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폭풍』에 나타난 의식의 의미

The Meaning of Ceremony in Linda Hogan's Solar Storms

  • cc icon
  • ABSTRACT

    This essay aims to explore the meaning of ceremony in Linda Hogan's Solar Storms and examines the messages she wants to convey through her work as a Native American writer. Solar Storms depicts the changes in the community and a positive vision for the future. It explains how the redefinition of the community can lead to rebirth. With the rewriting of myths and the main character’s spiritual odyssey toward self-awareness, the author stresses that returning to the community is not a mere regression but a beginning of a journey toward a new and better future. Bush's mourning feast and Angela's odyssey through Boundary Waters can be regarded as a kind of ceremonies which gradually change characters' mental dimension. Through ceremonies, Angela and Bush get over their separation, so the course of ceremonies concurs with the course of wholeness recovery.

    Hogan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community, rituals and ceremonies as well as Native Americans’ awareness of their new identity and return to origin. Her works of fiction proceed in consecutive order, and there occur changes in the boundaries of the meanings. These changes will bring more extensive meanings, and it implies that her stories will continue to change in the future. Hogan is an enthusiastic activist who envisions and helps facilitate continued change and extinction of boundaries.

  • KEYWORD

    전일성 , 공동체 , 의식 , 가모장 , 생태의식 , 변화 , 경계

  • Ⅰ. 서론

    린다 호간(Linda Hogan)의 『태양폭풍』(Solar Storms)은 오대호 (Great Lakes)지역을 배경으로 그 곳에 흩어져 살던 크리(Cree)족, 아니 쉬나베(Anishinabe)족, 그리고 이누이트(Inuit)족의 거주지 수호를 그린 이야기이다. 호간은 『태양폭풍』을 통해 그들의 문화적,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위협한 기업과 정부에 적극적으로 대항한 혼혈 원주민들을 묘사 한다. 호간은 자신의『태양폭풍』에서 주인공 앤젤라(Angela)의 정신적인 변화와 모계 유대의 회복을 통해 전일성 회복이 생태의식의 발현에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호간이 말하는 전일성이란 개체간의 분리없이 상호간의 조화로운 유대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이는 상호간의 정신적인 애착을 포함하는 것이다. 분리와 단절이 초래한 폐허를 직설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호간은 전일성의 회복이 모든 개체는 물론 지구라는 거주지의 미래를 위해 인간에게 얼마나 절박한 책무로 인식이 되어야만 하는 사안인지를 『태양폭풍』을 통해 역설 한다. 호간은 전일성의 회복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 꿈, 이야기, 신화등과 같은 원주민 전통의 여러 요소들을 끌어들이는데 그녀는 이를 통해 원주민의 이야기가 과거의 유물이 아닌 여전히 실재하는 현재형임을 강조 하며 그것의 변화된 재현을 통해 적극적으로 미래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호간은 꿈, 이야기, 신화를 말하기 위해 의식(ceremony) 이라는 형식을 끌어들이는데 호간의 의식 실행 과정은 곧 그녀가 말하는 전일성의 회복 과정이 된다.

    『태양폭풍』은 호간의 또 다른 소설『비천한 영혼』(Mean Spirit), 『파워』(Power)등과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71년 공공 소유의 전기회사 하이드로 퀘벡(Hydro Quebec)은 뉴욕시민에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제임스 베이(James Bay)만 근처의 북 퀘벡(North Quebec)에 그랜드 강 프로젝트(La Grand River Project)라고 불리는 광대한 수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세운다. 그 발전 계획은 원주민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크리 족과 이누이트 족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지키기 위해 거세게 투쟁한다. 그 프로젝트의 규모와 그것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힘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짐 타터(Jim Tarter)는 이러한 발전 계획의 심각성을 이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인 안드레 피카드(Andre Picard)의 말을 빌려 자신의 논문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하이드로-퀘백사는 2억 5백만 야드에 달하는 매립용 흙과 55 만 톤의 콘크리트를 쏟아 부으며 215개의 댐과 제방을 만들었다. 이는 강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대지를 물에 잠기게 만들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그 범람이 지층으로부터 수은을 방출시켜 생태계 전체에 수은의 오염을 가져온 것이었다. 또한 그 범람은 박테리아를 창궐하게 했는데 그것들은 부패한 유기체들을 통해 증식을 했으며 북부의 바위에 풍부했던 무해한 수은을 유독성의 메틸수은으로 변형시켰다. 결국 그것은 먹이 사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포식성 물고기에 축척이 되었다 (Tarter 138).

    댐 건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그 지역 거주인들은 저항했지만 그들의 정치적인 캠페인과 시민적 불복종만으로는 그 프로젝트를 멈출 수 없었다. 결국 크리 족과 이누이트 족은 그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으며 새로운 정치적인 연합이 부족들 사이에서 일게 되었다. 동맹은 이스트 메인 크리(East Main Cree), 더 미스타시니 크리(the Mistassini Cree), 와스와니피 크리(the Waswanipi Cree), 그리고 북부 퀘벡의 이누이트 족 연합(the Northern Ouebec Inuit Association)을 중심으로 구성 되었다. 이들은 천연 자원 보호 협회(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라는 백인 환경 단체에 의해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기부금 모집과 편지쓰기, 그리고 대중의 힘으로 그 연합을 도왔다. 이 연합은 『태양폭풍』에서 묘사되는 여러 부족들이 연합하여 만든 단체와 흡사하다. 1976년 그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가 완성이 된 이후 크리족과 이누이트 족은 하이드로 퀘벡사와의 보상에 합의를 했지만 광대한 지역은 이미 소설에서처럼 훼손이 된 이후였다. 그 프로젝트가 주민들의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진행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 후 크리 족과 이누이트 족의 지도자들은 프로젝트의 중단과 금전적인 보상을 위해 연방과 지방 정부와의 거래에 사인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중단은 일시 적인 것임이 드러났고 투쟁은 계속되었다(Tarter 139).

    『태양폭풍』은 환경 파괴라는 사실적인 상황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다. 호간의 이러한 일관된 설정은 그녀에게 주제작가, 혹은 환경작가 라는 별칭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원주민 작가인 호간이 대지와 생태계의 파괴를 논하는 것은 비원주민 작가가 땅과 환경의 파괴를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데 스트롬버그 (Stromberg)는『비천한 영혼』의 겉표지에 적힌『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Washington Post Book World)의 논평의 관점이 심각한 오독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비천한 영혼』은 백인들이 침입을 하였을 당시 오사지족 인디언의 문화적인 해체에 관한 글이다”(102)라는 논평은 그것이 일면 오사지족 원주민의 전통 해체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 이면의 환경 파괴의 문제와 호간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범 인디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계의 변화를 간과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102)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비천한 영혼』을 단순히 특정한 부족의 해체를 다룬 이야기로 인식하게 될 수 있는 여지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관점으로 보인다. 물론 중대한 차이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원주민이 말하는 환경 문제에는 원주민이 말하는 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원주민의 영성(spirituality)은 그들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다른 이들의 그것과 구분 짓는 가장 명료한 특징이다. 영성의 존재로 인해 백인의 범주에 명확한 위치를 천명할 수 없음에도 그것은 오히려 그 모든 범주들을 포용할 수 있는 무한 경계를 포괄하는 요인이 된다. 모든 것을 하나로 꿰는 영성의 존재는 호간이 범 원주민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근본이다. 원주민의 영성은 대지의 영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그것에 대한 긍정에는 원주민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다. 가부장이나 헤게모니는 원주민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며 남녀의 구별 없이 대지에 대한 그리고 만물에 대한 영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원주민들이 말하는 영성은 여성주의자들이 말하는 그것보다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것임을 주지하여야 한다.

    호간의 의식은 이러한 영성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영성과 의식, 그리고 의식의 경험으로 회복되는 전일성이 본 논문에서 다루는 주제가 될 것이다.

    Ⅱ. 공동체로 이끄는 의식: 부쉬의 애도제

    앤젤라는 17살이 된 해에 자신이 태어난 애덤스 립(Adam's Rib)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 곳은 앤젤라가 태어났을 때 자신의 어머니 해너와 유일한 유대를 경험한 곳이자 그녀로부터 버림을 받은 곳이다. 그녀의 외조모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다. 백인 위탁 가정에서 자라고 있던 앤젤라는 법원의 기록에서 자신의 증조 할머니인 아그네스(Agnes Iron)의 주소를 발견하고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귀향을 결정하고 이를 통해 전일성 회복을 위한 앤젤라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애덤스 립의 할머니들은 이미 앤젤라의 상처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녀의 치유를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고조 할머니인 도라 루즈(Dora Rouge), 증조 할머니인 아그네스, 그리고 앤젤라의 할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첫 번째 부인 부쉬(Bush)는 앤젤라의 전일성을 회복시켜 줄 여인들이다. 이 여인들은 애덤스 립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 공동체로의 재편입이 앤젤라가 일차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된다. 공동체로의 편입과 그 구성원들과의 유대감 회복은 전일성을 말함에 있어 전제 되어야 할 조건이다. 따라서 소외된 이들의 공동체로의 재편입은 모든 의식을 말하는 과정과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호간이 제시하는 공동체는 역동성, 다양성, 가변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호간의 공동체는 바른 방향을 향해 돌아오는 내면적인 진실의 고정된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제스퍼슨(Jespersen)은 이를 “마음에서 나오는 내면의 지도”(296)로 상정한다. 내면의 지도는 새로움으로의 합체와 복잡한 돌아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의 지도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 공동체를 통한 슬픔의 공유, 그리고 회복을 통한 새로운 시작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내면의 지도는『태양 폭풍』의 이방인 부쉬를 공동체가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것은 옛 것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지도이다. 부쉬의 애도제(mourning feast)는 이러한 범주를 잘 따르는 의식이다. 그녀는 자신이 행하는 의식을 통해 자신을 배제시켰던 공동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부족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도라 루즈, 아그네스에 이르는 가모장의 계보를 이어 앤젤라를 공동체로 회귀시키는 치유사가 된다. 오클라호마 출생이며 치카소 족으로 재현되는 부쉬는 호간 자신이다. 그녀는 부쉬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식의 기본적인 기능을 바탕으로 그것이 만들어 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유대감 형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태양폭풍』의 도입부는 앤젤라의 시선을 따르며 앤젤라 자신이 스스로의 애도제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시작된다. 이는 독자를 낯설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앤젤라는 죽은 인물이 아닌 살아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낯설음은 의식에 대해 독자들이 그 합목적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부쉬의 애도제의 경우 의식은 앤젤라의 생사에 대한 모호함을 독자들에게 유발시킴으로써 원주민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떤 의미로 인식이 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부쉬의 입장에서 앤젤라는 자신과 생모인 해너(Hannah)의 손에서 벗어나 백인의 법체계로 편입이 되는 순간 이미 모든 원주민성과 전통을 상실한 유사 죽음의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한 박제와도 같은 존재태를 기리는 것이 부쉬의 애도제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캐서린 쿤스(Catherine Kunce)에 의하면 아그네스가 앤젤라에게 그녀의 애도제를 설명해주는 형식의 한 장을 텍스트의 맨 첫 부분에 할애를 한 이유는 회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녀에 의하면『태양 폭풍』은 편집이 되었을 때 프롤로그의 첫 번째 두 문장에서 프롤로그의 화자와 그 두 줄의 화자(앤젤라)가 모두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몇 줄이 지워졌다고 한다(55). 단순한 몇 줄의 제거는 누가 죽었는지를 판단하는 독자들의 능력을 파괴시켰고 프롤로그를 읽는 독자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호간의 소설을 일반적인 내러티브의 형식에서 벗어 나게 만든다. 호간이 프롤로그의 첫 부분에서 보여주는 의식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오래전의 것, 아직 오지 않은 것들, 혹은 신 등을 불러들여 실재하게 함으로써 변화를 초래하는 제식의 기능과 흡사하다. 모든 인물들 간의 거리는 죽지는 않았지만 강제적인 분리를 당한 앤젤라를 애도 하는 제식을 통해, 마치 앤젤라에게 말을 하고 있는 듯한 아그네스를 통해, 그리고 의식의 과정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앤젤라를 통해 좁아 지고, 독자는 이를 통해 변화된 제식의 순기능을 경험하게 된다. 호간의 글쓰기를 독자를 각성시켜 사고를 바꾸는 의식으로 본다면 이처럼 형식을 파괴한 이러한 하나의 장을 상정한 행위는 변화를 기대한 호간의 새로운 제식 창조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부쉬의 의식이 가지는 이차적인 특징은 캐서린 R. 챈들러(Katherine R. Chandler)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그녀에 의하면 의식과 제식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치유하고, 축하하고, 기리는 데에” 사용 된다(25). 의식의 직접적인 경험이 만들어 내는 결과에 대해 호간 역시 자신의 수필집 『거주지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데 그녀에 의하면 공개적인 의식은 회고적인 공간을 제공한다(36). 이 때 화자에 의해 전달이 되고 청자에 의해 경험이 되는 의식의 강렬함은 특정한 사건 들을 다른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의식이 진행 되는 동안 나오는 말들, 이야기들, 노래들은 참가자들이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끈다. 호간은 신체적으로 실행되는 특정한 의미는 모호함을 분명하게 만든다고 강조하며 그 분명함을 통해 결국 의식은 독자들을 보다 큰 순환의 고리로 이끈다고 말한다. 순환의 고리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질수록 그 고리의 범위는 변화하게 되고 결국 그 변화의 인식을 통해 공동체의 한계 역시 변화를 보이게 된다.

    부쉬는 먼저 음식과 물건의 분배를 통해 슬픔을 분배하고 그 분배의 완성을 통해 공동체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그 한계를 변화시킨다. 우선 그녀는 손님들이 음식을 다 먹은 후 모든 사람 앞에서 그녀의 긴 머리를 자르고 음식을 비롯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들을 처리한다. 부쉬의 획기적인 제식은 앤젤라의 생모인 해너의 차가움과 광기로 유발된 굶주림 아래서 고통을 받는 앤젤라의 고통을 공유하기 위한 그녀의 개인적인 의지이기도 하다. 부쉬의 소지품 처분은 제사의 기본적인 기능을 활성화 시킨다. 전체적인 공동체에서 슬픔을 나누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손님들이 부쉬로부터 받은 물품에 대해 아그네스는 그들이 가져간 가장 중요한 것이 부쉬의 슬픔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부쉬는 자신의 모든 소지품을 나누어주는 의식을 마친 뒤에야 공동체에 개인적 슬픔을 없애는 기능이 있음을 상기한다. 부쉬의 의식에 참여를 한 이들 중의 누군가는 그녀가 전통을 따르지 않는 의식을 행하고 있음을 지적하는데 그는 부쉬가 분명 전체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는 그것을 만들어 내었다”(15)는 의심을 함으로써 그녀가 행하는 의식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가 전통을 거슬렀다고 생각을 한 이유는 그녀가 혼자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인데 전통적인 의식 준비는 공동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혼자서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그 전통을 거스르는 행위로 인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을 준비할 당시 그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편입이 되기 이전이었으며 음식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아그네스마저도 그녀를 홀로 내버려 둔다. 오클라호마 출신이었던 부쉬는 너무나도 신중하고 말이 없었으므로 애덤스 립의 사람들은 그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배척했다. 그러나 부쉬는 자신과 무관하며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 앤젤라를 위해 싸웠고 해너의 광기에 맞선 유일한 여인이다.

    부쉬의 의식이 다른 의식에 비해 차별성을 가지는 이유는 그녀가 기존의 전통을 바꾸고 의식의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는 데에 있었다. 의식의 전 과정이 정신적인 성장과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구성하는 제식들의 기능에 대해 세분화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부쉬의 의식은 물건의 분배 행위, 음식을 먹는 행위, 머리를 자르는 행위 등으로 구성이 되는데, 행동 혹은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이들에 대한 특성을 고려하는 것은 부쉬의, 즉 호간의 저항자이면서 동시에 행동가로서의 사고가 어떻게 반영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행위가 된다. 몸의 체현과 그것을 통한 사고의 변화만이 하나의 완성된 의식을 만들어 낸다고 할 때 부쉬는 스스로 만들어낸 의식에서 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전일성 회복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부쉬의 성공은 앤젤라의 전통문화 인식, 회복, 그리고 해너의 치유와 성스러운 고리의 연결이라는 전일성의 이어짐으로 지속된다.

    한편 의례(ritual)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종교적인 믿음이나 생각을 규정하거나 관습에 따라 육체적으로 실현하는 행위”(김명숙 113)이다. 이에 대해 캐서린 벨(Catherine Bell)은 그와 같은 의례는 사고와 행동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데 기반을 두고 있다고 비판하며 의례가 믿음이나 생각에 형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례를 통해 믿음이나 사고가 드러나고 구성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74). 그리고 “의례를 만드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행위들의 성격이 아니라 행위자에 의한 실천들이 의례로서 자리 매김하게 되는 차이화 전략”이라고 말한다(74). 제식의 특성은 그것이 수행적이라는 것이다. 의례에서 행해지는 행동들은 그 행동 너머에 있는 의미를 나타내고 그럼으로써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김명숙 114). 부쉬는 자신이 혼자 준비한 음식과 자신의 물건들을 하나만 제외하고 부족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슬픔을 그들과 공유하여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실천적인 의례, 예를 들며 물건 나누기, 머리 자르기 등의 실천적인 행위들로 구성이 되는 의식의 전 과정 안에서 부쉬의 이러한 수행들은 애덤스 립의 문화 안에서 용인되고, 반복이 되는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쉬의 의식은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차별성은 의례의 특성인 변환성과 연관되며 의례의 수행을 통해서 사람이 변하거나 무엇인가가 창조되기도 한다.

    변환적인 의례의 특성은 세 가지로 세분하여 특징지어질 수 있는데 (Baker 47) 그것은 각각 전이의 의례, 이상을 수행하는 의례, 부재를 현존하게 만드는 의례로 세분된다. 전이 의례의 대표적인 예는 통과의례로 이 의례를 통해 참가자는 의례 이전과 또 다른 존재가 된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 가능성들을 의례를 통해 수행할 때도 수행자는 현실과 다른 상상적 상황에서 일시적으로라도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일상의 사회적 구조 바깥에 있는 역치적 공간 내에서 수행자는 그들의 이상적이거나 가능한 자아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다. 의례는 또 멀리 떨어져 있거나 오래전의 것, 아직 오지 않은 것들, 혹은 신을 지금 여기로 불러들여 실재하게 함으로써 변화를 초래한다”(Baker 64).

    아그네스는 애도제가 있던 날, 공동체가 부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부쉬는 제식의 창조를 통해 내면에 있는 지도를 따라서 애덤스립 공동체의 오래되고 익숙한 방식에 동참하게 된다. 그 행위는 부쉬가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애덤스 립의 구성원들 역시 자신들이 애초에 추방자들 혹은 도망자들과 같은 이들이었음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애도제를 통해 부쉬는 애덤스 립의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고, 그 인정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추방자가 되어 분리된 조각처럼 백인 세상을 부유하던 앤젤라를 공동체로 들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공동체를 이끌 핵심적인 파워가 된다. 또한 삶과 죽음의 개념을 재설정함으로써 호간은 공동체에서의 분리가 사람에게 죽음 이상의 영적인 소진의 상태를 유발 시켜 그 고통을 준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같은 고립이 공동체로의 포함 여부에 따라 어떤 양상으로 변하게 되는가이다. 해너의 고독은 그녀를 윈디고(Windigo)라는 신화 속의 괴물로 만든다. 해너에게는 자신의 고독을 치유해 줄 수있는 공동체를 모색하는 적극성이 없다. 자신의 엄마인 로리타(Loretta) 로부터 학대와 고통을 대물림한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앤젤라에게 남긴다. 하지만 공동체로의 편입을 통해 고독을 극복하고 유대감으로 자신의 온전함을 되찾은 부쉬는 앤젤라가 극한 고독의 현현인 윈디고로 대물림 하여 변화하는 것을 막는다. 공동체에는 소외와 배제에서 오는 도착을 막는 힘이 있다. 의식을 통해 스스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든 부쉬는 자신의 긍정적인 능력을 또 다른 이방인인 앤젤라의 친모 해너를 위해 다시 한 번 발휘한다.

    아그네스의 아들인 헤럴드(Harold)는 부쉬를 애덤스 립에 남겨 두고 로리타와 함께 도주한다. 그는 오클라호마의 유정에서 일을 하다가 부쉬를 만났는데 그곳의 노동자들은 모두 그에게 부쉬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 때 해럴드의 눈에 들어온 여인이 엘크 아일랜드(Elk Island)출신의 로리타였다. 과거 그녀의 부족은 굶주림을 못 이기고 사냥꾼들이 늑대를 소탕하기 위해 미끼로 놓은 독을 먹인 사슴 고기를 먹는 비극을 경험한다. 로리타 역시 사슴의 고기를 먹었으며 그 이후로 그녀의 몸에서는 아몬드의 향이 나기 시작한다. 그녀가 풍기는 아몬드 향은 사슴들을 죽인 청산칼리의 냄새이며 그녀의 딸인 해너도 그 냄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로리타는 얼음의 여인이며 메마른 여인이었다. 아그네스가 해럴드에게 부쉬를 떠나지 말라고 소리 지를 때 그녀를 쳐다보던 로리타의 눈빛에는 얼음과도 같은 차가움이 있었고 그들이 떠나가던 날 대지는 번갯불로 모든 것들을 태울 만큼 건조했다. 애초부터 해럴드는 물의 여인이었던 부쉬와는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아그네스의 아들로서 오클라호마의 유정에서 노동자로 일을 했던 인물로 대지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원주민이었다. 이러한 점은 호간이 언제나 원주민에게 호의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 곳곳에는 원주민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백인에 대한 공감의 시각이 혼재한다. 이는 보다 큰 전체를 향한 전일적 흐름을 지향하는 호간 작품세계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즉 원주민과 백인의 대지를 향한 시선이 겹치는 바로 호간의 시선이 머무르는 지점인 것이다.

    약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해너는 애덤스 립으로 돌아왔고 그녀에게 서는 옅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몬드 향이 났다. 부쉬는 해럴드의 일부가 돌아왔다고 생각을 했고 그녀와 그녀의 독을 모두 끌어안는다(40). 부쉬는 도라가 고향에서 가져온 옥수수를 퍼 아일랜드(Fur Island)에서 단기간에 자라게 할 만큼의 놀라운 창조적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독 역시 희석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다. 만약 해너가 자신을 받아들인 부쉬를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면, 부쉬에게 충만했던 창조력과 치유력은 해너의 몸을 계속 해서 차갑게 만들던 얼음심장을 녹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호간은 해너와 로리타의 모델을 자신이 입양한 딸 마리(Marie)에게서 찾는다(Irene Vernon 41). 호간이 입양한 아이, 마리는 그녀의 친모에 의한 학대로 애착관계 형성의 장애 징후를 보인다. 마리는 담배와 뜨거운 철사로 인한 학대의 기억과 상처를 가지고 있고, 강간을 당했으며, 그녀의 생모는 마리를 죽이기 위해 달리는 차안에서 그녀를 밖으로 밀어내 기도 했다. 이러한 학대는 마리가 개에게 바늘을 먹게 하는 잔인한 행동으로 반복되었으며 그녀를 입양한 엄마(호간)를 육체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또한 환청을 듣고 탁자 위에 배설을 해 놓기도 했는데 이들은 모두 해너가 보여준 이상행동들과 흡사하다.

    남성들로부터 당한 착취와 폭력의 흔적을 온몸에 새기고 있는 해너에게는 영혼이 없다. 그녀의 몸은 위험한 장소를 나타내고 그녀의 삶은 “시간과 역사와 집단 학살이 모여 피로 물든 바다 위를 떠다니는 구름 처럼 움직인다”(『태양 폭풍』101). 그녀의 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 자로서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과거의 불행인 집단 폭력의 기억들과 미래에 다가올 회복에 대한 가능성을 이어주는 장소로 기능한다. 올드 맨(Old Man)은 해너의 몸을 “집, 그리고 만남의 장소”라고 표현한다(101). 이를 설명하기라도 하듯이 하디(Hardy)에 있는 그녀의 집은 해너의 모습과 흡사하게 묘사된다. 그녀의 집에 달린 자물쇠의 “쇠지레로 열린 듯한 흔적”(241)은 그녀의 강제당한 과거의 학대와 폭력을 의미한다. 그 자물쇠를 강제로 연 손은 해너를 계속해서 괴롭혔던 남성들의 손이다. 해너는 부쉬에게 “자신의 안에 손이 살고 있으며 밤에 그것은 자신들의 집인 그녀의 몸 밖으로 나와 그녀를 괴롭히고 죽이려한다”(101)며 고통을 호소한다. 처음에 부쉬는 해너의 말이 그녀의 병에서 기인한 환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물리력을 경험한 후 직접 그것을 경험하려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103). 결국 부쉬는 일종의 영적인 교류를 통해 해너의 몸 안에서 그녀가 말한 손을 보고 그들의 것이 아닌 언어를 듣는 경험을 한다. 부쉬는 그것들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채 해너의 몸 밖으로 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 하지만 그 곳에는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지도가 없었다. 해너의 몸은 더이상의 유린이 불가능한,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한 원주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부쉬가 해너의 몸 안에서 한 경험은 블랙홀과도 같은, 한번 발을 들이면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든 어두움이라는 실재의 경험이었다. 해너의 몸속에 정작 해너는 없었으며 부쉬는 해너를 괴롭히는 실체들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빠져 나올 만큼 해너의 몸 안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은 강했다. 이에 대해 올드 맨은 영혼을 되돌리는 것은 전통의 노래와 그것을 부르는 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을 한다 (101).

    허스크(Husk)에 의하면 부쉬는 영혼을 되돌리는 노래를 알고 있는 여인이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모든 것을 보는 허스크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바람의 노래에 대해 말하는데, 그에 의하면 부쉬는 다른 종류의 다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노래를 알고 있는 여인이다. 그 다리는 옳지 않은 존재들의 접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부쉬는 무엇 인가가 다시 합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 해너 안에 있는 존재들은 다른 세상에서 온 것들이며 부쉬는 해너의 영혼의 다리가 막히도록 노래를 불러 그들이 다시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을 막는 책무를 지니고 있었다. 부쉬는 해너의 곁을 지키고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황폐화 시킨 어두운 실재의 힘을 경험하고, 해너의 영혼이 악한 어두움에 다시는 잠식당하지 않도록 지킴으로써 자신의 책무를 완성한다. 오클라호마 출신인 자신의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애담스 립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앤젤라와 해너에게 순환의 고리의 흐름을 타게 만드는 부쉬의 모습은 두 장소를 잇는 다리 그 자체이다.

    부쉬와 앤젤라가 죽은 해너의 몸을 닦는 행위 역시 일종의 의식이다. 그 행위는 해너의 몸과 정신을 황폐화시킨 이질적인 것들이 나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고 그것이 사라진 후 그 다리를 제거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다시는 그것들이 해너의 영혼을 박탈해서는 안되며, 해너가 다시 그것들을 만나는 일이 생겨서도 안 된다. 해너의 고리는 다시 닫혀져 연결되어 온전한 순환의 흐름을 탈수 있도록 치유되어야만 한다.

    대량 학살의 기억이 있는 해너의 몸은 앤젤라의 공감어린 행동을 통해 죽음이 아닌 치유로서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는 장소로 변한다. 어렸을 때의 해너는 로리타의 아몬드 향을 희미하게 간직하고 있었지만 부쉬와 함께 별을 이야기 했던, 마니키(Maniki 295) 즉 인간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던 아이였다. 그녀의 그러한 의지는 앤젤라에 게서 훔친 호박속의 개구리에게 닿으려 한 그녀의 흔적을 통해 알 수 있다. 해너는 허공에 매달려 있는 개구리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것을 잡고 있는 박제된 정지된 삶의 순간에서 개구리를 꺼내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개구리는 텅 빈 공간 안에서 장소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호박의 개구리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 슐터만들(Schultermandl)은 조금 다른 견해를 나타낸다. 그는 이 호박안의 개구리가 콜럼버스 이전 원주민 부족들이 그들의 영토에 대한 주권과 생태계의 위상을 주장했을 때의 기념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개구리가 나무 안의 금과 하나가 되어 시간 안에서 동결 혼합된 모습은 영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82). 하지만 슐터만들이 말하고 있는 호박한 가운데에 정지되어 있는 개구리 역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시작된, 대지에 대한 침탈로 멈추어버린 자연의 정지 상태를 말하고 있다. 개구리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이 되는 순간은 균형을 잃어버린 세상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순간이며, 이는 앤젤라가 해너를 공감을 다해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면서부터 시작이 될 것이다. 호간은 호박안의 개구리를 통해 인간을 위한 발전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떨어져나가기 이전에 있던 시간과 문화의 공통된 기억 안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자연의 수평적 유대를 바탕으로 보다 조화로운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을 맺는 신화속의 윈디고와는 달리 해너는 앤젤 라와 부쉬의 자신을 향한 한없는 이해와 사랑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되돌아 갈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의식을 통해 공동체로 돌아온 부쉬는 또한 번의 의식을 통해 다른 이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공동체는 수많은 개체들의 연결과 참여로 그 결속력을 더해간다. 부쉬의 의식에서 시작된 앤젤라와 부쉬 본인의 공동체로의 재편입, 해너의 치유와 이해, 그리고 구성원들간의 유대 회복은 전일성의 회복으로 이어지며 이는 호간이『태양 폭풍』에서 그리는 의식의 의미가 된다.

    Ⅲ. 전일성 체현의 의식: 바운더리 워터스(Boundary Waters) 지나기

    『태양 폭풍』을 이끄는 힘은 가모장적(matriarchal) 여성 연대에서 시작된다. 호간은 역사 안에서 지워진 원주민의 과거를 기억하고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애도를 함과 동시에 생존과 더불어 그것들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원주민의 전통인 가모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호간이 말하는 가모장의 이면에는 여성뿐만이 아닌 남성들의 유대도 포함이 되어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분리된 대지, 그리고 자연 경관과의 일체감과 조화를 통한 영성의 치유를 기원한다. 그 회복에서 나오는 힘은 깨어진 균형과 전일성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전일성 회복의 가능성은 애덤스 립에서 부쉬에 의해 싹트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변화는 도라 루즈, 아그네스, 부쉬 등의 세 할머니들과 바운더리 워터스를 지나는 긴 여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네 명의 여인은 각각 모두 다른 명분을 가지고 바운더리 워터스를 거쳐 캐나다의 투-타운(Two-Town)으로 여행을 떠난다. 도라는 자신이 죽을 장소가 그곳이라는 이유로, 아그네스는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앤젤라는 해너와의 갈등 해결을 위하여, 그리고 부쉬는 댐의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그녀들이 향하는 투-타운은 등장 인물들의 추억과 감정이 존재하는 공간이며 또한 다양한 층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장소이다. 먼저 그곳은 일련의 댐 건설에 대한 정치적인 항의의 장소이다. 제임스 베이의 경우에서처럼 이 댐들의 건설 목적은 남쪽의 도시민들에게 전기를 공급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야기한 광범위한 생태적 손상은 여인들이 여행 도중 마주친 물고기와 순록의 죽음으로 형상화된다. 그녀들은 여행 도중 야생의 서식지가 이미 강의 인위적 변형 때문에 많이 황폐화 된 것을 발견했으며 이 변화가 주변 생물들에 미치는 영향은 결과적으로 인물과 장소간의 특정한 연관성으로 나타난다. 예로 아그네스는 자신의 어머니를 지키는 소임을 완성하지 못한 채 여행 도중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투 타운에 있는 해너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병을 가지고 있다. 아그네스의 죽음은 도라가 물이라는 자연과 협상을 함으로써 파생된 의도치 않은 비극이었으며 해너의 모습은 황폐한 자연 경관과 개발업자들의 탐욕을 그대로 비추는 또 하나의 장소를 의미한다. 죽어가는 해너와 앤젤라가 발전시켜가는 모녀 관계는 앤젤라에게는 유년기의 신체적,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그리고 해너에게는 텅 빈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건강한 영성을 불어 넣는 과정이 된다.

    앤젤라는 바운더리 워터스를 지나서 물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지만 그녀가 물에 대한 감각을 일차적으로 깨우친 것은 부쉬를 통해서이다. 부쉬와 함께 함으로써 앤젤라는 물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사물의 이면을 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앤젤라의 얼굴에는 해너의 학대로 생긴 흉터가 있었는데 그녀는 항상 붉은 머리로 그것을 가리고 다녔다. 그녀는 아그네스의 집에서 상처에 대해 묻는 프렌치(Frenchie)에 분노하여 방으로 들어가 자신을 비추는, 유일하게 남아있던 거울을 깨뜨린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인 그리고 실재적인 형상으로 한계 짓는 거울에서 벗어난 후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앤젤라는 물과의 교감을 통해 눈에 보이는 피부란 물의 표면과도 같은 아무 의미 없는 것임을,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물의 심연을 보는 것처럼 피부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앤젤라가 부쉬와 함께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갔을 때 부쉬는 앤젤라의 솜씨에 놀라고 앤젤라 스스로도 자신이 부쉬에게도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 당황한다. 그녀의 능력에 대해 부쉬는 “사물들의 바닥 즉 본성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라 말한다(『태양 폭풍』85).

    호간이 해너를 포함한 5세대에 걸친 여성의 유대와 그들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는 영성회복의 과정은 여성들 간의 공감과 영적인 교류를 통한 치유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지와의 분리 극복을 통한 일체감 회복과 그것이 주는 치유력의 경험이다. 그 여성들을 그리고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포용하는 원주민의 대지의 힘은 어떤 담론이나 이론적인 분류도 거부한다. 하지만 결코 그것들을 배제하거나 특정한 하나를 제외시키지도 않는다. 그것들 모두는 전일성이라는 이름 안에서 공존해야 하는 요소들이다. 이는 남성을 바라보는 모호한 태도를 모호하게 하여 그녀의 작품이 말하는 여성주의를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의 소설 안에서는 원주민 남성은 물론 백인 여성은 물론이고 백인 남성들까지도 궁극적으로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 대지안의 개체들일 뿐이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힘을 호간은 대지의 영성 회복과 공동체의 보존에서 찾는다. 호간의 소설에서 간간히 보이는 백인들과의 공감은 이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은 미래의 보다 큰 전체를 위한 하나의 영역이며 호간은 그것을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개별적인 문화의 고유성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를 이루는 윤곽은 뚜렷해야 한다. 그것을 그리는 윤곽이 있음으로 개체, 공동체, 더 큰 공동체, 그리고 전체로 나아가는 조건이 성립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나도 진하고 또렷한 개체의 윤곽선은 전체의 전일적인 흐름을 막을 수 있다.

    그들이 여행을 하는 바운더리 워터스는 세상의 지도로 읽을 수 없고 시간의 단위로 그 흐름을 측정할 수 없는 시원적이며 신화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사이를 오가는 능력을 가진 도라의 야윈 손가락은 세상의 지도를 뛰어넘는 나침반의 바늘이 된다. 그들은 교감의 충만함으로 힘이 넘쳤으며 “한 마리의 동물과도 같이”(177) 민첩하게 움직인다. 그들은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부족의 전통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고 앤젤라도 그 방식에 익숙해진다. 처음에 부쉬는 자신이 모은 세상의 지도를 이용해 노선을 정하지만 여정이 진행 될수록 그것을 따르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닫고 도라의 부족적 기억에, 직관에, 감각적인 경험에, 꿈에, 자연의 징후에 따르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들은 여행 도중 카누여행을 하고 있는 두 명의 백인남녀를 만나는데 길을 묻는 그들에게 부쉬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순환의 흐름을 따랐던 거야”(109).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백인 남자는 부쉬를 비롯한 일행들이 미쳤다고 생각을 하고 고맙다는 말을 남긴채 급히 그곳을 떠난다. 그들이 원한 답은 백인들이 작성한 지도에 바탕을 둔 도식화된 해결책이었기 때문에 백인 남성은 내면의 순환 고리에 의존을 하는 부쉬 일행의 방향제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비천한 영혼』의 벨이 독수리의 죽음에 반응하는 모습이 사냥꾼과 보안관의 눈에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비춰졌듯이 이 네 명의 여성 역시 백인 남녀에게 온전한 정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로 인식이 된다. 그들이 따르는 지도는 성스러운 고리를 벗어나지 않은 더 깊은 지도(『거주지들』123)이며 내적인 지도이다(40). 백인들은 결코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심원한 지도와 정복자들이 임의로 선을 그어 만든 지도 사이에 굳어진 명백한 경계들은 바운더리 워터스에서 지속적으로 변한다. 호간은 지도의 이미지를 자신의 소설 곳곳에서 묘사하는데 해리슨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도에 대한 생각을 설명한다. 호간에 의하면 “대지를 범주화하고 도식화하는 전반적인 개념. 이름을 붙이고 자신들의 장소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행위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Harrison 172). 지도는 대지의 기억에, 그 위에, 그리고 그 아래에 맞추어 지는 것으로 호간은 그 지도들이 부분적으로 상상의 것 그리고 경계선들도 상상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사실이 아닌 관념상의 경계선들만을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호간은 이를 통해 “지도들은 절대 영토가 아님”(173)을 역설한다.

    전일성의 체현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앤젤라의 여정은 아그네스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포함한다. 대지와 협력을 하여 삶을 살았던 여인들, 매우 낡고 세세한 지도를 사용하여 그들의 여행의 과정을 그렸던 여인들, 아무런 문제없이 자신들이 여행할 수 있기를 기대했던 여인 들이 마주한 현실은 인간이 바꾼 강의 물길로 야기된 지형의 극심한 변화였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 북쪽에 있는 댐은 세상의 길을 다시 만들었고 자연 경관의 모습을 바꾸었으며 그 안의 모든 요소들은 혼란을 야기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강제로 모아진 두 줄기의 강이 하나가 되어 원래의 그것보다 더 깊고 더 넓게 거세게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태양 폭풍』192). 호간은 강의 거친 야성을 수괴인 미셰베슈(Mishebeshe)의 분노로 중첩시키며 인간이 강제한 자연의 의지가 보여주는 파괴력을 묘사한다. 부족의 연장자인 도라만이 그 분노의 깊이를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녀는 강, 즉 수괴와의 협약을 통해 무사히 그 강을 건너게 된다. 그 협약의 내용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부쉬와 앤젤라만이 그것에 대해 막연히 인식한다.

    도라가 맺은 협약의 대가가 아그네스의 죽음이었다는 것은 그들이 카누 여행 도중 백인 남녀의 잘못된 정보로 앤젤라가 길을 잃고 난 이후 밝혀진다. 태양폭풍은 분명 “거짓과 제국주의적인 정복의 도구들로써 지도들을 노출”시킨다(Jespersen 280). 아그네스의 죽음은 부분적으로 거짓된 지도의 죽음 때문일 수 있다. 그 여정이 진행이 되는 동안 네 명의 여인들은 아그네스가 식인종이라고 여기는 두 명의 백인 여행가들을 만난다. 이들은 바로 부쉬의 지도를 거부했던 사람들로 그들이 앤젤라에게 건넨 지도는 거짓된 것임이 드러난다. 그녀가 그 지도를 치유의 식물을 찾기 위한 안내서로 이용을 할 때 그녀는 길을 잃고 잠에 빠져 설명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앤젤라가 돌아왔을 때 아그네스는 이미 죽은 후였다. 그렇다면 백인들의 지도는 인간과 자연을 전리품으로 보는 반생태적인 사고방식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다. 정복자 혹은 지도 제작자들의 왜곡된 인식은 그들로 하여금 무력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이나 동물들에 대한 관점을 거부하는 거짓된 역사를 말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지도의 부정확성은 치명적인 죽음을 초래한다. 부쉬 일행의 지도는 백인들에게 알 수 없는 언어일뿐이며 백인들의 지도는 부쉬 일행에게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희생을 야기시킨다. 강제적으로 자연의 순리를 역행당한 강의 분노는 인위적인 경계선을 따르는 앤젤라의 행위와 맞물려 아그네스의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이는 전일성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즉 정복이라는 일방적인 힘의 작용의 결과물인 지도를 따르는 행위가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다. 전일 성이 포함하는 상호 조화의 개념은 백인들의 지도에서 읽을 수 없는 정신적인 영역의 것이다. 호간이 진정한 지도를 마음의 지도라고 일컫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거주지들』40).

    앤젤라는 지도제작의 폭력은 자신의 얼굴에 드러나는 흉터임을 그리고 대지의 피부에 강제로 새겨지는 폭력임을 말한다. 이에 대해 앤젤라는 도라 루즈의 말을 인용하여 “그것들은 신의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 다”(『태양 폭풍』346)라며 가면이라는 말로 지도를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의 흉터가 있는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그 연결성을 나타낸다.

    바운더리 워터스를 지나는 카누의 여정은 호간의 전체적인 글쓰기의 의식을 구성하는 하나의 실천적인 의례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베이커의 변환적인 세 가지 의례, 즉 전이의 의례, 이상을 수행하는 의례, 부재를 현존하게 만드는 의례 중 전이의 의례와 가장 가깝다. 앤젤라의 카누의 여정은 전이의 대표적인 의례인 통과의례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의례를 통해 앤젤라는 이전과 또 다른 존재, 식물을 꿈꾸는 자가 된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주는 사람은 도라 루즈이다. 앤젤라가 처음 애덤스 립에 왔을 때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도라는 그녀에게 자신이 약초로 만든 약을 처방하고(9) 이로써 앤젤라는 꿈을 꾸기 위한 기본적인 자질을 품게 된다. 도라는 자신의 조상 중에 또 다른 식물을 꿈꾸는 자가 있었음을 이야기 하고, 아그네스는 앤젤라가 어렸을 때 식물들을 좋아하던 아이였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앤젤라의 새로운 거듭남에 혈육의 유대감을 부과한다. 이후 카누 여행에서 앤젤라는 본격적으로 식물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녀가 식물을 꿈꾸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식물처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대지의 영성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치유력을 흡수하여 다른 이들을 치유로 이끄는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앤젤라는 식물 그 자체가 된다. 이후 앤젤라는 더 이상 사라진 동물들, 껍질이 벗겨진 사체, 그리고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꿈꾸지 않는다.

    앤젤라는 도라가 땅과 말을 하고 동물과 식물의 이야기를 듣고 치유의 노래를 부르며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그 노래들이 나무, 늑대, 그리고 옛 것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그녀는 “땅의 노래가 그것을 품는 사람을 통해 말하는 소리를 듣게”(176)되는데, 이로써 앤젤라는 뿌리를 내려 식물이 된 자신을 통해 노래를 발산하는 대지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이해하게 된다. 대지는 우리가 새로운 꿈, 새로운 주술을 꿈꾸게 하는 미래에 내려진 닻이며 모든 생명의 성스러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의 여정을 통해 앤젤라가 자신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임을 깨닫는 모습은 물과 대지가 전일적인 조화를 이끌어 내는 데에 있어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요인임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물과 대지의 분리가 아닌 두 요소의 이상적이고 모순이 없는 상태는 앤젤라가 전일성이라는 속성을 체현하는 데에 선행되어야 할 필수적인 부분이며 그것의 결실은 식물이라는 개체로 형상화된다.

    해너가 앤젤라에게 남긴 이부 동생 오로라(Aurora)는 생태계의 온전 함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오로라는 살아있는 지구 생태계가 정상 적으로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호간이 소설의 제목으로 선택한 태양 폭풍은 태양에 있는 흑점의 폭발로 거센 자기장파가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대부분 태양 폭풍이 발생을 하면 지구는 자생적인 능력으로 그 충격을 흡수하는데 태양으로부터 온 자기장은 지구 자체의 자기장의 힘이 가장 약한 극지방으로 흘러간다. 그로 인해 극지방에는 오로라가 발생하게 되는데 오로라가 극지방이 아닌 적도나 다른 지역에서 생긴다는 것은 지구의 자기보존 능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로라가 극지방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생태계가 온전하다는 것을 알리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호간은 오로라의 작은 몸에 깨진 생태계의 전일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응축시키며 북극 오로라의 탄생을 통해 생태계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낸다. 분리를 극복해 낸 앤젤라와 전일성의 맹아인 오로라는 균형과 조화가 있는 대지의 창조의 신화를 애덤스 립에서 시작할 것이다.

    앤젤라와 부쉬가 돌아온 애덤스 립은 앤젤라가 떠나오기 이전과는 이미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지표면 위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고 대부분의 집들도 물에 잠겨 사람들도 대부분 떠나고 없었던 것이다. 결말이 독자에게 주는 모습은 전일성을 회복하여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 앤젤라에게 다소 가혹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물과 대지의 혼돈이라는 이미지로 독자에게 창조라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대반전의 장이 될 수 있다.

    앤젤라는 땅의 변형을 비버의 창의적인 힘에 비유한다. 부쉬가 말을 했듯이 그들은 진정한 대지를 만드는 이들이다. 정부가 만드는 댐과는 달리 비버의 댐들은 자연을 파괴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창조한다. 비버가 초원을 만들고 다른 동물들에게 그것을 공급할 때에 각각의 동물들과 생명체들은 서로 연결되고 그 때의 대지는 다른 생명체를 지지 할 또다른 힘이 된다. 그 힘은 혼돈이 아닌 다른 동물들을 끄는 힘이다. 또한 터릭(Tulik)은 앤젤라에게 비버가 세상을 창조를 했다고 말하는데 그에 의하면 “다른 창조물들에서부터 낯선 인간들을 만든 이는 비버들이었다. 그들은 인간들과 조약을 맺었다. 비버들은 자신들의 말을 주었고 서로 도우라고 했다. 비버는 물고기와 물새와 동물을 제공했고 사람들은 세상을 돌보았다”고 한다(239). 비버는 조약, 연합, 그리고 생태적인 조화를 위한 힘을 행사했고 만물은 정착이 되어갔다. 모든 개체들은 자신들에게의 적당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남은 일은 상호 의존적 관계를 지속해 가는 것이었다. 이제 비버의 소임은 앤젤라와 오로라에게로 이어진다. 물과 대지가 하나로 되어버린 혼돈의 장소에서 일련의 의식을 통해 전일성을 회복한 자매는 비버의 대지를 다시 한 번 재현해 나갈 것이다.

    Ⅳ. 결론

    본 논문에서는 호간이 자신의 소설 『태양 폭풍』에 드러낸 의식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일성 회복과 그 회복을 통한 새로운 미래 창조는 의식을 통해 가능하며 호간에게 의식이란 분리된 개체들을 하나로 엮고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온전함을 인식하는 정신적인 변화의 과정이다. 주인공 앤젤라와 부쉬는 다양한 의식의 형태를 통해 전일성을 회복한다. 부쉬는 스스로가 만들어 낸 애도제를 통해 그리고 앤젤라는 바운더리 워터스를 건너는 의식의 과정을 통해 전일성의 의미를 깨닫는다.

    호간이 『태양 폭풍』에서 전일성의 적극적인 구현을 위해 도입한 개념은 공동체, 의식, 신화 등이었다. 이는 원주민의 전통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들이기는 하나, 호간의 경우에는 이들의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변화가 있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재현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전일성의 기본이 관계의 지속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인식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의식이라는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변화는 곧 전일성 회복의 시작점이 된다. 변화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모두의 공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변화 없는 수용은 한쪽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배제를 강요 하기 마련이므로 호간은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공존의 장을 모색한다. 또한 그녀는 주인공의 사고 변화와 각성의 과정을 탐색하는 작업을 통해 전일성의 회복을 구현함으로써 생태 의식의 보다 구체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도라 루즈, 아그네스, 부쉬, 해너, 마지막으로 화자인 앤젤라에 이르는 5세대 여성들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유대 회복은 전일성의 회복이라는 맥락으로 이어진다.『태양폭풍』은 전일성으로 향하는 수단으로써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부쉬가 스스로 만들어 낸 의식은 그녀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되돌리는 기능을 함과 동시에 그녀에게 앤젤라와 해너를 공동체 안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이 네 명의 여성이 바운더리 워터스를 통과하는 과정 역시 의식의 형태이며 이 과정을 통해 주인공 앤젤라는 전일성의 의미를 몸으로 체현하고 해너가 남긴 자신의 이부 동생 오로라와 함께 애덤스 립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약한다. 호간은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의식을 통해 영성 회복이라는 정신적인 유대를 강조하며 전일성 회복이 상호관계의 조화로운 흐름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독자들에게 알린다.

    『태양폭풍』에서 그려지는 앤젤라의 자취는 결국 의식을 통한 영성 회복의 여정이다. 그 여정은 전일성의 완성을 향한 여정이며 전일성은 결국 모든 생태계의 개체들이 지속적인 관계 속에 어떤 위계도 없이 상호 맥락의 긍정적인 흐름을 따르며 유지할 때 발현되는 이상적인 조화의 상태이다. 호간은 『태양폭풍』에서 이러한 전일성 완성을 위한 영성 회복 과정을 의식이라는 형태를 통해 묘사한다. 다양한 의식의 형태를 통해 부쉬의 공동체로의 진입과 앤젤라의 자각을 이끌어 내고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을 통해 앤젤라는 결국 자신의 이부 자매인 오로라를 받아 들임으로써 전일성을 완성한다.

    『태양폭풍』의 전일성은 포용, 이해, 인정, 사랑, 차이의 인정, 관용, 나눔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전일성의 회복과 인식은 개체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생태의식의 중요한 발현점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오늘날 인간이라는 개체에게 주어진 생태적인 책무일 것이다.

  • 1. 김 명숙 2013 「서구 여신 담론과 관음 여신의 대안 가능성」 google
  • 2. Baker Vanessa G 2010 Women's Pilgrimage as Repertoiric Performance: Creating Gender and Spiritual Identity through Ritual. google
  • 3. Bell Catherine M. 1992 Ritual Theory, Ritual Practice. google
  • 4. Chandler Katherine R. 2003 “'How Do We Learn to Trust Ourselves Enough to Hear the Chanting of the Earth?': Hogan's Terrestial Spirituality.” Barbara J. Cook, From the Center of Tradition: Critical Perspectives on Linda Hogan. P.17-33 google
  • 5. Summer Harrison (2011) “Sea Level: An Interview with Linda Hogan.” [Isle] Vol.18 P.161-77 google doi
  • 6. Hogan Linda 1995 Dwellings. google
  • 7. Hogan Linda 1990 Mean Spirit. google
  • 8. Hogan Linda 1995 Solar Storms. google
  • 9. Jespersen T. Christine (2010) “Unmapping Adventure: Sewing Resistance in Linda Hogan's Solar Storms.” [Western American Literature] Vol.45 P.274-300 google
  • 10. Kunce Catherine (2009) “Feasting on Famine in Linda Hogan's Solar Storms.” [Studies in American Indian Literatures] Vol.21 P.50-70 google doi
  • 11. Largent Floyd (1998) “Windigo: A Native American Archetype.” [Parabola: Myth, Tradition, and the Search for Meaning] Vol.23 P.22-25 google
  • 12. Schultermandl Silvia (2005) “Fighting for the Mother/Land: An Ecofeminist Reading of Linda Hogan's Solar Storms.” [Studies in American Indian Literatures] Vol.17 P.67-84 google doi
  • 13. Stacks Geoffrey (2010) “A Defiant Cartography: Linda Hogan's Solar Storms.” [Mosaic: A Journal for the Interdisciplinary Study of Literature] Vol.43 P.161-76 google
  • 14. Stromberg Ernest 2003 “Circles within Circles: Linda Hogan's Rhetoric of Indigenism.” Cook, From the Center of Tradition: Critical Perspectives on Linda Hogan. P.97-108 google
  • 15. Tarter Jim 2000 “'Dreams of Earth': Place, Multiethnicity, and Environmental Justice in Linda Hogan's Solar Storms.” Reading under the Sign of Nature: New Essays in Ecocriticism. Eds. Tallmadge John and Harrington Henry. P.128-47 google
  • 16. Lee Carla (2007) “Traditional Mothers and Contemporary Daughters in Linda Hogan's Solar Storms.” Teaching American Literature: A Journal of Theory and Practice Vol.1 P.50-61 google
  • 17. Vernon Irene (2012) “We were Those Who Walked out of Bullets and Hunger: Representation of Trauma and Healing in Solar Storms.” [American Indian Quarterly] Vol.36 P.34-49 google d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