성, 창의성 등을 측정한 효과연구(공수선, 2006; 곽효순, 2005; 손혜영, 2007; 심윤정, 2010; 이선영, 2011) 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연날리기에 대한 연구는 한국전통 紙鳶(지연)에 관한 연구(이담주, 1975), 전통연의 정적 비행 성능 특성을 분석한 연구(강치행, 2009), 한국 전통연의 조형적 가치와 초등미술 교과 과정에서의 응용방안에 관한 방법(이은숙, 2002), 한국전통 연(鳶)의 역사적인 사실을 밝힌 연구(이태백, 2011)만이 있을 뿐이다. 특히, 연날리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는 연구는 이태백의 연구를 통해 시도되긴 하였으나 연날리기 놀이의 고유한 특성, 다양한 유형, 방법 등에 대한 문헌 및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연날리기에 관한 옛 문헌을 고찰하여 연날리기의 기원 및 유래, 놀이시기, 놀이대상, 놀이도구, 놀이방법을 밝힘으로서 연날리기 놀이의 본질과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연날리기 놀이가 단순한 놀이 기술이나 놀이 명칭 전달식 교육이 아니라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현실 적용 가능한 유용한 교육실천에 기여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을 위한 구체적인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연구문제 1. 연날리기의 기원 및 유래는 어떠한가?

    연구문제 2. 연날리기의 놀이시기와 놀이자 연령층은 어느 때인가?

    연구문제 3. 연날리기의 놀이도구와 놀이형태는 어떠한가?

    Ⅱ. 연구방법

    본 연구에서 살펴본 문헌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우리나라 문헌을 대상으로 하였다. 문헌 유형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편년체사서(編年體史書)에서 우리나라 생활모습이 담겨져 있는 세시기(歲時記), 문집, 예서(禮書)류이다. 또한 놀이의 명칭과 내용에 관한 기록이 있는 백과사전과 같은 형식의 유서(類書)류도 참고하였다. 연구대상으로 선정한 문헌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41』, 『고려사高麗史‘충선왕’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지봉유설芝峯類說권18 잡기雜技』, 『두타초頭陀草』, 『농제속담弄題俗談(안화당 사집安和堂私集)』, 『세시기歲時記(추재집秋齋集)』, 『경도잡지京都雜志권2, 세시歲時』, 『현동집玄同集』, 『상원리곡上元俚曲(담정유고)』, 『상원죽지사上元竹枝詞(추재집秋齋集)』,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대산집臺山集)』, 『세시기속歲時記俗(면암집勉菴集권2)』, 『세시풍요歲時風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 『입재유고立齋遺稿권2』, 『귤옥졸고橘屋拙稿상』, 『오아재집聱齖齋集권2』, 『후계집后溪集권3』, 『용포집龍浦集권1』, 『무명자집無名子集』, 『낙하생집洛下生集』, 『습재집習齋集』, 『석당유고石堂遺稿권4』,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책8』, 『계곡집谿谷集권33』, 『고산유고孤山遺稿』, 『농암집農巖集권6』, 『담헌서湛軒 書권8』, 『목은집(牧隱集)권18』, 『성호사설星湖僿說』, 『나재집懶齋集권2』, 『석주집石洲集권7』, 『완당전집阮堂全集권10』, 『일동기유日東記游권3』,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권27-29』, 『임하필기林下筆記권14』, 『연행기사燕行記事하』, 『조선왕조실록명종21년』, 『호곡집壺谷集권9』, 『은송당집恩誦堂集권2』, 『연원직지燕轅直指권6』, 『연행일기燕行日記권7』,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한정록 권8』, 『우서迂書권10』으로 총 48권이다.

    이밖에도 미국의 인류학자 스튜어트 컬린(S. Culin: 1858-1929)이 1895년에 한국·중국·일본의 놀이를 비교하여 저술한 『한국의 놀이Korean Games』(윤광봉, 2003), 일제치하의 1936년에 조선총독부가 각 도지사에게 조회하여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향토오락을 조사 정리한 《朝鮮の鄕土娛樂》(무라야마 지준, 1936)을 번역한 『조선의 향토오락』(박전열, 1992), 1996년에 전경욱이 기술한 한‧중‧일의 연의 역사와 민속, 1985년에 최상수의 한국 민속놀이 기원을 서술한 『한국 민속놀이의 연구』, 1995년에 유재혁이 우리나라의 연과 세계의 연을 비교하여 저술한 『연의 세계 세계의 연』, 우리나라 문화인류학자인 김광언이 놀이의 기원에 초점을 맞춰 2004년에 저술한 『동아시아의 놀이』, 민속학자 심우성의 『우리나라 민속놀이』, 도유호 외 북한 학자가 쓴 『조선의 민속놀이』 등의 문헌도 참고하였다. 또한 연날리기에 관련한 세계 여러 나라의 관련 내용을 위해 문학작품에 진술된 연에 관한 기록, 우리나라와 외국의 그림에 나타난 연날리기 장면 자료도 참고하였다.

    Ⅲ. 연구결과

    우리나라 옛 문헌을 고찰하고 다른 나라의 문헌 자료 내용을 참조하여 살펴본 우리 전통 연날리기의 기원과 유래, 놀이시기와 연령층, 놀이방법의 내용과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연날리기의 기원 및 유래에 관련한 기록 내용은 무엇인가?

    연날리기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41』 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으로서 그 내용은 <표 1>과 같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1145년(인종 23년)경에 김부식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고구려‧백제‧신라)시대의 정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본기(本紀)28권, 지(志)9권, 표(表)3권, 열전(列傳)10권이 들어가 있다.

    「우인偶人을 만들어 연에 달아 불을 붙여 띄웠다(乃造偶人 抱火載於風鳶而颺之 若上天然)」는 문장을 통해 우리 나라 연의 기원은 당시의 전쟁 수단의 하나로 연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고. 신라 진덕여왕 원년은 물론 최소한 그 이전 시대인 삼국시대에도 연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추정은 기존의 연구자들도 같은 추정을 하고 있기도 한 부분이다(심우성, 1996; 최상수, 1988). 또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상원上元에서는, 고려 말에 최영(崔瑩)장군이 탐라(제주도)를 정벌할 때(諺傳昉自崔瑩伐耽羅之役國俗至今行之) 연을 이용하여 사방이 절벽인 섬에 상륙했다고 하여 그 기원을 말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삼국 시대 기원설과 아울러 생각해 볼 때 최영(崔瑩)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있던 지연紙鳶을 임기응변 책으로 응용했다고 생각함이 타당할 것(최상수, 1988)이라고 본다. 한편, 문서는 아니지만 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천 1호 벽화고분의 앞방 서벽에는 씨름, 사냥, 술래잡기, 춤과 노래, 수레바퀴 던지는 재주 부리기 등 고구려 시대에 행해지던 다양한 놀이가 그려져 있다. 이 가운데 새 모양의 연을 날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으며 이는 다음 [그림 1]과 같다.

    즉, 초기의 연은 새의 모습이었다. 아래쪽에 있는 사람은 손목을 위로 올리고 고개를 젖혀 새를 바라보고 있다. 비록 연줄은 분명히 식별할 수 없는 상태이나, 연날리기 모습임이 분명하다고 보여지며 신라에 앞서 고구려에서도 연을 날렸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연날리기 놀이의 기원과 시기는 연에 대한 명칭에 대한 논의와 밀접히 연결되므로 명칭을 살펴보며 논할 필요가 있다. 옛 문헌에서의 연날리기를 칭하는 명칭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는 문헌은 총 37권이었으며 그 내용은 표 2와 같다.

    표 2와 같이 연날리기를 뜻하는 명칭은 주로 ‘지연紙鳶, 풍연風鳶, 방연放鳶, 풍금風禽, 풍쟁風箏’을 혼용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은 솔개의 한자 연鳶에서 솔개가 공중에서 날개를 펴고 빙빙 도는 모습에서, 바람을 타는 연을 떠올린 것이다. 방연放鳶은 자유자재로 날 수 있는 연이라는 뜻에서, 풍금風禽은 짐승의 하나인 새처럼 바람을 타고 날 수 있는 연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인 것으로 보인다. 지연紙鳶은 종이연이라는 뜻에서, 풍연風鳶은 바람에 쌩쌩 날리는 연을, 풍쟁風箏은 바람에 날리는 연의 소리가 거문고와 비슷한 13현의 악기나 풍경風磬을 의미하는 명칭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명칭에 대한 해석은 김광언(2004), 도유호 외(1999), 심우성(1996), 전경욱(1996), 최상수(1988)도 그렇게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다. 본 연구에서 살펴본 문헌의 시대와 연에 관한 명칭을 연관해 보면, 일반적으로 시대를 불문하고 지연紙鳶이라 많이 불렀으며 풍연風鳶은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방연放鳶은 18세기 중반부터의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17세기 중반 유만공의 『세시풍요』에서는 유일하게 연을 풍금風禽이라 불렀다. 즉 연이 서로 쫒아 구름 속으 로 들어가니風禽相逐入雲中’에서 연이 구름 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다투어 연을 높이 올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9세기 초중반에 우리나라 연을 풍쟁風箏이라 부른 것은 바람을 타고 날리는 연의 소리에 대한 기록으로 사료된다. 결국 연의 명칭은 시대 전반에 걸쳐 연의 소재에 의한 명칭을 주로 사용하였고 점차 연이 나는 모습, 바람을 타는 연의 소리 등에 의한 별칭도 혼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연은 누가 만들었으며, 언제부터 있어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서양에서는 B.C. 400년대에 그리스의 대철학자 플라톤의 친구인 알타스(Altas)가 연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한다(최상수, 1988). 중국은 우리나라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이 연을 만들었다韓信作紙鳶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設에서 볼 때 당唐대(618년-907년)에도 연을 날렸음을 알 수 있다.

    小說(소설)에 말하기를 ‘양무제(梁武帝)가 臺城(대성)에 있을 때 어린애가 꾀를 바쳐서 종이로 연을 만들었다. 이것을 이용해서 詔書(소서)를 매달아 바람에 날려 보내어 외국의 구원을 구했다 한다’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이 상원이면 종이연을 가지고 놀이를 한다. 상고하건대 당나라 로덕연路德延이 해아시孩兒詩에 말하기를 ‘실을 더해서 종이연을 날린다’라고 하였으니 이것도 그 유래가 역시 오래 되었다.小說曰 梁武在臺城 有小兒獻計 以紙爲鳶 繫詔書 因風縱之 以求外援 今我國小兒於上元日 以紙鳶爲戲 按唐路德延孩兒詩云添絲放紙鳶 其來亦久矣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김호동, 2003) 415쪽을 살펴보면 13세기말의 중국 천주泉州지방 연 풍속에 돛이 선원의 혼이고, 연은 돛의 분신이라고 여기고 항해에 앞서 버드나무 가지로 큰 네모꼴 연을 만들어 여덟 줄의 바를 매고 바보나 술꾼을 매달아 날린다. 연이 높이 올라가면 바다가 잔잔하리라 믿고 떠나지만, 뜨지 않으면 아무도 배에 타지 않는 것은 항해 도중에 재앙을 만난다는 것으로 중국의 연을 기술하였다.

    태국의 풍속지를 보면 성안의 군사를 몰아낼 때 무서운 동물상의 연을 만들어 띄워 성안의 군사로 하여금 놀라게 하여 사기를 꺽은 뒤 성을 함락 시켰다는 얘기가 있다. 일본에서도 전쟁 중 연을 이용하였고, 집을 지을 때 벽돌 등을 연에 매달아 쉽게 올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왜명초倭名抄에 종이 연을 지노치紙老鴟라 하여 일본의 연은 올빼미 형상을 한 것이라고 한다. 영국 인류학자 해든A. C. Haddon A. C.은 인도네시아 부근에서 때로 바람에 날려 올라가는 카누의 돛이 연의 시초라고 하였다.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는 1558년에 연 만드는 방법을 그림으로 나타낸 책이 나왔으며 연을 평화의 상징으로 삼은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마을에 연이 떠 있으면 밖의 사람들이 안심하였다고 전한다.

    다른 나라의 연에 관한 명칭으로 영국과 미국은 KITE, 스페인은 COMETA, 브라질과 포르투칼은 PAPA-GAIO, 인도는 SARUNGAL, 태국은 남자연CHULA-여자연PAKPAO, 독일은 DRACHEN, 인도네시아는 LAYANG, 그리스는 AETOS, 중국과 대만은 풍쟁風箏, 일본은 다코, 프랑스는 CERF-VOLANT, 베트남은 GAI-DEU, 이탈리아는 AQUILONE으로 세계 여러나라에 보편적으로 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The Kite Runner(연을 쫓는 아이)라는 영화와 같이 연날리기는 어떤 문화권에서도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아이들이 마을의 어른들과 함께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 즐기는 전 세계의 놀이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연이 종종 자유의지(free will)의 표상으로서 자유롭게 날고 싶어도 연줄에 의해 묶여질 수밖에 없는 인간 정신의 한계를 종종 의미 하였다(김일구, 2011). 예컨대 18세기 영국의 존 헨리뉴턴(John Henry Newton)은 연에 대해 줄 없이 날다 바람에 떨어지는 연을 보면서 종종 신을 잊고 자유의지대로 행하다 파괴되는 두려움을 나타나며 인간은 신의 ‘통제하는 손’(ruling hand) 속에서 은총과 사랑을 찾아야만함을 강조한다. 연의 보이지 않는 끈을 죄수의 속박처럼 서구의 일반 대중이 여기는 부분은, 동양문화에서의 연의 개념과는 상이한 부분으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앞에서 살펴본 옛 문헌이나 미술작품 등 역사적 기록 내용을 종합하여 우리나라 전통 연날리기의 유래와 관련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 연날리기 놀이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문서의 최초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이며 이는 7세기에 우리나라에 연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그 이전부터 이미 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천1호 벽화고분의 앞방 서벽에 그려진 다양한 놀이 중 새 모양의 연을 날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다. 즉 연날리기는 우리나라에서 5세기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놀이가 외부로부터 유입된 놀이로 해석하려고 하는 관점을 연의 기원에 대한 논의에서도 재고되어야 한다(문미옥, 2012), 연은 거의 전 세계적으로 다 존재하는 놀이이며 바람에 나 뭇잎 등이 날리는 현상이 연놀이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관점에 비추어볼 때 연의 기원에 대한 결론은 일방적인 문화유입설보다 각 문화권에서 자생적이고 독립적으로 발생되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D. W. Gould, C. N. Potter, 1973, 문미옥, 2012). 특히, 종이로 제작되는 연의 특성상 보존이 어려워 많은 부분이 국한된 사료와 구전에 의한 해석과 추측의 범위를 넘을 수 없다. 따라서 옛문헌과 벽화를 통해 우리 나라 연의 기원이 5세기 경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기록상의 기원이며 실재의 연의 기원은 아직 확정할 수 없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우리나라 연의 존재시기와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될 문헌 자료 등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2. 연날리기의 놀이시기와 놀이자 연령층은 어느 때인가?

    1) 놀이시기

    연날리기 시기에 대한 내용은 22개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며 그 내용은 표 3과 같다.

    표 3에서 알 수 있듯이 연날리기 시기에 대한 언급은 ‘7월 3일(가을), 정월, 정초, 상원일, 원조, 원소, 정월 대보름’, ‘10월초에서 정월 대보름까지’, ‘겨울에서 정월 보름까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7월 3일은 음력 7월인 가을을 의미하고 정월은 1월, 정초는 1월 1일 즈음, 원일은 으뜸되는 아침이라는 의미로서 1월 1일, 원조는 설날, 상원일과 원소는 정월 대보름을 말한다. 연을 날리는 시기는 『동국이상국집』의 문헌에서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음력 7월부터 연을 날렸으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까지가 본격적으로 놀이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보름이 되면 ⌜厄(액)연 띄운다⌟하여 연에다 ⌜厄(액)⌟자 하나를 쓰기도 하고 ⌜送厄(송액)⌟이니, ⌜送厄迎福(송액유복)⌟이라 써서 날리고는 얼레에 감겨 있던 실을 죄다 풀고 얼레 대 밑에 있는 실을 끊어서 멀리 날려 보낸다(최상수, 1988). 그런데 정월 대보름에 액厄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하여 띄운 액厄연이, 떨어지는 곳의 집에는 그 해에 반드시 액厄이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정월 대보름날 집안에 액厄연이 떨어지는 것을 꺼리는데 만약 떨어지면 그 연을 곧장 집 밖으로 가지고 나와 불살라 버린다. 왕가에서 액厄이 떨어지는 것을 꺼리는 예로 『조선왕조실록 명종 21년』은 연을 날려 금중(대궐안)에 추락한 일에 대해 오부 관령을 추고하여 치죄하게 하였다. 『일성록』은 파수군 전우룡이란 자가 몰래 종묘의 무너진 곳에 들어와 손에 종이연을 가지고 도로 나가다가 잡힌 사건을 적고 있는데 연이 민가에 추락하는 것은 떨어진 장소에 액厄을 받기 때문에 모두가 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동국세시기』에서 보름날이 지나면 다시는 연을 날리지 않는다고 하였고, 『세시기속(면암집 권2)』과 『한양세시기』는 보름이 지난 후에도 연날리기 놀이를 하면 사람들이 ‘버들고리장이나 소 잡는 백정’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는 연만 날리다가는 그 해 농사 준비가 늦어질까 염려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리백정’은 고리버들이 자라는 물가를 따라 이동하면서, 고리버들로 물건을 담는 고리짝 같은 것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이들 가운데 소를 잡는 백정이 나왔는데 이들이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긴 것으로(전경욱, 1996) 판단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

    일제강점기에 각 지역별로 놀이를 조사한 『조선의 향토오락』(박전열, 1992)에서도 연날리기 시기는 주로 정월, 정초, 명절, 정월대보름, 봄, 3월, 8월, 10월, 가을, 겨울, 수시로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수시로 연날리기 놀이를 한 지역은 평안남도 진남포지방과 개천지방뿐이다. 심우성(1996)은 지역별 놀이 시기가 달라 남부지방은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날까지”, 북부지방에서는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부터 정월 대보름날까지”, 전경욱(1996)은 연날리기가 오락으로 삼게 됨으로서 정초부터 정월 보름사이로 고정되었다고 기술했고, 도유호 외(1999)는 “초겨울에서 대보름까지”, 스튜어트 컬린(2003)은 “정월 대보름”이라고 특정한 날을 언급하였고 최상수(1988)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까지” 연날리기 놀이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옛 문헌에서는 연날리기 놀이는 가을부터 겨울이나 정월 대보름 즉 농한기와 새해를 앞두고 이뤄지는 놀이였으나 근 현대문헌에서는 수시로 즐겼던 놀이임을 알 수 있었다.

    2) 놀이자의 주 연령층

    연날리기에 적합한 연령과 관련한 내용에 대한 기록은 총 25권의 문헌에서 살펴볼 수 있었으며 그 내용은 표 4와 같다.

    표 4에서 보면 어린아이, 아동, 성인, 노인 등 남녀노소 누구나 놀이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농가십이월속시는 성인남자가 연을 날리고 열양세시기에는 남아는 연날리고 여아는 뒤웅박차고 다닌다는 내용 등에 비추어보면 활동량이 많은 연날리기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활발히 한 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옛 문헌 다수에서 아이가 연날리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어디에도 남아라는 표현을 하지 않고 ‘아이’라고만 하고 있어 남아 여아 모두가 연날리기 놀이를 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즉 조선시대 옛 문헌에서는 남녀 구분없이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근현대문헌 중, 일제강점기에 각 지역별로 놀이를 조사한 『조선의 향토오락』(박전열, 1992)에서도 연날리기 놀이의 대상을 남자, 어린이, 소년, 남자어린이, 청소년이라 기록하였고, 도유호 외(1999)는 “소년들”, 심우성(1996)은 “남녀노소”, 김광언(2004)은 풍속화를 통하여 남녀 아동이 놀이를 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최상수(1988)는 아이, 젊은이, 어른 심지어 임금도 즐기던 놀이로 기술하였다. 스튜어트 컬린(2003)은 한국에서는 왕을 비롯한 모든 계층이 관습적으로 연을 날리고 여인들은 때때로 마당에서 연을 날리는데, 보이지 않아도 여자들이 날리는 연은 누구나 구별할 수 있다고 하여 남녀노소, 신분의 구별 없이 누구나 즐겨오던 놀이임을 기술하였다. 즉 근 현대 문헌 역시 옛 문헌과 마찬가지로 연날리기 놀이의 주 연령층이 따로 있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놀이로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연날리기의 놀이도구와 놀이형태는 어떠한가?

    1) 연날리기 놀이도구

    ⑴ 연

    연날리기 놀이의 연 소재에 대한 기록은 『경도잡지京都雜志』, 『한양세시기』, 『동국세시기』, 『낙하생집洛下生集』, 『나재집懶齋集권2』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며 그 내용은 표 5와 같다.

    표 5와 같이 연을 만드는 소재는 대(竹)와 종이를 이용하여 한지에다 대오리(연달)를 붙여 키모양이나 네모 모양으로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연에는 연 바탕에 다양한 종류의 무늬와 모양에 따라 바둑판연(기반연碁斑鳶), 고양이눈깔연(묘안연猫眼鳶), 까치깃연(작령연鵲翎鳶), 고기비늘연(어린연魚鱗鳶), 용꼬리연(용미연龍尾鳶), 머리 부분은 화살촉과 같고 꼬리는 깃발과 흡사한 가오리연 등 갖가지 연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각 지역별로 놀이를 조사한 『조선의 향토오락』(박전열, 1992)에서 대쪽으로 틀을 짜고 그 위에 종이를 발라 만든 장방형 연의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종이연에 실을 매고, 얼레를 조정해서 하늘 높이 날린다고 기록하였다. 심우성(1996)은 대나무와 종이를 이용해 방패연을 만들고, 전경욱(1996)은 방구멍이 뚫려 있는 방패연, 어린이들이 날리는 꼬리가 달린 가오리연, 제작자의 창의성에 따라 만드는 창작연이 있음을 기술하였다. 도유호 외(1999)는 연을 만드는 기본 재료는 살(일명 ‘달’)과 종이, 실이라고 하였고 김광언(2004)은 네모 연은 그림을 그린 것, 색종이를 오려붙인 것, 색칠을 한 것, 꼬리 나발을 단 것 등 제작방법에 따라 연을 분류하였다. 스튜어트 컬린(2003)은 한국의 연은 직사각형이고, 대나무살에 질긴 종이를 씌워 만들어지며 가운데에 둥근 구멍이 있고 그 색깔과 꼭지에 따라 구별된다고 기술하였다. 연은 문헌 모두의 결과를 통하여 무늬와 모양에 따라 다양하나 크게는 둥근 구멍이 있는 방패연과 꼬리 나발을 단 가오리 연, 창작연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⑵ 연실

    연실에 대한 기록은 다음의 총 7개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며 내용은 표 6과 같다.

    표 6에서 알 수 있듯이, 연날리기 놀이의 연실 소재로는 황사黃絲(누런 실), 백사白線(명주실), 면사棉絲(무명실)를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담정유고』 상원리곡에서 영성위가 사용한 흰연줄白索의 의미는 『세시풍요』에서 중국 당나라 명주실로 영성궁이 연을 날리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흰 명주실을 말하는 것이라 확정할 수 있다. 영성위는 영조 때 부마로 화협옹주의 부군인 신광수(申光綏)를 가리키는데 종이 연을 몹시 좋아했기 때문에 당백사 즉 명주실로 연을 날렸다는 내용이며 흰 연줄이라고 번역된 백삭白索(흰백, 동아줄삭)은 흰 명주실이라고 번역했어야 함도 알 수 있다. 연줄이 튼튼해야 멀리 연을 날리므로 명주실을 이용한 연줄은 당대에 흔하지 않아 영조의 부마 영성위 신광수의 연줄이 이목을 끌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백사白線(명주실)는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목화솜에서 만든 실인 면사棉絲(무명실)보다 질기고 튼튼해서 연주로는 더욱 튼튼한 실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심우성(1996)은 연실로 주로 상백사常白絲(우리나라의 명주실)‧당백사唐白絲(중국의 명주실)‧무명실을 사용했음을 기술하였다. 전경욱(1996)은 연실로 상백사常白絲(한국산 명주실)‧당백사唐白絲(중국산 명주실)‧떡줄‧세철사細鐵絲줄 등 다양한 것이 사용되었다고 하였고, 도유호 외(1999)는 연실은 무명실, 베실, 명주 실 등을 쓰는데 명주실이 가볍고 질겨서 가장 좋다고 기술하였고, 스튜어트 컬린(2003)은 연실은 순견사純絹絲(명주실)로 만들어지며, 때때로 색이 있는 것도 있는데 왕궁에서는 하늘색이 사용된다고 서술하였다. 김광언(2004)은 옛문헌을 통해 가볍고 질긴 명주실이 가장 으뜸이라고 밝혀두었다. 옛 문헌과 근 현대문헌에서 서민들과 젊은이,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황사黃絲(누런 실), 면사棉絲(무명실), 베실을 많이 활용하였고 왕궁이나 높은 신분 계층에서만 백사白線(명주실)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⑶ 얼레

    얼레는 연줄을 감는 데 쓰는 기구이다. 얼레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는 문헌은 총 7개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며 그 내용은 표 7과 같다.

    표 7에서와 같이 얼레를 나타내는 명칭은 거확車籰, 소거繅車, 연자새 또는 연패, 고거柧車, 선거線車, 낙거絡車, 자새絲籰(사확) 또는 말고삐緧(추) 및 실패 등 다양한 용어로 일컫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낙하생집』에서 명주실을 감은 팔모얼레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세시풍요』와 『담정유고』 상원리곡에 나타난 얼레는 영조의 부마 영성위 신광수가 명주실을 사용한 팔모얼레로 밝혀졌다. 즉 명주실을 연줄로 쓰는 경우 팔모얼레를 많이 이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경도잡지』에서는 둥근 것, 육모, 팔모의 얼레의 형태 중에 둥근 얼레가 실이 많이 감기는 데다가, 풀거나 감기 쉽다고 하고 있다.

    심우성(1996)은 얼레의 재료와 구조를 소개하였고, 도유호 외(1999)는 지방에 따라 그 형태와 명칭을 다르게 기술하였다. 최상수(1988)는 나무로 만든 얼레와 감고 푸는 데 편리한 형태를 소개하였다. 전경욱(1996)은 얼레로 기둥의 숫자와 모양에 따라 사모, 육모, 팔모, 볼기짝얼레 등을 소개하였다. 얼레는 경기를 하는 경우 연실의 파손이 적어 감고 풀기가 쉬운 육모얼레나 팔모얼레를 많이 사용한다고 기록하였다. 스튜어트 컬린(2003)은 얼레 길이와 네 가지 색깔의 견사가 얼레에 감겨 있는 것을 나타냄을 볼 수 있었다.

    옛 문헌과 근 현대문헌 모두에서 얼레의 다양한 명칭, 형태를 소개하여 활용하기 좋은 얼레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 놀이형태

    우리나라의 연 놀이에는 민속 신앙적인 면과 오락성의 양면을 지니고 있는데 민속 신앙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액厄막이 연날리기’가 있고 오락성으로 볼 때 연싸움이 있다. 연날리기 놀이의 놀이형태는 총 14권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며 그 내용은 표 8과 같다.

    표 8에서와 같이 연날리기 놀이 형태는 연싸움과 액厄막이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표 3에서 설명하였듯이 액厄막이 연은 한 해의 풍년을 빌고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과 함께 모든 불길한 것을 멀리 내쫒는다는 뜻이 강하게 빠짐없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표 4에서와 같이 연날리기는 젊은이와 어른들도 많이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싸움은 다른 연과 얼려서 끊어먹기도 많이 하므로 대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청장년은 청장년들끼리 많이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겹친 실에 아교나 치잣물, 사금파리가루나 구리가루를 바른 실은 연을 높이 띄우기, 재주부리기, 끊어먹기(연싸움)를 하는 경우 연실이 끊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연실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높이 띄우는 연은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을 세차게 받기 때문에 연이 파손되거나 바람의 압력으로 무리가 생겨 연실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중국, 일본 등 세계의 연이 높이 띄우거나 그림, 모양 등에 관심을 두는 것(이태백, 2011)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재주 부리기 연은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서 연은 왼쪽‧오른쪽으로, 급전急轉‧급강하急降下‧급상승急上昇등 다양한 공중곡예를 부린다(심우성, 1996). 우리나라 연만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다양한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연날리기는 과학적 원리가 내포되어 있는 야외현장 학습활동이라고(이태백, 2011) 할 수 있다. 연싸움은 연을 높이 띄우고 재주를 부리며 서로 연을 얼러 끊어먹기를 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일제강점기에 각 지역별로 놀이를 조사한 『조선의 향토오락』(박전열, 1992)에서 종이연을 바람에 띄워 올려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액막이의 글귀를 써 넣어 연을 날리고, 서로 실을 엇걸어 당겨서 상대방의 연줄을 끊어 날리는 것을 기록하였다. 김광언(2004)은 옛 문헌을 통하여 액厄막이연과 연싸움을, 도유호 외(1999)는 액厄막이 연과 연실 끊기를 기술하였다. 심우성(1996)은 송액送厄연과 연 높이 띄우기, 연 재주 부리기, 연 끊어 먹기(연싸움)를 서술하였다. 전경욱(1996)은 액厄막이연, 연싸움, 기복연을 기술하였고, 스튜어트 컬린(2003)은 연에 소원을 써서 날리고 연싸움인 ‘연얼리기’는 단순한 연날리기보다 더 선호된다고 하였다. 또한 한국에서는 사전 합의에 의해서 연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며, 연의 소유자들은 연을 두고 내기를 하지 않는다고 소개하였다.

    여러 문헌을 통하여 연날리기의 놀이 형태로서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액厄막이연과 상대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을 하는 것으로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문헌에서와 같이 현대의 놀이 방식은 무속신앙에 근원을 두는 액厄막이 연의 형태와 연줄을 끊는 연싸움의 형태보다는 연을 날리는 것에 의미를 두는 형태로 바뀌었다. 연날리기가 근대 국가 원수도 적지 않은 관심을 드러내었다. 즉 1957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연날리기에 관심을 나타내자 전국 각처에서 연날리기가 성행하였고, 경향京鄕(서울과 시골) 각 기관에서도 해마다 대회를 열어 성황을 이루었다(최상수, 1988). 표 5와 같이 옛 문헌에서 네모모양, 바둑판무늬모양, 둥근모양, 방패모양, 고양이눈모양, 까치날개모양, 물고기 비늘모양, 용꼬리모양의 방패연과 가오리연의 형태로 나타났다. 현대에 여러 가지 모양의 연을 말하는 창작연은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 인물人物연(도령연, 춘향연, 수염 할아버지연)과 동물動物연(호랑이연, 까치날개연, 지네연, 거북연) 등을 들 수 있다(최상수, 1999). 현재 사용되고 있는 창작연은 그 형태로 보아 묘기를 부리기는 어렵고 공중에 높이 날려 그 모양을 보고 즐기는 멋으로 볼 수 있다(이태백, 2011). 따라서 지금의 창작연은 외국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 연 날리기 대회에 우리나라는 창작연을 날리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의 감각을 살리고 생활에 맞는 창작연을 개발‧발전시킬 필요도 있다고 사료된다.

    Ⅳ. 결론 및 제언

    본 연구의 결과를 종합한 내용과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에 대한 가장 최초의 문헌 기록은 삼국사기로서 7세기 신라 선덕여왕 16년(서기 647년)에 김유신이 전쟁 수단의 하나로 연을 이용했다는 기록이며, 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천 1호 벽화고분에 새모양의 연을 날리는 그림이 가장 오래된 연에 대한 관련 자료임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최소한 삼국시대나 그 이전부터 연을 날렸을 것이며, 세계 여러 나라가 대부분 연을 날린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 연의 기원 역시 그 시기가 더 오래되었을 것이며, 자생적으로 발생하여 발전해 온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둘째, 연을 칭하는 명칭은 주로 ‘지연紙鳶, 풍연風鳶, 방연放鳶, 풍금風禽, 풍쟁風箏’ 을 혼용하였으며 시대를 불문하고 지연紙鳶이라고 주로 표기하였음도 알 수 있었다. 그 외의 명칭들은 연이 나는 모습, 바람을 타는 연의 소리 등의 특징을 통해 명명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연날리기를 하는 시기는 옛 문헌에서 ‘7월 3일(가을)에서 1월 15일(정월 대보름)까지’의 기간에 주 연령층이 따로 있지 않고 남녀노소, 신분의 구별 없이 누구나 즐겨오던 놀이임을 밝혀내었다. 고려시대에는 음력 7월 가을부터 연을 날렸으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가 본격적으로 놀이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향토오락』(박전열, 1992)은 수시로 연날리기 놀이를 한 지역으로 평안남도 진남포지방과 개천지방에서 이뤄졌음을 밝혀내어 근 현대로 오면서 계절에 상관없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연날리기가 정초나 대보름에 많이 행해지는 이유는 한해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액厄막이 연을 띄우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보름 이후에 연날리기를 하는 사람을 ‘버들고리장이나 소 잡는 백정’이라 부른 것은 연만 날리다가는 그 해 농사 준비가 늦어질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며 농업이 주업인 전통사회에서 놀이를 경계하고 농사를 위한 일에 전념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넷째, 연을 만드는 소재는 대(竹)와 종이를 이용하여 한지에다 대오리(연달)를 붙여 키 모양이나 네모 모양으로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연에는 연 바탕에 다양한 종류의 무늬와 모양에 따라 갖가지 연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실 소재로 서민들과 젊은이,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황사黃絲(누런 실), 면사棉絲(무명실), 베실을 많이 활용하였고 왕궁이나 높은 신분 계층에서만 백사白線(명주실)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섯째, 연실을 감는 얼레를 나타내는 명칭은 거확車籰, 소거繅車, 연자새 또는 연패, 고거柧車, 선거線車, 낙거絡車, 자새絲籰(사확) 또는 말고삐緧(추) 및 실패 등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얼레의 형태는 둥근 것, 육모, 팔모이며, 둥근 얼레가 실이 많이 감기는 데다가, 풀거나 감기 쉽다고 하였다. 반면 명주실을 연줄로 쓰는 경우 팔모얼레를 많이 이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레를 나타내는 다양한 명칭이 많은 것은 지역에 따라 다르며 연날리기를 하는 경우 연줄을 감은 얼레의 중요한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여겨 진다.

    여섯째, 연날리기 놀이의 형태는 연싸움과 액막이연의 형태로 나타났다. 연싸움은 연을 높이 띄우고 재주를 부리며 서로 연을 얼러 끊어먹기를 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연을 얼러 끊어먹기를 할 때는 반드시 겹친 연실에다 돌가루, 사기가루, 구리가루 등 유리가미를 먹여 날리는 것이 연싸움에 이기기 위한 방법이었다. 연의 오락적 기능을 이용하여 아이들과 청장년층이 승부를 가르는 것은 연싸움이 지닌 그룹게임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전통놀이라고 보여진다. 중국, 일본 등 세계의 연이 높이 띄우거나 그림, 모양 등에 관심을 두는 것(이태백, 2011)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연은 방패연에 있는 방구멍으로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다른 나라에 없는 독특한 것이다. 또한 날리는 사람의 손놀 림에 따라서 연이 왼쪽‧오른쪽으로, 급전急轉‧급강하急降下‧급상승急上昇등 다양한 공중곡예를 부릴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연임을 알 수 있었다.

    위의 결과 및 결론을 토대로 유아교육을 위한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연날리기 놀이는 우리 고유의 대표적인 전통놀이로서, 보다 활발히 교육과정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유아들이 성인이 만든 연을 단순히 날려만 보는 1회성 경험에 국한되는 교육방식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특히 시판하고 있는 연의 크기는 유아가 날리기에 거의 불가능하다. 성인이라 할지라도 매우 넓고 바람이 많은 장소가 아니면 날리 기가 쉽지 않다. 유아에게 성인에게 적합한 크기의 연을 제공할 뿐 아니라 바람도 없고 협소한 공간에서 날려보게 하는 것은 실패감만 경험하게 하여 동기유발에 역효과가 될 수도 있다. 연을 유아에게 맞는 크기로 만드는 경우 좁은 공간에서도 유아가 쉽게 날릴 수 있다. 또한 연을 만드는 과정에 유아가 동참함으로서 다양한 과학적 원리를 경험하는 기회가 된다. 또한 제작 과정과 연날리기 활동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미술 문학 신체표현 등 모든 분야가 통합될 수 있다. ‘연’이라는 주제가 몇 달 간의 프라젝트로 진행하기에도 충분한 교육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생활주제 주제 소주제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 해야 할 것이라 본다.

    둘째, 교사 양성대학의 교육과정이나 교사 재교육 연수과정에서 전통문화 및 전통놀이에 대한 내용이 보다 적극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 시대에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자국의 문화 정체성 즉 차별성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나라 유아교사 양성대학의 교육과정이나 교사 재교육 연수과정은 우리 것에 대한 내용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교사들의 우리 문화 및 놀이에 대한 기본 지식이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교사가 알지 못하는 내용을 유아교육에 실천할 수는 없다. 향후, 국가 주도 및 민간 주도 교사 연수교육 및 교사양성대학의 교육과정에 우리 문화와 놀이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방법이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우리나라 연날리기와 모든 전통놀이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 수집과 수집된 자료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기초연구가 지속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전통놀이에 대한 옛 문헌에 대한 연구는 민속학자 사학자 문학가 등이 연구할 뿐 유아교육계에서는 등한시 하였다. 따라서 유아교육에 필요한 측면의 내용연구가 미흡한 실정이었다. 각 전통놀이의 유래, 놀이감 제작 재료의 다양성, 놀이방법 및 규칙의 다양성, 놀이자의 성별과 연령 및 신분 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분석하는 연구는 유아교육자의 관점에서 이루어질 때 교육적 적용이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유아교육학문과 현장발전을 위해서는 유아교육 연구의 주요 방향 중 하나로 역사적 문헌과 자료에 대한 기초연구가 중요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 연날리기에 대한 옛 문헌과 그림자료 등을 살펴보았으나 자료의 부족으로 조선시대 문헌에 집중하였다. 향후 더 많은 자료발굴과 연구가 지속됨으로서 우리 전통놀이의 이론적 근간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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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1>] 『삼국사기三國史記권41』 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 에 기록된 연날리기내용
    『삼국사기三國史記권41』 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 에 기록된 연날리기내용
  • [[그림 1]] 장천 1호 벽화고분
    장천 1호 벽화고분
  • [<표 2>] 옛 문헌에 기록된 연의 명칭
    옛 문헌에 기록된 연의 명칭
  • [<표 3>] 연날리기의 놀이시기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연날리기의 놀이시기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 [<표 4>] 연날리기 놀이 연령에 대한 옛 문헌 내용
    연날리기 놀이 연령에 대한 옛 문헌 내용
  • [<표 5>] 연의 소재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연의 소재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 [<표 6>] 연줄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연줄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 [<표 7>] 얼레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얼레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 [<표 8>] 연날리기의 놀이형태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
    연날리기의 놀이형태에 대한 옛 문헌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