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유산정책에 대한 애국주의의 영향 분석*

The Analysis of Influence between Cultural Heritage Policy and Patriotism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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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Since the socialist regime was established in China, the cultural heritage has become the object of protection, and while in a time of turmoil the cultural heritage has become the object of breaking. However, with the changes in the domestic and international environment after the reform and opening up, the new patriotism emerged in recognition of the cultural heritage including the cultural relics an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the change occurred. This paper analyzes how the new patriotism impacts the cultural heritage policy in terms of the concept of cultural heritage policy, the management system of cultural heritage, and the implementation of cultural heritage policy, and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due to the impact of patriotism, the cultural heritage has be come a key means to enhance the stability of the socialist regime and legitimacy of the Communist Party. Second, due to the influence of patriotism, the scope of the cultural relics has been expanded, and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protection and management system have been established. Third, 356 patriotism education demonstration bases have been selected over four times since 1997, and actively develop initiatives to foster patriotism by utilizing a variety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each region.

  • KEYWORD

    중국 , 문화유산정책 , 애국주의 , 문물 , 비물질문화유산

  • Ⅰ. 서 론

    1949년 중국에서 봉건적인 구체제가 붕괴되고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면서 문물(文物)행정에도 큰 변화가 따르게 되었다.1) 국가체제가 갖추어지던 1950년대 중반까지 문물행정은 기본적인 관리조직과 관련 규범이 정비되던 시기였다. 문물행정의 담당 기관을 살펴보면 오랜 전란과 외세에 의한 강압적인 개화 과정에서 수많은 문물이 국외로 반출되거나 훼손되는 상황에서 문물에 대한 보호와 관리가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1949년 11월에 문화부 산하에 ‘문물사업관리국(文物事业管理局)’을 설치하면서 현대적인 문물행정이 시작되었다. 1951년 12월에는 ‘문물사업관리국’과 ‘과학보급국(科学普及局)’을 합병하여 ‘사회문화사업관리국(社会文化事业管理局)’을 신설하면서 문물, 박물관, 도서관 및 문화관 등에 대한 관리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1955년 1월에는 ‘사회문화사업관리국’을 ‘문물관리국’으로 개편하여 문물과 박물관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고, 지방에는 성급에 ‘문물보호관리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전국적인 문물행정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문물행정 관련 법규를 살펴보면 1950년 5월에는 문물에 대한 도굴, 파괴 및 밀반출을 방지하고자 ‘진귀문물도서 반출금지 잠정조치(禁止珍贵文物图书出口暂行办法)’를 제정하였다.2) 1953년부터 ‘제1차 5년계획(第一个五年计划)’이 추진되면서 경제발전을 위한 각종 건설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는 상황에서 정무원은 무분별한 건설로 인해 문물이 훼손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기본건설공정 중 역사 및 혁명문물의 보호에 관한 지시(关于在基本建设工程中保护历史及革命文物的指示)’를 발표하였다.3)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가던 문물행정은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1958년부터 시작된 대약진은 대규모 군중운동을 통한 급속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면서 문물행정에 있어서도 군중을 통한 문물의 발굴과 관리를 강조하면서 문물행정의 전문성과 비효율을 초래하였다.4) 대약진으로 인한 문물행정의 혼란은 문물의 보호와 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법규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1960년 ‘문물보호관리잠정조례(文物保护管理暂行条例)’를 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대부분의 정부 기능이 마비되었으며, 문물행정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특히 문화대혁명을 주도하던 극좌파세력이 전통문화를 사회주의국가건설의 걸림돌로 규정하고, ‘구사상(旧思想)•구문화(旧文化)•구풍속(旧风俗)•구습관(旧习惯)’의 타파를 주장하면서 대다수의 문물이 타파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전국적으로 문물에 대한 대량 파괴나 훼손이 자행되었다.5) 이러한 국내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는 문물을 활용한 국제교류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1971년에는 유럽, 일본, 미국 등지에서 중국문물전시회를 개최하여 중국의 국가적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외국과의 문물교류를 통해서 문물행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중국 정부는 1973년 2월에 국무원의 직속국으로서 ‘국가문물사업관리국(国家文物事业管理局)’을 신설하고, 문물•박물관•도서관 관련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면서 문물행정의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외세의 침략, 국공내전, 항일전쟁 등 혼란기를 겪으면서 대량의 문물이 약탈되거나 파괴되는 상황에서도 문물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문물은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급격한 부침을 경험해 왔다. 이러한 문물행정의 불안정으로 인해서 문물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체계가 구축되지 못하면서 문물행정의 안정적 추진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 5월 국무원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발생한 문물의 대규모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역사문물보호업무의 강화에 관한 통지(关于加强历史文物保护工作的通知)’를 발표하였으며, 1981년부터는 전국의 문물에 대한 일제조사를 실시하여, 문물의 현황에 대한 기초적인 파악이 이루어졌다.6) 1982년 11월 19일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25차 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 문물보호법(中华人民共和国文物保护法)’이 통과되어 체계적인 문물보호와 관리업무의 중요한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7) 중국 정부는 국내적인 차원에서 문물행정의 보호 및 관리 수준의 향상을 추구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도 중국 문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중국은 1985년에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The 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가입하였고, 1987년 12월에는 중국 문물로서는 최초로 타이산(泰山)을 포함한 6개의 문물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및 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다.8)

    중국의 문물행정은 1990년대 들어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의 도입으로 사회주의사상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지역 및 계층 간 경제적 불균형의 심화,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운동 전개 등 각종 사회적 문제가 점차 심화되어 갔다. 국제적 환경을 보면 1989년 6월 헝가리를 시작으로 확산된 동유럽 사회주의정권의 붕괴와 1990년 10월 독일의 통일, 1991년 12월 소련의 해체로 이어지는 국제정치환경의 변화는 중국 공산당으로 하여금 사회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공산당의 안정적인 집권을 저해하고 심지어 국가의 분열까지도 초래할 수 있음을 인식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은 집권당으로서의 지위를 강화하고 사회적 결속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장기적인 측면에서 전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애국주의를 주창하였으며, 애국주의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정부의 행정활동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본 논문은 199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애국주의를 강조함에 따라 정책적 환경으로서 애국주의가 문화유산정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분석하고자 한다.9)

    1)중국에서 문물(文物)이란 한국의 유형문화재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본 논문에서는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물이란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2)‘진귀문물도서 반출금지 잠정조치’는 현대적 문물행정과 관련된 최초의 법규였지만 문물의 반출과 관련된 내용만을 규정해 놓은 한계가 있었다. ‘잠정조치’의 제1조는 국외 반출을 금지하는 문물도서, 제4조는 국외 반출이 가능한 문물도서의 종류, 제5조는 반출업무의 수행지역, 제7조에는 문물감정위원회의 설립 등을 규정하였다.  3)제1차 5년계획(1953-1957)은 사회주의 공업화의 초보적 기초를 형성하기 위해서 소련이 설계한 156개 건설항목을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며, 여기에 추가적으로 694개의 중대형 건설항목이 시행되었다.  4)대약진 기간 동안에는 급속한 산업고도화를 위한 강철의 생산량 증대를 추구하면서 철 모으기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철제 문물이 파괴되었다.  5)1966년 6월 1일<일체의 미신을 쓸어버리자(横扫一切牛鬼蛇神)>는 제목의 인민일보 사설에서는 “수천 년 동안 착취계급이 만들어 내서 인민을 해쳐온 일체의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을 제거하자”라고 주장하였다.  6)중국 정부는 1956년에 제1차 전국문물 일제조사를 실시하였으나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제2차 전국문물 일제조사는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실시되었으며, 제2차 전국문물 일제조사를 통해서 전국의 문물 현황에 대한 개략적인 파악이 이루어졌다. 2007년 4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제3차 전국문물 일제조사를 실시하여 전국에서 766,722개의 문물을 등록하였으며, 이 중 536,001개가 새로 발견한 문물이었다.  7)2002년 10월 기존의 33개 조항으로 구성된 ‘문물보호법’을 80개 조항으로 전문 개정하여 더욱 구체화되었다. 또한 2003년 5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문물보호법실시조례(中华人民共和国文物保护法实施条例)’를 제정하여 문물 관련 법규의 체계화가 추진되었다.  8)중국은 2015년 1월까지 세계문화유산 33건, 자연유산 10건, 복합유산 4건으로 총 4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인류무형문화유산 30건, 세계기록유산 9건을 보유하고 있다.  9)중국에서는 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의 영향으로 유형문화재인 문물만을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였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도 무형문화재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가 부재하였다. 2011년 2월 ‘중화인민공화국 비물질문화유산법(中华人民共和国非物质文化遗产法)’이 제정되면서 문화재의 관리체계가 유형문화재를 대상으로 하는 문물행정과 무형문화재를 대상으로 하는 비물질문화유산행정으로 구분되었다. 문물과 비물질문화유산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서 문화유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 문화유산의 세부적 개념 구분에 대해서는 정준호(2010년)의 글을 참조.

    Ⅱ. 이론적 검토 및 분석틀

       1. 애국주의에 대한 이론적 검토

    사회집단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은 소속된 집단에 대해서 애착의 감정을 형성하게 되며, 이러한 애착은 소속 집단의 차원에 따라서 지역적인 애향심, 문화적 공통성에 기초한 애족심, 소속 국가에 대한 애국심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10) 특히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근대 국가의 출현에 따라 애국심은 이론적인 체계화를 거쳐 애국주의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을 촉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애국주의의 형성 과정에서 각국의 역사적•문화적 특성과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서 애국의 주체와 대상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애국주의에서 의미하는 애국의 주체와 대상은 국가마다 또는 시기마다 상이할 수 있다.

    스톡스(J. L. Stocks)는 애국주의를 구성하는 3대 요소로서 조국에 대한 사랑, 조국의 이익을 위한 욕망, 조국을 위한 자발적인 봉사를 제시하였다. 조국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조국이 최고이며,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국의 이익을 위한 욕망이란 조국의 이익이 결국은 개인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조국을 위한 자발적인 봉사란 조국의 이익을 위해 시민이 직접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톡스는 조국을 위한 자발적인 봉사가 애국주의의 최고의 증명이자 검증이며, 시민을 조국의 아들 또는 정부의 노예로 행동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Stocks, 1920: 14; 김현선, 2002: 179 재인용).

    19세기 후반 중국에서도 근대적 애국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1894년 쑨원(孙文)의 주도 하에 설립된 중흥회(兴中会)는 청조를 타도하고, 민주적 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하였으며, 한족(汉族)을 중심으로 한 대한족주의(大汉族主义)적 성향이 매우 강했다.11)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애국주의 사상은 국민당 정부로 이어졌다.

    1921년 창당된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의 대한족주의에 반대하며, 각 민족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반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1922년 7월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2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노동자, 빈농, 소자산계급이 연계한 민주주의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국내적 통일을 실현하고, 주요 소수민족에 대한 자치권을 인정할 것을 발표하였다(中共中央统战部, 1991: 8).

    중국 공산당의 반민족주의적인 애국주의 경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초반까지도 국가적 통합과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지속되었다. 1949년 9월 제정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공동강령(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共同纲领)’은 중화인민공화국 영내의 각 민족은 모두 평등하며, 민족 간의 차별과 각 민족의 단결을 저해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규정하였다. 1953년 3월 마오쩌둥(毛泽东)도 ‘비판대한족주의(批判大汉族主义)’라는 지시를 통해서 당내부의 대한족주의를 비판하면서 대한족주의를 지주계급과 자산계급이 민족관계에 있어서 표출하는 반동사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극좌적 사상의 영향으로 인해서 소수민족 지역의 분리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지역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면서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과 탄압이 확산되었다. 애국주의의 대상에 있어서 1950년대에는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영향으로 인해서 국가보다는 사회주의 이념공동체를 애국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1960년대에는 마오쩌둥 개인에 대한 숭배가 강요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커다란 대내외적인 환경의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내적인 환경의 변화를 보면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의 도입에 따른 경제적 발전과 함께 사회의 분화와 양극화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루쉐이(陆学艺, 2002)는 개혁개방 이전까지 중국의 사회적 계층은 정치적 신분과 호구(戶口) 신분에 따라서 노동자 계급, 농민 계급 및 지식인 계층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계급, 한 개의 계층’으로 구분되었으나 경제발전에 따른 소득의 차별화와 직업의 다양화로 인해서 사회계층이 10개로 분화되었다고 주장하였다.12) 또한 사회주의적 이념의 약화와 정부의 사회관리기능의 저하를 초래하였다.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의 시행으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전통적 사회주의 이념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정부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서 정부기능의 조정 및 전환을 통하여 공공부문의 기능을 축소하면서 중국 정부의 사회관리기능은 계획경제체제 시기에 비해서 크게 약화되거나 제한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정준호, 2011: 116).

    대외적인 환경의 변화로는 우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로 인해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급속하게 위축되었다. 1989년 10월 헝가리에서 사회주의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하였으며, 동년 12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당 정권이 무너졌다. 1990년 10월에는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었고, 동년 12월에는 폴란드에서 사회주의정권이 붕괴되고 민주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중국 공산당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체제의 개혁을 추진하던 소련이 1991년 12월에 해체된 것이다. 또한 소프트파워(soft power)로 대표되는 문화경쟁력의 심화와 ‘중국위협론’이 등장하였다.13) 세계화가 새로운 국제적 패러다임으로 등장하면서 각국은 자국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화적 영향력인 소프트파워를 확대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중국도 민족적 단결과 사회적 안정 및 국가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 한족 이외의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자국의 역사와 문화로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적 발전은 서방 국가들의 불안감을 증대시켰으며, 특히 미국은 냉전시대에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했으나 소련의 붕괴로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점차 경쟁적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의 중국에 대한 불신감은 ‘중국위협론’을 통해서 드러났으며, 중국에 대해서 시장화와 민주화를 요구하게 되었다.14) 중국 공산당은 시장화, 인권문제, 민주화 등을 앞세운 외부로부터의 변화요구를 사회주의체제를 평화롭게 붕괴시키기 위한 ‘화평연변(和平演变)’ 전략으로 인식하여 국민적 사상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한 활동을 정부 주도로 광범위하게 추진하게 되었다.

    국내외적 환경의 변화는 중국의 애국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다.15) 개혁개방 이후 국내외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 하에서 나타난 중국 애국주의에 대한 국내외의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리러(李乐, 2010: 260)는 애국주의를 근대와 당대로 구분하여 개혁개방 이후 신시기의 애국주의를 당대 애국주의로 규정하였다. 당대 애국주의의 특징으로는 애국주의와 사회주의의 일치성, 애국주의와 국가주권 및 민족존엄과의 상관성, 애국주의와 국가안전‧민족단결‧조국통일과의 상관성, 애국주의와 국가발전 및 부강과의 상관성, 애국주의와 대외개방과의 유기적 통일성 등을 제시하였다. 특히 애국주의와 사회주의의 일치성을 당대 애국주의가 기타 국가의 애국주의 또는 이전의 애국주의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우첸타오, 양쥔링(吴潜涛、杨俊岭. 2011: 13-14)은 애국주의가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지탱하는 민족정신의 핵심이라고 규정하였다. 민족정신이란 일정한 지리적 환경, 역사적 배경, 문화적 전통 및 장기적인 공동생활의 기초 위에서 점차 형성되고 발전해 왔으며, 민족의 생존과 유지, 조화와 안정, 발전과 진보를 이끌어 온 가치체계이다. 민족정신의 핵심으로서 애국주의는 개인적 감정이나 행위규범의 수준을 넘어서 민족단결, 조국통일, 국가부강, 사회진보 및 국민행복에 기여하는 사상과 정신으로 규정하였다. 우첸타오, 양리쿤(吴潜涛、杨丽坤. 2008: 80)은 애국주의가 특정 국가나 민족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응집력은 기타 어떠한 가치관도 대체할 수 없으므로 각국은 국민들에 대한 애국주의교육을 중시한다고 주장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는 애국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애국주의정신의 함양을 위한 양호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동률(2001: 339-340)은 1990년대 애국주의는 국가 민족주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공산당 정권의 유지와 강화를 위한 효율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어서 개혁과정 중에 나타나고 있는 부정부패, 범죄의 증가, 사회의 불평등 현상 등 국내적 문제들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희석시키면서 지도체제 교체기에 나타날 수 있는 정권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애국주의를 신중화주의나 패권주의로 보는 ‘중국위협론’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김희교(2006: 305)는 중국의 애국주의를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행하면서 사회주의이념을 대체하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진행한 국민교육이자 중국 국민 사이에 고양된 국민 이데올로기로 정의하면서 애국주의를 신중화주의나 패권주의로 해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민족주의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준태‧김정현(2011: 187)은 중국 당정이 지향하고 있는 애국주의를 경제발전, 정치안정, 민족통일의 비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인 공산당 정권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국민적 단결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지향적 민족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애국주의에 대한 선행연구를 검토한 결과 1990년대 이후의 애국주의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이전의 애국주의와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중화민족주의가 애국주의의 핵심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전의 애국주의가 대한족주의와 지역민족주의에 대한 반대에 역점을 두었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중화민족주의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은 민족적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화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56개 민족이 융합되어 이루어진 중화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충성심을 고취하고, 서구로부터의 사상적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서 애국주의를 활용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동아시아지역에서 문화적 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16) 둘째, 정부의 행정적 측면에서 애국주의가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라는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기 애국의 주체는 각 민족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중화민족이며, 애국의 대상은 중화민족이 공유하는 영토, 역사, 문화, 사상 및 이념 등을 포괄한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애국주의의 확산을 통해서 조국에 대한 애국과 사회주의 및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동일시하도록 다양한 애국주의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17) 이는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과 사회주의체제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며, 정부 행정활동을 통한 실질적인 정책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애국주의의 내용 측면에서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을 강조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나 우수한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개인적 자긍심을 애국심으로 승화하고자 한다.18)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에 있어서 문화유산은 중요한 매개체로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역사나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이 이론적 교육에만 치우치지 않고 문화유산을 통한 체험형 교육을 통해서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연구 분석틀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적 발전과 국내외적 환경의 변화는 중국에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애국주의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애국주의사상의 등장이라는 외부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서 정부의 행정활동도 애국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문화유산이 애국주의 함양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애국주의 확산에 있어서 문화유산의 적극적인 정책적 활용이 요구되었다. 애국주의의 함양에 있어서 문화유산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문화유산정책에 대한 애국주의의 영향도 점차 증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본 논문은 문화유산정책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애국주의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문화유산정책에 대한 애국주의의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문화유산정책의 환경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애국주의의 개념과 특성을 파악한 후, 문화유산정책의 이념적 변화, 문화유산 관리체계의 확립 및 문화유산정책의 구체적 추진 현황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애국주의의 영향을 분석한다.

    문화유산정책의 이념적 변화 측면에서는 문화유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애국주의의 영향으로 인해서 문화유산정책이 추구하는 가치나 발전방향이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를 당정의 공식 문건, 법규 및 지도사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파악하도록 한다.

    문화유산의 관리체계 확립 측면에서는 애국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문화유산의 보호, 관리 또는 활용을 위한 문화유산 관리조직 및 기구의 변화, 협력체계 또는 운영기제의 특성 등을 관련 규정이나 현황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살펴본다.

    문화유산정책의 구체적 추진 현황 측면에서는 애국주의로 인한 문화유산정책의 이념적 변화나 관리체계의 변동이 구체적인 문화유산정책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유형문화재인 문물과 무형문화재인 비물질문화유산으로 구분하여 세부적인 정책집행 현황에 대해서 분석한다.

    10)애국심의 일반적 의미는 공통의 역사, 언어 및 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신의 조국에 대한 정서적 친밀감을 의미한다.  11)쑨원은 '중국은 한족이 수립한 국가이며, 만주족(满洲族), 몽골족(蒙古族), 회족(回族), 티베트족(藏族)을 한족에 동화시켜 하나의 대민족주의국가(大民族主义国家)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中共中央党校中共党史教研室, 1987: 112).  12)루쉐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10대 사회계층을 국가 및 사회의 관리계층, 중대형 기업의 중·고위 관리계층, 사영기업주 계층, 전문기술인 계층, 행정사무직 계층, 소규모 자영업 계층, 서비스업 종사자 계층, 산업노동자 계층, 농민 계층, 무직·실업·임시직 계층으로 분류하였다.  13)소프트파워란 1989년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제기한 개념이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적 제재 등 물리적인 힘으로 표현되는 ‘하드파워(hard power)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강제력보다는 매력을 통해서 또는 명령이 아닌 자발적 동의에 의해서 얻어지는 능력을 의미한다.  14)중국위협론은 신중국이 수립되면서부터 이웃 국가의 공산화를 우려하는 시각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새로운 시각에서 중국위협론이 제기되었다. 중국이 경제적 발전을 바탕으로 국방력을 증강하여 패권주의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중국위협론은 민족주의, 군사, 경제, 국제정치의 구조적 측면 등에서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15)1990년대 이후의 애국주의가 이전 애국주의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현대의 시대적 정신을 반영하였다는 의미에서 ‘신시기 애국주의(新时期爱国主义)’ 또는 ‘신애국주의’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16)중화민족의 이론적 근거는 페이샤오통(费孝通)이 1988년 11월 홍콩 중문대학의 강연에서 제기한 ‘중화민족다원일체구조(中华民族多元一体格局)’에 있다. 페이샤오통은 중화민족을 19세기 이후 백 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서구 열강에 대항하며 출현한 자각적인 민족적 실체로서 56개 민족의 접촉, 혼합, 연계 및 융합을 통해서 형성된 다원적 통일체로 규정하였다.  17)덩샤오핑(邓小平)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이론과 실천의 과정 중에서 애국주의와 사회주의가 하나로 통일되었다. 그러므로 애국주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분리될 수 없으며, 애국주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의 지도하에서만 정확한 방향과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으며, 민족독립·국가통일·인민생활의 향상을 실현하는 빛나는 깃발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도 애국주의와 분리될 수 없으며, 애국주의는 중화민족 응집력의 핵심이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강력한 동력이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정신적 지주이다”라며 애국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하였다(邓小平文献第三卷, 2001: 41, 61-62).  18)이동률(2001: 330)은 역사와 전통문화를 이용한 애국심 고취 방식을 과거 뛰어난 역사인물이나 업적을 부각시켜 국민들로 하여금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는 긍정적 역사 활용방법과 치욕의 역사를 회상함으로써 외세의 부당한 억압에 대항할 수 있는 민족적 단결을 강조하고 나아가 민족 단결의 구심점으로서의 강한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부정적 역사 활용방법으로 구분하였다.

    Ⅲ. 문화유산정책에 대한 애국주의의 영향 분석

       1. 문화유산정책의 이념

    중국에서 문물행정의 전반을 포괄하는 기본 법규가 최초로 제정된 것은 1960년 1월에 제정된 ‘문물보호관리잠정조례(이하 잠정조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잠정조례’에서는 애국주의와 관련된 내용이 없었다.19) 1982년 11월 제정된 ‘문물보호법’에는 애국주의와 관련된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문물보호법’의 제1조에는 ‘문물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강화하고, 과학적 연구의 전개에 유리하며, 우리나라의 우수한 역사문화유산을 계승하고,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을 추진하며,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 특별히 본법을 제정한다’라고 규정하였다. 문물을 통하여 애국주의를 발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1960년 제정된 ‘잠정조례’ 또는 문물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였던 문화대혁명 시기와 비교하면 문물에 대한 인식이 확연하게 전환된 것을 알 수 있다. ‘잠정조례’를 제정한 1960년대 전기까지만 해도 문물은 과거의 유산으로서 단순한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기간 동안에는 문물은 봉건시대의 잔재로서 타파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문물을 단순한 보호의 대상 또는 타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발전과 사회적 결속을 강화할 수 있는 애국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로 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발생한 것이다.

    1983년 7월에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애국주의선전교육의 강화에 관한 의견(关于加强爱国主义宣传教育的意见)〉을 발표하여 모든 국민 특히 청년들에 대한 애국주의 선전교육을 시행할 것을 지시하였다. 《애국주의선전교육의 강화에 관한 의견》에서는 애국주의를 선전하고 교육할 수 있는 10대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이는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선언적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을 인식하여 애국주의를 중시하고, 이후에 추진될 애국주의교육을 위한 기본적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1989년 티베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독립시위로 인해 중국에서 최초로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동년 6월 발생한 천안문 사건으로 국내의 정치사회적 동요와 서방국가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주의체제의 안정성과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대외적 압력에 대한 대응능력의 향상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은 1980년대까지 사상적 선전교육에 치중하던 애국주의와는 달리 애국주의의 심화와 현실적 발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의 애국주의를 추진하게 되었다.

    1990년 5월 3일 장쩌민(江泽民)은 베이징에서 개최된 ‘수도청년기념5‧4보고회(首都青年纪念五四报告会)’에서 “공산당의 영도하에 인민이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국가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것은 사회주의민주의 핵심내용이다. 사회주의민주를 옹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애국주의의 중요한 표현이다”라고 발언하여 사회주의 중국 및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과 애국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1991년 3월에는 장쩌민이 교육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양사일정(两史一情)’교육을 강조하면서 애국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애국주의교육의 이론과 방법이 점차 체계화‧구체화되었다.20) 애국주의교육의 구체적 실천전략으로서 ‘지국(知国)’, ‘애국(爱国)’, ‘보국(报国)’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애국주의교육의 단계적 이행과정으로서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蔡湘荣, 2005: 24).21) 특히 ‘보국’은 애국적 정서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으로서 애국적 정신이 구현되는 중요한 단계이다. 애국주의교육은 조국에 대한 지식과 애국적 정신을 습득한 것만으로는 진정한 애국이라 인정하지 않으며, ‘지국’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애국’을 통해 일깨워진 애국적 정신을 현실 사회에서 실천하는 ‘보국’을 강조한다.

    애국주의의 함양을 위해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혁명적 전통을 학습하는 데 있어서 문물은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이다. 1991년 8월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는 국가교육위원회, 문화부, 민정부, 공청단중앙위원회, 국가문물국 등과 공동으로 《문물을 충분히 활용하여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을 추진하는 것에 관한 통지(关于充分运用文物进行爱国主义和革命传统教育的通知, 이하 통지)》를 하달하였다. 《통지》는 풍부한 문물을 이용하여 조국•공산당•사회주의에 대한 사랑을 교육하는 것이 직관성•생동감•진실성•신뢰성을 특징으로 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청소년이 역사를 이해하고, 국정(国情)을 인식하며, 전통을 학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자 생동적인 교재가 된다고 설명하며,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에 있어서 문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통지》는 문물이 애국주의의 확립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활용되는 데 필요한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22) 애국주의의 확산 및 정착을 위한 애국주의교육에 있어서 중국 공산당은 국가의 역사, 문화, 사상, 혁명적 전통 등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조국에 대한 애국적 정서를 배양하는 과정인 ‘지국’과 ‘애국’ 단계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문물을 활용하고 있다.

    1997년 3월 국무원은 《문물업무의 강화와 개선에 관한 통지(国务院关于加强和改善文物工作的通知)》를 하달하여 문물을 통한 애국주의 함양활동 및 이에 대한 지원을 규정하였다. 애국주의 함양과 관련된 활동에 대해서 각급 문물 관련 기관 및 박물관은 전시 및 해설사의 해설에 있어서 애국주의•사회주의 및 혁명전통을 고취하고, 각 기관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발휘하여 계획적이고 집중적으로 우수문물 전시•문물도서 및 문물시청각제품의 개발 등을 추진하도록 했다. 또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일부 혁명박물관이나 기념관을 선정하여 각급 인민정부가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고, 점진적으로 기초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애국주의교육기지를 건설하도록 규정하였다.

    1998년 1월 문물을 통한 애국주의의 함양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공산당 중앙선전부, 국가교육위원회, 민정부, 문화부, 국가문물국, 공청단중앙위원회가 공동으로 《혁명문물업무의 강화에 관한 의견(关于加强革命文物工作的意见, 이하 의견)》을 하달하였다. 《의견》에서는 문물 중에서도 중국 공산당의 사회주의혁명과 관련된 혁명문물업무를 강화하여 혁명문물의 교육적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민족정신의 발양, 민족역량의 결집, 영예로운 혁명전통의 계승 및 발전, 사회주의 현대화 및 민족진흥을 위해서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혁명문물을 통해서 일반 국민에게 혁명전통, 애국주의, 집체주의 및 사회주의 교육을 시행함으로써 사회주의 현대화가 요구하는 ‘사유(四有) 공민’을 배양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23)

    문물행정에 대한 애국주의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면서 문물 분야의 5개년 발전규획에도 애국주의와 관련된 내용들이 포함되었다. 2001년부터 추진된 국가문물국의 《국가문물사업‘10•5’발전규획(文物事业"十五"发展规划)》에는 광범위한 청소년에 대한 애국주의, 혁명전통교육과 자질교육에 대해서 중시한다고 명시하였다. 《국가문물사업‘11•5’발전규획(文物事业"十一五"发展规划)》에서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전국에 있는 1,000여 개의 박물관과 기념관이 애국주의 및 과학기술보급 등 분야의 교육기지로 선정되었으며, 향후에도 문물의 선전 및 교육에 있어서의 장점을 활용하여 민족정신의 발양, 애국주의교육의 추진, 국가통일의 촉진, 민족적 자긍심의 증대 등의 기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강사회(小康社会)의 전면적 건설을 위한 강력한 사상적 기반과 정신적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또한 문물을 활용한 애국주의 함양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기타 부문과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당중앙에서 추진하는 청소년과 대학생에 대한 사상도덕건설을 실현하고, 애국주의교육기지‘1호공정(一号工程)’, ‘533공정’ 및 《2004-2010년 전국홍색여행발전규획강요(2004-2010年全国红色旅游发展规划纲要)》를 추진하도록 규정하였다.24)

    2000년대 들어서면서 유형문화재인 문물에만 국한되어 있던 문화유산정책의 대상이 무형문화재인 비물질문화유산까지 확대되었다.25) 2005년 3월 국무원판공청은 《우리나라 비물질문화유산보호업무강화에 관한 의견(国务院办公厅关于加强我国非物质文化遗产保护工作的意见)》을 하달하여 비물질문화유산이 각 민족이 대대로 전승해 온 것으로서 민중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각종 전통문화의 표현형식과 문화공간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비물질문화유산은 역사발전의 증거이며, 소중하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화자원이라고 강조하였다.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전통문화교육과 애국주의교육에 있어서 비물질문화유산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므로 각급 도서관, 문화관, 박물관, 과학기술관 등 공공문화기구들이 비물질문화유산의 전파와 전시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지시하였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사적 유물론의 한계에서 벗어나 비물질문화유산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호와 전승을 강조하게 된 원인은 대외적으로는 유네스코에서 시행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제도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국가적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며, 대내적으로 각 소수민족의 전통문화를 중국의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국가적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26)

    개혁개방 이후 애국주의사상의 변화에 따라 문화유산정책의 이념에도 변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문화유산은 사회주의체제의 안정성과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애국주의 확산의 핵심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문화유산은 단순한 보호의 대상에서 역사적 민족정신과 사회주의 혁명전통을 담고 있는 중요한 구현물로 인식되게 되었다.

       2. 문화유산의 관리체계

    애국주의는 근대 이전의 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문물 관리체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애국주의 함양을 위해서 근대 이후에 형성된 혁명문물을 중시하게 되면서 문물의 범위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4년 8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애국주의교육실시강요(爱国主义教育实施纲要, 이하 강요)》에서는 애국주의교육의 시행을 위해서 애국주의교육을 위한 기지를 건설하도록 규정하였다. 애국주의교육을 위한 기지로서는 기존의 문물과 관련된 각종 박물관, 기념관, 열사기념건축물, 문물보호단위, 역사유적, 명승지뿐만 아니라 혁명전쟁 중의 중요전투와 전투기념시설, 두 가지 문명건설의 성과인 중대건설사업, 도시와 농촌의 선진단위 등 광범위한 혁명문물이 포함되었다.27)

    1995년 1월 27일 민정부는 《강요》에 근거하여 최초로 애국주의교육기지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민정부는 《애국주의교육기지의 확정과 열사기념건축물건설의 강화에 관한 통지(关于确定爱国主义教育基地和加强烈士纪念建筑物建设的通知)》를 통해서 100곳의 열사기념건축물을 애국주의교육기지로 선정하였다. 1996년 10월 14일에는 국가교육위원회, 민정부, 문화부, 국가문물국, 공청단중앙위원회, 중국인민해방군총정치부가 공동으로 《100개 애국주의교육기지의 명명과 전국 초중등학교에 대한 추천에 관한 통지(关于命名和向全国中小学推荐百个爱国主义教育基地的通知)》를 하달하였다.28) 1996년의 《통지》는 국가문물국을 포함한 다양한 정부 기관이 협력하여 결정한 것으로서 민정부가 선정한 애국주의교육기지와 다른 점은 전국적으로 100곳의 애국주의교육기지를 선정하여 초중등학생에 대한 애국주의교육의 핵심거점으로 활용하도록 했으며, 특히 각 지구, 시, 현 등에서 지역 차원의 애국주의교육기지를 선정하여 애국주의교육의 장소로 이용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는 애국주의교육기지를 각급 지역단위로 체계화하도록 한 것으로서 1997년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선정하여 발표한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의 밑그림이 되었다. 또한 농촌, 변경지역 및 빈곤지역의 초중등학생에 대한 선전과 교육을 강화할 것을 지시하면서 유료시설에 대해서 기념일이나 공휴일 특히 주말에는 초중등학생의 참관활동에 대한 우대정책의 시행과 초중등학교 교사와 학생에 대해서는 무료개방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 정부는 주로 변경지역에 위치한 소수민족에 대한 애국주의교육을 활성화함으로써 애국주의의 함양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문화가 더욱 중시되는 시대이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이를 선양하기 위해서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중국의 문물이 세계유산으로 처음 등재된 것은 1987년으로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문물의 규모는 신속하게 증가해 왔다.29) 세계유산으로의 등재를 통해서 문화강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 제고와 국민적 자긍심 및 단결심 고취에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중국 정부는 세계유산의 등재와 관리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2002년에는 국가문물국의 ‘문물보호 및 고고사(文物保护与考古司)’ 산하에 ‘세계유산처(世界遗产处)’를 설치하여 세계유산의 등재신청, 세계유산의 관리 및 보호와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였다.

    최근에는 문물을 활용한 애국주의의 함양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국가문물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 간의 협력체계가 구축되는 추세이다. 2006년에는 애국주의의 효과적 확산을 위해서 부문 간의 협력을 통하여 ‘중국애국주의교육웹사이트(中国爱国主义教育网)’가 개설되었다. 중국애국주의교육웹사이트는 ‘중국관심다음세대업무위원회(中国关心下一代工作委员会)’, ‘전국정협교과문위체위원회(全国政协教科文卫体委员会)’, 중국민주촉진중앙위원회, 국가문물국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운영하는 애국주의교육 전문 웹사이트로서 애국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소식과 제작물을 인터넷을 통해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강요》에서 애국주의교육을 위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 유명한 애국자, 민족영웅, 혁명선열, 뛰어난 인물, 모범인물 등에 대한 내용을 각종 언론매체나 인터넷을 통해서 널리 알리도록 요구한 것을 실현하는 효과적인 운영플랫폼이 되고 있다.

    비물질문화유산의 측면에서 보면 정부 차원에서 비물질문화유산의 보호와 전승을 위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이다. 2006년 12월에 비물질문화유산 보호업무와 관련하여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대한 지도감독을 전담할 주관부서로서 문화부의 ‘사회문화사(社会文化司)’에 ‘비물질문화유산처(非物质文化遗产处)’를 설치하였으며, 2007년 6월에 사회문화사를 ‘비물질문화유산사(非物质文化遗产司)’로 개편하였다.30) 비물질문화유산사에서는 비물질문화유산의 보호업무와 함께 국무원판공청의 《우리나라 비물질문화유산보호업무강화에 관한 의견》에 근거하여 애국주의를 함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비물질문화유산의 보호와 비물질문화유산을 활용한 애국주의의 함양을 위한 사업을 집행하기 위해서 2006년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중국비물질문화유산보호센터(中国非物质文化遗产保护中心)’를 설립하였으며, 각급 지방정부도 지역 차원의 ‘비물질문화유산보호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는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중앙과 지방의 분업 및 협조관계의 지속적인 강화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김남이, 2008: 25).

       3. 문화유산정책의 추진 현황

    애국주의의 영향으로 문화유산정책의 이념이 전환되고, 관리체계에도 새로운 기구와 방식이 도입되면서 문화유산정책의 구체적인 추진 차원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1991년 8월에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등이 하달한 《문물을 충분히 활용하여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을 추진하는 것에 관한 통지》에 근거하여 문물을 이용한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을 위한 주요 조치로서 다음과 같은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 각급 교육행정부문, 공청단조직, 초•중등•대학교 등은 학생들이 박물관•기념관의 참관, 혁명유적•열사묘역•기타 기념시설의 참배를 할 수 있는 활동을 조직하고 이런 활동을 학교의 정치소양교육계획에 포함시켜 운영하고 있다. 둘째, 청소년의 연령, 심리특성, 지식수준 및 이해능력 등을 고려하여 교육활동이 점진적으로 심화될 수 있도록 단계적인 활동계획에 따라서 운영한다. 셋째, 박물관, 기념관, 열사묘역 및 각종 기념시설 관리부문은 청소년의 참관 및 참배를 우선적으로 안배하며, 필요한 인원•장소•교재 등을 지원하고 있다. 넷째, 각급 당위원회와 정부는 교육활동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며, 인적•물적•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각급 당위원회와 정부가 문물을 통한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을 정책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문물관리기관들은 학생들에 대한 이용요금 인하 또는 무료이용을 확대하여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하고 있다. 2011년 6월 국가문물국이 발표한 《국가문물박물관사업발전 ‘12•5’규획(国家文物博物馆事业发展‘十二五’规划)》에 따르면 ‘11•5’규획 기간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박물관은 3,020개로 2005년에 비해서 30%가 증가하였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박물관과 기념관의 무료개방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으며, 2011년 말까지 무료개방한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1,804개이고, 이 기간 동안 중앙정부의 재정지원규모는 112억 위안에 이른다.31) 국가문물국은 ‘12•5’규획 기간 동안 박물관의 공익성과 공공문화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 무료개방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32)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애국주의교육실시강요》에서 제기한 대로 청소년을 포함한 대중에 대한 애국주의교육의 심화를 위해서 전국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전국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에는 시기적으로 근대 이후의 혁명문물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역사문화, 제국주의침략에 대한 인민의 저항과 영웅적 투쟁, 인민혁명투쟁과 사회주의건설의 성과 등과 관련된 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애국주의를 선양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활용하고 있다.33) 1997년, 2001년, 2005년 및 2009년에 4차에 걸쳐 지정된 전국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는 총 356개소이며, 전체 현황은 <표 1>과 같다. 1997년 6월 10일에 중앙선전부는 제1차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103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제1차 시범기지 선정에서는 타이완(台湾), 홍콩(香港)과 마카오(澳门)를 제외한 전국의 직할시•성•자치구에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를 선정하였다. 지역별 인구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시짱자치구, 광시좡족자치구 등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변경지역의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2001년 6월 11일 중앙선전부는 제2차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100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제2차 시범기지 선정에서는 시짱자치구, 닝샤후이족자치구 및 칭하이성 등 세 곳의 성•자치구 지역은 추가적으로 선정된 곳이 없었으며, 윈난성과 산시성(陝西省)은 선정된 시범기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2005년 11월 20일 중앙선전부는 제3차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66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제3차 시범기지 선정에서는 시짱자치구, 산시성(陝西省), 간쑤성 등 세 곳의 성•자치구 지역은 추가적인 지정이 없었으며, 전반적으로 이전까지 시범기지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지역에 더 많은 시범기지를 선정하여 지역적 균형을 모색한 것으로 분석된다.

    2009년 5월 21일 중앙선전부는 제4차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87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제4차 시범기지 지정에서는 지역적으로 광시좡족자치구만 추가적인 지정이 없었으며, 하이난성을 제외한 기타 지역에서는 시범기지를 균등하게 지정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특이한 점은 이전까지 지역단위별로 지정하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국가체육총국이 선정된 것이다. 이는 향후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의 확대와 다양화를 위한 포석으로 판단된다.

    2005년 12월 중국 국무원은 매년 6월의 둘째 주 토요일을 ‘문화유산일’로 지정하였으며, 2006년부터 문화유산일을 전후하여 공연, 교육,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유산일을 제정함으로써 중국 정부는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각 지방정부들도 각 지역의 문화유산과 관련된 기념일을 지정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추세이다. 특히 각 지역의 다양한 비물질문화유산을 활용한 문화유산교육을 통해서 자국 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수준을 높이고 애국심을 고양하기 위해서 각급 정부의 문화유산 관리기구와 학교를 중심으로 ‘비물질문화유산 학교방문활동(非物质文化遗产进校园活动)’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각 지역의 공공기관과 여러 사회단체들이 연계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물질문화유산 전승인 초청교육, 비물질문화유산의 공연 및 전시, 체험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하여 학생들이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해서 더욱 잘 이해하고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한 보호의식을 배양함으로써 지역문화에 대한 애착과 애국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물질문화유산이 전승인을 중심으로 계승되므로 일반 국민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급 정부는 비물질문화유산박물관을 건립하거나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온라인 매체를 활용해 접근성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34)

    19)‘문물보호관리잠정조례’의 제1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 내에 있는 일체의 역사적·예술적·과학적 가치를 가진 문물은 국가가 보호하며, 훼손하거나 독단적으로 국외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각급 인민위원회는 관할구역 내의 문물에 대한 보호책임이 있다’라고만 규정되어 있다.  20)‘양사일정(两史一情)’교육이란 1991년 3월 9일 장쩌민이 교육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초등학생(심지어 유치원생까지도)과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끊임없이 중국근대사, 현대사 및 국정(国情)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을 가리킨다.  21)애국주의교육의 첫째 단계인 ‘지국’은 조국에 대해서 이해하고 아는 것을 의미하며, 애국의 기초 및 전제가 된다. 둘째 단계인 ‘애국’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 국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국에 대한 사랑과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정서적 감정을 일깨우는 것을 의미하며, 민족적 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해 ‘보국’하기 위한 정신적 기반을 견고히 하는 과정이다. 셋째 단계인 ‘보국’은 ‘지국’과 ‘애국’을 기초로 하여 ‘보국’을 위한 의지를 세우고, 재능을 연마하여 조국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애국적 의지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며, 애국적 정서의 승화로서 애국주의교육의 궁극적 목표이다.  22)《통지》에는 문물 부문에 속한 박물관과 기념관 등이 천여 곳이 있으며, 이곳들에 소장된 천만여 점이 넘는 문물 중에서 아편전쟁 이후의 역사유물과 혁명유물만도 40여만 점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23)‘사유(四有) 공민’이란 1980년 5월 26일 덩샤오핑이 ‘중국소년신문(中国少年报)’에 보낸 글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상, 도덕, 지식, 규율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24)애국주의교육기지‘1호공정’은 사회주의 혁명과 관련된 지역을 중심으로 혁명성지건설을 추진하는 사업으로서 2005년 12월 마오쩌뚱의 고향인 샤오산(韶山) 지역을 시작으로 정식 추진되었다. 2004년 12월부터 추진된 ‘533공정’은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중 중국의 혁명투쟁사 또는 중국 공산당사와 직접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범기지에 대해서 자금지원을 하는 사업이다. 또한 2000년대 중반부터 각지에서 중국 공산주의혁명과 관련된 기념지나 기념물 등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으며, 이런 장소들을 참관함으로써 혁명적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여행인 ‘홍색여행(红色旅游)’이 유행하고 있다.  25)2000년대 이후 중국 정부가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유네스코에서 2001년부터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2003년 유네스코에서 무형문화유산보호 국제협약(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이 채택되면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은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전환되었다.  26)비물질문화유산의 보호와 전승과 관련된 기본법으로서 ‘중화인민공화국 비물질문화유산법(中华人民共和国非物质文化遗产法)’이 2011년 2월 제정되었다.  27)두 가지 문명건설이란 개혁개방 초창기부터 덩샤오핑에 의해 강조된 물질문명의 발전과 정신문명의 성숙을 의미한다.  28)이에 앞서 1995년 5월 22일에는 중국공산당중앙선전부, 국가교육위원회, 문화부, 신문출판서, 공청단중앙위원회가 《전국 초중등학교에 대한 100종의 애국주의교육도서 추천에 관한 통지(关于向全国中小学推荐百种爱国主义教育图书的通知)》를 통해 초중등학생의 애국주의교육을 위한 100종의 교육도서, 100편의 교육영화, 100곡의 애국주의노래를 선정해서 발표하였다.  29)2015년 1월을 기준으로 중국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분야에서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등재된 국가이다.  30)비물질문화유산사는 판공실, 관리처, 보호처의 1실2처로 구성되어 있다.  31)국가문물국 부국장 董保华의 언론 인터뷰 내용(http://news.china.com.cn/2013lianghui/2013-03/17/content_28267757.htm, 검색일: 2015년 2월 5일)  32)국가문물국의 《국가문물박물관사업발전 ‘12·5’규획》에 따르면 2015년까지 전국의 박물관과 기념관은 3,500개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이 중 무료로 개방하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2,50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33)전국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와는 별도로 각급 지방정부에서는 성, 시(현)급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를 선정하여 애국주의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34)2010년 6월에 중국 문화부에서 발표한 《비물질문화유산보호업무현황(中国非物质文化遗产保护工作情况)》에 의하면 전국에 비물질문화유산박물관 424개소, 전시시설 96개소, 민속박물관 179개소, 전수시설 1,216개소가 운영 중이다. 또한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대표작의 효율적 선정 및 관리, 일반 국민과의 접촉점을 확대하기 위해서 문화부로부터 위임을 받아서 중국예술연구원에서는 ‘중국비물질문화유산 디지털박물관(http://www.ihchina.cn/)’을 운영하고 있다.

    Ⅳ. 결 론

    건국 초기 봉건사회의 타파를 목표로 한 사회주의 혁명세력에게는 전통문화가 투영된 문물에 대해서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 사회주의정권이 수립된 이후 문물은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었으나 사상의 혼란기에는 타파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국내외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애국주의사상이 대두되면서 문물과 비물질문화유산을 포함하는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발생하였다. 문화유산정책에 대한 새로운 애국주의의 영향을 문화유산정책의 이념, 문화유산의 관리체계 및 문화유산정책의 구체적 추진 현황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유산정책의 이념적 측면에서 보면 애국주의의 영향으로 인해서 문화유산을 사회주의정권의 안정성과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문물보호관리잠정조례’를 제정한 1960년대 전기까지만 해도 문물은 과거의 유산으로서 단순한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기간 동안에는 문물은 봉건시개의 잔재로서 타파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문물은 단순한 보호의 대상 또는 타파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발전과 사회적 결속을 강화할 수 있는 애국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로 인식의 대전환이 발생하였다. 1991년 8월 하달된 《문물을 충분히 활용하여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을 추진하는 것에 관한 통지》에서 천명하였듯이 문물을 이용하여 조국•공산당•사회주의에 대한 사랑을 교육하는 것이 애국심의 함양에 더욱 효과적이므로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에 있어서 문물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사적 유물론의 한계에서 벗어나 비물질문화유산을 인정함으로써 대외적으로는 유네스코에서 시행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제도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국가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대내적으로 각 소수민족의 전통문화를 중국의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국가적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둘째, 문화유산의 관리체계 측면에서 보면 애국주의는 문물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애국주의는 근대 이전의 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문물 관리체계에 영향을 주어서 근대 이후에 형성된 혁명문물에 대한 중시로 인하여 문물의 범위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4년 8월 발표된 《애국주의교육실시강요》는 애국주의교육의 시행을 위해서 애국주의교육을 위한 기지를 건설하도록 규정하였다. 애국주의교육을 위한 기지로서는 각종 박물관, 기념관, 열사기념건축물, 문물보호단위, 역사유적, 명승지뿐만 아니라 혁명전쟁 중의 중요전투와 전투기념시설, 두 가지 문명건설의 성과인 중대건설사업, 도시와 농촌의 선진단위 등이 포함되는데 사회주의혁명과 관련된 혁명문물이 가장 중심이 된다. 또한 ‘중국애국주의교육웹사이트’의 사례에서 보듯이 문화유산을 활용한 애국주의의 함양을 위해서 국가문물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 간의 협력체계가 구축되는 추세이다. 또한 비물질문화유산의 보호와 전승을 위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2007년 6월에 문화부에 비물질문화유산사를 설치하였으며, 비물질문화유산의 보호와 비물질문화유산을 활용한 애국주의의 함양을 위한 사업을 집행하기 위해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중국비물질문화유산보호센터를 설립하였고, 각급 지방정부도 지역 차원의 비물질문화유산보호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셋째, 문화유산정책의 구체적 추진 현황을 보면 애국주의를 함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은 사상적 선전교육에 치중하던 이전의 애국주의와는 달리 애국주의의 심화와 현실적 발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의 애국주의를 추진하게 되었다. 각급 당위원회와 정부가 문물을 통한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을 정책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문물관리기관들은 학생들에 대한 이용요금 인하 또는 무료이용을 확대하여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애국주의교육실시강요》에서 제기한 대로 대중에 대한 애국주의교육의 심화를 위해서 1997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356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또한 각 지역의 다양한 비물질문화유산을 활용한 문화유산교육을 통해서 자국 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수준을 높이고 애국심을 고양하기 위해서 각급 정부의 문화유산 관리기구와 학교를 중심으로 ‘비물질문화유산 교내활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학생들이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해서 더욱 잘 이해하고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한 보호의식을 배양함으로써 지역문화에 대한 애착과 애국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화유산을 활용한 애국주의의 함양이 사회주의체제의 안정과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 강화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도자기 애국주의(porcelain patriotism)’란 말이 회자되었다. 경제적인 급성장 이후에 애국심에 불탄 중국의 재력가가 지나치게 높은 대가를 지불하고 자국의 도자기를 구매한 것을 비꼬는 말이다.35) 2012년에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반일시위 과정에서도 애국주의에 함몰된 시민들의 반이성적 행태가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중국 국내에서도 과도한 애국주의에 대해서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서 문화유산을 정책적으로 활용하곤 한다. 중국 정부도 문화유산을 활용한 애국주의의 긍정적 작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편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경험하였듯이 비합리적인 애국주의로 인해서 문화유산정책이 왜곡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35)2010년 11월 영국에서 있었던 경매에서 청나라 시대의 도자기를 중국인이 5억 위안이 넘는 가격으로 구매하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 기자가 이러한 현상을 ‘도자기 애국주의’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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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1>] 연구의 분석틀
    연구의 분석틀
  • [<표 1>] 전국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선정 현황
    전국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선정 현황