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죽음’에 대해- 쥘 베른의 『20세기 파리, Paris au XX? siecle』를중심으로 -

La mort de la litterature dans Paris au XX? siecle de Jules Ve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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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Cette étude est limité à Paris au XXᵉ siècle, un roman posthume de Jules Verne. En tenant compte du temps de sa création, cet oeuvre posthume est un des premiers romans verniens. Dans ses premiers romans, Jules Verne, le soi-disant fondateur de ‘l’anticipation scientifique’, était optimiste sur l'avenir de la science et de l'industrie. Mais, Paris au XXᵉ siècle montre la caractéristique proche des derniers romans verniens qui étaient pessimistes sur l'avenir de la science et de l'industrie. Jules Verne, dans Paris au XXᵉ siècle, est même allé jusqu'à déclarer la mort de l'art du XXᵉ siècle. Grâce à la découverte de cet oeuvre posthume, on a donc aperçu que le pessimisme de Jules Verne était présent dès le début de son oeuvre. Ce pessimisme propre à la littérature vernienne a son origine du romantisme français.

    Le rôle et la fonction de la littérature varient selon l'époque. Jules Verne prédisait la mort de la littérature dans Paris au XXᵉ siècle. Il pensait que la véritable littérature, comme la littérature romantique, ne devait pas fermer les yeux sur la réalité sociale. Sa pensée rappelle l’engagement littéraire présenté dans la seconde moitié du XXᵉ siècle. Pour des raisons similaires, la crise de la littérature a été réellement soulevée au XXᵉ siècle. Jules Verne craignait que la science et l'industrie ne causent la pensée mécaniste et l'uniformité, bien qu'elles donnent des commodités. Cette étude a pour but d'éclaircir des motifs pour lesquels Jules Verne prédisait la mort de la littérature. Jules Verne reçut déjà le baptême du romantisme, et il jugeait que la science et l'industrie détruisaient la littérature. En fait, l'apparition de la littérature non-engagée était due au capitalisme et à la répression du second Empire. Le pessimisme de Jules Verne était également surchargé par ces rêves frustrés de son temps.

  • KEYWORD

    쥘 베른 , 『20세기파리』 , 낭만주의 , 비관주의 , 문학의 죽음

  • Ⅰ. 머리말

    쥘 베른은 ‘이야기의 문법’을 찾는 데 골몰하던 20세기 후반의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같은 구조주의 문학 이론가들의 관심을 끌면서 문학사에도 거론되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시기는 19세기 중후반이다. 그것도 이 시기의 ‘대중 소설가’ 부류에 짤끔짤끔 호명되고 만다.2)당시 쥘 베른의 소설은 주목을 받긴 했으나 문학사의 어떤 큰 흐름과도 관계없다. 그는 아직도 문학사가 잘 다루지 않는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개척자 중 한명이다.

    ‘과학 소설’의 다른 한 축을 이끈 H. G. 웰스는 ‘과학’을 소설에 적용하는 방식에서 쥘 베른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쥘 베른의 ‘과학 소설’은 ‘미래 예상 소설(roman d'anticipation)’이라 부를 만큼 실현 가능한 과학 이론을 활용한 반면, 웰스의 ‘과학 소설’은 실현 가능성과는 무관한 과학적 가설을 바탕으로 한다. ‘Science Fiction’을 흔히 ‘공상 과학’으로 번역하는 까닭은 이런 웰스 식 ‘과학 소설’ 때문일 것이다.3)

    쥘 베른의 ‘과학 소설’이 예상한 미래는 대개 실현됐다. 그가 『20세기 파리』에서 예상한 20세기4)도 마찬가지다. 웰스는 과학의 미래에 회의적 인데,5)쥘 베른은 『기구 타고 5주간, Cinq semaines en ballon』(1863) 같은 초기작에서 퍽 낙관적이다. 유작인 『20세기 파리』는 『기구 타고 5주간』과 가까운 시기에 쓴 것으로 밝혀졌으나, 후기작처럼 과학의 미래에 아주 비관적이다. 이런 비관주의가 쥘 베른의 문학에 처음부터 엄존했던 것이다.6)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를 생전에 출판하지 못하고 유작으로 남긴 것 은 이런 비관주의 탓이다. 쥘 베른은 20세기에 과학의 발전과 산업화로 기계적 사고가 만연해, “예술은 죽었다”7)고 한숨짓는다. 출판인 쥘 엣젤이 내친 이런 비관주의는, 쥘 베른이 문학에 입문하면서 길러진 낭만주의 성향인 듯하다. 『20세기 파리』에 거론된 ‘문학의 죽음’도 바로 낭만주의 문학의 죽음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필히 쥘 베른과 낭만주의의 연관성을 속속들이 따져보아야만 한다.

    쥘 베른이 왕성하게 창작하던 시기는 프랑스 낭만주의와는 분명 시차가 있다. 참여 의식이 강한 프랑스 낭만주의가 거듭된 혁명의 좌절로 비켜난 뒤, 과학적 객관성을 내세운 문학이 앞장선다. 참여보다 방관의 시기 가 온 것이다. 그것은 혁명의 좌절뿐 아니라 당시의 억압적 정부 탓이기도 하다. 『20세기 파리』에서 ‘문학의 죽음’을 거론한 쥘 베른의 비관주의는 이런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쥘 베른의 비관주의는 프랑스 낭만주의가 겪은 좌절로부터 옮아온 것도 있지만, 그가 청년기에 몸소 겪은 제 2 제정기의 문학에 대한 기대가 어그러져 생긴 것도 있다.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에서 개탄하는 1960년 대의 세태는 그가 살던 1860년대의 세태와 그대로 빼닮았다. 쥘 베른의 비관주의를 이해하려면, 프랑스 낭만주의의 진퇴뿐 아니라 그 이후에 현실 방관 문학이 주류가 되고 심지어 현실 추수문학까지 나타나는 역사적 과정과 배경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20세기 파리』에는 ‘예술의 죽음’이 거론되지만, 우리는 예술 중에서도 특히 ‘문학의 죽음’에 유의한다. 『20세기 파리』의 주인공이 문학도이고, 우리가 다룰 범위를 줄이기 위해서다. 어느 시대나 공연히 문학의 위기를 들먹이곤 하지만, 150년 전에 구체적 이유를 내건 쥘 베른의 예상은 특별 하다. 우리는 쥘 베른이 동경하는 문학이 어떤 문학이고, 어떤 기능과 역할의 문학인지 살펴볼 것이다.

    1)Roland Barthes, “Par où commencer?” dans Le degré zéro de l’écriture, suivi de Nouveaux essais critiques, Seuil, 1972. pp.145-155.  2)P. Abraham et R. Desne, Manuel d'histoire littéraire de la France, t. V, de 1848 à 1913, Les Éditions Sociales, 1977. pp.317-324.  3)“Chronologiquement, Jules Verne a fondé l'anticipation scientifique ; en fait, c'est plutôt de Wells que toute la science-fiction actuelle procède.” Jean Gattégno, La Science-Fiction, Puf, 1971, p.9.  4)쥘 베른이 예상한 20세기는 1960년대이다. Jules Verne, Paris au XXᵉ siècle, Hachette et Le Cherche Midi Éditeur, 1994, p.27.  5)웰스의 비관주의는 그의 첫 소설에서부터 확실히 드러난다. Jean Gattégno, op. cit., p.39.  6)“Le pessimisme est donc présent dès le début de son oeuvre.” Piero Gondolo Della Riva, “Préface” Paris au XXᵉ siècle, Hachette et Le Cherche Midi Éditeur, 1994, p.21.  7)“... l'art est mort!” Jules Verne, op. cit., p.133.

    Ⅱ. 『20세기 파리』와 비관주의

       1. 쥘 베른과 낭만주의

    쥘 베른의 『20세기 파리』는 편집인이 서두(avant-propos)에 제기한의 문들에도 불구하고 쥘 베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물론 편집인이 지적하듯 여태껏 “쥘 베른의 작품은 결코 쉽게 분류되지 않았다.”8)그의 작품의 독자가 청소년인지 어른인지, 그가 평생 과학적 낙관주의자였다 말년에 비관주의자가 된 것인지, 그의 작품에 나오는 미래의 기술들이 모두 그의 발명인지, 당시 출판인 쥘 엣젤로부터 끊임없이 냉대와 수정 요구를 받은 그가 작가이기는 한 것인지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쥘 베른의 소설집 『특이한 여행들, Voyages Extraordinaires』은 과학 소설, 모험 소설, 역사 소설 등 한가지로 나누기 어려운 특성을 보여준다. 당시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쥘 베른의 소설에 독자의 부류가 국한된 적은 없다. 쥘 베른의 소설에 나오는 미래의 기술들은 대부분 이미 가설로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쥘 베른은 그것들의 활용 가능성을 정련하게 예측했을 뿐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쥘 엣젤의 수정 요구를 받은 대가도 쥘 베른 혼자는 아니다.9)다만 쥘 베른의 유작인 『20세기 파리』가 초기작으로 밝혀지면서, 그가 애초 비관주의자임은 확인된다.

    1828년에 태어나 1905년까지 생존한 쥘 베른은 거의 한 세기의 증인이자 미래 예상 소설가이다. 모든 세기는 세기마다 두드러진 문학적 경향들로 점철되지만, 쥘 베른은 그의 소설이 갖는 미래 예상성 때문에라도 한 경향의 특성만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쥘 베른은 청년기에 낭만주의의 세례를 받고 장년기에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및 상징주의의 위세에 꺾이지 않고, 미래 예상 소설의 선구자가 된다.

    쥘 베른이 처음부터 미래 예상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그도 출발은 여느 문학 소년과 다를 바 없다. 쥘 베른의 학업은 1834년부터 상벵 (Sambin) 부인 기숙학원에서 시작된다. 이 초기 교육은 쥘 베른의 문학 성향 중 하나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벵 부인은 선장인 그녀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가 행방불명됐지만 남편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고, 남편이 어느 무인도에 표류했다 그곳에서 크루소처럼 어깨에 녹색 앵무를 걸치고 방드르디와 함께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끈질긴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한다.10)

    상벵 부인의 이런 터무니없는 기대는 당시의 호기심 많은 소년들에게 로빈소나드(robinsonnade)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 쥘 베른은 1839년에 집을 나와 인도로 가는 원양 항해선을 탄다. 도중에 팽뵈프(Paimboeuf)에서 아버지한테 붙잡혀 온 그는 자신의 출항이 “상벵 선장을 찾아 그의 아내에게 데려다 주고 싶은 강한 욕망”11)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후일담을 남긴다. 이것에 대해 쥘 베른이 사랑한 이종사촌 카롤 린(Caroline)에게 산호 목걸이를 가져다주려는 출항이라는 말도 전한다.

    아버지로부터 가출에 대해 꾸중을 듣고 마른 빵과 물만 먹는 벌을 받은 쥘 베른은 어머니에게 “이제 꿈속에서만 여행하겠다”12)고 맹세한다. 그는 1844년 낭트의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한편의 운문 비극과 여러 편의 소네트를 쓴다. 1848년에는 조금 유연한 드라마도 한편 쓴다. 쥘 베른은 1848년 아버지의 희망대로 법률 공부하러 상경해 대학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낭만주의의 격랑 속에 휘말린다. 당시 그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본을 사려고 사흘을 굶었다고도 한다.

    쥘 베른은 뒤마 페르(Dumas père)를 만나 그의 지원으로 1850년에 1 막 운문극을 공연해 대중의 관심을 끈다. 이것이 쥘 베른의 문단 데뷔인 셈이다. 1852년에는 『특이한 여행들』에 속하는 그의 소설들의 원형인 선박과 기구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쥘 베른은 『특이한 여행들』의 첫 소설 『기구 타고 5주간』을 발간한 1863년까지 여러 편의 소설을 쓰고, 극작도 계속해 두 편의 합작 연극을 공연한다. 그의 진정한 인생은 『특이 한 여행들』의 출판인 쥘 엣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쥘 베른에게 과학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쓰게 한 당사자는 쥘 엣젤이다. 『특이한 여행들』을 발간한 쥘 엣젤의 ‘교육 오락 잡지(Le Magasin d'Éducation et de Récréation)’의 설립 목표는 ‘가르치며 즐겁게 만드는 것(instruire et amuser)’13)이다. 쥘 베른은 이 목표를 좇느라 그의 낭만주의적 성향을 왜곡시킨다. 그것을 반증하는 작품이 『20세기 파리』이다. 『20 세기 파리』는 1863년경에 쓴 초기작이면서도 후기작처럼 과학의 미래에 시종일관 비관적이다. 그래서 쥘 베른은 『20세기 파리』를 쓰고도 바로 세상에 내놓지 못한다.

    『20세기 파리』의 서문에는 쥘 엣젤이 『20세기 파리』를 거절한 내막이 잘 밝혀져 있다. 우리는 그것보다 쥘 엣젤이 쥘 베른의 비관주의를 어떻게 집어내는가를 확인할 것이다. 쥘 엣젤은 발작이나 위고 같은 당시 거장들의 창작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쥘 베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쥘 엣젤이 『20세기 파리』의 초고를 언급한 편지나 초고의 여백에 남긴 글을 통해 쥘 베른의 낭만주의를 어떻게 변용시키는지 살펴보고자한 다.

    쥘 베른이 학습한 당시의 낭만주의를 밝히기는 어렵지 않다. 『20세기 파리』에서 미쉘이 그의 삼촌에게 확인시키듯, 프랑스 낭만주의를 걸머진 작가는 위고이다. “에르나니(Hernani), 뤼 블라스(Ryu Blas), 성주들(les Burgraves), 마리옹(Marion) 전투들의 승자, 아르콜(Arcole) 다리 위에서 낭만주의의 깃발을 흔들고 있는” 그 위고이다. “보나파르트처럼, 그는 25세에 벌써 우두머리 장군이었고, 오스트리아식 고전파를 만나는 족족 쳐 부수었다.”14)위고는 프랑스 낭만주의를 다른 어느 나라 낭만주의보다 명확히 정의한다.

    1828년에 태어난 쥘 베른이 학습한 낭만주의는 위고가 1827년의 『크롬 웰, Cromwell』서문에 규정한 낭만주의일 수밖에 없다. 사실 위고의 낭만주의에 대한 정의는 때늦은 만큼 이전의 부분적 정의들을 거의 함축한다. 루소가 ‘낭만적(romantique)’이라 표현한 ‘야성적(sauvage)’ 경치로부터 오는 정서,15)마담드 스타엘이 소개한 독문학에서 낭만적이라 일컬은 중세 기독교와 기사도나 음유 시인의 노래에서 비롯한 시의 특성,16)샤토브리앙이 『아탈라, Atala』와 『르네, René』에 드러낸 ‘이국취향(exotisme)과 세기병(mal du siècle)’의 비관주의 등.17)

    유럽 낭만주의의 시대적 배경이 프랑스 대혁명이라지만 프랑스 낭만주의는 그 이후의 정치적 간섭에도 휘둘린다. 프랑스에 고전주의가 오래 살아남은 까닭이기도 하다. 쥘 베른이 태어나 교육을 받을 때는 프랑스의 낭만주의가 얼마큼 자리한 뒤이다. 쥘 베른이 목격한 프랑스의 낭만주의는 1830년의 7월 혁명과 1848년의 2월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공포로 얼룩진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전성기로 간주되는 이 18년이 쥘 베른의 학습기 이다.

    7월 혁명으로 보다 뚜렷해지는 낭만주의의 정의 중 하나가, 낭만주의는 “새로운 사회의 표현”19)이라는 것이다. 위고가 『에르나니, Hernani』 서문에 쓴 것처럼, 고전주의의 구속을 벗어나려는 “문학에서의 자유주의인 낭만주의는, 7월 왕정으로 창시된 정치적 자유주의와 짝을 이룬다.”20)라마르틴처럼 정치에 참여하는 낭만주의자도 생기는, 현실 참여 의식이 강한 이 시기에, “문학 작품의 내용이 새로 바뀌고, 사회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을 대체하며, 하나의 낭만적 철학이 수립된다.”21)

       2. 낭만주의 이후의 비관주의

    프랑스 낭만주의가 당시 정치와만 짝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낭 만주의는 산업혁명과도 짝을 이룬다. “산업혁명이 낭만주의의 본원들 중 하나를 구성하고, 동시에 이 문학의 초기 특성을 변형시킨 상당한 힘이 되었다”22)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을 인과관계로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산업혁명이 프랑스 낭만주의를 변형시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낭만파(l'école romantique)’는 1830년에 『에르나니』의 승리를 거둔 후 더 이상 하나의 파로 존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 때 유럽에서 고립되고, 석탄이 풍부하지 않고, 철로도 늦게 건설하는 탓에 산업혁명이 지체된다. 7월 왕정을 전후해 프랑스에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대두한다. 대도시로 공장들이 집중되고 많 은 노동자들이 유입돼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다. 기계화로 부르주아지는 더욱 세를 확장한다. 노동자들의 빈곤은 사회 문제가 된다. 뮈세, 네르발, 고티에 같은 시인들은 정치에 끌려 민중 입장에서, 노동자들의 빈곤을 동정한다.

    7월 왕정은 정치적 자유를 꽤 확대하지만, 노동자들은 부르주아들보다 급진적 변혁을 원한다. 7월 왕정은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셍 시몽이 ‘기업 주(entrepreneur)’라 일컫는 부르주아들과 7월 왕정의 유착은 노동자들을 고립시켜 정치적 자유주의를 후퇴시킨다. ‘낭만파’도 뿔뿔이 흩어져, 재산가들의 인색함을 비난하고, 범죄, 도둑질, 매춘을 고발하는 시인이 나오고, 속악한 현실에 눈을 감고 ‘예술을 위한 예술’에 매진하는 시인도 등장한다.

    ‘낭만파’ 중 몇몇은 위태로우나 불가피하게 고조되는 민주주의와 기계화의 또 다른 성과에 끌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저널리즘의 확장이 낳은 성과가 그것이다. 식자 몇 천명이 광범위한 독자로 불어난다. 연재소설을 탐독하는 그들은 연극에 전율하고, 정치적 사건을 풍자한 노래로부터도 감수성을 익힌다. 정기 간행물의 발행은 엄청나게 늘고, 낭만적 편집인들은 신인 작가들에게 대망을 품게 하고 그들의 책을 떠들썩하게 세상에 내 놓는다.

    산업혁명은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강화하고 농민들을 도시의 공장으로 끌어들여 빈곤한 노동자들을 양산한다. 부르주아지나 낭만파는 각자 나름대로 왕정의 조력자가 되거나 민중의 입장에 선다. 그런데 이 무렵 뜻밖의 새로운 구원론이 제기된다. 이것은 기독교의 수동적 구원론과는 달리, 인간에게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고 모든 숙명과 맞설 자유가 있음을 확신시키는 구원론이다. 셍시몽처럼 유토피아를 꿈꾸는 개혁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유럽의 어떤 낭만주의도 프랑스 낭만주의보다 더 사회주의와 일맥상 통하는 것은 없다.”23)당시 사회주의자들은, 미래에 적용하려고, 과거를 연구하고, 산업으로 야기된 그들 주위의 대혼란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매우 낭만적이다. 그들은 이기려면 세상의 민심을 전향시켜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신흥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루이 필립을 내쫒은 1848년의 2월 혁명으로도 민심은 끝내 전향되지 않는다. 민심은 여전히 능동적 구 원론에 확신이 없는 것이다.

    2월 혁명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새 국면을 맞는다. 임시 정부에는 부르주아들이 과반수이고,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사회주의자들도 참여한다. 그들의 주장으로 노동권이 인정되고, 집회와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며, 실 업자 구제를 위해 국영 공장들이 세워진다. 그러나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부르주아들이 사회주의적 급진 개혁에 놀라, 헌법 제정을 위한 선거에서 900명 중 800명을 온건 공화파를 뽑는다.

    정부가 개편돼 사회주의자들이 쫓겨나고 국영공장들이 문을 닫자,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은 6월에 다시 폭동을 일으키나 군대에 의해 진압된다. 6월 폭동으로 선포된 계엄령하에서 새 헌법이 공포되고, 헌법에 따라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그 결과 2월 혁명을 주도한 공화파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배제되고, 나폴레옹의 후광을 입은 그의 조카 루이나 폴레옹(Louis Napoléon)이 새 공화정의 대통령에 압도적으로 선출된다.

    7월 혁명이 사회와 민중의 현실에 대한 인식의 계기라면, 2월 혁명은 민중에 의한 개혁이 좌절돼 환멸로 바뀐 계기이다. 부르주아들과 이해가 충돌한 노동자들의 폭동은 희생자의 수만 갈수록 늘리며 실패를 뚜렷이 확인시킨다. 쥘 베른이 아버지의 희망대로 법학을 공부하러 파리에 상경 한 때가 바로 이 6월 폭동이 일어난 주의 다음날이다. 그는 1848년 7월 17일 아버지께 쓴 편지에 당시의 ‘무시무시한 광경’을 이렇게 전한다.

    당시 스무 살인 쥘 베른의 정치성을 여기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무시무시한 광경’에 호의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 시기에는, 대개의 프랑스 문학사가 프랑스 낭만주의를 1820년에서 1850년까지로 획정하듯,25)‘낭만파’의 창작은 거의 중단된다. ‘문학에서의 자유주의’라는 ‘낭만파’의 구호도, 1843년에 위고의 드라마 『성주들, Les Burgraves』이 실패하고 퐁사르(Ponsard)의 고전 비극 『뤼크레스, La Lucrèce』가 성공함으로써, 잠잠해진 지 오래다.

    2월 혁명 때 임시 정부의 수상까지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라마르띤, 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위고, 비뉘, 발작, 뒤마 등 정치에 가담한 작가들은, 1851년에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 후, 환멸을 느껴 숨거나 위고처럼 국외로 떠나지 않으면 제 2 제정의 부득이한 현실을 체념하고 끌어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고 작가들이 부르주아들만 편들거나 노동자들의 입장만 대변한 것도 아니다. 작가들은 7월 왕정 때보다 더 어정쩡한 처지에 놓인다.

    7월 왕정 때는 작가들과 부르주아들과 노동자들이 자유주의의 구현에 동참한 시기이다. 당시 기업주들의 배신으로 자유주의가 후퇴하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은 동정 받는 계급일 뿐이다. 그러나 제 2 제정 하의 노동자들은 작가들 이상으로 사회 참여 의식을 깨우친, 부르주아들과 대등한 세력이다. 제 2 제정도 부르주아들의 일방적인 타협의 결과이지만, 노동자들의 저항도 오래 만만찮다. 지속된 폭동에 희생까지 많아진 듯하다.

    쥘 베른이 1851년 4월 7일에 아버지께 쓴 편지 내용은 4,000번이나 계속된 죽음에 대해 한참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많은 주검들을 딛고선 “제 2 제정 시기의 문학은 전체가 페시미즘, 절망적인 숙명론의 색채를 띠게 된다.”27)이 페시미즘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7월 왕정에서 ‘낭만파’가 맛본 좌절과 환멸, 대혁명 후 제 1 제정과 복고왕정으로 이어지던 격동기의 ‘세기병(mal du siècle)’으로부터 싹튼 것이다.

    대혁명 후 프랑스에는 한결같이 재현되는 비관주의의 공식이 있다. 혁명으로 권력을 차지한 세력은 대개 자중지란에 빠진다. 구세력을 청산하는 단계에서 많은 인명 피해와 사회적 불안이 야기된다. 불안에 떠는 민심은 강경파와 이반한다. 안정을 바라는 민심을 꼬드겨 권력을 뺏는 세력이 나타난다. 제 1 제정, 복고 왕정, 7월 왕정, 제2제정이 그렇다. 혁명 세력은 부르주아지, 농민, 노동자인데, 권력을 막바지까지 유지하는 쪽은 부 르주아지뿐이다.

    나폴레옹 3세는 1860년까지는 아주 전제적으로 통치한다. 당시의 경찰 은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투옥한다. 신문들은 황제의 찬양 기사들만 전한다. 이 시기를 독재 제정이라 부른다. 독재 제정은 민심의 노여움을 산다. 1860년부터 입법원(Corps législatif)이 정부를 더 많이 견제하고, 신문들도 내각을 비판하게 된다. 나폴레옹 3세는 새 혁명을 막으려고 개혁들을 한다. 노동자들을 다독이려고 그들에게 적잖은 권리를 인정한다. 그러나 1860년 후에도 민심의 노여움은 사그라들지 않는다.28)

    1850년 후의 문학은 낭만주의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다고 이 시기의 문학이 낭만주의와 전혀 별개라는 뜻은 아니다. 차라리 낭만주의를 연장 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이 사회에 관심을 돌린 것은 전적으로 낭만주의의 영향이다. 낭만주의는 부르주아지를 기반으로 성립하고도 이 기반과 충돌하는 모순을 되풀이한다. 번번이 이상을 꺾는 사회, 그런 사회에 대한 환멸까지 낭만주의가 전염시킨 병이다.

    사실주의라 일컫는 1850년 후의 “문학은 다시 비개인적이 된다.”29)‘비 개인적’이라는 말은 개인적인 낭만주의에 반동적(réactive)이라는 뜻이지만, 시대정신의 총아인 과학처럼 ‘객관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된 다.’는 말은 고전주의 같은 ‘비개인적’인 문학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낭만 주의의 유일무이한 발원지인 ‘자아(le Moi)’의 그림자마저 덮으려 한다. 더구나 “문학은 과학의 무감정(impassibilité)을 가장하기까지 한다. 그것이 자연주의다.”30)

    사회에 무관심한 예술을 위한 예술파와 고답파(Parnassiens)뿐만 아니라, ‘비개인적인’ 사실주의와 ‘무감정’의 자연주의까지도, 현실과 거리를 두려는 작가들의 비관주의를 은닉한다. 그들은 낭만적 비관주의의 영악한 상속자들이다. 르콩트 드 릴(Leconte de Lisle)의 시편들이나 플로베르 (Flaubert)의 『셍 탕투안의 유혹, La Tentation de Saint Antoine』 등이 낭만주의가 물려준 가장 확실한 비관주의의 증거이다.

    19세기 초반에 태어나 프랑스 낭만주의의 전성기에 청년기를 보내고 나중에 대가로 거듭난, 1810년대 생의 르콩트 드 릴과 플로베르나, 1820 년대생의 텐느(Taine)와 쥘 베른이 과학에만 홀린 것은 아니다. 쥘 베른과 동갑인 실증주의자 “텐느만큼 세기병이 깊이 침윤한 희생자는 아무도 없다.”31)‘세기병’에 대한 그의 뛰어난 해설이 나오는 『영문학사, La littérature anglaise』가 발간된 해가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를 쓴 무렵인 1863년이다.

    『20세기 파리』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쥘 베른이 진보에 회의를 내비친, 비관주의를 처음 드러낸 소설을 『인도 왕녀의 유산 5억, 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égum』(1879)으로 본다. 다시 말해 쥘 베른은 51세가 되어서야 비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인데, 『20세기 파리』는 그가 이미 16년 전에도 비관주의자임을 확인시킨다. 쥘 베른에게서 ‘2월 혁명당원적 (quarante-huitard)’ 기억을 누가 깡그리 지워 버릴 수 있을까?32)

    8)“L'oeuvre de Jules Verne ne s'est jamais laissé facilement classer.” Véronique Bedin, “Avant-propos de l'éditeur” Paris au XXᵉ siècle, Hachette et Le Cherche Midi Éditeur, 1994, p.7.  9)출판인 Hetzel이 당시의 대가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을 통해 그들의 작품에 Hetzel이 끼친 상당한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A. Parménie et C. Bonnier de la Chapelle, Histoire d'un éditeur et de ses auteurs, P.-J. Hetzel(Stahl), Albin Michel, 1953.  10)Marguerite Allotte de la Fuÿe, Jules Verne, sa vie, son oeuvre, Hachette, 1953, pp.16-17.  11)“Un désir véhément de retrouver le capitaine Sambin pour le ramener à son épouse” Maurice d'Ocagne, Hommes et choses de science, Vuibert, 1930, p.280.  12)“... dut jurer à sa mère de ne plus voyager qu'en rêve.” Marc Soriano, Jules Verne, Julliard, 1978, p.26.  13)Hetzel은 그가 바라는 Jules Verne의 작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Ce qu'on promet si souvent, ce qu'on donne si rarement, l'instruction qui amuse, l'amusement qui instruit, M Verne le prodigue sans compter dans chacune des pages de ses émouvants récits.” J. Hetzel, “Avertissement de l'éditeur”, Jules Verne, Voyages et Aventures du Capitaine Hatteras, Bibliotèche d'Éducation et de Récréation, 1866, p.1.  14)“... agitant sur le pont d’Arcole le drapeau du romantisme, lui le vainqueur des batailles d’Hernani, de Ruy Blas, des Burgraves, de Marion! Comme Bonaparte, il était déjà général en chef à vingt-cinq ans, et battait les classiques autrichiens en toute rencontre.” Jules Verne, op. cit., p.102.  15)“Les rives du lac de Bienne sont plus sauvages et romantiques que celles du lac de Genève” Jean-Jacques Rousseau, Rêveries du promeneur solitaire, Gallimard, 1972, p.93.  16)“Le nom de romantique a été introduit nouvellement en Allemagne, pour désigner la poésie dont les chants des troubadours ont été l'origine, celle qui est née de la chevalerie et du christianisme.” Mme de Staël, De l'Allemagne, Charpentier, 1839, p.146.  17)Maurice Jobin, Chateaubriand, René et quelques pages choisies, NEL, 2011, p.14.  18)“...j'avais déjà vu faire une révolution, renverser un régime, fonder une royauté nouvelle, bien que je n'eusse que deux ans alors, et j'entends encore les coups de fusil de 1830 dans les rues de la ville où, comme à Paris, la population se battit contre les troupes royales.” Pierre-André Touttain, “Souvenirs d'enfance et de jeunesse”, Jules Verne, L'Herne, 1974, p.58.  19)“l'expression de la société nouvelle” Philippe Van Tieghem, Les grandes doctrines littéraires en France, Puf, 1968, p.178.  20)“le romantisme, c'est «le libéralisme en littérature», qui fait pendant au libéralisme politique, instauré selon lui par la monarchie de juillet.” Ibid., p.179.  21)“où se renouvelle le contenu de l'oeuvre littéraire, où le social remplace l'individuel, où s'établit une philosophie romantique.” Ibid., p.157.  22)“la révolution industrielle avait constitué l'une des sources principales du romantisme et, simultanément, était devenue une force considérable qui avait transformé le caractère initial de cette littérature” Henri M. Peyre, Qu'est-ce que le romantisme?, Puf, 1971, p.98.  23)“En tout cas, nul romantisme en Europe ne fut plus intimement, et plus généralement associé au socialisme que celui de France.” Ibid., p.103.  24)“J'ai parcouru les divers points de l'émeute, rue Saint-Jacques, Saint~Martin, Saint-Antoine, le Petit-Pont, la Belle Jardinière, j'ai vu les maisons criblées de balles et trouées de boulets qui brisaient et écorniflaient balcons, enseignes, corniches sur leur passage; c'est un spectacle affreux et qui, néanmoins, rend encore plus incompréhensibles ces assauts dans les rues.” Marc Soriano, op. cit., p.37.  25)G. Lanson et P. Tuffrau, Manuel illustrée d'H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Hachette, 1929, p.505.  26)“une émeute a eu lieu, trois personnes ont été tuées! - en juin 12000 cadavres!” Pierre-André Touttain, op. cit., “Lettre à Pierre Verne, Lundi, le 7 avril, 1851”, L'Herne, 1974, p.63.  27)민희식, 『프랑스 문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9, p.316.  28)A. Bonifacio et P. Maréchal, Histoire de France, Hachette, 1954, p.121.  29)“La littérature redevient impersonnelle.” G. Lanson et P. Tuffrau, op. cit., p.505.  30)“Elle affecte même l'impassibilité de la science : c'est le naturalisme.” G. Lanson et P. Tuffrau, op. cit., p.505.  31)“Le mal du siècle a atteint peu de victimes plus en profondeur que Taine.” Henri M. Peyre, op. cit., p.251.  32)Jean Chesneaux, Jules Verne, une lecture politique, FM/Fondations, 1971, p.59, p.166.

    Ⅲ. 『20세기 파리』와 ‘문학의 죽음’

       1. 쥘 베른의 문학 계보

    쥘 베른에게서 낭만주의의 살아남음(survie)을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텐느가 “여러 낭만파의 심장을 태워버린 불타는 정열을, 안으로, 뇌의 영역 속으로, 옮겼다’33)고 간주되듯, 쥘 베른의 ‘여행들’을 특이하게 만 드는 과학도 ‘낭만적 과학(la science romantique)’이라는 주장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가 쥘 베른의 소설에 대해, 과학 덕택에 환상적인 것이 진실임직하게 보인다고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쥘 베른은 순전히 환상적인 것에 머무는 호프만(Hoffmann)을 탓하고, 과학적 양상의 합리적 논증으로 환상적인 것을 진실임직하게 만드는 포 (Poe)를 따른다. 이렇게 실증적 이성과 낭만적 꿈이 만나, 쥘 베른 식의 ‘과학 소설’이 태어난다. 문제는 쥘 베른의 소설은 후기로 갈수록 실증주 의의 패색이 완연하다는 점이다. 그것이 후기작을 낼 때 쥘 베른과 편집인 엣젤이 나이 든 탓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스크루 단 섬, L'île à hélice』 에서처럼 낭만적 조화의 신이 사회적 현실에 말려든 것이다.34)

    쥘 베른의 낭만주의는 괴테, 호프만, 발작 계보가 아닌, 바이런, 포, 샤토브리앙에서 보들레르에 이르는 계보에 속한다. 말하자면 그의 낭만주 는 독일 계통보다 영국과 미국 계통의 낭만주의라 할 수 있다. 특히 쥘 베 른의 ‘여행들’은 포의 여행들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는 내면의 여로만 몽상하기보다는 포의 인물처럼 실제 항해를 떠나는 ‘자유인(homme libre)’ 을 노래한다. 이런 항해는 시간보다는 공간으로, 현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을 융합시켜야 한다.

    쥘 베른이 일반적 낭만주의와 공유하는 것은 ‘절대 존재의 탐구(la recherche de l'absolu)’라는 목적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그가 내세우는 수단은 과학이다. 그러나 탐구의 종착지에서 쥘 베른은 늘 한계에 부딪힌다. 화산(volcan) 같은 자연의 파괴력이 그의 소설에 나오는 대표적 한계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삼켜버릴 이런 조화의 신만이 인간적 상대성보다 우주적 절대성이 지닌, 예술보다 자연이 지닌 불가항력적 우 월성을 알려줄 수 있다.

    『20세기 파리』는 위와 같은 낭만주의를 드러내는 쥘 베른의 문학에서 아주 초기작에 해당한다. 이 소설에는 ‘절대 존재의 탐구’라는 목적도, 위험천만한 바다의 항해도 거론되지 않는다. 『20세기 파리』에는 기계들이 지배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비관주의자가 되는 소수의 인물들만 나온다. 시대는 1960년대로, 이동 수단의 놀라운 발전에도, 그들이 돌아다 니는 공간은 오로지 파리로 제한된다.

    『20세기 파리』는 소설이라기보다 소설로 위장한 문명 비평서 같다. 엣 젤이 소설 원고의 여백에 남긴 첫 가필부터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1 장의 제목인 “교육 신용 협동 조합(Société générale de Crédit instructionnel)”에 대해 엣젤은 “푸리에(Fourier)의 용어 같다.”35)고 썼다. 출판인 엣젤의 뛰어난 감지 능력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누구도 『20세 기 파리』의 작가가 ‘푸리에주의(fouriérisme)’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을 테니까!

    쥘 베른의 소설에 공상적 사회주의의 반영이 확실한 것은 세노 (Chesneaux)의 연구로도 충분하다.36)엣젤은 쥘 베른의 다른 소설들을 참고한 적 없이도 그의 성향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출판인이자 공화파 정치인인 엣젤은 과학과 기술에 의한 진보를 믿으므로, 『20세기 파리』에 쥘 베른이 지옥처럼 그려 놓은 미래가 달가울리 없다. 따라서 엣젤은 “오늘날의 사람들은 당신의 예상을 믿지 않을 것이다.”37)라고까지 단정한다.

    엣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20세기 파리』에 그려진 지옥 같은 미래상이지, 『특이한 여행들』의 초기작들이 보여주는 낙관적 세계상이 아니다. 『20세기 파리』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쥘 베른이 『특이한 여행들』 의 초기작에서 낙관적이다가 후기작에서 비관적이 된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초기작에 해당하는 『20세기 파리』에 나오는 쥘 베른의 비관주의를 설명할 도리가 없다.

    위와 같은 모순은 쥘 베른의 『특이한 여행들」을 공상적 사회주의의 반영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생긴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이상과 좌절의 역사와 동궤로 본 것이다. 쥘 베른을 사상가로만 보면 안 된다. 그는 사상가이기 전에 당시 문학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작가이다. 쥘 베른의 초기작에 드러난 비관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2월 혁명 세대의 좌절, 제 2 제정 시기의 사회 현실과도 연결해 보아야 한다.

    1960년 8월 13일에 시작되는 『20세기 파리』에는 1860년대에 관한 언급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 시점은 쥘 베른이 “100년 전에 진보라 불리는 것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38)고 판단하는 때이다. 사실 1860년대에는 쎙시몽주의자이기도 한 나폴레옹 3세의 제 2 제정이 프랑스의 산업 발전이나 대외 위신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대신 민중의 자유는 억압되고, 자본가의 과점이 심화되자 마르크스주의자가 늘어난다.

    엣젤은 쥘 베른에게 쓴 편지에서 『20세기 파리』에 관해 “당신은 이런 책을 쓸 나이가 아닙니다. 20년 후에나 다시 써 보시오.”39)라고 말한다. 30대인 쥘 베른이 20년 후 52세가 되는 1880년에나 써야 할 소설이라는 것이다. 쥘 베른은 엣젤의 이 권유를 부지불식간에라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제국주의 시기로 접어듦에 따라, 1880년에서 1890년경부터, 노동과 과학에 의한 자연의 지배에 대한 베른적 꿈은 국가 기관들의 폭력과 돈의 힘을 접촉하면서 망가진다.”40)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를 쓴 동기를 엣젤이 모른 것 같지는 않다. 엣젤이 『20세기 파리』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원한 방향의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쥘 베른의 『특이한 여행들』을 펴낸 ‘교육 오락 잡지’의 설립 목표는 ‘가르치며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20세기 파리』는 엣젤이 『특이한 여행들』의 발간 취지를 구체화하기 전의 소설이다. 말하자면 『20 세기 파리』는 쥘 베른이 엣젤의 구상을 자세히 듣지 못하고 쓴 것이다.

    『20세기 파리』는 ‘가르치며 즐겁게 만드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다. 기계 와 과학의 이야기는 가르치기에는 너무 부정적으로 읽히고, 문학과 음악 등의 이야기도 즐겁게 만들기에는 너무 건조로이 들린다. 『20세기 파리』 에 청소년은커녕 어른도 심각해져 버릴 것이다.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 에서 예상한 미래가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기계에 종속돼 인간성을 상실하는 현상은 마르크스적 사회주의 이론을 떠오르게 한다.

    마르크스가 파리에 머물던 1844년에 쓴 『파리 초고, Les Manuscrits de Paris』에 ‘소외(aliénation)’ 이론이 나온다. 1860년대에는 파리에 이런 반자본주의적 논의가 흔했다. 1863년에 노동자들이 프루동 Proudhon의 지도로 런던에 파견되고, 이듬해 마르크스와 함께 국제노동자협회(First International)가 출범한다. 1864년에 나폴레옹 3세는 노동조합의 파업권까지 인정한다. 『20세기 파리』는 그런 시대와 환경에서 태어난다.

    제 2 제정은 산업의 발전과 민생의 안정을 기화로 출판과 집회의 자유 같은 정치적 자유를 탄압한다. 현실과 타협해 제정에 참여한 메리메 (Mérimée)와 셍트-뵈브(Sainte-Beuve)를 쥘 베른은 『20세기 파리』에서 희화화한다.41)사람들은 쾌락으로 도피하고 파리에는 사치와 퇴폐가 넘친다. 연극이 다시 각광을 받아 쥘 베른도 극작으로 파리 생활을 꾸린다. 그러나 『20세기 파리』를 보면 진보주의자 엣젤을 만난 쥘 베른의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

    엣젤과 대등하고 싶어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쥘 베른은 『20세기 파리』에서 엣젤과 그의 지인들을 생뚱맞게 치켜세운다. 그런데 쥘 베른의 시도는 허사가 된다. 엣젤이 정확히 그 부분에 “나는 이 모든 검열을 유치하다 고 본다.”42)고 쓴 때문이다. 또 엣젤이 “당신은 이런 책을 쓸 나이가 아닙니다. 20년 후에나 다시 써 보시오.”라고 한 그 위의 말은, 쥘 베른이 『20 세기 파리』에서 주제넘게 군다는 뜻이다.

    엣젤은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에서 문학의 형편을 언급한 데 대해 가당찮다는 반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엣젤은 쥘 베른의 첫 소설 『아테라스 선장, Le Capitaine Hatteras』에 대해서부터 사정없이 고칠 것을 요구한다. 출판에 애타는 쥘 베른은 엣젤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수밖에 없다. 진보주의자 엣젤은 과학의 찬사를 바란다. 그것이 쥘 베른이 『20세 기 파리』에 드러낸 비관주의를 『특이한 여행들』의 초기작들에서 숨긴 이유이다.

    『20세기 파리』는 미래 예상 소설이지만, 미래 예상을 제치고 읽으면, “운명의 악령이 (1960년의 사람들을) 가차 없이 쉬지 않고 앞으로 내모는”44)것을 보여주는 사실주의 소설이나 다름없다. 제 2 제정의 폭압에 작가들은 객관성을 명분으로 낭만적 자유주의를 포기한다. 사실주의는 현실 비판이 곤란하자 실증적 도구로 과학을 앞장세운다. 활용 방식은 영 딴판이지만, 쥘 베른도 그 시대의 총아인 과학을 수단으로 미래로 도피한다.

    낭만주의의 비관주의는 외로운 자아 같은 본성적 요인이나 혁명의 좌 절 같은 사회적 요인 탓이지만, 사실주의의 비관주의는 스스로 과학의 물리적 인과론과 기계적 세계관에 뛰어든 문학의 내적 요인 탓이다. “이상 의 모래밭에서 쾌히 허우적거리는”45)낭만적 영혼의 시선에는 현실 비판과 사회 참여를 기피하는 문학은 죽은 문학이다. 『특이한 여행들』의 후기 작들과 『20세기 파리』에 드러난 비관주의는 쥘 베른의 문학이 그렇게 죽지 않으려 나부댄 자취이다.

       2. 쥘 베른의 문학관

    『특이한 여행들』의 전체적 구상은 1866년이 되어서야 확정된다. 엣젤은 『아테라스 선장의 모험들과 여행들, Voyages et Aventures du Capitaine Hatteras』의 편집인 서문에서 “이제 예술을 위한 예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과학이 문학 안에 들어앉을 시점이 됐다.”46)고 주장하며, “실제 그의 목적은 과학에 의해 축적된 모든 지리, 지질, 물리, 천문학적 지식들을 요약해서 그에게 어울리는 그림같이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주사를 고쳐 쓰는데 있다.”47)고 밝힌다. 이것이 쥘 베른의 초기 문학관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여행들』에는 엣젤이 공표한 초기 문학관으로만 정리하기에는 퍽 다양한 성향들이 혼재한다. 쥘 베른의 후기작에서 드러나는 비관주의는, 나이 든 탓도 있지만, 1886년 3월 9일에 조카로부터 총격을 당한 이 후부터 심해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초기작인 『20세기 파리』에 드러난 비관주의는 이런 정설을 무색하게 한다. 쥘 베른의 성향은 애초 낭만적 비관주의이고, 『특이한 여행들』의 초기작에 보이는 낙관주의는 엣젤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기 왜곡의 산물이다.

    쥘 베른은 낭만주의자이면서, 낭만주의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발작이나 보들레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0세기 파리』가 그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해 준다. 『20세기 파리』의 느닷없는 출현은 쥘 베른 문 학의 연구에 ‘전기(tournant)’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책이 발간되자 세계 곳곳의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한국에서도 곧장 『20세기 파리』의 번역판이 나왔다. 『20세기 파리』는 쥘 베른의 문학에 흔한 ‘과학의 진보’와 는 다른 것을 예상한다. 뜻밖에도 그것은 ‘예술가들의 미래’이다.

    `엣젤이 ‘과학이 문학 안에 들어앉을 시점이 됐다’고 한 것은, 어떤 식으로 과학을 문학 안에 들어앉히라는 것일까? 『20세기 파리』는 이 문제에 대한 시행착오 중 하나 같다. 쥘 베른이 ‘과학의 진보를 확신’하고도, ‘예술가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묘사’한 것은 왜일까? 쥘 베른은 과학이 예술과 상충한다고 믿었을까? 『20세기 파리』에 그런 직설적 표명은 없다. 과학의 진보가 불러온 삶의 기계화로 예술이 퇴보한다는 논리뿐이다. 예술의 퇴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예술의 패러다임 교체이다.

    『20세기 파리』는 예술 중 특히 문학의 패러다임 교체에 부정적이다. “문학이 죽었다.”50)는 확언이 그것이다. 여기서 문학은 하나가 아니다. 과거의 문학이 있고, 새로 태어난 문학도 있다. “들판, 골짜기들, 구름들, 별들, 사랑, 모든 낡은 것들을 노래하는”51)시가 과거의 문학이라면, “산업의 경이를 찬양해야 하는”52)시가 새로 태어난 문학이다. 『20세기 파리』에서 인정받는 문학은 과거의 문학이다. 새로 태어난 문학은 더 이상 문학이 아니다.

    막심 뒤 캉 Maxime Du Camp의 『근대 시편, Les Chants Modernes』 같은 ‘실용시’54)를 쥘 베른은 용납하지 못한다. 뒤 캉의 친구인 보들레르까지도 뒤 캉의 ‘실용시’를 조롱하는 시를 쓴다.55)『20세기 파리』에 쥘베른이 예로 든 ‘실용시’는 자신이 쓴 시인 듯하다. 그는 『특이한 여행들』의 소설들에서 이런 시들을 다수 활용하고 있다. 쥘 베른도 한때 뒤 캉 같은 시인이 되고 싶어 그런 진보 찬양시를 많이 써 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쥘 베른은 뒤 캉의 시 “기관차, La locomotive”57)를 떠올리는 이런 시로 뒤 캉이 아카데미 회원들의 상찬을 받는 것을 비웃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 달 전에, 아카데미에 들끓는, 40명의 브로글리에게서 상을 받은”58)시라는 표현 때문이다. ‘들끓는’이라는 말에는 아카데미 회원 자리를 비아냥거리는 의미가 숨어있는 듯하다. 뒤 캉이 아카데미 회원이 될 것을 쥘 베른이 예상하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실제 뒤 캉은 1880년에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힌다.

    『20세기 파리』에서 또 쥘 베른은 인간이 “자기 계산기의 제 1의 하인”59)이 되거나 “톱니바퀴”60)가 되는 ‘소외(aliénation)’ 문제를 제기한다. 제 2 제정기에 급속히 발전한 프랑스의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전파하는 이런 소외 이론을 도처에서 확인시킨다. 마르크스는 1848년의 『공산당 선언, Manifeste du Parti Communiste』에서 노동자가 “기계의 단순한 부속품”61)이 되고, “기계의 노예”62)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20세기 파리』 에 나오는 미래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쥘 베른의 예상과 다를 바 없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가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임금 노동자들로 만들었다.”63)고 주장한다. 마르크스가 본 1848년을 재현한 듯한 『20세기 파리』에는 시인, 음악가, 군인의 삶을 바라지만, 호구지책으로 자신의 뜻과 무관한 노동을 선택한 청년들이 나온다. 그들은 “음악, 시, 군대가 더 이상 없는 시대”64)이고 “사람의 첫째 의무가 돈을 버는 것인 이 세상에서”65)“예술가의 처지는 허구성, 낙후성, 비현실성을 지니게 될”66)것을 안다.

    『20세기 파리』에서 쥘 베른이 예상한 미래는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가 예상한 미래보다 더 구체적이고 비관적이다. 주인공 미쉘(Michel) 과 동류의 사람들을 빼고는, 모두 “자금과 기계가 지배할”67)“하나의 시 장, 거대한 난장일 뿐인”68)세상에서 본능이 왜곡된 기계적 삶을 꾸려 나간다. 미쉘에게도 “일이 그런 추세로 진척되어 가면, 미래에 대한 기대조차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69)는 것이 너무 자명한데도, 그는 “불면중에 이 세상에 대한 기만들을 생각했을”70)뿐이다.

    미쉘의 고모부인 부타르댕(Boutardin) 같은 사람에게는 그 자신을 위시해 모든 사람이 ‘기계-도구’에 불과하다. 그나 그의 가족의 사랑과 결혼도 ‘돈과 기계’의 원리로 비유된다. “그는 기관사이고, 그녀는 기관차였다. 그는 그녀를 기름 치고 문질러 닦아 좋은 상태로 유지해서, 그녀는 반세기 전부터 크랑통 기관차만큼이나 색다른 느낌으로 굴러갔다.”72)그들의 아들은 “지참금이 못생김을 튼튼히 가려줄, 너무 못생긴 처자와 결혼하고자 했다.”73)

    『20세기 파리』에는 미쉘과 동류의 사람들 말고는 소외의 극단에 처한 사람들뿐이다. 미쉘과 그의 친구들은 19세기 전반의 음악을 논하면서 “영원히 젊어야 하는 감각적 예술들의 매력적 특권인 음악 속에는, 사랑 속 에서와 마찬가지로, 추구할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74)는 것에 동의한 다. 즉 예술은 사랑처럼 바뀌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불변의 인간성인 사랑을 왜곡해서는 안 되듯, 예술도 그런 불변성을 지녀야지 가변적인 물질성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국가적 편협과 배타성은 점점 더 불가능하게 된다; 수많은 국가적 국지적 문학들로부터 단일한 국제 문학이 형성된다.”75)며 왜곡될 문학의 속성을 대수롭잖게 거론하지만, 쥘 베른은 문학뿐 아니라 예술의 소외까지 극성스레 파고든다. 미쉘과 동류의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적대감은 유별나다. 그들은 인간성을 재현하는 예술이 물질성을 취급하는 과학의 잣대를 도입한 결과가 예술의 소외를 낳는다고 본다. 과학 만능의 시대에 “예술이 죽었다”76)는 말이다.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에서 ‘죽었다(est mort)’거나 ‘더 이상 없다(il n'y a plus de)’는 것은 문학과 예술의 죽음뿐만 아니다. “산업주의가 그의 제국을 이어가는”77)시대에, 전쟁과 정복 같은 본능들도 “만족시킬 가능성”78)이 있어, 군인은 “더 이상 군대가 없으면, 끝난 직업”79)이며, 음악은 “데생과 색깔 없는 그림을 그리듯”80)멜로디나 하모니 없는 굉음이 되고, “살아있는 시”81)같은 “여자들은 더 이상 없고”82), “수컷으로 바뀌어 예술가의 시선도 연인의 주의도 끌지 못하는”83)여자들만 있을 뿐이다.

    『20세기 파리』에서처럼 과학이 기계를 만들고, 기계가 지배한 세상에서 표준화 단일화시키지 못할 것은 없다. 쥘 베른은 20세기를 “기계적 동력 뿐 아니라 사상까지, 모두 중앙집권화 되는”84)시대로 예언한다. 『20세기 파리』에서는 문학도 기계화와 산업화의 영향을 받아, 작가는 문학을 생산 하는 “기계공이나 도장공”85)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쥘 베른의 이런 생각은 20세기 후반의 구조주의자들의 생각과 다를 바 없다. 바르트는 이런 작가(écrivain)를 ‘글장이(écrivant)’로 호명한다.

    ‘작가와 글장이’의 구분은 바르트가 사르트르(Sartre)의 ‘시인과 산문가’ 의 구분을 비판하려 대체한 것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런 구분이 1850년 이후 발작이나 플로베르의 소설로부터 뚜렷해진다고 여긴다. 이를 목격한 쥘 베른이 1863년경에 쓴 『20세기 파리』에도 이 구분의 요인들 중 하나가 잘 드러나 있다. “예술들의 곁에, 예술들과 동행하는 직업들이 있다”87)는 것이다. “저널들을 믿고 정치를 한 부르주아지가 존재한 시대의”88)의 산문가인 저널리스트라는 업종이 바로 그것이다.

    쥘 베른은 『20세기 파리』에서 “100년 전에 저널들이 남용된”89)것을 밝히고 있다. “이런 모든 저널들의 대단한 열풍은 곧 저널리즘의 죽음을 가져 왔다. 그 이유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작가들이 독자들보다 훨씬 수가 많아진 탓이었다.”90)비평가들은 각자 후원자들의 돈을 받고 그들에 대한 찬사들을 읊어 댄다. 비평가들인 ‘극작가, 소설가, 철학자, 역사가들’이 갑론을박하다 공멸한다. “이런 남용의 결과 비평가들은 즉석 죽임을 당하고, 그들과 함께 저널리즘의 마지막 방편이 사라졌다.”91)

    『20세기 파리』에서 쥘 베른이 언급한 비평가들이 사르트르의 ‘산문가’ 이고 바르트의 ‘글장이’이다. 사르트르의 산문가의 ‘참여(engagement)’나 바르트의 글장이의 ‘활동(activité)’이 막히는 상황이 되면 “문학의 종 언”92)이 올 것이라고들 한다. 쥘 베른은 이미 150년 이상 전에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비평가들이 참여와 활동인 글쓰기를 멈추고, 공적 조직이 작가들의 “개성을 죽이고 대중에게 그들의 필요에 영합하는 문학 전집을 공급하는”93)형편이 되면, ‘문학은 죽는다’는 것이다.

    『20세기 파리』에는 ‘드라마 제조창(Le Grand Entrepôt Dramatique)’이 라는 “아주 능숙한 직공들”의 소굴이 나온다. 여기서 극작가들은 창작이 아니라 “지난 세기들의 극본들을 그대로 잘 베끼거나, 그 인물들을 바꾸어 개작하는”94)일을 한다. 과정은 다르지만, 바르트가 말하는 “저자의 죽 음”95)이라는 결과와는 일치한다. 『20세기 파리』의 그런 상황에서 미쉘이 시인이나 작가가 되려는 꿈은 좌절된다. ‘드라마 제조창’을 나와 “자기의 희망들”을 시도한 “그는 다시 절망에 빠진다.”96)

    미쉘의 죽음을 낌새채게 하는 이 사변적 비관주의에 초현실적 비관주 의가 덧씌워진다. 그것은 으슴푸레한 “전기불(feux électriques)”로 상징 된다. 미쉘이 쓰러지기 전까지 돌아다니는 곳곳마다 전기불이 따라다닌다. “미쉘은 광적이 되었다; 그는 그를 쫓던 전기의 악령에 씐 것 같았다.”97) 전기불은 밤의 태양이다. 전기불이 과학이면 태양은 문학이다. 전기불이 모든 정신의 밤의 영역을 차지한 것이다. 미쉘이 처한 이런 분위기는 20 세기 말의 유명한 사이버펑크 소설의 도입부와 흡사하다.

    『20세기 파리』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그리고 너는 먼지로 돌아가리(Etin pulverem reverteris)”이다. 비관주의가 아니라 허무주의로 느껴질 정도이다. 미쉘이 사랑하는 뤼시(Lucy)를 찾아다니다 이른 곳은 ‘페르 라쉐즈 묘지’99)이다. 시인들의 약속 장소인 묘지의 다른 끝까지 기어오른 그는, 파리 하늘에 띄워 놓은 피뢰침 달린 기구들을 본다. “미쉘은 그것들을 묶은 줄들을 끊어, 도시가 불바다에 잠기게 하고 싶었다.” 그는 뤼시를 부르며 끝내 “정신을 잃고 눈 위에 쓰러진다.”100)

    33)“Il avait transposé à l'intérieur, dans le domaine cérébral, la passion dévorante qui avait consumé le coeur d'autres romantiques.” Henri M. Peyre, op. cit., p.252.  34)사랑이라는 낭만적 해결책도 『스크루 단섬』의 쪼개짐을 막을 수 없다. 여기서는 안락한 삶을 바라는 억만장자들이 그들 종교인 카톨릭과 개신교로 분열 되어 결국 섬의 실제 분열을 맞이한다.  35)“Cela a l'air d'être un mot de Fourier.” Piero Gondolo Della Riva, op. cit., p.13.  36)Jean Chesneaux, op. cit., chapitre 4, “L'écho du socialisme utopique” pp. 61-76.  37)“on ne croira pas aujourd'hui à votre prophétie.” Piero Gondolo Della Riva, op. cit., p.14.  38)“ce qui s'appelait le Progrès, il y a cent ans, avait pris d'immenses développements.” Jules Verne, op.cit., 1994, p.27.  39)“Vous n'êtes pas mûr pour ce livre-là, vous le referez dans vingt ans...” Piero Gondolo Della Riva, op. cit., p.15.  40)“A mesure qu'on entre dans l'âge de l'impérialisme, à partir de 1880-1890 environ, le rêve vernien de domination de la nature par la science et le travail se dégrade au contact de la violence des appareils d'État et de la puissance de l'argent.” Jean Chesneaux, op. cit., p.76.  41)“Merimée, un général d'antichambre, Sainte-Beuve, un sous-intendant militaire, directeur de la Manutention(메리메, 매관매직 장군, 셍트-뵈브, 부경리관, 급식창고장)” Jules Verne, op. cit., p.103.  42)“je trouve toute cette revue puérile...” Véronique Bedin, “Notes de l’éditeur” Paris au XXᵉ siècle, Hachette et Le Cherche Midi Éditeur, 1994, p. 178.  43)“Sur les choses où je me crois compétent - les choses littéraires, rien de nouveau - vous parlez de ça comme un homme du monde qui s'en est un peu mêlé - qui a été aux premières représentations, qui découvre des lieux communs avec satisfaction.” Piero Gondolo Della Riva, op. cit., p.15.  44)“le démon de la fortune les poussait en avant sans relâche ni merci.” Jules Verne, op. cit., p.43.  45)“Vous nagez volontiers dans les sables de l'idéal.” Ibid., p.49.  46)“l'art pour l'art ne suffit plus à notre époque et que l'heure est venu où la science a sa place faite dans le domaine de la littérature.” J. Hetzel, op. cit., p.2.  47)“son but, en effet, de résumer toutes les connaissances géographiques, géologiques, physiques, astronomiques, amassées par la science moderne, et de refaire, sous la forme attrayante et pittoresque qui lui est propre, l'histoire de l'univers.” Ibid., p.2.  48)손정미 기자(1994. 12. 03), “19c인의 놀라운 미래예언”, 「조선일보」, 15면.  49)“Ce peu d'art n'avait donc pas échappé à l'influence pernicieuse du temps! La science, la chimie, la mécanique, faisaient irruption dans le domaine de la poésie!” Jules Verne, op. cit., p.53.  50)“La littérature est morte, mon enfant, répondit l'oncle.” Ibid., p.57.  51)“Tu chantes les prairies, les vallons, les nuages, les étoiles, l'amour, toutes choses usées...” Ibid., p.78.  52)“Il faut célébrer dans tes vers les merveilles de l'industrie.” Ibid., p.79.  53)“... quand on ne lit plus Hugo, Lamartine, Musset, il espère se faire lire encore! Mais, malheureux! as-tu donc inventé une poésie utilitaire, une littérature qui remplace la vapeur d’eau ou le frein instantané?” Ibid., p. 78.  54)‘실용시’라는 말은 시인이자 비평가인 라코사드가 막심 뒤 캉의 시를 가리켜 사용한 용어이다. Auguste Lacaussade, De la poésie utilitaire et d'une poéetique nouvelle, Les Chants Modernes par M. Maxime Du Camp, Revue contemporaine, juin, t. xx, 1855, pp.70-96.  55)보들레르가 막심 뒤 캉에게 바친 시 “여행, Le Voyage”에 대해 주석자들은 보들레르가 진보주의자 뒤 캉을 빈정거리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해석한다.  56)“Le charbon porte alors sa flamme incendiaire/Dans les tubes ardents de l'énorme chaudière!/Le monstre surchauffé ne craint pas de rivaux!/La machine rugit sous sa tremblante écorce,/Et, tendant sa vapeur, développe une force/de quatre-vingts chevaux.// Mais de son lourd levier le chauffeur vient contraindre/Les tiroirs à s'ouvrir, et dans l'épais cylindre,/Rapide et gémissant, court le double piston!/La roue a patiné! La vitesse s'active!/Le sifflet part!... Salut à la locomotive/du système Crampton!” Jules Verne, op. cit., p.79.  57)Maxime Du Camp, Les Chants Modernes, Michel Lévy Frères, Éditeurs, 1855, pp.293-305.  58)“l'ode couronnée, il y a un mois, par les quarante de Broglie, qui encombrent l'Académie” Jules Verne, op. cit., p.79.  59)“il allait être premier servant de sa machine à calculer, et, le jour même, il entra en fonction.” Ibid., p.62.  60)“Je suis un rouage. Vous êtes un rouage!” Ibid., p.72.  61)“un simple appendice de la machine” Karl Marx et Friedrich Engels, Manifeste du Parti Communiste, traduction de l'allemand par Laura Laforgue, Éditions Champ Libre, 1983, p.36.  62)“les esclaves de la machine” Ibid., p.37.  63)“Du médecin, du juriste, du prêtre, du poète, du savant, elle a fait des travailleurs salariés.” Ibid., p.31.  64)“au moment où il n'y a plus ni musique, ni poésie, ni armée!” Jules Verne, op. cit., p.82.  65)“en ce monde, où le premier devoir de l'homme est de gagner de l'argent!” Ibid., p.78.  66)“la situation d'un artiste aurait de faux, de déclassé, d'impossible.” Ibid., p.57.  67)“tant que régneront la finance et la machine!” Ibid., p.86.  68)“ce monde n'est plus qu'un marché, une immense foire” Ibid., p.78.  69)“car au train dont vont les choses, il n'est même plus permis d'espérer dans l'avenir!” Ibid., p.56.  70)“et celui-ci, pendant ses insomnies, songeait aux déceptions de ce monde” Ibid., p.72.  71)“Cet homme, élevé dans la mécanique, expliquait la vie par les engrenages ou les transmissions; il se mouvait régulièrement avec le moins de frottement possible, comme un piston dans un cylindre parfaitement alésé; il transmettait son mouvement uniforme à sa femme, à son fils, à ses employés, à ses domestiques, véritables machines-outils, dont lui, le grand moteur, tirait le meilleur profit du monde.” Ibid., p.47.  72)“elle était la locomotive, et lui le chauffeur-mécanicien; il l'entretenait en bon état, la frottait, la huilait, et elle roulait ainsi depuis un demi-siècle, avec autant de sens et d'imagination qu'une Crampton.” Ibid., p.48.  73)“il cherchait à épouser quelque fille horrible dont la dot compensât énergiquement la laideur.” Ibid., p.48.  74)“il n'y a rien de noveau à trouver en musique, pas plus qu'en amour, prérogative charmante des arts sensuels d'être éternellement jeunes!” Ibid., p.88.  75)“L'étroitesse et l'exclusivisme nationaux deviennent de jour en jour plus possibles; des nombreuses littératures nationales et locales se forme une littérature universelle.” Karl Marx et Friedrich Engels, op. cit., p.33.  76)“Tu veux être artiste à une époque où l'art est mort!” Jules Verne, op. cit., p.133.  77)“que l'industrialisme reprenne son empire!” Ibid., p.90.  78)“la possibilité de les(ces instincts-là) satisfaire” Ibid., p.80.  79)“c'est une carrière finie, puisqu'il n'y a plus d'armée” Ibid., p.80.  80)“c'est comme si l'on faisait de la peinture sans dessin ni couleur.” Ibid., p.84.  81)“cette jeune fille était la poésie vivante” Ibid., p.108.  82)“il n'y a plus de femmes” Ibid., p.118.  83)“mais depuis elles ont passé au genre masculin, et ne valent plus ni le regard d'un artiste ni l'attention d'un amant!” Ibid., p.119.  84)“À cette époque où tout se centralisait, la pensée aussi bien que la force mécanique” Ibid., p.139.  85)“machiniste ou peintre” Ibid., p.147.  86)“L'écrivain accomplit une fonction, l'écrivant une activité” Roland Barthes, Essais critiques, “Écrivains et écrivants(1960)”, Seuil, 1964, p.148.  87)“auprès des arts, il y a des proféssions qui les côtoient!” Jules Verne, op. cit., p.134.  88)“au temps où il existait une bourgeoisie pour croire aux journaux, et pour faire de la politique” Ibid., pp.134-135.  89)“On en avait abusé, il y a cent ans” Ibid., p.135.  90)“toute cette belle fureur de journaux a bientôt amené la mort du journalisme, par cette raison sans réplique que les écrivains était devenus plus nombreux que les lecteurs!” Ibid., p.135.  91)“et cela devint un tel abus qu'en fin de compte, la critique fut tuée sur place. Avec elle disparut cette dernière ressource du journalisme.” Ibid., p.136.  92)‘가라타니 고진은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을 근거로, 참여하지 못하는 문학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문학의 종언이라는 선고를 내린다.’ 柄谷行人, 『近代文學の終り』, インスクリプト, 2005.  93)“cette organisation qui tuait la personnalité des gens et fournissait au public la somme de littérature nécessaire à ses besoins?” Jules Verne, op. cit., p.140.  94)“ces employés, fort habile d'ailleurs, avaient pour mission de refaire les pièces des siècles précédents, soit en les copiant tout bonnement, soit en retournant les personnages.” Ibid., p.143.  95)Roland Barthes, “Le bruissement de la langue”, La mort de l'auteur, Seuil, 1968, pp.61-67.  96)“ses Espérances”' “Il revint désespéré.” Jules Verne, op. cit., p.153.  97)“Michel devenait fou; il croyait avoir le démon de l'électricité à sa poursuite” Ibid., p.162.  98)“The sky above the port was the color of television, tuned to a dead channel.” Williwam Gibson, Neuromancer, Ace Books, 1984, p.9.  99)Le Cimetière du Père-Lachaise의 명칭은 17세기 중반, 왕의 고해 신부가 된 라쉐즈 신부의 호칭에서 유래한다. 1804년부터 시립으로 운영된 파리 동부 지역의 공동묘지이다.  100)“Michel eût voulu couper les cordes qui les retenaient captifs, et que la ville s'abîmât sous un déluge de feu!”, “en tombant évanoui sur la neige.” Jules Verne, op. cit., p.168.

    Ⅳ. 맺음말

    『20세기 파리』의 편집인이 서문에 밝혀 놓았듯, 쥘 베른은 인간의 운명과 과학의 진보에 대해 『특이한 여행들』의 초기작에서 낙관적이다가 후기작에서 비관적이 된다고 알려졌으나,101)청년기의 자전적 소설 『20세기 파리』를 읽으면 그 설은 무의미해진다. 그의 비관주의가 초기작인 『20세기 파리』에도 확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비관주의는 쥘 베른이 진보주의자는커녕 반진보주의자라 할 만큼 ‘과학과 산업’에 혐오감을 드러낸 다.

    여태 쥘 베른을 낭만주의자로서만 파악할 수 없는 까닭은 그가 출세작 인 몇몇 초기작에서 오직 진보의 찬가만 부르기 때문이다. 쥘 베른을 낭만주의의 후계자로 간주하면 초기작인 『20세기 파리』에 드러난 비관주의 를 설명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도리어 『특이한 여행들』의 초기작들에 개진된 낙관주의가 왜곡된 셈이다. 쥘 베른은 그의 타고난 비관주의를 누르고 출판인 엣젤의 진보주의적 기획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시작하는 낭만주의가 고전주의에 승리한 후의 모든 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쥘 베른의 문학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에서 예술의 죽음을 단언하기까지 그의 낭만주의는 새로운 다양한 영향들을 받는다. 쥘 베른에게 7월 왕정의 숨막히는 분위기와 2월 혁명과 푸리에주의의 좌절은 직접 경험일 테지만, 막심 뒤 캉 식의 진보주의나 산업주의의 기계론적 사고에 대한 염오는 마르크시즘이 끼친 사변적 영향인 듯하다.

    『특이한 여행들』의 단체 모험을 하는 인물들은 푸리에주의자들의 ‘공동 생활 단체(phalanstère)’를 생각나게 하는 반면, 『20세기 파리』에서 읽혀지는 반자본주의나 소외론은 마르크시즘과 통하는 것 같다. 쥘 베른의 마르크시스트적 예언은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문학의 죽음’에 대한 그의 예언은 빗나간 것 같다.102)다만 문학이 참여나 활동으로 제 역할을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논리는 『20세기 파리』의 배경인 1960년에 엇비슷하게 맞춰 제기된다.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도 길게 보면 낭만주의의 사회 참여 이념에서 연원한 것이다. 150년 전에 예언된 쥘 베른 식의 참여문학론은 바르트식 으로 한발 더 나아간다. 『20세기 파리』의 ‘드라마 제조창’에서처럼 과거 작품의 개작과 복제가 일반화할 시대에는 ‘저자의 죽음’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쥘 베른의 놀라운 상상력은 “전신망이 온 대륙의 지상과 해저를 뒤덮고”103)인간이 “자기 계산기(sa machine à calculer: 영어 computer처럼 계산기라는 뜻)의 제1의 하인”이 된다는 기막힌 예언까지 한다.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에서 전기에 부여한 상징성은 더욱 놀랍다. 전기는 물론 과학과 산업의 상징이다. 16장의 제목은 “전기의 악령”인데, 노트르담 대성당의 “제단은 전기불로 반짝이고, 같은 특성의 빛이 사제 손에 들린 성체현시대에서 나오고”104)있으며, 이때는 사형수를 참수하는 대신 “방전으로 벼락을 치게 했다. 그것은 천벌을 가장 잘 모방한 것.”105)이다. 또 미쉘의 최후 소원처럼 하늘의 전기는 벼락으로 파리를 불바다에 잠기게 할 수도 있다.

    쥘 베른이 드는 ‘문학의 죽음’의 원인은 과학과 산업이다. 그는 『20세기 파리』에서 전기가 세상의 운명을 좌우하듯, 과학과 산업이 문학을 압살할 것으로 판단한다. 19세기 말에 과학처럼 실험을 일삼던 자연주의는 파산 한다. 그러나 쥘 베른이 『20세기 파리』를 위치시킨 시점은 20세기 후반이고, 예언이 된 그것은 20세기 말의 후기 구조주의자의 이론들과 많이 닮았다. 쥘 베른이 그린 ‘드라마 제조창’의 일은 작금의 TV 드라마 제작 과정과도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101)“On a soutenu, par exemple, que Jules Verne, optimiste par sa nature en ce qui concerne les destins de l'homme et les progrès de la science, aurait cessé de l'être à cause de différentes circonstances: la guerre de 1870, sa situation familiale(un ménage qui n'était pas des plus heureux et un fils extrêmement difficile, surtout dans la période 1877-1887). Et puis l'attentat de 1886, la mort d'Hetzel et celle d'une maîtresse mystérieuse auraient conduit Jules Verne, à la fin de sa vie, à un pessimisme don't ses dernières oeuvres seraient le reflet./ La lecture de Paris au XXe siècle, oeuvre de jeunesse et autobiographique par excellence, prouve le contraire.” Piero Gondolo Della Riva, op. cit., p.20.  102)쥘 베른이 말하는 ‘문학의 죽음’은 새로운 문학까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문학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런 뜻에서 빗나갔다는 말이다.  103)“Le réseau télégraphique couvrait alors la surface entière des continents et le fond des mers” Jules Verne, op. cit., p.61.  104)“L'autel étincelait des feux électriques et des rayons de même natures'échappaient de l'ostensoir soulevé par la main du prêtre!” Ibid., p.162.  105)“On ne coupait plus la tête. on foudroyait avec une décharge. Cela singeait mieux la vengeance céleste.” Ibid.,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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